sylt – 7월25일

7월 25일

엄마한테 소포를 받았다.
잠바,옷 등이었다. 편지는 안들어있다. 방금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내일도 걸 작정이다. 형 선물을 샀다.
오늘 용돈을 받았다. 손톱깍기가 없어 발톱이 다 부러졌다.
소포를 받고 참 기뻤다. 바지가 없어 걱정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편지를 쓰겠다. 그리고 전화를 걸겠다.
선생님들이 담배를 피웠다.
용돈을 받고 시내로 나갔다. 기념품과 선물을 약간 샀다.
또 살거다. 편지에 기대하라고 해야겠다.
오늘은 짧게 쓴다 – 끝 –

***

많은곳에서 눈치보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

sylt – 7월24일

간만에 올리는 나의 어린시절 쥘트 캠프..

***

7월24일

엄마,아빠,형한테 편지를 보냈다. 잘 갈지 모르겠다.
엄마,아빠,형 생각(가족)이 가득하다.
디스코를 추고 왔다. 눈이 멍하다. 나는 안췄다.
조그만 아이들도 춘다. 못봐주겠다.
다미야(TAMIYA)옷에 녹이 묻었다. 질알하것네.
사전을 조금 읽었다. 또 저녁밥으로 빵에다가 부어스트 5개를
아니 6개를 해서 빵이커졌다. 좀 배가 부르다.
이제 17일 남았다. 비가온다. 자전거가 걱정이다.
녹슬지는 않을까?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아프지는 않을까?
형,엄마,아빠 말을 잘 듣겠다. 엄마아빠가 없으니까 알겠다.
내일은 무얼할지 모르겠다. 아직 자전거를 안탔다. 시계도 많이 긁혔다.
덴마크를 가고싶다. 그리고 여기서 잘 때 떨어질까? 영 가족이 걱정이 되고.
춤추는데서 생각만 했다. 그리고 아쉬운것은 이곳이 섬이라는거다.
그래서 엄마,아빠,형 생각이 더 간절하다.
형이 떠날때 인사를 못할거 같다.
편지에 형도 나오랬는데 형은 못 나올것 같다.
베를린일정은 짧게 하겠다. 엄마아빠가 그립기 때문이다.
걱정뿐 재미있는 일은 없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이제 독일어는 한다.
애들이 “두 칸 슈프렉헨 도이치” 한다. 그 소리를 듣고 기뻤다.
더 열심히 하겠다. 엄마아빠를 위해서라도, 더 크게는 나라를 위해.
디스코텍에서 생각할때 옛날 생각이 났다. 독일 생각도 약간났다.
공원에서 아빠 손수건에 코풀던일 동물원,공원,강 등등 이상했다.
한국에서 엄마 잃어버린일. 여기와서 나는 좀 이상해졌다.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고. 독어,영어가 하고 싶어 졌다. 노는게 싫다.
집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싶다. 휘파람을 하나 더 익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이곳이). 좀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5살정도 된 어린이도 춤을 추질 않나, 계획도 안짜져있고, 투원할레도 없고,
자전거도 안타고 집에가면 엄마한테 말할거다. 곧 잘 시간인데 아이들이 안온다.
이상하다. 팔이 부서진 애가2명 다리1명등등 깔리고 밀리고 해서 아프단다.
오늘을 일기를 많이 썼다. 아직도 쓸 것이 있다. 그리고 발 아픈애는 ‘알타 알타’
하고 다닌다. 지금 그 애가 내 옆에 있다. 이름은 파트락이다. 그리고 자유가 없다.
아쉬가 개새끼라는걸 알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끝내고 사전을 보겠다. 끝

***

너무 웃긴다. 10살짜리가 참 말도 많고 불만도 많고…
90년 91년이었는데 그당시 독일에 갔을때 받은 문화적 충격은
엄청난것이었다.
길거리 키스-_- 등등..
이날은 아마 디스코텍(-_-)에 다녀온 날이었을것이다.
캠프장안에 강당에 조명,음향 시설이 있었는데 가끔 밤에 노래를 틀어주고
춤을 추곤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온 사람들(나이도 어린애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
이 모두 모여 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겼다.
주로 나왔던 노래는 퀸의 We’ll rock you 라던가 Roxette의 joyride 등..
진짜 웃긴건 중간에 조용한 음악이 나오면 모두 짝짝이 껴안고 춤을추는거..ㅎㅎ
난 그런 문화가 너무 어색해 구경하고 뛰어다니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올땐 괜찮았는데 모두 껴안고 춤을 출때 혼자 멍..하게
서있었던 기억들.. 숙소로 오는 깜깜한 길을 걸어오던 기억..
샤워하고 수건 한장만 두르고 방으로 뛰어오던 기억..

나는 지금 스물 일곱..

sylt – 7월23일

23일은 야한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주의해서 보셈–;

***

7.23

오늘은 수영을 갔다가 미친놈과 싸웠다.
그애는 싸가지가 없다. 나는 복수할테다.
오늘 또 손으로 빨래를 했다. 참으로 슬프다.
밥은 많이 먹었다.
쌀밥을 안먹어서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누워있는데 침대가 젖었다.
애들이 장난친 모양이다. 모자와 선그라스가 생겼다.
참 기쁘다.탁구도 했다.
디스코도 춘다. 듣기에는 재미있을것 같으나 참 재미없다.
시시해라. 그냥 독일어나 하겠다. 에아릭을 바보라 한다.
오늘 샤워했다. 그런데 13살 아이의 XX털이 났는데 XX는
이만했다.(그림) 실물크기이다. 그애는 이상한애다.
바보같이 생겼다. 쳐다보는것도 그렇다.
한국 아이들한테 편지쓰고 싶다. 그런데…
짐정리를 했다. 편지를 썼다. 또 살을 태웠다.
탁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모두 재미없으나 독일어를 할걸 생각하니..
엄마 아빠한테 영어,독일어를 배우고 싶다.
형하고 놀고싶다. 텔레비젼도 보고싶다. 대학도 가고 싶다.
바닷가에 있을때면 도르트문트가 생각난다. 저 언덕만 넘으면
우리집이 아닐까?
나는 곧이어 한국에 가고싶다. 눈에 선하다.

***

참으로 슬픈 11살이 아닐 수 없다..아니 12살이군..
저날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아빠가 너무 보고싶어서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하나밖에 없는 공중전화에 죽…줄을 서서
아껴둔 동전을 5마르크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한다.
신호는가지만 엄마아빠는 받지않고…공중전화를 나오는
내 눈에는 눈물이 핑..돈다.

이런식의 일기를 3주간 거의 매일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ㅎㅎㅎ
정말 산만했었던것 같기도 하다.

너무 신기한건 일기를 읽으면 그 때의 기억이 모조리 되살아
난다는 것이다. 그 주변의 기억들과 함께..

뇌라는게 정말 신기하다…
기억이라는것..장기 기억이라는것은 마치 그림에 덧칠을 하는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생각나지 않지만 집요하게 파고들면
결국 모두기억해 낼 수 있다.

난 저 시절에 그리움을 배웠다..

sylt – 7월22일

나는 지금 침대 위에 있다.
점심때 참치가 나왔다(코미쉬)
아니 저녁에.
바닷가에 갔는데 옷이 젖지 않아 기뻤다.
바지를 3개 가져왔다. 1개는 긴바지 1개는
배린 반바지 1개는 지금 입고 있다.
이제 이것 배리면 입을 게 없다.
일기를 다 끝내면 엄마한테 편지를 쓰겠다.

나는 슬프다.
그 이유는 바지도 없고, 이곳 아이들을 보니
한국 친구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14km를 걸었다.
내일은 수영을 간다.
벌써 엄마한테 1/2은 써놓았다.
집에 가고 싶다..
3주라니..

방을 바꾸었다. 더 넓다. 2층침대의 위다.
한국애같이 생긴 애들을 보면 이름을 부르고 싶다.
밥은 괜찮다. 친구들도,침대,선생님도
그런데 너무 심심하다.
특히 바지가 걱정이다. 1개가지고…
3주를 하라니. 무엇보다 성질나는것은 세탁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말도 못빤다.
젠장 이런걸 생각하면 집에 가고 싶다.

끝.

22일의 일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
참치가 나왔다(코미쉬)
이부분은 당시 한국에 만 있는줄 알았던 통조림 참치가–;
독일에서도 나오니 신기했다는 말이었다.

이날은 한국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었던 날인데 내 친구들과
꼭 닮게 생긴 동남아쪽 아이들이 몇명 보였기 때문이다.

옷도 많이 챙겨놨었는데 떠나기 하루 전 뭘 찾는다고
여행가방을 전부 풀었다가 집에 다 두고 와버린것이다..

지금이나 저 때나 나는 달라진게 없는건가..^^;

sylt – 7월21일

*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철자 및 띄어 쓰기는 당시 일기를 그대로 옮깁니다.

일기(기행문) 7.21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로 갔다.
막타는데 누나가 왔다.
그래서 버스속에서 예기했는데 말이 안통해서 웃겼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배로 갈아타고 쥘트에 내렸다.
그리고 버스도 갈아탔다.

쥘트의 섬들은 동화속에 나오는 집 갔았다.
지금은 어둡다.

버스에 내려서 자전거를 빼고 숙소로 갔다.
8명이 같이잔다.

또 바다도 갔다. 신발이 젖어 말리고 있다.
지금은 쓰레빠다.
다 빨아서 나뒀다.
그리고 탁구체가 좋다고 한다.
덴마크를 거쳐 버스도 배에 타고 갔다.
저녁밥은 잘먹었다.
지금 애들은 예기하고 있다.
END THE END ENDE

–; 이게 그날의 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날은 버스타고 숙소 배정 받은거 밖에 없었다.
갈때 여행가방을 엄청 무거운걸 가져가서 무거워 죽을뻔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 몸만한 가방을 들고간 기억이 난다.

벌써 15년전의 이야기인데…바로 지금처럼 머리속에 떠오른다…

3주간의 캠프 – Sylt

독일에서의 한 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독일에 있었던 1년동안 가장 많은 일이 있었던
여름방학..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유일하게 내가 일기를 썼던 시간…
유일하게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 긴 시간을 보낸 시간…
말도 통하지 않고 부끄럼도 많았던 내가 다른 사고의 세계에
들어가 있던 시간들…
그리움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나와 형을 적응도 시킬겸 엄마아빠는 캠프에
보낼 생각을 하는데..첫 3주는 내가 가고 그 다음 3주는 형이가는..
그런 계획이었다.

내가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엄마아빠는 형과 유럽 여행을..
그리고 형이 캠프에 가 있는 동안은 내가 엄마아빠와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난 캠프를 간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있었고..
형은 가기 싫어했다..

나는 나중에 중요한 사실을 또 깨닫게 되는데.. 바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

마침 배낭여행을 온 서울 큰아빠네 큰누나와 며칠을 보내고
캠프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자기 자전거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중고 자전거도 200마르크를
주고 구입했다.(20마르크였던가?–;)
애들한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빨간 아줌마 자전거여서 조금 불만
이었지만… 캠프를 떠난다는 설레임이라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는 떠나게 된다.
내가 갈 곳은 쥘트(Sylt).
독일에서도 대표적인 휴양지로 꼽히는 섬이다.

독일보다는 덴마크의 바로 옆에 있지만 독일에 포함되어 있다.
마치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모습같은 쥘트.
육지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다.

내 어린시절의 가장 큰 경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