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전화 인터뷰

첫 번째 전화인터뷰의 결과는 낙방.

그리고 맨 처음 이력서를 넣고 포지션이 맞지 않아 반려된 곳(영국에 본사가 있는 독일 지사)의 본사에 내 포지션에 해당하는 자리가 나와서 이력서를 넣어봤다. 베를린에 넣었는데 떨어졌었다는 말과 함께…

어쩐 일인지 바로 전화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고 그것이 바로 오늘..

부모님도 놀러오셨는데 마음에 부담만 생기고 영 의욕이 안생긴다. 이러다 인터뷰가 끝나면 또 후회 하려나..

이력서를 받자마자 희망연봉을 먼저 협상하던 함부르크의 회사에서도 내일 테스트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뭐..내가 생각하기에도 연봉-기술-인간의 순서대로 채용하는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연봉은 계약직전에 다시 협상할수도 있으니… 하지만 채용을 희망하는 입장에서는 약간 마음이..아무튼 내일 원격으로 기술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평소 괜찮게 생각했던 회사..하지만 핀란드에 있고 내 포지션은 뽑지도 않는 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것도 아주 뻔뻔스럽게..나 잘하니까 뽑아라 내 포지션은 아니지만 나 똑똑하니까 배워서 잘할게..이렇게..–;

작년부터 느낀거지만 세상의 기회는 나에게 저절로 오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면 수 많은 기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번 영국 본사 인터뷰도 그렇고..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력서 넣는데 돈드는것도 아니고 약간의 마음의 상처만 감수하면 뭐..

지인 소개로 대기중인 두 곳은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고 3월에 맨 처음 이력서를 넣었던 곳도 뭔 말이 없다.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있는 다국적 게임회사에(있는줄도 몰랐는데 아주 괜찮은!)도 이력서를 넣었고 지금 리뷰 상태이다(여긴 지원 사이트에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구직활동을 하며 느낀건..내가 잡 마켓에서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라던가 준비가 많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커리어가 많이 지저분하다는것(ㅠㅠ 장점으로 승화시킬수도 있지만 너무 구차하다). 그리고 대부분 독립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팀단위 개발에 대한 최근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점. 개발 10년차가 넘어 득도한 부분들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아쉽다.

무엇보다 구직이라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스트래스를 주고 자존감을 좀먹는 상태인것 같다.

이번 전화인터뷰에는 지난번 인터뷰 경험으로 영어에 좀 자신을 가져볼까 했는데 영국 본사라니..본토 네이티브와 이야기 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어 부담감은 더하다..ㅠㅠ 더구나 영국발음.

그래도 이번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물론 거짓말은 안되겠지만 위에 적어놓은 어쩔 수 없는 단점, 그리고 금방 극복가능한 부분에 대해 어필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력서를 넣은 회사들은 대부분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들인데 높은 비율로 인터뷰 요청이 오는걸 보면 서류상으로도 내가 쓸만한가보구나 싶으면서도..나도 그들과 같은 프로덕트를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라지만 벌려놓은 사업에 작은 성과라도 더 이루고 싶은 욕심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오히려 내 마음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큰 소득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일용직 노가다 체험과 새벽시장 풍경을 보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랄까.. 나라는 인간은 하여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베를린

독일에 온지 벌써 한 달 하고도 5일이 지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정신없고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말레이시아와 발리의 따뜻한 날씨에 적응해 있다가 0~10도 정도 되는 이곳 날씨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구나 겨울옷은 한국에서 출국할때 입었던 옷 하나씩..애들 점퍼는 비행기 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주고 온 상황이라 옷이 문제였다.

발리에서 겨우 GAP 매장을 찾아 두꺼운 후드티와 청바지를 사고 말레이시아로 온 다음 공항에서 여러시간을 기다려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가 셋에 비행기는 만석..막내는 이제 14개월이니 13시간의 비행을 잘 견뎌줄지 걱정이었다. 더구나 이미 3시간 비행에 공항에서 6시간정도를 보낸 뒤라…그리고 그 전에는 죽음같았던 발리 우붓-덴파사 구간의 운전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참 얌전했다..잠을 자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여튼 조용히.. 문제는 뒷열에 앉은 독일 아이였는데 호야정도 또래에 아주 13시간 내내 울고 소리지르고..

독일의 아이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부모는 말 몇마디 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주변의 모든 승객들이 어마어마한 피로를 느끼고 독일까지..

겨우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24년전 이곳을 통해 한국으로 떠나왔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는 s반을 타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겨우겨우 중앙역으로 와서 맥도날드에 짐을 풀고 심카드를 샀으나 인터넷 활성화가 안되어 일단 베를린에 가는 ICE 열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또다시 베를린으로..발리 우붓에서 베를린까지 총 이동/대기시간을 합하면 약 40여시간..나와 정은이도 피곤하지만 아이들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서 airbnb로 예약한 숙소(5일간 임시로 묵을..그 이후는 다른 곳에 1달을 예약했다)로 갔다. 노이퀠른이라는 지역인데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아 동네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한다.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좋은 분위기..어찌어찌 거리 이름과 번지수를 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너 호철이 아니니?’ 하며 왠 아주머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려서 독일에 있을 때 베를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아빠가 공부하던 70-80년대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이 계셔서 그곳에 놀러갔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나와계신게 아닌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 있었지만 너무 오래간만에 뵈어서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일단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해 보니..아빠가 아주머니한테 우리가 베를린에 간다고 이야기 했고 아주머니가 숙소를 물어보니 내가 보내준 숙소 주소를 보내주셨던 것이다.

아줌마는 나랑 통화도 안된 상태에서 그냥 그 거리에 나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헉 소리 나는 상황이었지만..일단 아주머니와 함께 숙소를 보는데 아주머니는 여기서 우리를 두고 갈 수 없으니 아주머니 댁으로 가자고 하신다. 결국 숙소는 취소하고 아주머니 댁으로…

아주머니는 엄마처럼 간호사로 독일에 오셔서 파란만장한 독일생활..베를린에서 40여년째 계신 분이다. 아저씨가 몇년전 돌아가시고 내 또래인 아이들도 독립해서 혼자 살고 계신데 아직도 일을 하시는…그것도 메르켈 총리한테 상까지 받으신 아주 유명하신 분이다.

아주머니 댁에서 정신없이 5일을 보냈다. 기본적인 생활정보를 아주머니가 다 알려주시고 차로 여기저기 데려다 주셔서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옷도 조금 샀지만 여전히 온가족이 거지꼴로..다음 숙소로 갔다.

3월 11일부터 4월 11일까지 예약한 숙소는 집주인이 아르헨티나로 여행가면서 내놓은 곳이다. Treptow 라는 곳인데 이곳에 terptow 공원이 바로 앞에 있고 주변에 마트도 많아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그리고 지난 한달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곳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우선으로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급하게(?)이력서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그리고 첫 두 회사에 이력서를 보낸 후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 감기에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있었다. 

정신을 조금 차린 뒤 함부르크에 있는 회사 두 곳에 이력서를 보냈는데, 그 중 한곳에서 전화인터뷰 요청이 왔다. IT 쪽이라 모든 일들은 영어로 진행되지만 말하기에 영..자신이 없었던 나..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2달간의 동남아 생활이 나의 영어 말하기 자신감을 어마어마하게 키워줬던것 같다. 

알수없는 자신감으로 전화인터뷰의 ‘영어’는 무리없이 진행했지만 인터뷰 내용은 너무 아쉬웠다. 회사 인터뷰라 당연히 팀단위 작업이나 협업에 대한 질문이 많았었는데 나는 혼자 일한지 3년정도 되었고 그 전에도 혼자 일하는게 익숙해서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던것 같다.

질문:팀단위 작업에 대해 어떤 경험이 있나요?

답변:저는 요즘 혼자 일해서요..

이런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ㅠㅠ

영어에 너무 긴장하느라 영어 대비만 했지 이런 전화 인터뷰에 나올 기본적인 내용은 전혀 숙지하지 못했다…그래도 뭐 지난 일이고 말은 최소한 통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 밖에..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추운날씨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조금씩 나가곤 했는데 내가 아프고 이력서, 포폴, 전화면접 준비하는 동안은 그냥 타블랫과 함께 내버려두었다.

정은이는 매일 음식하고 장보고 정리하느라 바쁘고..오랜 방랑 생활에 매일 시우를 업고 다녀서 그런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바깥활동을 별로 안좋아하는 호야도 맨날 자신의 한계를 넘어 걸어다니고 꼭 자야하는 낮잠도 안재우니 나가기만 하면 픽픽 쓰러져 자다가 이젠 짜증을 부리는데 온 가족이 이녀석 짜증 때문에 또 스트래스를 받는다.

결국 유모차를 하나 사서 시우도 아닌 호야를 태우고 다니기로 했다. 시우는 업고 호야는 유모차에… 유모차 산지 1주일이 되어가는데 너무너무 잘 샀다고 정은이랑 매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호야가 유모차에만 들어가면 쥐죽은듯 조용히 있고 거기서 자고 얌전히…ㅠㅠ

포트폴리오용으로 게임 두개를 만들고 한국 지인들한테 레퍼런스 레터 요청하고 이력서 보내고 각 회사 인사팀 사람들과 이메일로 부족한 자료를 보내고 하다보니 오늘이 되었다.

맨 처음 이력서 보낸 두 곳 중 한 곳은 내가 지원한 포지션과 맞지 않다며 바로 거부 메일이 왔고 다른 한 곳은 이력서가 많아 시간이 걸린다며 기다려 달라는 메일이 왔다.

두 번째 보낸 두 곳 중 한 곳은 전화 인터뷰 후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대기중이고, 다른 한 곳은 희망연봉을 꼭 보내줘야 한다며 나한테 희망연봉을 달라는 메일을 오늘 보내온 상태이다.

세 번째로 보낸 곳이 있는데 여긴 회사가 좋아서 내 업무와 다른 부분임에도 혹시나..하고 보냈더니 역시나 거부 메일이 왔다.

그리고 엄마 친구분 아주머니 딸이 소개시켜준 회사로 이력서가 들어가 있는데 여긴 일단 기다려 보라는 회신 후 대기중이고 형의 지인을 통해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는 정식으로 지원하라는 메일이 와서 지난 수요일에 정식으로 다른 서류를 접수시켰다.

전화 인터뷰를 본 회사를 제외하고는 서류전형에서 합격여부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이곳의 집주인과 협의해서 5월 12일까지 다시 한달을 연장한 상태인데..과연 그 전에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다시 집을 구할지,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구직비자를 받아 계속 구직활동을 해야 할지.. 그런건 아직 모르겠다.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한숨만 나오고 절망적인 생각만 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떠올린건 ‘난 지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니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걸 시도해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구직활동도 미리 안될꺼야..이런 생각보다는 정말 밑져야 본전이니까 내가 여기저기 이력서 더 낸다고 한들 금전적으로 손해보는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모든걸 해 본다음에 절망해도 늦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소하게 이러저러한일도 많았는데 한 달동안의 일을 한 번에 정리하려니 너무 힘이든다.

다음주가 되면 전화인터뷰 결과도 알 수 있고 몇몇 회사의 서류전형에 대한 답도 올것이다. 나의 영원한 목표가 ‘취업’자체가 아닌 만큼 어떠한 결과도 수용할 수 있고, 또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지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독일에서 취업을 포기해야 한다면..그 다음은 꼭 독일이어야 할까? 그런것만도 아니다. 처음에는 독일의 문화, 교육등이 부러워 독일로 왔다면 한국을 떠난지 100여일이 되는 지금의 생각은 ‘글로벌’하게 살 수 있다면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있겠지..나를 원하는 곳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조금 더 방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를 잡고 싶다. 내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겠지만 왠지 그렇게 할 수 있을것 같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될건 되고 안될건 안되는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