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계약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한국도 아니고 독일에서 집을 계약했다.

독일의 집 계약은 가능한 경우 구매자 권리를, 특히 우리처럼 건축중인 집을 회사와 계약하는 경우 더 많이 고려해 준다.

판매자가 일정 비율로 먼저 건축을 완료하고 해당 비용을 요구하는 식이다. 일종의 중도금인데 우리나라와 다른건 일정 비율 건축이 완료된 것을 확인한 후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총 7회로 나누어 지불되며 총액의 5프로는 준공 이후에 지불할 수 있다. 인수인계후 5년간 하자보수 의무가 있으며 소모품이 아닌 설비는 2년을 보장한다.

모든 계약의 중간에 공증인이 있고 구매인은 계약 후 준공까지 공동 소유인이 되어 판매자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대부분 사항에서 큰 사기나 속임수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로 계약이 진행되고 오늘 계약일에 계약서 전체를 공증인이 모두 읽고 양측이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계약서에 사인했다.

통역은 어머니 친구분이 도와주셨는데, 독일어를 못하면 통역을 필수로, 통역자의 인적과 서명도 계약서에 들어가야한다.

이제 취등록세를 먼저 납부한 후 중도금은 시기에 따라 지불하고 완공이 되면 이사를 하면 된다.

말은 간단하지만 가구, 부엌, 아이들 전학 등 골치아픈 문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신경쓰면 되는 일이니 즐겁게 정은이랑 같이 고민해 봐야겠다!

보금자리 마련하기

아이들과 소소한 추억 만들기 한답시고 거실에 온 가족이 이불을 펴고 누웠다. 문득, 이 집에서의 첫날밤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정은이는 지하철로, 나는 여행가방 2개로 시작해 조금은 불어난 짐을 택시에 싣고 이사를 했다. 당장 이불과 식기가 없어 급하게 사러 나갔다가 정은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시간이 없어 냄비 세트만 사 왔었다. 8월이었지만 저녁에는 추웠던 그 때, 온 가족이 작은 방에 냄비세트 상자를 펴고 우리가 가진 모든 옷들을 깔고 덮고 덜덜 떨며 자던 그 때.

우리의 신혼집도 그랬다. 분당에 전망좋은 복층 오피스텔을 신혼집으로 계약하고 어느 새벽에(왜 그랬을까?) 둘이 대청소를 하고 둘이 나란히 누워봤는데 이불이 있었음에도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성남으로, 다시 수내동의 오피스텔 두 곳, 용인 동천동, 용인 발트하우스 까지 이사를 다니다 말레이시아와 발리를 거쳐 베를린까지 이사왔으니 결혼생활 9년동안 2년 넘게 살아본 집에 한 곳도 없다. 어쩌면 지금 사는 베를린 집이 처음으로 2년 넘게 사는 집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이사다니기는 힘들고 방이 하나가 더 필요하니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았는데 월세가 너무 비싸다. 지금도 세후 월급의 반 이상이 월세와 유지비로 들어가는데 더 큰집으로 가면 3분의 2를 집에다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결국 많이 올라 비싼감이 있지만 베를린에 집을 장만하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우리 맘에 드는 집이 나오는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소 5년에서 10년간 월세를 낼 생각을 하니 우리가 거주하는 목적이라면 이익은 아니어도 손해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갈 수록 집에 정이 붙지 않고 떨어져 나가는게 너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적응하기 위해 치던 몸부림과 고민과 상처들 때문에 이 공간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베를린에 산다는 것은 싱글이나 아이가 없을 때 아주아주 매력있는 선택이지만 아이가 있다면(그것도 3명) 조금 달라진다. 학교에도 넘쳐나는 외국인, 너무 다른/많은 문화들 블럭별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생활 환경과 수준. 노후된 아파트와 상대적으로 비싼 월세..

1년이 넘게 집을 알아보고 딱 맘에 드는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자로 올려달라고 했더니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올려달라고 하니 사실 다른 한 명이 대기자로 더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가능성이 없어 보았지만 다음 대기자로 예약을 하고 집으로 온 것이 작년 12월 초.. 그 뒤로도 괜찮은 집들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 집이 안된다면 베를린을 떠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쩐지 그 집이 우리집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우리 앞의 두 사람은 모두 계약을 취소하였고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그 사이 약간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우리 기준에 좋은 조건이라 지금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면 내년 지금 쯤이면 새 집에 있게 될 것 같다. 초등학교/유치원도 바로 옆이고 S반과 큰 공원이 걸어서 10-15분 거리, 상가 자체가 하나도 없고 물로 고립된 위치에 있어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 소음이 거의 없고 빈 공터가 없어 더 이상 건물을 만들기 어려운 동네, 신설되는 고속도로 입구가 근처에 생기고 도심지 옆이라 자전거로 이동도 용이한 곳, 생활에 여유있고 가족 중심의 가구들로 이루어진 동네이다. 베를린에서 찾아낸 흙속의 진주 같은 지역에 적당한 가격의, 우리 마음에 드는 위치에 넓은 개인 정원까지 있는 어쩌면 완벽한 조건의 집! 또 하나의 큰 라이프 이벤트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꿔줄지 정말 이번엔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싶다.

나와 정은이,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

미친걸까?

자꾸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건이 나쁜것도 아니고 인정을 못받는 것도 아닌데…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근 한달을 고민하다 오늘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다른곳에 지원해 보기로..
왜 사서 이 고생을 또 하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 결정한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일단 이력서를 정비 해 봐야겠다.

첫 출근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을 하였다. 작년에 YAGER 첫 출근날은, HR 직원과 함께 오피스 전체에 인사를 하러 다니고, 마침 전체 회의가 있던 날이라 모든 직원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고(그냥 손만 흔들었어도 되는데 벌떡 일어서서 주저리 주저리 말을..), 점심을 먹고 파일 싱크와 각종 툴 셋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비슷한 과정이었다. 다만 직원이 더 많은 관계로 그룹 내에서 인사만 나누고 함께 점심을 먹고 두 개의 미팅에 참석해서 분위기 파악도 하고 랩탑 수령 및 각종 툴 셋업을 했다. 시간이 부족해 모두 세팅하지는 못했는데 걍 월요일에 해야지..하고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아니 참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영어가 딸려서 긴장도 많이 했었는데 이젠 마치 한국에 있는 듯 여유가 있다. 한국에서도 회사다니거나 사업할때 넉살좋게 지냈었는데 이제 그게 조금 되는것 같다. 일도 모두 파악은 못했지만 뭐 별로 걱정도 안되고, 오히려 이 작은(?)프로젝트에 개발자만 나 포함 4명이 매달려 있다는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왜때문에??

회사는 규모에 비해 약간 허술한 인상이었지만 그 만큼 빨리 성장한다는 좋은 의미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영역이 더 많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예전 같으면 오늘 프로그램 설정을 모두 끝내고 랩탑을 집으로 가져와 일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겠지만… 나는 변했다. 내 일 때문에 가족의 주말을 망치는 것이 아주아주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주말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뭔가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닌데 가족의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도 또 느끼는 부분이지만 정말 글로벌하다. 오늘 같이 점심을 먹은 12명 중 1명만이 독일 사람이었다. 일본사람을 만나 일본어로도 이야기 했고 한국 사람도 만났다.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프랑스 등등..이름과 함께 국적을 외우는 것도 일이고 각기 달리 발음되는 이름 외우는 것도 일이다(같은 Simon 이라도 독일은 지몬, 미국은 사이먼..).

그래도 이렇게 수 많은 다양함을 접하는 이곳이 재미있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기준 하지만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 또한 크게 가지는 이 다양성이야 말로 어쩌면 내가 독일, 아니 베를린에 와서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른다.

입사와 함께 기존의 회사에 작별인사를 했는데 많은 동료들이 메세지를 남겨줘서 그것 또한 감동이었다. 짧다면 짧은 1년 반 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던것 같다. 회사도 근처고 페북으로 다 연결되어있음에도 맘 한구석이 저려왔다.

최대한 재미있고 알차게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이직 관련 외국인청 방문

블루카드 소지자가 블루카드 발급 후 18개월 이내에 직장을 옮기는 경우 외국인청에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새로 다니게 될 회사의 HR과 연락하여 외국인청에 관련 예약을 잡고 회사에서는 계약서 사본과 관련 정보를 외국인청의 담당자에게 알려주었다.

준비해 갈 서류로는,

– 새로운 회사와의 계약서

– 기존 회사 계약 해지 서류

– 전자 거주 증

– 여권

– Zusatzblatt

라고 안내 받았는데 막상 가보니 여권,블루카드,Zusatzblatt 만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job title 이 적힌 Zusatzblatt 를 다시 발급해 주고 끝났다.

총 소요시간은 10분 정도..비용은 없었다.

 

이제 오늘까지 긴 휴가가 끝났다. 더불어 독일에서의 첫 직장 생활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는 깜짝 뉴스 이후로 약 두 달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늘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관련 분야의 공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집안일과 아이들보기 그리고 이제서야 동네도 조금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우는 이번 주부터 2학년이 되어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고, 내가 회사를 다시 나가면 조금은 더 빡빡해지겠지만 이게 모두 우리가 독일에 정착하는 과정이 될테니 열심히 생활해야 겠다.

 

말조심

독일로 와서 취직한 회사와의 고용 형태는 ‘종신고용’이다. 그래서 블루카드도 4년짜리를 받았고 33개월 이후 별다른 조건 없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본다면 이미 영주권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회사에 다니면서 내 사업 준비도 해야지..이것이 나의 작은 계획이었고 회사일도 크게 힘들지 않고 이제 1년이 지나 여러가지로 적응이 많이 되면서 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해볼 참이었다.

지인들과 대화에서 가끔 ‘여기는 해고 시키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영주권까지 고고씽이야!’ 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였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아직 알리지도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속해있는 개발스튜디오 프로젝트가 돈줄인 퍼블리셔에 의해 취소되면서 회사가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간것.. 아직은 고용계약 상태이고 법정관리하는 동안은 급여도 100% 나오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회사는 파산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나의 고용계약도 취소가 되기 때문에 블루카드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독일어 B1 증명과 블루카드 상태로 21개월 이상 일했다면 영주권 도전을 하고 조금 편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겠지만(실업급여도 받으면서..) 나는 이제 15개월..(B1증명도 없음)

정확한 절차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니 엄청난 위기는 아니지만 험난한 구직 과정을 또(?)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래스가 밀려왔다. 더구나 지우는 학교에 엄청 잘 적응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래스..나 또한 여기서 이사하는게 엄두가 나지 않는데..

상황은 이렇다..7월부터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3개월 동안 관리를 받게 된다. 이 기간동안 회사는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새로운 프로젝트 계약 등). 그리고 이 기간동안의 급여는 고용자 조합에서 100% 지급된다. 3개월동안 별 성과가 없으면 회사는 파산하게 되고 성과가 있다면(다른 회사의 인수나 신규 프로젝트) 다시 살아나게 된다. 파산을 하게 되면 고용계약이 취소가 되는데 하루아침에 고용계약이 해지 되는것이 아니라 2달 동안의 알림 기간이 주어진다. 즉 나의 경우 무려(?) 5개월 동안 별 일 없이 고용계약이 유지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내 고용계약은 11월 말일에 종료되고 그 날로부터 다시 3개월 이내에 다른 회사에 취직해야 블루카드를 유지할 수 있다. 그 기간은 내년 2월 말..시간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베를린에 괜찮은 회사가 별로 없다는 것…하지만 나에게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베를린에 있는 회사들에 지원해 보고 어려우면 다른 지역에 지원해 볼 생각이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 운명의 결정권이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달려있어서 일찍부터 싫어했는데 독일에서 가장 빨리 영주권을 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나름 적응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일들이 생기니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독일은 직장인에게 너무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프로젝트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3개월 동안은 놀면서 돈을 받는다(회사에 나와서 논다..). 심지어 내가 가진 휴가를 다 쓰고 하반기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거기서 또 휴가가 생기기 때문에 최대 45일정도를 올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말이 45일이지 2달이 넘는 기간인데.. 거의 놀고 먹는다고 봐야할듯..그리고 덕분에 이 블로그를 통해 또 다른 구직 정보를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인가?

하여튼 우리 가족은 참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고 있는것 같다.

내가 언제나 마음속에 경험으로 믿고 있는 한 가지는 ‘언제나 위기속에 가장 큰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올지 기대된다(제발 스트래스 받는 상황은 오지 않기를–;).

아이들 적응은..?

지우야 오늘 가져가는 과자 친구들한테 나눠주고 다른 친구들이 또 달라고 하면 다음에 주겠다고 해. 다음에 또 줄게는 독일말로 어떻게 하는거야?

Morgen vielleicht! (Maybe tomorrow!)

적응 못할까봐 1년 늦게 학교를 보낼까 고민했던 것도 잠시..독일어 아는 단어는 오직 구텐탁,츄스,당케,피피막헨 4가지였는데(안녕,빠이,고마워,쉬마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이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선생님 말씀도 전달하고 읽기 쓰기도 제법 한다. 한국이었으면 올해 학교 갈 나이이고 생일이 늦어 사실 2년 일찍 학교에 간건데 학교에 가면 여기 저기 인사하고 아는 친구들 찾느라 바쁘고 여기저기 초대받아 놀러다니고 또 초대하고.. 숙제 더 하고 싶다고 미리 공부 다 해놓고 피아노 연습도 혼자 하고 정말 대단하다. 나는 8살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학교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끝나면 동네에서 노는게 고작이었는데 지우는 할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누나와 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호야…

유치원에 가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많이 논다. 아드리안이라는 단짝 친구가 생긴 뒤로는 부쩍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자기들 끼리는 간단한 독일어를 한다. 이리와..같은거.. 선생님이 물어봐도 언제나 고개만 끄떡이는데 옆에서 보면 조금은 알아듣기는 하는것 같다. 예를 들어 차마실래 쥬스 마실래? 하면 쥬스를 가르킨다던가.. 호야는 어리고 부끄럼이 많으니까..하면서 별 기대 없이 있었는데..어느날 호야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우 만큼은 아니지만 유치원 다닌지 오래도 아니고 호야 성격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이다. 대부분의 단어도 다 알고 있고..그 날 이후로는 자기가 궁금한거는 어떻게 이야기 하냐고 물어보고 적극적이 되었다. 호야도 이런 식이면 문제 없을 듯..

시우..

시우는 요즘 부쩍 말이 늘었다. 한참 말을 배우는 시기라 그런지 말이 많고 쫑알쫑알 시끄럽다. 독일어는 접할 기회가 없지만 기본적인 인사같은건 따라한다..누나 형이 있어 전혀 걱정은 안된다..성격도 젤 강해보이고–;

 

정말 다행이다..이 모든 것들이..

8개월

비자, 집, 아이들 학교, 유치원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신없이 지내왔다. 남은 일들이 아직도 많지만 모두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일들 뿐이라 부담이 덜하다. 답답한 일처리와 달라진 환경에 좌절하고 조금은 우울했었던 이곳 독일.. 20년 전의 좋았던 점에 비해 너무나 그대로 인 독일에 실망까지 했던 나. 한국에서 환상적인 전원 주택 생활을 하다 50-100년된 허름만 집에, 그것도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답답함.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많이 힘들게 했다. 어제 저녁 처음으로 정은이와 이 곳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8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그 장점들을 한 번 적어보려 한다.

– 보행자/자전거 천국
한국에서는 차가 없이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 차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주변 국가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올 때까지 과연 차를 사는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있으면 편하겠지만 없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대중교통은 물론 카 쉐어링도 잘 되어 있고 언덕이 없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무리가 없다. 대부분의 인도는 자전거 도로와 함께 어마어마한 폭으로 만들어져있고, 노점이나 인도위 주차, 불법 간판같은것이 없어 더욱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물론 유모차라면 최 우선 순위로 배려해 주는 사람들의 의식도 너무 좋다.

– 공동체 의식
서양인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했던가.. 물론 작은 단체의 소속감은 한국이 엄청나게 강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작은 단체끼리의 개인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가족, 우리회사, 우리 아파트, 우리 지역… 하지만 이 곳은 모든 사람이 한 공동체에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개개인은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모든 집단에 대해 평등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것 같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외국인 입장에서 굉장한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차별이 조만간 큰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 같다.

– 자연
베를린 도심의 공기가 용인 양지 전원 주택의 공기보다 좋다. 비도 그냥 맞고 다니고 마당에 오래 둔 물건들에 쌓이는 먼지도 깨끗하다.

– 교육
말할 필요도 없음. 교육을 딱히 잘 시킨다기 보다 모두 다 같이 경쟁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좋다. 나도 맘 편하게 애들 놀릴 수 있으니. 그렇게 하고도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다니 우리 나라에서는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이곳 초등 1학년 지우는 학교에서 두 달동안 1부터 7까지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알파벳은 아직 모두 배우지 않은것 같다–; 학교 수업은 독어/수학/음악/미술/체육/종교 과목이 있다. 유치원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그냥 애를 봐주는 곳이다…..–; 뭐가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보면 작은 것들인데 이런 부분들이 내 삶의 질을 높여준다. 한국에서 운전하고 차 관리하는 스트래스가 없으니 비용적인 부분을 떠나 속이 다 후련할 정도이다. 이젠 살림살이 장만이 남았다. 살림이야 욕심부리자면 끝이 없지만 우린 아직 티비도 없는 상황이라… 추운 겨울이 다가오지만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사서 출퇴근해보려 한다. 당장 다음주에 주문해볼까 하는데 베를린은 자전거 도둑이 극성이라니 이것도 참 걱정이다..

독일이 문제일까?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 지우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것 같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 또래 아이들은 말로 의사소통하는 비율이 그다지 크지 않다. 이번 주 부터는 가을 방학이 시작되어 2주간 논다. 논다기 보다…학교가 노는 곳인데 못놀게 되어(?) 조금 아쉬워 하는것 같다.

호야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적응기간이라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고 있는데 큰 문제 없어 보인다.

시우는 여전히 활발하고 많이 먹고 시끄럽게 잘 크고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아이들은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사실 그렇다. 문제라기보다는 생각보다 더 잘해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것 같다. 문제는 우리들이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다. 정은이는 가끔 왜 우리가 독일에 와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속상해 한다.

많은 부분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기대했던 것과도 다르다. 직접 겪어보는 생활은 어디에 살던지 비슷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더 힘든 부분도 있다. 심지어 기후가 다르고 먹거리가 다른것도 큰 스트래스다.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즐길 수 있었을 부분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애들이 셋이나 있고 아직 어리니 유럽의 중심에 와 있으면서도 베를린 바깥으로 여행이나 나들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멀리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지만 지금 가 봐야 더 고생이라는 걸 아니 늘 집 근처 놀이터나 동물원만 다니고 있다.

더구나 아직도 장만하지 못한 살림살이가 많아 이것도 어마어마한 스트래스다. 특히 우리와 같이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렇게 모든 살림을 장만해야 하는 상황은 어마어마한 스트래스다. 티비를 사야 하는데 티비장을 못골라서 못사고, 티비장을 사야하는데 쇼파가 없으니 컨셉을 못잡아서 못사고 쇼파는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서 모든게 멈춰있는 상태다.

신발엔 구멍이 뚤렸지만 아직도 맘에 드는 새 신발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 물건은 그래도 어려움 없이 구입했는데 이것도 애들이 셋이다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금요일이 지우 생일이라 킥보드를 사러 갔다가 이걸 3개를 사야한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보호대도 헬멧도 전부..

그래도 지우가 학교에서 방과후 과정까지 하고 오후 4시에 오고  호야도 다음주 부터는 그 쯤 집에 올 것이다. 그러면 정은이도 조금은 시간이 생기겠지..

그래봐야 우리는 아직 독일어 공부를 시작도 하지 못했다. 독일에 온지 반년이 훌쩍 넘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스트래스들이 독일에 와서 신난다는 기분보다는 우울한 기분을 많이 느끼게 한다. 그리고는 모든 원망이 독일에 집중되어 버린다. 물론 독일 생활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다. 느린 일처리, 우울한 날씨, 맛없는 음식..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가족의 삶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우가 학교에 가기 시작했고, 호야가 유치원을 옮겼다. 사실 이것만 해도 한국에 있었더라도 어마어마한 변화이고 스트래스였을 것이다. 더구나 매일 집에 있던 내가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도 엄청난 변화이다.

결국 이러한 변화들을 일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2014년의 어마어마한 하루 하루들이 지나고 있다.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었고 머리가 터지고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고민했던 하루 하루들…

아직도 사야할 물건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이다. 언젠가는 이런것들이 다 없어질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