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지난 12년간 아이들을 키워오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첫째 지우는 기준을 잡을 방향도 없이 어느 것이든 극단적으로 키워왔던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 많은 것을 받아준다던가 하는 긍정적인 방향도 있었지만 아이의 욕구를 틈도 없이 차단해 버린 적도 있었다. 둘째 지호가 태어나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것에 맞춰진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한 아이를 챙긴다는건 다른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하루도 만족하거나 웃을 수 없는 하루였다. 특히 엄마로서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정은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가 비슷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고 또 크고 작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휴게소를 찾으며 고장난 엔진으로 전력질주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있었던 기분이었다. 우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고(지금도) 중간 중간 쉬었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최소 20년이 걸리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우리는 눈 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고, 길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피곤이 쌓이고 여유가 없어지자 아이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화는 분노로,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훈육을 핑계로한 폭력.. 그 수위가 어느정도이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에 대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은 이제 평범한 부모만 되어도, 아니 나쁜 부모만 되지 말자로 바뀌어갔다. 병원에 갔다면 무언지 알 수없을 병명을 십수개 진단받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 무렵.. 우리는 매일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시 다짐했지만 세 아이와 외국생활에 대한 적응, 여러 집안문제 그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게에 짓눌려 끝없이 추락하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던게 둘째를 키우던 첫 해였는데 그로부터 불과 3년뒤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해본적 없는 바닥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스스로 천성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생각했던 나 스스로 우울함을 느끼던 그 때, 이미 우울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정은이.. 행복했던 우리가족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이유도 알 수 없던 그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인정하고 또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셋째 시우가 말이 트여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챙길게 많았지만 시우가 말을 하게 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불과 1-2주 사이의 변화였다. 소리지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아이라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애교를.. 그리고 지우와 호야도 학교, 유치원에 적응했고 우리의 비자도 안정되었으며 불안한 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집의 계약도 마무리 되었다. 머리속을 가득채우던 걱정거리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행동은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웃는 날들은 늘어나고 약간의 여유도 생겼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이 생기면 예민하게 굴었다. 늘 나빠지기만 했던 상황이 이제 바닥을 치고 하루 하루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서로에게 위로하며, 우리는 좋은 부모가 아닌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철없던 10대 시절 입에 욕을 달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 고치겠다고 마음먹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 2년정도 걸렸던 기억이 났다. 나쁜부모가 되지 않는 다는 목표는 우리의 첫 목표에 비하면 비참한 수준이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기에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변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조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부모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뭔가를 고쳐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과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 더 느끼려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급하게 아이들을 밀어대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그리고 짜증내는 것을 구분하고 화와 짜증은 아이들 앞에서 내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고 만약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면 아이들과 이야기 해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풀 수 있도록 한다.

내 생각이지만 정은이는 좌절과 우울함 그리고 힘들었던 정도가 나보다 훨씬 심했고, 나와 성격도 달라서인지 아직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령도 모르고 늘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는 정은이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더 챙기고 여유를 만들면 조금은 더 쉽게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마일스톤을 넘었다는 선언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도 많고 정리할것도 많았지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과 가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사는게 쫓기듯, 밀리듯 살다보니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 마저도 쉽게 이루지 못한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더 여유있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와 달라야 할 것

아이는 혼날 수 없고 혼내서도 안된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엄숙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이 이후에도 감정의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한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서로 웃을 수 있어야 제대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화 중에 주제를 자주 바꾸지 않듯이 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 해 줄 때 다른 주제로 바꾸지 않는다. 특히 싸우거나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옛날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들먹이며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혹은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러 왔을 때, 그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나한테 관심있는 주제로 바꾸는 것도 똑같이 좋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한 노력에 보답받지 않았다고 하여 그 서운함을 다시 아이에게 표현하지 말자.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인데’ 라던가 ‘어떻게 만든 음식인데’ 와 같은 마음들..

아이들이 다가올 때 밀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에 비하면 실수 투성이다. 아는것도 많지 않고 경험도 부족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프다. 실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아는 아이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 용기있는 시도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말은 짧을수록 좋다. 내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내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이유 말고는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길어질 수록 거부감만 생긴다.

짜증과 화를 구분할 것. 부모도 인간이니 화가나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건 옳지 않다. 화가난다면 그 상태를 알리고 시간을 가지면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짜증을 내는건 내 감정을 배설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의 일에 일희일비하는것 처럼 아이들을 외곡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없다. 은연중에 부모의 기대가 아이의 사고를 지배하게 만들면 안된다. 기쁜일이든 나쁜일이든 같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것 말고는 부모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아이의 삶을 내 삶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잘 할 자신도 없다. 매일 계속 되새기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저 중에 하루에 하나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적고 읽고 또 적고 읽는다. 오늘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제 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만 늘 하지 못하는것, 늘 명심해야 할것

아이는 부모의 말이나 결정이 아닌 부모의 행동에서 배운다. 부모의 조언이나 생각이 아닌 본인의 경험으로 성장한다.

짜증을 내는 것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이다.

나에게 아이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제어할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은 없다.

아이는 부모의 결정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 한가지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결정의 권리는 아이에게 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성숙한 인간이 되고, 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아이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것 같다. 무슨 공부를, 돈을, 습관을, 교육을…이런 주제는 그 다음 문제로..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깨닫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게 생존에, 그리고 삶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내가 특히나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먹어본 똥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어렸을때 참 많이 찾아 먹었다. 하루 이틀 빨리 경험하고 하루 이틀 빨리 졸업했던 그 시행착오들이 오늘의 시간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실수하고 배우고 또 반복하지만 조금씩 좋아지는것에 위안을 받는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가 생길 때,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자기를 보는 시간보다 타인을 보는 시간이 많아 내 시각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의 방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경쟁사회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 생각한다. 타인의 기준에 자신의 행복을 맞추기 때문에 스스로가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억지로 부여한 동기로 밀어올린 성과의 우위로 자신의 행복을 가늠한다. 그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치졸해지고 진 사람은 찌질해진다.

경쟁에서 지는 사람은 거대한 열등의식에 빠져 인생 전체를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직장도 결혼도 아이도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에 불과하다. 때문에 거기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들을 수단으로 우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언젠가 그들이 우위를 점하는 날이 온다. 이제 나의 직장, 가족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지는 사람이 많을까? 그야 물론 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쟁의 기준도 많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두가 패자인 사회가 된다. 점점 더 비열해 지고 유치해 지고 치사해야만 짧지만 작은 행복이라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인스턴스 행복은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이런 행복은 금방 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속을 채우는게 중요하다. 무엇이 자기의 인생인지 아는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돈도 더 잘 벌린다.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안된다는게 이런거다.

한 번 열등감에 빠지면 그 세계에 갇혀버리게 된다. 어릴때 두들겨 맞던 사람은 평생을 운동에 집착하고 복수를 꿈꾸며 육체적인 허세만 부리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못간 사람은 평생을 학위나 타이틀에 집착하며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열등감을 정당화 시키고 벗어나게 해 주는 돈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열등감을 얻는다.

내 주변에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2020

지난 한달여간, 머릿속에 수 많은 가능성들을 시험해 보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 하고 싶고, 다 하기 싫고, 자신있다가 없고 그냥 짜증만 나고 몸도 계속 아팠던 지난 한 달. 감사하게도 마음속 하나의 큰 다리를 건넌 기분이다.

머릿속 관념을 깨고 비틀고 거꾸로 바라보니 무엇을 해야할지 답이 나왔다. 늘 그렇듯 답은 알고 있었다, 실천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 싫은건 걷어내고 좋은것 붙이면 되는거지. 손해보다 이익이 크면 하는거지. 해서 재밌으면 하는거지. 그렇다. 말은 쉽지..

나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어쩌나? 물심양면으로 한창 신경써야할 토끼같은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서 우리 부부, 자식들만 키우기에도 버거운데, 내가 정은이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와도 부족할 판에 부담을 더 지워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깨고 비틀고 거꾸로 봐야 했다. 꼭 이래야 저런다는 관념이 내 인생에도 늘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아이들 키우는 부담도 줄고, 일하는 부담도 줄이고 그러면서 시간도 늘리고 버는 돈도 늘리는 일 말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지금 생각으론 많은 사람들이 그 결론을 못 내릴 뿐 이미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이건 또 뭔 말이냐고? 한 달동안 아프고 생각을 많이 했더니 정리하기가 어렵다.

2020년은 나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시험하고 또 조율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14년 한국을 떠났던 그 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난 5년간의 배움을 그 마음에 녹여내야지..

2019

2019년은 별 다른 일 없이 평안하게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우의 학교 입학처럼 많은 일들이 예측 가능했고 계획되었던 일들이었으니..

늘 그렇듯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언제나 ‘다사다난’ 했던 1년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한 가지 결과는 다른 일의 원인이 되니 그것이 나쁜일이었는지 좋은일이었는지는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중에 지금도 진행 중인 몇가지 일들을 적어보자면 단연코 회사에 던진 나의 사표가 되겠다. 왜 사표를 던지게 되었는지를 따져보자면 사실 올해 두 번 승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일이 힘들어서 못견뎠다면 그건 또 아니다.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일들을 진행하다 보니 회사 내부 사정을 더 잘 알게 되고 거기서 경영진과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냥 개발자로 있었다면 모르거나 모른척 넘어갈 수 있는 그런일들이 이제는 못본척 넘어갈 수 없는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의 다음에는 나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또 다른 챕터가 기다리고 있다. 사표를 내지 않고 더 버티고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에 홀린듯 아무런 계획없이 사직을 하고 보니 내 앞의 가능성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조직에 특화된 기술이 아닌 내가 나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술들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고, 사실 이미 무엇이 나에게 옳은 정답인지 알고 있었으니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한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정도 수입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가슴뛰지 않는 일은 하지도, 쳐다보지도 말자. 사람들도 다 쳐냈는데 이까짓 것들은 일도 아니다. 차분히 마음정리 몸정리를 하면서 생각하니 또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다사다난한 2020년을 만들 수 있을만한 일들, 나를 다시 한계로 몰아 붙일 수 있는 상황들,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들 말이다.

지나간 일에 옳고 그름은 없다. 그 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다음 선택을 혹은 그 결과를 옳게 혹은 그르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정말 가능하다면, 매일 가슴뛰는 하루로 만들어 보고 싶다.

맥북프로 키보드 수리

내 맥북프로의 키보드가 애플의 특별 보증 수리에 해당된다고 하여 회사근처 그라비스에 수리의뢰를 한 것이 몇 주 전… 오늘 수리 완료된 맥북을 찾아왔는데, 내 맥북을 돌려주는 직원이 하는 말이, 이건 유니바디라 중간 레이어의 케이스와 거기 붙어있는 키보드, 스피커, 터치패드까지 모두 새걸로 교체했다고 한다. 비용은 물론 무료!

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아서 그런지 아주 새것이 되어버렸네..뭔가 좋은 예감이 든다! 이것 저것 세팅을 하고 나니 내 서버 꾸밀 때 처럼 뭔가 아련한..그 느낌이 온다. 늘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

사표를 낸 날 부터 감기에 걸려서 벌써 2주가 넘게 고생하고 있다.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더 심해져서 이젠 기침을 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에..오늘 아침에는 코피까지 흘렸다. 몸 상하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휴가가 끝나면 병원에 가서 꼭 검진을 받아야겠다. 그 동안 아파도 참고 회사에 나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몸도 좀 회복하고 다음 도전을 위한 준비도 열심히 해야겠다. 나이가 40이 되어서 아직도 뭐 하고 살아야 할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다니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또..

또 쉬운길 말고 어려운 일 찾고 있다. 정은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당연히 불안하겠지..

11월

나에게 11월은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연말의 설레임이 시작되는, 그런 시간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매일 매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 길어지는 밤, 낮아지는 온도, 불편한 옷들을 하나 둘 껴 입어야 하는 그런 시간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수 많은 나뭇잎들이 자라나는 속도보다 빠르게 메말라 떨어지고 매일 밤 우리를 귀찮게 하던 작은 벌레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모든 생명이 죽어가는 것 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나를 조금은 쓸쓸하게 만든다. 한국과 비교해 더욱 긴 저녁과 흐린 날씨가 또 한아름의 쓸쓸함을 그 위에 얹는다.

겨울이 오고 그리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온 세상은 생명력 넘치는 움직임으로 가득하겠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마음이 단련되고 성장하는걸 느끼지만 생각 했던 주제들이 어린 시절에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성장 보다는 늙어가며 깨달아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ㅠㅠ

나에게 이 시기가 지금의 11월이길 바래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여전히 성장하는 가운데,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이파리를 떨구는 나무처럼, 나도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라는걸..

다시 서버 이전..

1기가 램으로도 디비가 계속 죽어서 이걸 어찌할까 하다가 일본에 있는 서버를 여기서 쓰는것도 웃기고 해서 독일 서버로 이전..독일에서 제공하는 가상 호스팅인데 월 5유로에 조건이 너무 좋다.

8기가 램, 4코어 시퓨 그리고 무제한 트래픽에 200기가 SSD? 이 조건에 월 5유로라니..10년전 같으면 사기라고 했을것 같다.

도메인 설정을 다시하고, 블로그 옮기는것도 이전에 도커로 해 놓은 지라 명령어 몇 줄로 땡… 서버가 가까워서 속도도 빠르고 램이 8기가라니..마음껏 낭비해 주겠어.. 서버를 세팅하고 무언가를 세상에 노출 시킬때 느끼는 그 설레임이 여전하다. 비록 아무도 찾지않는 블로그이지만 내 집을 짓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집을 지어본 적은 없지만..

이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 다른 무엇도 그 때와 같은 감정을 만들지 못했던것 같다. 내가 하려고 했던 수 많은 시도들이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처럼 두근거릴 수 있었다면… 그런 일들로 가득한 삶을 산다면 어떨까..너무 신나겠지..

나의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내가 내리는 결정과 선택에 어떠한 두근거림이 있었는지.. 나의 요즘을 돌아본다, 두근거림은 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