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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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운동선수의 운동능력은 그들에게 주어진 훌륭한 신체가 있기에 가능했다.
2군에 속한 선수가 열배의 노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넘어설 수 있는게 아니다.
인간이란 애당초 주어진 것 밖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제 잠자기 전의 나와 오늘의 나,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사람이다.
(생각의 변화와 신체적인 변화로) 하지만 뇌는 개성이 아닌 공통성을 추구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사회생활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흘을 만나지 않으면 괄목해야 한다(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말이
삼국지에 나온다. 사흘을 만나지 않았으면 변했을지도 모르기때문에 잘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바보에겐 자긴의 세계 이외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혹은
자신의 생각 이외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변하고,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불공평한것이며 그것이 정상이다. 식물은 언제나 초식동물에게 먹히고 초식동물은
언제나 육식동물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세상은 애당초부터 불공평하게
만들어 져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균형을 맞춰야 모두가 평등해진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불공평하게 만들어 져 있다. 내가 가진 능력,성격은 모두와 다르다.
그리고 심지어 나 자신도 어제와 오늘 매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흥미도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인다.
요컨데 아기의 출산에 대해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고 생각하지만 미혼 남녀가 생각하는,
즉 남자와 여자가 알고있다는 출산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다르다.
남자는 출산에대해 경험할 수 없으므로 받아들이는 정보도 제한적이 되고,
죽을때까지 그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출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것은 ‘알고있는’ 상태가 아니다. 다만 추측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여성과 이런 남성이 출산을 주제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수는 없다.
축구 경기를 열심히 시청가고 축구가 무엇인지 알수는 없다.
자전거 타는 비디오는 몇십년간 본다고 해서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지식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이야기 해 주면 통할거야’ 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도 모르는 지식(저전거도 못타면서 타는 방법만 아는)을 열심히 설명하면
상대방이 자전거 타는 법을 습득할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착각이다.

세상에 100%는 없으며 절대로 옳은것도 없고 ‘절대로’라는 말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바램’일 뿐 세상은 그와 무관하게 돌아간다.
세상을 인지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고,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불확실한 정보를
차단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자신이 인식하는 만큼 형성이 된다.
자신의 세계는 자신이 만드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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