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와서 가족과 함께 구직비자 받기

독일은 EU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 즉 대한민국 국민이 독일에 와서 구직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6개월 동안의 구직비자를 발급한다.

독일에 무비자로 입국하면 독일을 포함한 EU 국가에 90일간 머무를 수 있는 쉥겐비자를 자동으로 취득하게 되는데, 독일 구인 프로세스는 생각보다 느리고 길어서 한국에서 잡오퍼를 받고 들어오는것이 아니라면 이 기간은 상당히 짧다고 볼 수 있다.

이력서 확인에 1-2주, 전화 면접에 1-2주, 1차에서 수 차례까지 보는 온사이트 면접 일정을 생각하면 6개월도 짧을 수 있다. 더구나 입국 초기에는 주거지 확보, 전입신고, 은행계좌 개설 등 여러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6개월의 시간을 주는 구직비자를 받는게 좋은데, 구직비자의 경우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목적의 비자로 변경 발급이 불가능하다. 즉, 6개월간 구직에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출국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런 내용은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막상 구직비자를 신청하려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구직비자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무했다..더구나 독일에 와서, 가족과 함께..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여러 방향으로 검색을 해 보니 주로 인도애들이 구직비자를 많이 신청한다는 정보만 얻을 수 있었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찾기 어려웠다. 구직비자에 필요한 서류는 대학 졸업 증명, 여권, 사진, 6개월간의 보험증명, 6개월간의 재정증명, 비자신청서, 비자신청비이다.

나는 베를린에서 비자를 받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요구 서류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동반 비자가 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검색을 통해 필요한 서류를 챙겼다. 가족임을 증명하는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 가족의 건강보험 증명,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재정증명, 여권, 사진, 비자 신청서..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증명서는 한국에서 발급받아서 아포스티유 스티커를 붙여와야 한다. 나는 물론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에서 한국의 대행업체에 신청해서 우편으로 받았다. 우편요금과 수수료까지 8만원정도 나온것 같고 3-4일 만에 안전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을 통하면 우편요금 2-3만원정도면 받을 수 있을듯.. 그리고 아포스티유를 붙인 원본 서류는 독일에서 알아볼 수 없으니 이 서류들을 번역하여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으면 된다. 번역은 영사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쉽게 스스로 할 수 있다.

애가 셋이라 이런저런 서류를 뽑아보니 책 한권정도의 분량이 되었다.

일단 서류는 준비했는데 베를린에는 외국인청이 한 곳밖에 없고, 예약은 가능하지만 이미 7월까지 예약이 다 되어버린 상태라 나는 아침일찍가서 줄을 서야할 판이었다.

베를린 외국인청에서 예약자가 아닌 일반 민원을 처리하는 날짜는 월화목요일 뿐이고 월화는 아침7시부터 목요일은 10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늦게가면 번호표조차도 받을 수 없어 헛걸음을 해야 한다니.. 그리고 동반비자를 받는 경우 6세이하 아이들은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애를 맡길곳이 없으니 조금 난감했다.

결국 내가 먼저 새벽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 시간에 맞춰 정은이가 애들을 데리고 오는것으로 이야기 하고, 나는 밤을 새우고 새벽 4시에 출발해 5시부터 줄을섰다. 와서보니 내 앞으로 20명정도밖에 없어서 급하게 정은이보고 가능한 문여는 시간인 7시까지 도착하도록 서두르라고 이야기 했다. 6시 반쯤 되니 바깥 게이트를 열어주고 안쪽으로 이동했는데 내 뒤로도 사람이 많았다.

베를린 외국인청은 A,B,C 세 건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처리하는 업무가 다르다. 바깥의 줄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모두 A건물 앞으로 섰다. 저기서 번호표를 받는건가..생각하는데 직원이 학생들은 여기 서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학생이 아니라고 했더니 C건물로 가라고 한다. C건물로 가보니 문은 잠겨있고 2명정도가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그렇다..새벽 부터 그 난리를 피우지 않았어도 ..줄을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베를린 외국인청의 업무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어학원생이나 유학생..상대적으로 나와같이 일반 비자업무를 보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ASIA를 처리하는 C건물에서 7시가 되어 입장했다. 하지만 번호표를 어디서 받는지 몰라 조금 해매다가 last name 기준으로 번호표를 나눠준다는 문구를 보고 2번째로 번호표를 받을 수 있었다. 번호표를 받을땐 기계가 아니라 직원이 서류를 받고 검토한 다음 번호표를 주는데, 내가 가족비자도 같이 받고 싶다고 하니 구직비자는 가족들 비자가 안나온다고 하며 서류를 전달할때 직원에게 이야기 해 놓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은이가 초인적인 힘들 발휘해서 애 셋을 데리고 도착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아마도 예약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중간중간 번호표 받은 사람을 부르는것 같은데 30분정도 기다리자 나를 불렀다. 들어가 보니 이미 내 여권이 구직비자가 뙇!! 돈내고 비자 가져가라고 설명하는 직원한테 내 가족은 어쩌냐? 하고 물었더니(뒤에 줄줄이 서 있었음) 가족들은 거주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한다. 나중에 이해했지만 구직비자에 거주허가가 딸려나오는건 조금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관련 서류들을 모두 가져오면 내 비자기간까지 같이 있어도 문제없는 페이퍼를 만들어준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임시비자로 부르는 것이었다. 바빠서 나를 빨리 내보내려고 하는 직원 앞에 모든 서류가 준비되어 있다며 서류를 내밀었더니 ‘제길..’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간이 조금 걸리니 다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가족이 많아서 그런지 바빠서 그런지 2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더니 정은이와 애들 앞으로 6개월간의 임시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내 비자 비용과 4명의 임시비자 비용은 총 100유로.

이제 독일에서 6개월을 더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비자 기간은 신청한 날 기준으로 시작되니까 입국후 2개월 정도에 신청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단 가족의 임시비자를 가지고는 다른 쉥겐협약 국가로 이동할 수 없다(독일에서 90일 체류한 이후 다른 나라로 이동은 쉥겐 비자 기간이 초과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가입한 보험 : 케어컨셉
아쉬웠던 점 1: 관련 서류를 한국에서 미리 챙겨오지 못한것(아포스티유는 서울 광화문에서만 붙일 수 있다)
아쉬웠던 점 2: 독일 입국하자마자 외국인청 예약을 잡아놓지 못한것

독일에서 구직활동

개인적인 생각과 기록, 다짐을 적어가는 블로그인데 최근의 주제인 독일 이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고, 나와 내 가족의 삶에서도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 바쁜 와중에도 조금씩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발리에서 독일로 가자라고 결정하고 바로 10일 뒤에 비행기표만 예약했다. 그리고 10일동안 어느 지역으로 갈지, 어디서 지낼지를 결정하고 급하게 베를린으로.. 회사를 만들지 고민하다가 여러가지로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판단하고 구직을 하기로 결정.. 급하게 이력서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좋아보이는 회사 몇곳에 이력서 제출, 그리고 그 중 한 곳과 전화 인터뷰, 하지만 탈락.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몇 곳에 이력서를 더 넣어보고 또 몇 번의 전화 인터뷰 제의를 받고 여러가지로 고민해보니 내가 가려는 회사들이 겉으로는 좋아보이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하는 일들은 어떨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것 같다.

NHN에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회사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정적으로 살고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었을 때의 이야기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도전하고 더 새롭고 싶었던 나는 그런 프로세스가 싫었고 결국 뛰쳐나와 내 회사를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왜 처음에 독일에 회사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고민..나의 발전과 가족의 안정을 동시에 만족시킬수는 없을까? 그리고는 주제를 달리해서 구인 공고를 찾아보았고 겉으로 보기에 좋은 회사가 아닌 작으면서도 실력있고 내 능력을 많이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도전할 거리가 많은 회사를 찾았다. 바로 이력서와 레터를 보냈고 전화인터뷰를 거쳐 조만간 최종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력서를 보낼 당시 이 회사를 마지막으로 구직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비자 90일 기간이 끝나가기도 하고 구직비자로 기간은 연장할 생각이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런 상태로 가족을 방치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떠돌이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만약 떨어지면 구직비자로 있는 동안 유럽과 독일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면접을 앞두고 있고, 이 회사 전에 보냈던 이력서들도 반응이 좋아 다른 회사와도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고 몇 군데 더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다. 원래 어제로 예정되어 있던 함부르크의 회사 최종 면접은 고심하다 거절하였다. 그야말로 부품처럼 일할게 확실한 회사라 애초에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요즘에 절실히 느끼는 거지만, 결국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내 삶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구직을 한다는 것..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고 알리는 방법 자체도 어렵지만, 스스로를 막연히 좋은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어떤 부분이 좋은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지..기회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지 라는 생각은 많이 해 보았지만 기회를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은 많이 못해본것 같다. 아직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자체가 요즘의 나를 들뜨게 만든다. 아..내 삶의 기회를 내가 만들 수 있구나. 기회의 크기와 관계없이 말이다.

두 번째 전화 인터뷰

첫 번째 전화인터뷰의 결과는 낙방.

그리고 맨 처음 이력서를 넣고 포지션이 맞지 않아 반려된 곳(영국에 본사가 있는 독일 지사)의 본사에 내 포지션에 해당하는 자리가 나와서 이력서를 넣어봤다. 베를린에 넣었는데 떨어졌었다는 말과 함께…

어쩐 일인지 바로 전화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고 그것이 바로 오늘..

부모님도 놀러오셨는데 마음에 부담만 생기고 영 의욕이 안생긴다. 이러다 인터뷰가 끝나면 또 후회 하려나..

이력서를 받자마자 희망연봉을 먼저 협상하던 함부르크의 회사에서도 내일 테스트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뭐..내가 생각하기에도 연봉-기술-인간의 순서대로 채용하는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연봉은 계약직전에 다시 협상할수도 있으니… 하지만 채용을 희망하는 입장에서는 약간 마음이..아무튼 내일 원격으로 기술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평소 괜찮게 생각했던 회사..하지만 핀란드에 있고 내 포지션은 뽑지도 않는 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것도 아주 뻔뻔스럽게..나 잘하니까 뽑아라 내 포지션은 아니지만 나 똑똑하니까 배워서 잘할게..이렇게..–;

작년부터 느낀거지만 세상의 기회는 나에게 저절로 오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면 수 많은 기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번 영국 본사 인터뷰도 그렇고..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력서 넣는데 돈드는것도 아니고 약간의 마음의 상처만 감수하면 뭐..

지인 소개로 대기중인 두 곳은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고 3월에 맨 처음 이력서를 넣었던 곳도 뭔 말이 없다.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있는 다국적 게임회사에(있는줄도 몰랐는데 아주 괜찮은!)도 이력서를 넣었고 지금 리뷰 상태이다(여긴 지원 사이트에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구직활동을 하며 느낀건..내가 잡 마켓에서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라던가 준비가 많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커리어가 많이 지저분하다는것(ㅠㅠ 장점으로 승화시킬수도 있지만 너무 구차하다). 그리고 대부분 독립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팀단위 개발에 대한 최근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점. 개발 10년차가 넘어 득도한 부분들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아쉽다.

무엇보다 구직이라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스트래스를 주고 자존감을 좀먹는 상태인것 같다.

이번 전화인터뷰에는 지난번 인터뷰 경험으로 영어에 좀 자신을 가져볼까 했는데 영국 본사라니..본토 네이티브와 이야기 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어 부담감은 더하다..ㅠㅠ 더구나 영국발음.

그래도 이번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물론 거짓말은 안되겠지만 위에 적어놓은 어쩔 수 없는 단점, 그리고 금방 극복가능한 부분에 대해 어필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력서를 넣은 회사들은 대부분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들인데 높은 비율로 인터뷰 요청이 오는걸 보면 서류상으로도 내가 쓸만한가보구나 싶으면서도..나도 그들과 같은 프로덕트를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라지만 벌려놓은 사업에 작은 성과라도 더 이루고 싶은 욕심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오히려 내 마음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큰 소득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일용직 노가다 체험과 새벽시장 풍경을 보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랄까.. 나라는 인간은 하여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베를린

독일에 온지 벌써 한 달 하고도 5일이 지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정신없고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말레이시아와 발리의 따뜻한 날씨에 적응해 있다가 0~10도 정도 되는 이곳 날씨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구나 겨울옷은 한국에서 출국할때 입었던 옷 하나씩..애들 점퍼는 비행기 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주고 온 상황이라 옷이 문제였다.

발리에서 겨우 GAP 매장을 찾아 두꺼운 후드티와 청바지를 사고 말레이시아로 온 다음 공항에서 여러시간을 기다려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가 셋에 비행기는 만석..막내는 이제 14개월이니 13시간의 비행을 잘 견뎌줄지 걱정이었다. 더구나 이미 3시간 비행에 공항에서 6시간정도를 보낸 뒤라…그리고 그 전에는 죽음같았던 발리 우붓-덴파사 구간의 운전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참 얌전했다..잠을 자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여튼 조용히.. 문제는 뒷열에 앉은 독일 아이였는데 호야정도 또래에 아주 13시간 내내 울고 소리지르고..

독일의 아이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부모는 말 몇마디 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주변의 모든 승객들이 어마어마한 피로를 느끼고 독일까지..

겨우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24년전 이곳을 통해 한국으로 떠나왔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는 s반을 타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겨우겨우 중앙역으로 와서 맥도날드에 짐을 풀고 심카드를 샀으나 인터넷 활성화가 안되어 일단 베를린에 가는 ICE 열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또다시 베를린으로..발리 우붓에서 베를린까지 총 이동/대기시간을 합하면 약 40여시간..나와 정은이도 피곤하지만 아이들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서 airbnb로 예약한 숙소(5일간 임시로 묵을..그 이후는 다른 곳에 1달을 예약했다)로 갔다. 노이퀠른이라는 지역인데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아 동네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한다.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좋은 분위기..어찌어찌 거리 이름과 번지수를 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너 호철이 아니니?’ 하며 왠 아주머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려서 독일에 있을 때 베를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아빠가 공부하던 70-80년대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이 계셔서 그곳에 놀러갔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나와계신게 아닌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 있었지만 너무 오래간만에 뵈어서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일단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해 보니..아빠가 아주머니한테 우리가 베를린에 간다고 이야기 했고 아주머니가 숙소를 물어보니 내가 보내준 숙소 주소를 보내주셨던 것이다.

아줌마는 나랑 통화도 안된 상태에서 그냥 그 거리에 나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헉 소리 나는 상황이었지만..일단 아주머니와 함께 숙소를 보는데 아주머니는 여기서 우리를 두고 갈 수 없으니 아주머니 댁으로 가자고 하신다. 결국 숙소는 취소하고 아주머니 댁으로…

아주머니는 엄마처럼 간호사로 독일에 오셔서 파란만장한 독일생활..베를린에서 40여년째 계신 분이다. 아저씨가 몇년전 돌아가시고 내 또래인 아이들도 독립해서 혼자 살고 계신데 아직도 일을 하시는…그것도 메르켈 총리한테 상까지 받으신 아주 유명하신 분이다.

아주머니 댁에서 정신없이 5일을 보냈다. 기본적인 생활정보를 아주머니가 다 알려주시고 차로 여기저기 데려다 주셔서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옷도 조금 샀지만 여전히 온가족이 거지꼴로..다음 숙소로 갔다.

3월 11일부터 4월 11일까지 예약한 숙소는 집주인이 아르헨티나로 여행가면서 내놓은 곳이다. Treptow 라는 곳인데 이곳에 terptow 공원이 바로 앞에 있고 주변에 마트도 많아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그리고 지난 한달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곳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우선으로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급하게(?)이력서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그리고 첫 두 회사에 이력서를 보낸 후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 감기에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있었다. 

정신을 조금 차린 뒤 함부르크에 있는 회사 두 곳에 이력서를 보냈는데, 그 중 한곳에서 전화인터뷰 요청이 왔다. IT 쪽이라 모든 일들은 영어로 진행되지만 말하기에 영..자신이 없었던 나..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2달간의 동남아 생활이 나의 영어 말하기 자신감을 어마어마하게 키워줬던것 같다. 

알수없는 자신감으로 전화인터뷰의 ‘영어’는 무리없이 진행했지만 인터뷰 내용은 너무 아쉬웠다. 회사 인터뷰라 당연히 팀단위 작업이나 협업에 대한 질문이 많았었는데 나는 혼자 일한지 3년정도 되었고 그 전에도 혼자 일하는게 익숙해서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던것 같다.

질문:팀단위 작업에 대해 어떤 경험이 있나요?

답변:저는 요즘 혼자 일해서요..

이런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ㅠㅠ

영어에 너무 긴장하느라 영어 대비만 했지 이런 전화 인터뷰에 나올 기본적인 내용은 전혀 숙지하지 못했다…그래도 뭐 지난 일이고 말은 최소한 통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 밖에..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추운날씨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조금씩 나가곤 했는데 내가 아프고 이력서, 포폴, 전화면접 준비하는 동안은 그냥 타블랫과 함께 내버려두었다.

정은이는 매일 음식하고 장보고 정리하느라 바쁘고..오랜 방랑 생활에 매일 시우를 업고 다녀서 그런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바깥활동을 별로 안좋아하는 호야도 맨날 자신의 한계를 넘어 걸어다니고 꼭 자야하는 낮잠도 안재우니 나가기만 하면 픽픽 쓰러져 자다가 이젠 짜증을 부리는데 온 가족이 이녀석 짜증 때문에 또 스트래스를 받는다.

결국 유모차를 하나 사서 시우도 아닌 호야를 태우고 다니기로 했다. 시우는 업고 호야는 유모차에… 유모차 산지 1주일이 되어가는데 너무너무 잘 샀다고 정은이랑 매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호야가 유모차에만 들어가면 쥐죽은듯 조용히 있고 거기서 자고 얌전히…ㅠㅠ

포트폴리오용으로 게임 두개를 만들고 한국 지인들한테 레퍼런스 레터 요청하고 이력서 보내고 각 회사 인사팀 사람들과 이메일로 부족한 자료를 보내고 하다보니 오늘이 되었다.

맨 처음 이력서 보낸 두 곳 중 한 곳은 내가 지원한 포지션과 맞지 않다며 바로 거부 메일이 왔고 다른 한 곳은 이력서가 많아 시간이 걸린다며 기다려 달라는 메일이 왔다.

두 번째 보낸 두 곳 중 한 곳은 전화 인터뷰 후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대기중이고, 다른 한 곳은 희망연봉을 꼭 보내줘야 한다며 나한테 희망연봉을 달라는 메일을 오늘 보내온 상태이다.

세 번째로 보낸 곳이 있는데 여긴 회사가 좋아서 내 업무와 다른 부분임에도 혹시나..하고 보냈더니 역시나 거부 메일이 왔다.

그리고 엄마 친구분 아주머니 딸이 소개시켜준 회사로 이력서가 들어가 있는데 여긴 일단 기다려 보라는 회신 후 대기중이고 형의 지인을 통해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는 정식으로 지원하라는 메일이 와서 지난 수요일에 정식으로 다른 서류를 접수시켰다.

전화 인터뷰를 본 회사를 제외하고는 서류전형에서 합격여부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이곳의 집주인과 협의해서 5월 12일까지 다시 한달을 연장한 상태인데..과연 그 전에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다시 집을 구할지,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구직비자를 받아 계속 구직활동을 해야 할지.. 그런건 아직 모르겠다.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한숨만 나오고 절망적인 생각만 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떠올린건 ‘난 지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니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걸 시도해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구직활동도 미리 안될꺼야..이런 생각보다는 정말 밑져야 본전이니까 내가 여기저기 이력서 더 낸다고 한들 금전적으로 손해보는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모든걸 해 본다음에 절망해도 늦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소하게 이러저러한일도 많았는데 한 달동안의 일을 한 번에 정리하려니 너무 힘이든다.

다음주가 되면 전화인터뷰 결과도 알 수 있고 몇몇 회사의 서류전형에 대한 답도 올것이다. 나의 영원한 목표가 ‘취업’자체가 아닌 만큼 어떠한 결과도 수용할 수 있고, 또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지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독일에서 취업을 포기해야 한다면..그 다음은 꼭 독일이어야 할까? 그런것만도 아니다. 처음에는 독일의 문화, 교육등이 부러워 독일로 왔다면 한국을 떠난지 100여일이 되는 지금의 생각은 ‘글로벌’하게 살 수 있다면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있겠지..나를 원하는 곳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조금 더 방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를 잡고 싶다. 내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겠지만 왠지 그렇게 할 수 있을것 같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될건 되고 안될건 안되는거 아니겠어? 

비행기 예약

3월 6일 쿠알라룸푸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말레이시아에어라인 예약.

남들은 그냥 가는 유럽여행 준비도 몇달씩 한다는데..나는 아직 어디에 살아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서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준비 없이 가는것이 맞는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나에게 독일로 가기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  3개월,6개월, 1년이 있다면 나는 무슨 준비를 했을까? 거기다 아이들이나 집안일, 돈버는 일에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기간이 1년정도로 길었다면 어학공부를 했을테다.

기간이 6개월 정도였다면 역시 어학공부를 하면서 여러 준비를 했을것 같고.

기간이 3개월 정도였다면 어학은 시간날때 하고 다른 준비를 했을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기간에는 가족,친지,친구와 이별하고 하는 시간도 포함되었을테지..

그리고 집을 구할 준비를 했을까? 집은 사실상 가서 직접 보고 구하는게 좋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도 준비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는 집을 구한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차를 미리 구매할수도 없다.

계좌 개설이나 비자신청, 회사설립 또한 집을 구한 다음에 할 일이다.

결국 준비기간이 길었어도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리 많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준비한답시고 또 1년이라는 시간을 미루었을테고..결과적으로 그 기간에 우리가족은 더 힘들었겠지..(집안일도 안돕고 돈도 안벌고 어학비용에 한국에서 생활비 등..)

어찌보면 가장 무모해 보이지만 독일 가는 준비라는게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싶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서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정도는 생각해야겠지만..

지역은 뮌스터나 에센을 생각하고 있다.

두 곳 모두 NRW 주에 위치하고 있어서 창업시 NRW 주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세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뮌스터는 가본적도 없고 에센은 가본적이 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하기가 힘들다.

예전에 용인 동천동에서 살다가 이사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직장위치나 아이들 학교와 관계없이 이사가 가능했던 우리는 어디로 이사할지 정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말 그대로 아무곳이나 살아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을 후보지로 놓고 이사갈곳을 정해야 한다는것…그곳에 살아본적도 없는 경우..구경하러 갈 엄두도 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리는 ‘전원주택’이라는 키워드로 이사갈 곳을 알아보았고, 단지형으로 이쁘게 지어진 발트하우스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살아갈 곳을 찾아야 한다니 이건뭐…

그래서 일단 회사 설립시 지원이 되는 NRW 주로 범위를 좁혔고, 그 중 집세가 싸고 자연환경이 좋은(독일은 다 좋아 보이지만) 뮌스터 + 에센 두 도시로 압축했다.

하지만 역시나 감이 오지 않는다. 에센은 확실히 집세가 싸 보이는데 뮌스터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정착할 집을 찾기전에 한두달정도 머물 임시 숙소를 먼저 구하려 하는데 단기로 집 찾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독일에 들어갈 날이 9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ㅎㅎㅎ

그래도 독일 변호사에 보낸 메일에 답신도 오고 사보험 가입 관련된 견적도 받아보았다.

비자 발급이나 회사설립에 대한 절차, 비용, 기간은 NRW 투자공사를 통해 들었던 내용과 비슷했고, 관광비자로 입국 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사업계획서 작성을 맡기는 만큼(기본 틀은 직접 제작) 비용이 추가될것 같다..

사보험은 5인 가족 기준으로 1000~1500유로를 매달 내야할것 같다.

물론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가입할 수 있을것 같은데..어디까지 커버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1500유로면 집세보다 더 비싸고 사실 어마어마한 비용인데, 대체 독일에서 식구가 많은 사람들은 자영업을 할 수 없다는건가? 아니면 다들 이 비용을 내고 자영업을 한다는건지..

건강보험 내다가 망하게 생겼다.

별다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싼 보험을 들던가..

아니면 자기부담금을 높이던가 하는 방법으로 보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부담금을 높이면 죽는 병이 아닌이상 보험을 들지 않은것과 같은 병원 비용을 내야할수도 있다.. 아이들은 좋게 우리는 안좋게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

한국에서는 자기부담금 = 회사부담금까지 했을때에도 36만원 정도였는데, 물론 한국은 자기부담금 비율이 조금 있지만 여러가지로 고민되는 부분이다. 뭐..이거야 돈을 벌면 해결 될 수 있는 일이고 돈을 못벌면 건강보험료 못내는것과 관계없이 독일에서 쫓겨나게 되겠지..

중요한건 비행기표를 사버렸다는 것..

독일에서 당분간 이동을 위해 푸조리스나 렌트카를 이용할까 했는데 차라리 차를 사버리는게 좋을것 같기도 하다. 관광비자 상태로 차를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정되어버린거다..이제 임시숙소를 빨리 구하고..못구하면 호텔로. 참..우리는 여름옷밖에 없구나..독일 가기전에 공항에서라도 옷을 사야겠다..

인원수가 많으니 뭘 해도 돈이다 ㅠㅠ 그래도 잘 될거야라고 생각해야지 별수없다.

베이스캠프가 가지는 의미

올해 7월까지 전세계약기간이었는데 집의 하자로 일찍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마침 추운 겨울인지라 따뜻한 나라에서 독일가는 준비를 하기로 하고 급하게 정해서 나온 말레이시아.

어제는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KLCC 페트로나스 쌍둥이 타워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관광을 하고 온 셈인데, 숙소에 돌아오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에 일본에서 1년여간 회사를 다녔을때도 그랬지만, 여행으로 어딘가를 갈 때와, 실제로 살아보기 위해 갈 때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이 곳 말레이시아도 단지 여행으로만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아주 복잡하다.

여행이라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기도하고, 모든 스케쥴이나 생활 리듬이 기존과는 다르게 변하지만, 생활이라면 생존을 위한 고민을 멈출수가 없다.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마트에 간 것이다. 마트에 가서 아이들 해 먹일 식사 재료를 사고, 그 비용을 파악하고, 숙소 근처의 식당과 편의시설 등을 숙지했다.

여행이라면 그냥 맛집 찾아다니고 쉬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다르다..

만약 지금이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아마도 독일에 관광비자나 구직 비자로 바로 들어갔었을텐데, 그랬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러한 시행착오나 어지러운 생각들로 초기 적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것 같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가장이 겪는 시행착오는 가족의 입장에서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

임시 숙소의 위치, 숙소의 규모, 적응때까지 필요한 물건, 마음가짐, 비용 등.. KL 에 와서 5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부분은 한국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이제 독일에 간다면 이러한 부분은 미리 준비해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이곳에 와서 느끼게된 좋은점 하나는 결국 저질러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들 일로, 회사 업무로, 집안일로, 기타 여러가지 일로 독일로 가겠다는 계획의 우선순위가 미뤄졌을텐데..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독일로 가기 위해 해야할 일들이 최우선 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떠돌며 살 수는 없으니까..

미루고 미루던 프로젝트 마무리부터 이력서 작성, 언어공부까지..이제는 우선순위를 낮춰 미룰 이유가 없어진것이다. 지금 하려고 보니 이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한국에 있으면서 언어공부도 하고 취직준비, 혹은 사업준비를 하고, 또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도 하려고 했었다니..

이번주와 다음주는 조금 집중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한달이 넘게 손을 놓고 있었더니 다시 집중하기가 매우 어렵고 초기에 세웠던 설계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아졌는데 일단 마무리를 할 생각이다.

말레이시아 KL 을 베이스캠프로..

‘지금 이대로 좋은 걸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십 수년째 해온 고민들과 함께,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최대한 붙어있자는 생각의 결과로, 지금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에 있다. 차도 집도 짐도 모두 정리하고 나중에 ‘어딘가’에 정착하면 받아 볼 택배박스 몇 상자만 남기고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왔다.

 

‘애들 학교는? 한국에 집은? 일은? 돈은? 왜 말레이시아야? 언제 돌아와?..’ 수 많은 질문에 우리 스스로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편도로, 딱 한 달간의 숙소만 잡아서. 꼭 이유를 찾아보자면, 여긴 따뜻하고, 휴양지보다는 싸고..뭐 그런 이유들..

 

맨날 말로만, 머리로만, 계획만 세우다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어버리고..정보를 찾는답시고 검색해 보면 수년 전 내가 쓴 글이 검색된다. 그저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시간들이 ‘오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 수록, 머리는 편안해지지만 가슴은 불안해진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세우는 계획때문에, 더 큰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독일이나 유럽 국가로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 계시나요?

제 일상을 적어가던 블로그에, 결심이 흐려지지 않도록 카테고리를 만들고 글을 정리해 보니..

아무것도 아닌 정보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것 같습니다.

그만큼 정보도 없고, 다들 막막한 기분인것 같은데요..

국내에 다른 커뮤니티등을 둘러보아도 막상 같은 처지의 분들이 모이거나 정보를 교환하기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서로 알아보는 정보들이 잘 교환될 수 있다면 한국에서나, 독일에 가서나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주로 블루카드 제도를 이용해 독일 이민을 희망하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블루카드 제도를 통해 독일 이민을 희망하시는 분들,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 아니면 이러한 방식으로 이미 독일에 계시는 분들이 이 곳에 다녀가신다면, 덧글로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희망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말이죠..

제 연락처는 [email protected] / 010-9045-0일57 / 송호철입니다.

(지금 말레이시아에있서 전화연결은 가능하지만 문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메일이나 카톡 [email protected] 으로 연락주세요!)

요 며칠 집안에 여러 사정도 생기고 일들이 많아 12월 중순 정도에 살고 있는 집을 빼고 방랑(?)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방랑(?) 하면서 독일에 가는 것을 도전하려하는데요..저의 경우가 참 황당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sylt – 7월25일

7월 25일

엄마한테 소포를 받았다.
잠바,옷 등이었다. 편지는 안들어있다. 방금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내일도 걸 작정이다. 형 선물을 샀다.
오늘 용돈을 받았다. 손톱깍기가 없어 발톱이 다 부러졌다.
소포를 받고 참 기뻤다. 바지가 없어 걱정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편지를 쓰겠다. 그리고 전화를 걸겠다.
선생님들이 담배를 피웠다.
용돈을 받고 시내로 나갔다. 기념품과 선물을 약간 샀다.
또 살거다. 편지에 기대하라고 해야겠다.
오늘은 짧게 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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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곳에서 눈치보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