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2006년 3월 28일~ 2006년 4월 7일(약 1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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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뇌를 단련하다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 2-3년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지의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롯한 일본인이 지은 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참 분석적이다.

이 책은 도쿄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본 대학 문화를 비판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 나라에 100% 이상 적용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만큼 후진국이며 그토록 미워한다는 일본사람에
비해 잘날게 없다.

일본의 교육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비난하는 이 책을 보며 단지 일본의 교육제도
(하필이면 왜 일본이란 말인가..)를 그대로 들여온 우리나라는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시절과 근대화의 시기에 어쩔 수 없는 영향을 받았더라도 어찌 서로 다른
두 나라임에도 우리는 왜 일본이 겪는 시행착오마저 따라서 겪고 있는것일까?

일본에 이슈화 되고 있는 현실은 왜 우리의 미래가 되는것일까?

대학의 존재가치는 내 인생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여러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읽었고, 또 가장 접혀진 페이지가 많은 책이기도 하다.
단지 대학은 이래야 한다는 방법론 적인 책이 아니다.
배움과 앎에 대해 주저없이 써내려간 글이자 우리나라의 현재,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읽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얼마 안남았다는게 조금 아쉽지만..
나중에 꼭 다시 읽어야 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언제나 후회의 안타까움과 희망의 열정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마시멜로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 엘렌 싱어 지음  지음 정지영 옮김
2006년 3월 27일(약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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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버린 책.
약간 부자아빠틱하긴 하지만 단순한 마시멜로 실험의 원칙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 준다.

그리고 그 단순한 원칙을 실천하는것 만으로도 삶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도
재미있게 적어주고 있다.

더 이상 ‘만일’ 이라는 단어에 구애받지 않아요. 그 대신 ‘어떻게?’에 집중하고 있답니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생각은 실천해야 의미가 있다.
반복과 꾸준함은 정말 무서운 무기다..

즐거운 일상을 만드는 심리실험 이야기

시부야 쇼조 지음 이규원 옮김
2006년 3월 27일(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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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최근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흥미로웠던 심리 실험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 라던지 목격자가
많을 수록 사건 신고가 늦다는 친숙한 주제부터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된 심리 실험까지..

총 25가지의 실험 중 흥미로웠던 실험을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개인과 집단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까?”

라는 주제인데..이 주제를 말하기 앞서 또다른 실험으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두 모여서 합시다는 오히려 비효율 적이다” 라는 실험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것 같은 개미도 그 집단속에 일정 비율은 언제나 일하지 않고 있다는
관찰 결과가 있고 인간 집단도 비슷하다는 내용의 실험이다.

그럼 앞서 말한 아이디어의 경우는 어떨까?

회사에 있으면서 소위 말하는 ‘브레인 스토밍’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위 실험의 결과는 집단의 아이디어가 개인의 아이디어에 크게 미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낸다.

이 실험의 결론은 개인이 집단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것이 아니다.
단지 집단으로 행동할 경우 개인의 능력이 집단에 억눌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집단 속에 있을 때 개인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적극적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책임을 의식하지 않는 다는것은 자신이 낸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의욕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으며, 적극적이지 않다는 말은 집단속에 개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할 때 평상시 할 말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여러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재밌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상태만으로는 업무나 최초에
목적했던 목표에 쉽게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분명 시간과 에너지 낭비이다.
브레인 스토밍이나 효율적인 토론을 하기위해선 참가하는 개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담은 레포트를 사전에 준비하여 공유한 뒤에 혹은 모여있는 시간중에 개개인의 의견을
발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전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 가능하다.

오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수많은 회의 시간에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의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간에 합의점을 이끌어 내고 막막한 문제상태를 좀더 밝은
상황으로 이끌어 내기위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할 때 사전에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개개인의 의견을 공유하는것은 회의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츠지 히토나리 지음
2006년 3월(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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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편을 읽고 뭔가 조금 부족함을 느꼈지만..
츠지 히토나리 편을 읽고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남자(준고)의 입장에서 본 또 다른 이야기.

서로 다른 말을..서로 다른 행동을 했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똑같이 생각했던 두사람..
서로 사랑하면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두사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이런 사랑을 하고 있다.
그들을 보면 마치 이 책을 보는것 처럼..혹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된 것 처럼..
서로 사랑 하는것 같은데 헤어지는 이유는 뭘까..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하는 당사자 들에게는 조그마한 기쁨도 아주 크게..
조그마한 슬픔도 아주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콩깍지가 씌었다니..왜 헤어지는 지 모르겠다는 제 3자의 반응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로 소설속의 주인공이면서 제 3자의 눈으로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았다.
생각만 하는것과 직접 느껴본 결과는 크게 달랐다.

난 서툴고..어리고..또 부족하지만 내 마음속에 나오는 모든 감정을 사랑하고
느끼고 즐겨야 겠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공지영 지음
2006년 3월 6일~2006년 3월 8일 읽음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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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후에 오는것들이라는 제목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중인 나에게는 조금 부담으로 다가왔다.

공지영이라는 익숙한 이름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같은
제목의 이름으로 동일한 내용을 남자의, 그것도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 똑같은 책 한권이 있었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즉, 이책은 하나의 사건을 한국여자의 입장에서 한권 그리고
일본 남자의 입장에서 한권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만드는 게임에도 이런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자
노력하는데 역시 특이한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책 두권을 다 읽고 소감을 적어보려 했으나 그때의 소감과
지금의 소감은 분명 다를것이기 때문에 공지영 편을 읽고
짧게 소감을 남겨본다.

여자의 입장에서 본 남자는 어떨까..
지금 내 여자친구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본능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책읽기는 조금은 실망스럽게
끝나버렸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무난했지만 중간중간에 나오는 한,일의
과거에 대한 언급에선 이야기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것 같았다.

마치..일본사람들 보란듯이 적어놓은 어거지로 들어간듯한 문장..
조금은 소름돋는 그런기분이랄까..
왠지 난 이런 소설가 한테는 내가 모르는 어떤걸 알아내야
할 것 같았는데..

익숙한 주제들과 윤동주 시를 볼때면 글쎄…

사랑과 이별..그리고 또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그 두사람을 둘러싼 주위사람들..
그 주위사람들이 살아가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

조금 씩씩하면서 불타오르는 듯한 여주인공 홍이의 성격은
맘에 들었다.

사랑하는 당사자는 모르겠지만..헤어지는 경우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서로 사랑하면서 헤어지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제 3자가 보기엔 둘 다 사랑하는데..
사소한 오해와 순간의 감정으로 어긋남의 연속을 걷다가
결국 헤어져 버리게 된다..
그리고 서로 그리워 하며 가슴아파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궁금했던건..파란색의 일본인 작가가 쓴
또다른 버전이었다..

이 상황에서 남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왜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을까..

난 서둘러 공지영 편을 다 읽었고 또 츠지히토나리 편을 집어들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소감은 두권을 모두 읽고 평가해야할것 같다.

유뇌론

요로다케시 지음 / 김석희 옮김
2006년 3월 1일~2006년 3월 4일 읽음 (약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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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사상이 조금 맞지 않은 전여옥씨가 좋아한다던
책이라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뇌에 대한 호기심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모두들 ‘나는 누구인가..’ , ‘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같은
철학적인 생각을 해 봤으리라 생각된다.
유뇌론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철저히 ‘물질적’으로 대답한다.
물질적이라고 말하는게 맞을 지 모르겠지만..객관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 몸을 너무나 익숙하게 이용한 나머지
내 몸이 ‘나’라고 인식하는데 사실 ‘나’라는것은 ‘나의 뇌’를
의미하며, ‘나의 뇌’ 라는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신경다발일
뿐이라는게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어디서 의식은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에 요로다케시는
너무나 간단하게 의식은 뇌에서 생기고,
심장이 ‘순환’이라는 기능을 하는것 처럼 뇌에도 ‘의식’이라는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아..듣고보니 간단하게 맞는것 같기도 하고..

‘나’를 뇌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니..왠지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달라졌다고 해야할까..

이전에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중의 하나로
‘어디까지가 나 인가?’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아마도 어릴때 드래곤볼 만화의 팔이 잘려도
다시 재생되는 피콜로를 보고 피콜로의 목을 자르면 몸에서
목이 나올까..목에서 몸이 나올까…의 의문으로 부터
시작했던것 같다.

나는 매주 손톱을 자른다. 불과 몇초전까지만 해도
내 몸의 일부였던 손톱이..잘려나간다..
그 손톱은 내가 아닌가..
물집이 생겨 큰 허물이 뜯어질때도..
머리카락이 빠질때도..
사실 이런 부분들이 ‘나’를 이루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유뇌론을 읽고 이런 부분은 많이 정리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나의 일부’라고 느끼는 이유는 머리카락이
내 감각세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각세포는 내 뇌에서 뻗어나간(책에서는 뇌=나 라고 표현한다)
말초신경들과 연결되어있기때문에 나의 일부라고 느껴지는것이다.

나..라고 한다면 내 육체의 전부보다는 내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뇌와 그 뇌로 부터 뻗어나가는 무수한 신경줄기를 연상한다면
너무 잔인한건가..

책을 읽는 도중 자꾸만 연관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아 조금은
집중하기 힘들었던 책.

그리고 글 쓰는 사람마저 도중에 자꾸여러 생각을 보임으로서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지만 ‘나’에 대한 인식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꼭 읽어볼 책이라고 생각된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 정유리 옮김
2006년 2월 21일~2006년 2월 22일 읽음 (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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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왔을때 형이 사 놓은듯한 조금은 재밌는
재목을 가진 이 책을 보았다.

읽고싶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일정때문에 미뤄놓았었는데,
얼마전부터 한국에 와 출퇴근 시간이 총 2시간정도인데다가
안정적으로 앉아서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책읽기 시간이 생겨버렸다.

책읽기는 참 좋아하는데 최근엔 처세술이나 기술서 이외에
많은 책들을 접하지 못했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있으니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이곳에 기록하는것도
나중에 돌아볼 때 즐거운 일이 될것 같다.

10년 20년 뒤에 다시 이 페이지를 볼 나를 위해!

일본의 여자 고교생 하츠..난 남고를 나와서,그리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여러가지로 정확한 이해는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와타야 리사의 마치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표현한듯한
표현이 책에 많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솔직히 이야기라던가 느껴지는 부분은 크게 없었지만
내가 때때로 느꼈던 감정들이나 생각들을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다시 체험할 수 있었다는게 가장 흥미로웠다.

발로 차 주고 싶다는 느낌은 정확히 동의하진 못하겠지만
어느정도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엔 본능적으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등짝을 보고 생기는 감정이라던가로
생각했는데 하츠의 감정은 아마도 ‘아쉬움’ 아니었을까..

어쩌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도..

난 너보다 그래도 더 잘났어..라고 생각하는 하츠에게
니나가와는 ‘최악’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리고 정말 사실이다.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하지 않는가..난 요즈음 어떤 니나가와를
보면서 내가 너보다는 잘났다고 떠들고 다니는걸까..

털털한 선머슴같은 여자아이를(고등학생이 아이 ㅠㅠ) 정말
귀엽게 묘사한 와타야 리사를 보면서 책 표지의 사진이 왠지
하츠일것만 같은 느낌은 나의 상상력 부족이었을지도..

한편으론 A4한장도 못채울 만큼 부족한 고교시절의 내 추억이
부끄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