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적응 중..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언제이던가..

그리고 오늘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고 정말 미칠것 같았던 시간들..중간 중간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지만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자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실제 독일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작게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하나하나 다 쓰자니 당시의 스트래스가 밀려오는 것 같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니 짧게라도 기록을 해 두어야 겠다.

집구하기

회사에 들어가고 두 달동안 회사의 아파트에서 임시로 생활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집을 구해야 했는데 한국에서 집을 여러번 구해봤지만 이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시스템은 처음이었다. 모든 칼자루는 집주인이 쥐고 있었다. 집주인이 확인하는 세입자의 조건은 대부분 비슷했다. 가능하면 아이가 없거나 적을것, 수입이 많고 안정된 직장임을 증명할것, 때로는 구체적인 월수입 금액이 있었다. 빚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것. 전에 살던 집에 집세를 잘 냈는지 전 집주인에게 확인..그러고도 조건이 비슷하면 그 사람들만 따로 모아 인터뷰. 물론 외국인이라면 또 마이너스 요인이다. 독일어를 못하면 추가로 마이너스.

애 셋 달린, 이제 막 한국에서 온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다. 이렇게 하고도 좋은 집을 골라가는게 아니라 집주인이 허락하는 곳에 맞춰 가야한다는 사실, 그리고 복비가 없는 집도 많지만 있다면 월세의 두달 반 정도에 해당하는 비용을 복비로 내야 한다는건 무슨 사람을 약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맘에 드는 조건의 집을 발견하면 전화나 이메일로 방문 약속을 잡고 집을 구경한 후 맘에들면 관련 서류를 전달한다. 집 구경 후 집주인의 허가가 나올때 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7일~10일이다. 집 보는 것도 마음대로 약속을 잡을 수 없으니..아차 싶어서 여기저기 약속을 잡고 베를린 동서남북을 온 가족이 시간 날 때마다 돌아다녔다. 막상 가서는 거지같은 집에 실망하고, 비싼 집세에 좌절하고, 거절당해서 울고싶었던 기억들이 난다. 결국 1달 반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조금’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비싼 복비를 냈기 때문에 경쟁자가 적었던 이유도 있었을것 같다.

다행히 집주인은 아주 잘 만난것 같은데, 사용하던 가구와 건조기까지 공짜로(처음엔 유료였지만 안쓴다고 하니 공짜로..) 빌려주었다. 집을 사는 방향으로도 알아보았는데 일단 여기에서 적응하는 것으로..적응이 되면 집을 사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살인적인 월세 때문에..

유치원

우리가 임시 거주지에 있는 동안 지우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프로나우에서 줄기차게 연락이 왔다. 정은이와 상의 끝에 내년에 학교를 보내기로 하고 이야기 했더니 의사의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모든 예비 초딩들은 입학전에 학교의사한테 검사를 받는데 여기서 발달이 떨어지거나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은 의사 소견에 따라 1년정도 늦게 학교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가 프로나우에서 미테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소관이 아니며 빨리 그곳으로 전입신고를 해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경찰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여가며..

부랴부랴 미테에 전입신고를 하고(전입신고 예약없이 하려면 기본 2-3시간 새벽부터 기다려야 한다..) 의사선생님을 만나 검사를 받았다. 지우는 학교에 가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잘 키웠다는 칭찬을 듣고 그냥 학교에 보내는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언어를 문제로 미룰 수 있게 편지를 써 달라고 했다.

얼마 후에 학교 관련 암트에서 연락이 왔는데 의사 소견서 + 유치원자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지우는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유치원 자리를 알아보려면 우리가 살 곳이 정해져야 하고 그 곳에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집을 못 구한 상황..스트래스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집을 계약한 이후로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주변 유치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치원을 보내려면 시에서 발행하는 유치원 바우처(키타굿샤인)가 있어야해서 그것도 신청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7월 31일까지.. 회사 아파트 계약만료도 7월 31일, 새로운 집을 계약한 시점은 7월 20일정도..입주는 8월 1일 이었다.

새로운 집 근처의 유치원은 자리가 하나도 없고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가 보니 한쪽 팔에 대형 문신과 얼굴에 피어싱 대여섯개 정도를 한 선생님이 우리를 안내한다. 다른 선생님 한 분은 얼굴에 피어싱이 스무개 이상이었다. 이런 걸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선생님에 비해 아이들이 너무 많았고 그냥 놀 뿐 딱히 독일어와 관련해 과연 지우를 이곳에 1년 보내는 것이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궁금한게 많고 배우고 싶은게 많은 지우에게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힘들겠지만 그냥 지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7월 31일까지 등록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고..그래도 호야를 유치원에 보내야 해서 그 근처에 있는 유치원 한 곳을 더 알아보았다. 일반적인 킨더가르텐이 아니라 킨더라덴이라는 부모들이 운영하고 관리하는 유치원이었는데 시설은 조금 낙후되었지만 부모들끼리 커뮤니티도 있고 약간은 극성(?) 부모들이 잘 관리하고 있는것 같아 호야는 그곳에 보내기로 하고 계약을 했다. 그 때가 8월 초 였는데 9월 25일경에 호야를 보내라고 했다.

이사

집도 계약하고 혹시몰라 최대한 빨리 전입신고를 했다. 살림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다행인지 우리는 부엌이 있는 집을 구했는데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 첫 날 바로 냄비와 이불을 사러 갔는데 정은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냄비만 사서 집으로 왔다. 집과 냄비…그릇도 수저도 이불도 아무것도 없는 집.. 우리는 냄비 박스를 잘라 바닥에 옷과 함께 깔고, 겨울 잠바를 덮고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당장 다음 날 캠핑용 깔게와 야외 돗자리를 사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잠자리를 만들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결국 한국에서 보낸 이불이 도착하고 이케아에서 임시 메트리스 하나를 산 뒤에야 약간은 안정적인 잠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살림이 너무 없어서 한꺼번에 모든것을 사는것도 너무 힘들었다. 선택과 선택의 연속. 돈은 둘째치고 뭘 사야할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고르는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필요한 물품의 반도 마련하지 못한채로 살고 있다. 미리 주문한 세탁기는 집 앞까지만 배달해줘서 정은이랑 둘이 낑낑거리며 들어올리고 배달용 고정 나사를 풀지않고 돌려서 세탁기가 춤을 추기도 했었다. 인터넷 설치, 주말엔 이케아, 조립, 청소, 집에서는 또 인터넷 주문 등으로 아직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뭐 고르라면 머리가 띵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버릴 정도…언제까지 계속 될 지 모르지만 아직도 살림 장만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짐 받기

집이 생겼으니 한국에 모셔둔 짐을 받아야 한다. 아빠한테 부탁하니 한 번에 10박스를 비행기로 보내주셨는데 막상 한 상자만 배달이 되었다. 나머지는 쫄..이라고 불리는 세관에 걸린것. 그 많은 짐을 어떻게 가져오나…관세는 얼마나 내야 하나..고민고민하다 아이셋을 데리고 감정에 호소해야 겠다는 정은이의 작전에 따라 정은이가 애들 셋을 데리고 쫄에 혼자 용감하게 출동했다. 결과는 대 성공. 쫄에서 다시 집으로 짐을 보내주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9상자를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었다.

면허교환

독일에 온 지 반년이 다 되어서 한국 운전면허를 독일 면허로 교환해야 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차를 사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면허를 바꾸려하는데 이 역시 예약을 하고 가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리차리와 함께 갔는데, 지금까지 친절한 공무원만 만났던것과 달리 첫 인상만 봐도 깐깐하게 보이는 아줌마였다. 결국 이것저것 트집을 잡다가 사진이 오래되었다며 다시 가져오라고 한다..결국 지하철 역에 가서 즉석 사진을 찍어서 겨우 접수할 수 있었다. 발급에 4-6주가 걸린다고 하니..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정은이 면허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재발급 받느라 동시에 접수하지 못했다.

학교

이 모든것을 처리하는 와중에 지우의 학교 문제가 현실이 되었다. 학교로 보내기로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대체 어떤 프로세스로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우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새로 전입한 곳의 관청에 문의하니 모든 학교가 방학 중이라 8월 25일까지 기다려야 지우가 배정받을 학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집 근처에 가까운 학교는 3곳인데 그 중 체육을 강조하는 학교가 맘에 들었다. 꼭 사립학교 같기도 하고.. 그리고 혹시 몰라 사립학교도 알아보았는데 국제학교는 너무 비싸고 집 근처에 발도르프 학교가 있었다. 일단 학교 배정받는 것을 기다려 보고 사립을 지원해 보기로 했는데 8월 21일경 갑자기 두 곳의 공립 학교 중 한 곳을 정해서 등록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한 곳은 너무 멀었고 다른 한 곳은 걸어갈만 한데 터키인 거주 지역인지 거의 터키 외국인 학교처럼 보였다. 이중언어로 1학년때부터 터키어를 가르치는 학교..나쁜건 아니지만 독어도 영어도 못하는 지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부랴부랴 발도르프 학교에 지원서를 내러 갔는데 발도르프인건 좋았는데 학교가 공사를 하다 만 상태로 운영이 되고 있는것 같았다. 그나마 서류 심사에 최소 2주에서 4주 걸린다는 대답을 듣고 왔다. 베를린의 입학식은 8월 30일이라는데…

회사 직원에게 부탁해서 집 근처의 모든 학교와 심지어는 이웃 구인 빌머스도르프의 학교에도 연락을 해 봤는데 모두 자리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기왕 학교를 보내는것, 입학식부터 함께 보내야 할 것 같아 터키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26일 화요일에 등록하러 가려했는데 정은이와 아이들이 피곤해 해서 수요일에 가기로 했다. 막상 수요일이 되니 또 다들 피곤해하고 아침에 자고 있어서 그냥 목요일에 해야겠다고 혼자 회사를 가는 길에 우체통을 열었는데…보인 편지 한 통.

‘지우가 우리 학교에 배정되었으니 얼른 와서 등록하세요’ 어디서 보낸 편지인가 봤더니 우리가 처음에 보내고 싶었던 학교에서 보낸 편지였다. 체육강화 학교..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인 그 학교. 이게 뭔일인가 싶어 연락해보니 등록하러 오라고 한다. 아마도 전입신고할 때 자동으로 배정이 되어서 나중에 문의 했을 때 여유 자리가 없다고 했던것 같다. 아무튼 너무 기뻤던 우리는 목요일 아침에 학교로 갔는데 학교도 너무 가깝고 생각보다 더 좋아서 너무 맘에 들었다. 오후에 고양이 반에 배정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 바로 지우 가방을 사고(우리집에서 제일 비싼 가방일듯…ㅠㅠ) 몇 가지 학교에 필요한 물품을 샀다. 토요일이 입학식이고 그날 까지 준비할 물품과 슐튀테라는 고깔모양의 과자주머니(독일 전통)도 마련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정은이는 결국 자신이 만들겠다면 목요일 밤을 꼬박 새워서 초대형 슐튀테를 만들었다.

금요일에 출근하니 아침부터 인사팀 호출이왔다. 가서 보니 리차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We got a problem for Jiwoo’s school..’ 이러는데 이건 또 뭔가 싶다. 학교에서 지우의 기록을 확인해 보니 학교의사가 내년에 학교를 보내라는 의견이 있어 지우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였다. 우리가 지우를 학교에 보내려면 이 부분을 슐암트에서 다시 확인을 해야 하고 그 과정이 4주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일단 입학식에 참여할 수 없고 학교를 다니더라도 결과가 나와야 다닐 수 있다는 것. 만약 학교를 못가는 것으로 나오면 지우는 유치원에 가야 하고 학교는 내년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씨벌..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 간 독일에 정착하려고 참고 참고 또 참고, 정은이가 힘들어 하면 긍정적인 마인드로 어르고 달래고 그랬는데….학교 안보낸다 그럴 땐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지랄을 하더니 그래..학교 보낼게 하니까 이제는 안된다고 지랄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키타 굿샤인 신청 결과도 지우는 학교에 가야하니 안된다면서 거절했던 놈들이었다…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신나서 가방 메고 다니던 지우..밤새 슐튀테 만들고 뿌듯해 하던 정은이… 이 소식은 우리 가족에게 대 충격을 주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치명타..그로기 상태의 우리 가족을 전멸 시킬 수 있는 치명타 말이다.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쉽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차리 한테 말도 안되는 상황이고 내 딸에게 너무한 상황이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을까? 물었더니..리차리도 독일사람이라고 이렇게 한 번 결정된, 그리고 서류로 일을 처리하는 독일에서 이 내용을 다시 바꾸는건 무리이며 절차대로 따지고 그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나의 사랑스러운 지우가 엄마가 밤새 만든 슐튀테는 버리고 한달동안 집에서 빈둥거리다 학교가라그러면 어디 중간에 쏙 들어가서 더 적응도 힘들게 하겠다는 말인데..아니면 내년까지 유치원을 다니던가.. 나는 그 상황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리차리는 나의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데 리차리도 저정도로 의욕이 꺽인걸로 보아 이 상황은 쉽게 해결될 상황은 아닌것 같아 보였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모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관련인들을 고소할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이사했다는 이유로 지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완수하지 않고 다른 구역으로 떠넘기려 했던 프로나우의 그 비서. 7월 31일까지 유치원 자리를 찾지 않으면 무조건 학교에 가야한다고 이야기한 라이니켄 도르프 유겐트 암트의 슐인스펙터. 8월 25일까지 기다리면 학교 배정을 해 주겠다는 구라를 친 쉐너베악의 슐인스팩터. 모든걸 무시하고 지우를 학교에 등록하러 오라고 한 학교 관계자. 우리 가족의 행복을 망친 너희들을 부셔버리겠어. 그리고 독일 식 행정 절차의 희생양이 된 지우의 사연을 독일 사회에 널리 알려야 겠다는 생각도…

이 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리차리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내가 직접 통화해 볼 생각으로 나에게 관계자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랬더니 리차리도 큰 일이 터질것임을 짐작했는지 나를 달랜다..자기가 다시 전화를 해 보겠다고 한다. 내가 다시 한번 키타굿샤인도 나오지 않았고, 의사 소견서의 언어 문제는 우리가 요청한 것이고, 니들이 학교에 가라고 했으며 우리도 학교에 보내겠다는걸 강조하라고 하고 옆에서 도끼눈을 하고 지켜보았다.

결국 리차리는 슐암트에 전화했고 우리의 의지를 확인한 암트에서 다시 학교에 연락을 했고 지우는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 입학식을 무사히 치루고 이번 주 아주 신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독일에 와서 도전이 아닌 상황이 없었을 정도로 모든것이 도전이었고 그 때마다 우리의 현실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도전이 만만하게 느껴지고 뭔가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스트래스 속에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새 계절은 다시 추워지고 우리가 독일에 온지 딱 반년이 되었다..

지난 3월 발리에서 말레이시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으로 도착했을 때..그 날로부터 반 년이라니.. 반 년의 시간동안 우리 가족은 더 많이 가까워지고 서로 배우고 성장한것 같다.

이제 호야 유치원 보내고(아직도 키타 굿샤인은 오지 않았다..), 살림 장만을 좀 더 하고, 집에 페인트 칠도 하고 그러면 조금은 생활이 안정될 것 같다. 그럼 정은이도 독일어 배우러 다니고 어쩌면 시우도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겠지..그 날이 올까 싶지만 머지 않아 오리라 믿는다.

이사온 이웃에 또래의 한국인 부부도 있고, 한인 교회가 있어 때때로 한국인들을 마주치고 도움도 받는다. 교회를 안다녀서 그런 도움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회사의 적응은 다른 문제들에 묻혀 그냥 넘어간것 같다. 회사 일이야 늘 하던 거라 큰 문제는 없지만 회사 스케쥴도 타이트해서 일이 많은 편이다. 야근을 못하게 하고 내 개인적인 일이 많아 시간이 조금 부족한 기분이지만 어찌어찌 잘 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 잠이 깨어 이렇게 글 하나로 나마 그간의 생활을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이 오늘이어서 다행이다…정말로.

 

베를린에서 시작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의 게임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근무 시작일이 6월 1일인데 일요일이라 2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회사 직원은 120여명인 게임 개발 스튜디오이고 지금까지 2개의 타이틀을 개발하였다. 두 번째 타이틀이 어느 정도 알려진 Spec ops : The line 이라는 게임인데 내가 좋아하는 FPS 장르여서 나 또한 재미있게 즐겼던 경험이 있다(그 때는 이 회사가 그 회사인줄 몰랐지만..). 면접 과정에서 차기작으로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살짝 볼 수 있었는데 재밌어 보였다.

내가 하게 될 업무는 UI 개발 부분이다. 직접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상의 UI 를 개발하는 것으로 UX 전반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제시해야 하고 모션에 대한 감각도 중요하다. 게임 회사여서 그렇지 업무만 놓고 보자면 슈투트가르트의 회사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도도 중요하지만 최적화와 안정화가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될 것이다.

플래시가 죽어가는 마당에 플래시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케일폼을 이용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또한 게임 자체가 언리얼엔진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언리얼엔진에 대한 스터디를 필요로 한다. 이것 또한 언젠가 공부해 보고 싶었던 부분이고 AAA타이틀을 만드는 게임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독일에서 일하고 싶었던 목표인 국제적인 업무 환경은 말할것도 없다.

독어와 영어로 함께 표기된 고용계약서와 각종 계약서를 읽고 사인하고, 독일 취업으로 진로를 바꾸게 만든 바로 그 공보험에 가입 신청도 하고, 회사에서는 블루카드 신청을 위해 베를린 외국인청에 예약을 잡아놓은 상태이다. 또한 내가 최대 2달동안 머물 수 있는 임시 숙소를 찾아주고 있다. 이 임시 숙소에 머물면서 베를린에 살 집을 구해야 하고, 그 곳으로 다시 전입신고를 해야 애들 유치원과 학교를 보낼 수 있다. 집을 찾는 동안 내가 출근을 하기 때문에 정은이가 애들 셋을 데리고 지낼 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2주 이상은 무리일것 같다.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든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2년여만에 정은이와 맥주를 한 잔 같이 마셨다. 시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처음이다. 이제야 모유수유를 끊었기 때문인데 단 둘이 조용히 마시고 싶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애들 셋이 껴 있었다..ㅠㅠ

독일로 이민..매번 말로만 독일 갈꺼야~ 그러면서 이런일 저런일 때문에 계속 미루고 준비도 하지 않고 진짜 가긴 가나..서로 그렇게 생각 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말이 행동의 씨앗이 되었고 두려움도 컸지만 그냥 실천도 해 보았더니 결국 이렇게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은 적어도 우리 스스로 노력여하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자신이 있다. 취업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은 지금 당장의 내 노력과 비례해서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이제 남은 큰 일을 생각해 보면, 집 구하기, 살림 장만, 학교,유치원 보내기, 온 가족 독어 공부가 될 것 같다. 집도 잘 구할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