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시간이 흘러간다.

지나고 보면 내 머리속에 찰나의 기억으로.
내 몸에 베어진 버릇으로.
블로그에 몇개의 포스트로 남아버리는

그 무한하고도 짧은 시간의 기록들..

독립된 세포들의 집합체.
신경의 지배를 받는 세포들의 모임.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예정된 input이외에는
신경쓰지 않은 집단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생명체는 주어진input을 받지 않고
예정된 output을 내지 않는다.

나는 사회의 부적응자인가..
아니면 사회가 인간의 기본 집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것일까..

게스테 하우스

게스테 하우스는 영어로 게스트 하우스.
즉 손님의 집–; 이라는 뜻이다.

내가 1년간 살았던 그곳은 도르트 문트 대학의 게스테하우스 였다.
바로퍼 스트라쎄..

가장 신기했던건 집 열쇠가 현관문에 대응한다는것..
집 뒤로는 엄청나게 넓은 대학 캠퍼스가 펼쳐져 있고
집 앞으로는 수백년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창밖으로 보면 끝없는 도시에 멀리 화력발전소인지의 굴뚝만이
바라보였다.

게스테 하우스의 지하에는 비발디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참으로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게스테 하우스는 5층인가 6층인가로 되어있는데
게스테 하우스의 꼭대기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각종 파티,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바로 옆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는 많은 추억이 있어서 무엇부터 끄집어 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포근한 방안의 공기이다.
카펫이 깔려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포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건물 안에서는 3번인가 이사를 했는데 가장 넓은 방에서 부터
가장 좁은 다락에 이르기까지 ..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넓은 방은 5B호실이었는데 부엌과 거실 방이 따로 있었던것
같다.
아빠랑 형이랑 거실에서 귤던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좁았던 6층에서는 지붕 아래 집이라 욕조에서 일어서면
머리가 부딛히고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나중에 미국에서 온 친구도 만나고 독일 친구들도 데려오고 했지만
처음 6개월은 형과 둘이서..때론 혼자서 추억을 만들어야 했었다..

글로벌이란..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내가 한정지었던 좁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래보다 많은 외국 경험이 있었음에도..
모든 일에 내 경험이 다 적용되는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 시간을 만드는거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회사를 위하는 일이랍시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자.
회사에서는 내가 이러기를 바라고 있을까?

난 회사가 기대하는 가치를 충실히 실행해야 할까?

우리회사는 크다..하지만 아직 어리다..
미숙하고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사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 노력이 있어야지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덩치가 커지면서 밥그릇챙기기가 생기고 있다.
사원도..관리자도..

쓸때없는 조건들이 늘어가고 직원은 직원대로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자신의 이익을 찾는다.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은 도박이다..
이곳은 더 성공할 가능성도 완전히 곤두박칠 가능성도 반반이다..

큰 변화가 필요하다..

주일이 형과 이야기 했던 위기의식…
위기가 아닌 이 순간..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지금은 큰 위기이다..

인맥관리 자가진단표

·휴대전화에 전화번호가 200개 이상 수록돼 있다
-휴대폰 정지중..한국 휴대폰에 130명정도?

·당장이라도 돈 500만원을 꿔줄 지인이 3명 이상은 있다
-꿔줄려나…돈꾸는 성격이 아니라 생각해본적 없음..

·최신 유머, 노래 등을 3개 이상 외우고 있다
-아니다.

·업계, 학교, 지역, 취미 등 모임이 5개 이상 있고 주기적으로 참석한다
-주기적 참석모임 1개

·한 달에 경조사가 10회 이상 생긴다
-경조사 없음

·재직 중인 회사의 명함 외에 다른 사회활동 명함을 갖고 있다
-파견자 명함? ㅋㅋ

·하루 1번 이상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하고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지인들을 통해 최신 정보가 들어 온다
-가끔..

·주변 지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본 적이 있다
-오호..이거 스카우트인가?–;; 없다고 봐야할까–;

·이메일로 안부,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는 사람이 1000명 이상이다.
-아니다–+ 천명을 어케…

·지식검색처럼 지인검색을 통해 도움 받는 일들이 많다
-이건 있다!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이라서 대답불가.

·주소록(명함)이 학교, 지역, 취미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다
-그렇다.

·진학, 학원, 모임 등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1년에 3개 이상 만들고 있다
-아니다.

·자신의 분야와 다른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사귀고 있다
-아니지만 그럴계획

 

▶평가 방법 : 예 / 아니오로 대답해 ‘예’ 응답 개수로 인맥관리 능력 평가

▶결과 : 1) 13개 이상(1~20%) : 당신은 유능한 CEO 후보

2) 10개 이상 ~12개 이하(21~40%) : 매니저 후보, CEO를 꿈꾼다면 좀 더 노력 을

3) 9개 이하(40% 이하) : 만년 사원, 인맥 관리에 더 신경 써야

결국 만년 사원이네..기분나쁘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거 만든놈은
절대 만년사원 못벗어 날꺼다.

멋진사람

2004/12/07 00:38 – 네이버 블로그

내가 꿈으로 삼았던 모습중에 하나는 아침에 책한권을 들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도서관에 나올때는 그 책을 머리속에 완벽히
담아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에 여러 약속을 잡지 못하고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지도 못했다.

마음만 그랬었던건지..하루에 한가지 일을 끝내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아도 다른일을 하고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한가지 일을 끝낼만큼 목표도 작았었을것이다.

고등학교때는 위의 꿈꾸던 모습을 실천해본적이 몇번있었다.
다름아닌 문제집..

문제를 푸는것에는 성공했지만 머리속에 넣는것에는 대실패했다.
엉덩이에 종기만 났을뿐..

그 뒤로도 간간히 그런 시도를 몇번 해봤지만 성공한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중요한건 처음부터 모두 얻어내려하기보다는 저러한
시도를 꾸준히 해야한다는것이다.
그러므로 무리한 목표보다는 내가 극한에 다다를 수 있는
적절한 목표를 세워야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었다.
나를 알아야 내 한계를 알고 내 능력을 알고 비로소 적절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잘못이었다.
내가 나를 아는것은 참으로 힘든일이라는것은 알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안다는것도 너무 힘든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안다는것은 그냥 그사람의 행동 말 등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의 단편일뿐이고,
내가 나를 안다는것은 그냥 그렇게 되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그나마 아주 긍정적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로 내리기로 했다.

아주 오만한 생각이지만 내 나이에 못할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좀더 4가지 없이..나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무엇을 하느냐는 거지 어떻게 하느냐는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게 된다면 바닥을 파고 뿌리를 뽑아
그 존재 자체를 내 세포의 일부로 만들어 버려야 겠다.

는 생각을 예전에 한적이 있다….

HARIBO

2004/11/28 20:26 – 네이버 블로그

하리보 막흐트 킨더 프로~ 운테에바세네 에벤조~
HARIBO MACHT KINDER FROH UND ERWACHSENE EBENSO

15년전 독일에서 TV를 보면 저 CM송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백화점 수입코너에서 볼 수 있는 구미베아(예전 우리나라 꼬마곰 과자)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정말 맛나게 먹었던 과자다(제리류?)
탁구배우러 가는 길에 있는 목장의 말에게 가끔 먹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귀신같이 알아듣고(한국말을) 잘 따르던 말이었는데..

종종 백화점에서 사먹곤 했는데, 이번에 어머니 친구분이 집에 놀러오셔서 주고 가셨다.
똑같은 포장에 똑같은 맛. 우리나라로 보면 새우깡 수준의 장수 식품인데. 아마 그보다 더
오래 되었을 것 같다.

독일TV를 보다보면 본 방송 중간에 광고 시간이 좀 특이한데 광고 하나 만화 하나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온다는 것이다.

중간에 나오는 만화는 주로 캠페인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루어 졌던것 같다.
(아마 독일의 KBS인 ZDF채널 이었던듯)

그런데 놀라운건 그 만화에 나오는 케릭터가
1980년 이전에 만들어진 케릭터라는 것이다.(이름모름)
내가 태어나서 한국에 들어올때 엄마아빠가 가져온 인형이 그 케릭터 였으니..

그리고 고2때인가 독어 경시대회에 나가서 독일 문화원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본 ZDF채널은 그 때 그대로 였다.

기회가 되면 독일에 들러보겠지만 그곳은 내 기억이 있던
1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민의식이나 질서 등 많은 부분에서
15년전의 독일의 반도 못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20년 혹은 30년 후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독일과 같은 시민의식이나 질서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 우울해지긴 하지만 우리나란 우리나라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간만에 구미베아를 먹다 옛날 생각이 나서 이러고 있는데..
눈에 선하다..그때의 기억들..

독일의 시청(?)

독일에서 택시를 탄건 시청(?)에 뭔가 등록하러 갈 때였다.
관공서 쯤으로 해두자.

아직 독일에 전혀 적응이 안된 상태..
독일은 택시비가 무척 비싸다.

택시는 전부 밴츠!(가끔 아우디나 폭스바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터기가 기계식이라 좀 놀랐었다.
(한국은 언제나 말달리는 초록색 매터기..)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인 등록 정도 되는 절차였던거 같은데
엄마가 형이랑 나한테 그곳에서 뭔가를 묻거들랑 꼭
대답하라고 했던 말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Woher kommst du?
라고 물으면..
Ich bin aus Korea gekommen!
이라고 ㅠㅠ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곳에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주 인상깊었던건 그 관공서에서 일하는 직원이 난장이 였던것.
더 놀랐던건 그 난장이 아저씨의 헤어스타일이 옆머리는 모두
밀어버리고 가운대 머리만 새워서 녹색으로 염색한 스타일
이었다는 것이다.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청에서 기다리는 동안 독일 환타를 자판기에서 뽑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고, 나오는 길에는 하리보 콜라맛을 사먹으면서
나왔다!

이렇게 무사히 독일에 등록(?)을 한 11살 꼬맹이..

야근. 휴일 근무

처음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은 기본이었고
휴일근무는 옵션..
오밤중에 호출도 많이 불려갔다.

다들 좋다고 하는 회사에 들어와서 내 능력을 좀 더 손쉽게
펼칠 기회도 얻었고 그만큼 난 자유로우면서 더 많은 결과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절대적’시간이 부족하다는걸 조금씩 느낀다.

일본의 대부분의 플래시 업무를 혼자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지만 개발은 나 혼자뿐이다.

그 일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나..

수많은 분기문과 순환문이 다른 사람 눈앞에 재밌는 게임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그 결과물을 일본과 한국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니!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게임에 웃고 화내고
때론 짜증내고..아주 가끔은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굴까?
생각을 하겠지..

흐믓하다.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회사인 만큼 나도 회사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결과들도 많이 보고 있고..

꼭 그만큼 고민이 된다. 꼭 그만큼 욕심이 생긴다….

학교를 관두고 회사를 계속 다니면 어떠나?
학교에 다녀와서 회사를 계속 다니는건?
학교로 가서 계속 공부를 하는건?

인생 별거 없다잉 내 가능성을 믿자. 난 아직 26살(벌써?)이니까!

-대체 이 포스트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거지..

소풍날과 운동회날의 향기

2004/10/27 15:25 – 네이버 블로그

내가 기억하는 향기(냄새)는 실제 냄새라기보다 어떤 느낌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소풍날 아침이나 운동회날 아침은 뭔가 공기에서 다른 냄새가 난다.

쉽게 설레여 하는 나로서는 그런 냄새가 나는 날이 무척 좋다.

아니면 계절의 냄새..

특히 가을과 겨울의 냄새는 다른 계절과 구분할 수 있을정도로 특이하다.
내가 무척이나 냄새에 민감하고 잘맡고,구분해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조금 특이한 냄새를 느끼는건(맡는다기보다..) 내 마음의 긴장이나 흥분이
한 몫을 하는것 같다.

하지만 매번 같은 냄새로,때론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그 냄새는 내 느낌의
결과물이라기 보다 실제하는 냄새가 아닐까?

어느날 길을 걷다가 계절의 냄새를..소풍날의 냄새를 맡게 되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린시절을 문득 떠오르게 하는 그런 냄새를..

실제로 남들도 맡을 수 있는 냄새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소중한 사람들의 냄새이다.
엄마아빠 이불에서 나는 말로 표현못할 포근한 냄새.
여자친구의 머리에서 맡을 수 있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냄새.
형의 자취방에서 나는 어지럽지만 밝은 냄새.

자살

2004/10/28 00:07 – 네이버 블로그

나를 아는 사람중 한분이 오늘 메세지로 안부를 물었다.

이유인즉, 내가 자살하는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인 만큼 내가 자살을 결심했다면 실행했으리라는 생각에
더욱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죽음이란것에 대하여 어린시절부터 많이 생각했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존재들의 많은 죽음과 내가 혐오했던 존재들의 죽음…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이 주는
약간의 또는 아주 큰 충격에 지나지 않았던것 같다.

생명의 신비를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상상조차 못하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상상조차 못할 만큼의 거대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죽음 뒤의 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서 비닐봉지로 숨막히게
혹은 이불속에서 숨을 안쉬며 죽어볼려고 노력해본적이 있었다.

나중에 공부를 좀 하게되었을때는 경동맥을 손으로 막아 반 혼수상태에 다다른 경험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의 정신병 기질도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죽음 뒤의 세계는 너무나 궁금하고 체험해보고 싶은 세상이였고 무언가
지금과는 다른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컸다.

아마도 자살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자살을 택하지 않나 싶다.

지금은 소중한 존재들을 이유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지만 내가 이런 정신상태로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심장을 두근거리며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면에 있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나 나무에 나오는 뇌만 살아있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내 어린시절 상상했던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끔..아주 가끔 문득 생각이 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나라는 동물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어..’

언젠가 밝혀질까? 뇌의 메카니즘 이라던지..인류존재의 이유라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