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bürgerungstest

그렇게 예약 잡기 어렵다는 Einbürgerungstest 예약을 2일만에 잡아냈다.

베를린은 이미 7월까지 예약이 다 차있다느니 브란덴부르크로 가서 예약을 해야 한다느니 VHS에 직접 가서 해야 한다느니.. 작년에 할 수 있을 때 해 놓을걸 후회하며 베를린 모든 VHS에 이메일을 보냈다. 추가로 브란덴부르크의 몇 도시에도 그리고 Leben in Deutschland 시험을 보는 기관에도 메일을 보냈다.

거의다 전부 안된다는 답장.. 나중에 다시 물어보라는 답장 등.. 나중에 물어보라는 날짜를 체크해 놓고 구글 크롭 탭에 귀화시험으로 그룹지어 매일/시간마다 새로고침 할 페이지들을 올려놓았다.

받은 답장중에 하나가 수요일 10시, 12시에 VHS페이지를 확인해 보라는 메세지가 있었는데 오늘 화요일이지만 혹시나 해서 VHS페이지를 뒤져보니 이게 웬열? 베를린 판코에 떡 하니 시험 3개가 등록! 하지만 신청은 오직 이메일로 그리고 선착순으로 받는다고 한다.

빛의 속도로 PDF를 다운받고 내용을 적기 시작한다. 나는 정은이것 까지 같이 신청해야 하니까 정은이 정보까지 2장 작성해서 각각 내 이메일과 정은이 이메일로 판코 VHS에 전송 그리고 오후에 딱 하고 접수 확인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다르지만 무려 5월에 치루는 시험 접수를 하게 되었다!

이 시험은 쉽다고 해서 시민권 신청하는 사람들이 젤 나중에 접수하려다 6개월씩 일정을 지연시키는 함정같은 시험인데 일단 이걸 접수했으니 절반은 온 기분이다.

나와 정은이한테 B1 언어시험이 가장 큰 고비겠지만 이건 뭐 시험도 자주 있고 돈이 문제니까..

이제 B1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독일 살이 11년만에 독일어 공부 시작..아주 많이 창피하지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네..

자전거

올해 1월부터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편도 7키로미터에 30-35분정도 걸리는것 같다.
이걸 왕복 15키로정도.. 회사 출근할 때 마다 자전거를 탄 지 2달 반이되었다.

물론 주 5일 모두 타지는 않고 보통 3-4일 평균적으로 탄것 같은데 너무 오래간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1월달은 조금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춥지도 않고 괜찮다.

자전거를 타면 자꾸만 속도를 내려고 하는데 그래봐야 신호에 걸리고 미친듯 속도내 봐야 5분정도 빨리 도착하는 관계로 요즘은 가능한 천천히 타려고 노력한다.

천천히 타면 비로소 주변의 경치가 보인다.

자전거를 타며 가장 좋은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다음 좋은건 건강이다. 지금은 계단을 오르거나 걸을때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몸무게가 줄어든건 아니다. 자전거 타자마자 2키로정도가 늘어서 역대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지금 그대로 유지중이다. 다리는 2월까지는 계속 통통 부어있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고 옆구리살은 느껴질 정도로 줄었으니 그냥 근육이 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엇이든 3달을 하면 조금씩 버릇이되고 3년을 해야 몸에 완전히 익는다더니 3달이 다 되어가니 ‘타기 싫다’ 는 마음은 사라지고 그냥 별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가게 된다.

애들도 키가 많이?커서 어른용 자전거 2대를 더 주문했다. 하도 키가 안커서 주니어 사이즈는 스킵하고 몇년간 자전거 없이 있었는데 이젠 좀 커도 탈 수 있겠지 생각하고 주문했다.

세일하는 놈들로 주문했는데 400유로씩 2대.. 요즘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당 6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진작 사줬어야지 생각하면 별 생각이 없다.

독일에 와서 산 자전거만 지난 11년간 12대, 도둑맞은게 4대, 버린게 1대, 중고로 팔거나 준게 2대이다. 도둑맞은 3대는 보험으로 보상받고 보험계약 해지당했던 기억이 난다.

애들한테 사주는 마지막 자전거가 되겠지.. 지우는 이미 4년전부터 타고 있고.. 이제 모든것들이 이런식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낳기 전과 후에 상상도 못한 변화를 겪었듯, 아이들의 독립과 함께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던가.. 이제 하나 둘 둥지를 떠나 날아오를 때가 된거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겠지만 마음으론 이미 어른들이니까.

어제 지우 콘서트 구경하다 쉬는시간에 아들들한테 아빠 힘든데 일 관두고 쉬거나 조금 벌고 조금 일하면 어떨까 했더니, 시우는 농담으로 아빠 일 더해 그러고 호야는 당연히 조금 일하라고 한다. 아빠 일 조금하면 응팔에 덕선이네 집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건 좀..’ 그러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그래..너희들한테 엄마아빠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아무 논리도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그 역할로 있는 존재. 그래서 좋든 나쁘든 변화가 생기면 안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도 그랬다. 내 엄마아빠는 그렇게 영원히 그대로 일거라고.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여기저기 아프고 약해졌지만 난 내 엄마아빠도 그렇게 그대로이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어느 새 내 아이들 나이로 돌아가서, 무너지지 않을 그 튼튼한 벽에 기대, 바닥에 누워 아무 걱정 없이 뒹굴거릴 수 있을것 같다.

근데 모두들 미안..아빠는 회사 그만둘거야 꼭~ 니들 학비는 니들이 알아서 해~

인프라 셋업

백엔드로 노는게 생각보다 재밌다. 비용과 퍼포먼스를 고려해 여러 시도를 해 보고 다음과 같이 정착했다.

추후 로드밸런서로도 활용될 nginx 프록시 서버, node 로 만든 api 서버, 인증,디비,실시간 통신을 담당한 수파베이스 마지막으로 캐싱작업에 활용될 레디스 서버로 구성하였다.

도메인, 파일 호스팅은 클라우드 플레어에서 담당.

서비스 특성상 데이터가 공개되므로 트래픽과 디비콜을 줄이기 위해 데이터는 가능하면 레디스에 유지하고 실시간 업데이트는 수파베이스를 통해 공유, 디비 업데이트는 필요한 부분만 하도록 최소화 하는 방식이다.

서버들은 오라클에 1시피유+1기가램+50기가를 레디스 전용으로 돌리고 나머지 4시피유 24기가램 100기가에 모든걸 도커로 때려박았다.

인증/디비/실시간 통신 모두 지역별 배포를 포함해 수평 확장 방법도 대충 계획해 두었다. 제발 이걸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서비스가 잘 되면 좋겠다.

기반 구조 스터디와 작업이 완료되었으니 이제 실제 기능 구현에 집중해야겠다!

사이드 프로젝트

게임이 아닌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있다. 이것도 무려 5년전부터 기획했던 프로젝트이다.

아이디어를 5년 묵혀놓으니 그 형태가 이리저리 바뀌었다가 다시 원래 아이디어에서 다이어트 된 형태로 나왔다. 맘에든다. 쓸데없이 복잡하지 않고 심플하게 바뀐 아이디어에 목적도 분명하고 방향도 맞게 아이디어가 정리된 기분이다.

디테일한 부분들의 정리가 남아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이것저것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기술적으로도 굉장한 계획이 세워졌다가 하나씩 다이어트해서 현실적인 구현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직접 모든것을 한다는 것은 즐겁고 성취감 넘치는 일일지 모르지만 서비스를 운영하고 키워나가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 내가 만드는 하나의 프로덕트에 집중하기 위해 아쉽지만 다른 것들은 기존의 솔루션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한다.

스케일이 확장되기 전에 비용이나 구조를 걱정하는건 바보같은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만들다간 나중에 기회를 잃을 수 밖에 없다. 베스트프락티스가 아니어도 며칠정도 구조에 대해 고민해 보는건 나쁠게 없다. 최대한 다른 솔루션을 쓰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향후 스케일 확장이 용이한 구조로 시작하게 되었다.

자잘한 비용들을 아낄 수 있는것도 좋지만 이정도 계획이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게 너무 좋다. 뭔가 이것저것 제한이 걸리고 비용이 발생한다는 생각은 개발에 집중을 못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오라클 무료티어에 도커로 오픈소스 솔루션을 올리고 파일 트래픽은 클라우드플레어로 감당하기로 했다. 눈에 보일 비용 증가는 클라우드 플레어 스토리지인데 1테라에 월 15달라, 트래픽은 무제한이라는 조건이면 나쁘지 않다. 심지어 스토리지 비용이 다른 어떤 클라우드보다 싼것 같은데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얼기설기 기본중에 기본 기능들은 구현이 끝났고 3월달은 베이스가 될 기능을 완성해 MVP를 선보일 MVP?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즉 이번 버전은 다른 솔루션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본 준비작업을 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4월달에는 유니크한 기능에 집중할 수 있을것 같다.

인프라 설정과 설계도 끝났고, 기본 기능 구현도 완료 되었다. 어떤 결제 솔루션을 붙일지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이건 옵션같은 부분이고.. 3월에 목표만큼 완성이 되면 애플개발자 프로그램에 다시 가입해 앱스토어에도 알파버전을 출시할 계획이다. 4월에 베타 5월 소프트런치를 하면 이 프로젝트가 수익성이 있을지 판가름 할 수 있을것 같다.

조금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6월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7월부터 더 집중해서 진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내가 재밌게 사용할 수 있는걸 1순위로 해서 만드는걸 즐기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불안 1

불안해? 불안이 뭐야? 나는 내가 불안해 하는게 뭔지, 내가 불안해 하는건지 딱히 모르겠는데? 최근 ‘나’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중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나는 굉장히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한 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방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에 민감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 스스로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모를까 대체 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런 에너지를 소비하는 걸까?

이에 대한 이유로 몇가지를 생각해 봤는데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했을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둘째로 자라며 형과 부모님의 갈등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형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나보다 먼저 사춘기가 오고 조금은 예민한 성격이었던 관계로 그런 갈등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갈등이 엄마아빠와 형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그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에게 온 피해라곤 ‘형이랑 같이 못놀게 되는것’, ‘가족들이 계획한 것들이 취소되는것’ 등 요약하자면 ‘즐거울 것이라 기대 되어있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되는것’ 으로 말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일이지만 그 땐 그런 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었을테고 그래서 시작한 갈등에 대한 개입이 어떤 습관적인 행동을 만들고 급기야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것에 불안해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것 같다.

어렸을때 학교에 다니며 ‘잘못된 책임감’을 배우고 그 환경에 오래 지낸것도 한가지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교육이나 생활을 극도로 타인을 의식하게 만드는데 나는 학창시절 몇 번 반장이나 회장같은걸 하며 모두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왜냐면 선생님들이 그게 반장/회장들이 해야 할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조용히 해야 한다던가, 내가 ‘옳은’ 말을 하면 다 따라야 한다던가의 생각이 강했고 또 한국에선 그게 대부분 맞는 말이기도 했기에 이런 생각이 더 굳어져간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는 밑도 끝도 없이 낙천적이었던 내 성격.. 지금은 아이들도 있고 나이도 먹어서 성격이 많이 바뀐것 같지만 나의 마음 그 시작에는 말도 안될만큼 낙천적인 내가 있다. 걱정도 계획도 생각도 없는 나. 나는 그냥 하늘의 구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그 어떤 걱정도 바꿔 생각해서 걱정이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이런 성격은 무언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보다는 오해하게되는 경우가 많았고 늘 이상을 꿈꾸던 아빠의 영향도 크게 받아서 ‘도전’ ‘꿈’ ‘희망’ 등의 생각으로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이와 반대되는 개념들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2014년 베를린에 온 뒤로, 나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고 알릴 수도 없는 외계와 같은 사회에 뚝 떨어져서,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들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내 인생에 무엇보다 잘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벗어나는것과 마이너들만이 모여있는 베를린으로 오게 된 이 두 가지 효과로 ‘나’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오늘 이 생각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내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의 동의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옳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것에는 그 뿌리가 깊은 시작이 있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 있는건 거의 없고 바꾸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더이상 내 생각을 돌려 말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늘지 않는 독일어 처럼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게 맨 처음 언급했던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해결, 즉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 생각도 많이 바뀌어 가족 한정이 되었지만 가족들에 대해 이 생각은 어쩌면 더 강해져버린것 같다. 근데 이건 정말 어려운게 내가 남편이고 아빠인데 가족들의 기분이 나쁘던 말던 내버려두는게 맞는걸까? 그렇다면 가족은 뭘까?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기쁘게 해주는게 가족이 아닐까?

아마도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 멈추고, 이것을 결론으로 지난 몇년간 내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고 했던게 아닐까 싶다.

나의 모든 생각과 변화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튀어나온다. 누구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지 않을 상처를 주게 된다. 내 가족을 남처럼 대하면 주지 않을 상처… 하지만 가족이니까…

이런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까? 내 아이들을 남의 아이 보듯 키우면 아이들이 더 행복한 걸까? 내 아내, 정은이를 남 보듯 대하면 정은이는 더 행복할까?

내가 아는 사실은 ‘그렇다’ 이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똑같은 조건이다. 정은이나 아이들이 나를 남 대하듯 한다면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정은이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그게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지…

너무 사랑하고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주게 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 하고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거든…

하지만 나의 ‘불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의외로, 어쩌면 이 ‘불안’ 이라는 키워드가 내가 멈추고 해답을 찾지 못했던 ‘가족’의 기대와 소통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불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고 이 불안을 가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존하고 또 그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죽이고 잡아먹을 수 있다는 불안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내가 즐겁게 있고 싶은 이유, 가족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이유, 걱정한다며 힘들게 하는 이유들이 다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불안에서 벗어나거나 불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집중하면 필요하지 않은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무엇을 불안하다고 느끼는지, 왜 그러는지, 어떻게 그 불안들을 해결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누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나?

이 말을 해본 사람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황은 반대이지만 부담스러운 배려를 받은 사람, 그리고 애써 배려한 사람 모두 섭섭한건 똑같아 보인다. 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는다. 좋게 말하면 오지랖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바하는거지… 누구나 노력한 것에 대해 부정당하면 그에 비례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나는 주로 이런 말을 듣는 상황에 있는것 같다. 그렇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나 좀 내버려 둬’ 라는 입장이 될까? 나를 돕거나 배려해주는 사람들에 나쁜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나는 보통 그 배려 만큼의 고마움을 많이 느꼈던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다르고 내 배려나 방식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배려 자체가 필요하지 않아서 정말 진심으로 나의 행동이 이해안될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내 입장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의 상황을 챙기려 할까? 그래..그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 있겠다. 방법을 고쳐야 할까?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방법을 고쳐야 한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고치고 가능하면 상대방을 더 배려하려고 노력해야지. 나의 배려가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된다면 그건 배려가 아니게 될 테니까. 요즘은 그래서 말도 더 줄이고 이런 행동도 더 줄이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생각할 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나의 힘듦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것도 조심스럽다. 불평하지 않는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했고 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것에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체로 힘든일이 있고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전환하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내 문제부터 똑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쓴 글이지만 모든 문제는 결국 나로, 내 생각으로 귀결된다. 나나 잘해야지… 요구하지 않아야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조금 더 입은 닫고 생각을 깊이있게…

집을 치우듯 마음을 치우자

나이가 들어갈 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치우지 못한 마음 속의 일들이 쌓여간다. 지금 처리하지도 못할일들, 실현 가능하지 않은 기대들도 함께 쌓여 하루 하루 나의 시간을 다시금 낭비하게 만든다. 그래 치우자, 아니 버리자. 버리지 않고 치운다는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눈을 감고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어지러워진 머릿속을 둘러본다.

가족을 위한 일들이 가장 먼저 보인다. 사야할 물건들 해주고 싶은것들 못해줬던 것들 요구하고 싶은 것들… 일단 과거는 버린다. 못해줬던 것들, 부족했던 것들, 후회되는 일들.. 그래 인정한다. 나는 부족한 아빠, 부족한 남편, 부족한 아들이라는 것을. 후회되는 일들로 더 노력했으니 조금은 더 좋아졌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 저 후회들로 부터 내가 더 좋아질 일은 없을것 같으니 제일 먼저 가져다 버리자. 자, 이제 후회했던 것들은 다 버렸다. 해주고 싶은것, 요구하고 싶은건 솔직히 내 욕심 아닌가? 해달라고 안했는데 먼저 해 주면 잘해야 본전이다. 그거말고 해달라고 하는거나 먼저 잘 해주면 될것 같다. 요구하는거는 줄이고 있는데 이참에 다 버려버리자. 해주고 싶은거, 요구하고 싶은거 이제 없다. 이래라 저래라 말고 ‘나나 잘하자’는 생각으로 살자. 사야하는거 해야하는일들은 늘 있고 끝이 없는데 한 번에 여러개를 할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것과 잘하는것 만이라도 확실하게 하자. 사야하는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게 있나? 없으면 정은이한테 맡기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건 빨리 결정해서 사자. 이렇게 보니 딱히 많은것 같지 않은데?

내 인생에 대한 걱정으로 쌓아둔 것들도 많이 보인다.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그러기 위해 만들려고 했던 것들, 시도하고 싶은 비지니스들 등등. 좋은 아이디어라면 또 생각나겠지?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것들만 빼고 다 버리자. 상가구매, nocnoc 서비스 그리고 게임에셋 만드는것 정도가 남았네? 다른건 다 버려..nocnoc도 프로필 기능으로만 제한하자. 아휴..속이 다 시원하네..

또 뭐가 남았지? 운동은 자전거 타는거로 마무리 하고…참 독일어 + 시민권이 남았구나. 음..이건 정리하기가 조금 힘든데.. 일단 어디 서랍에 처박아둬야겠다 ㅎㅎ

본의 아니게 한국 정치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것같다. 이것도 다 내다 버리자. 올해 투표하게 되면 그 때 다시 생각해도 되겠지.

회사일은 그냥 회사에서만 생각하고 끝내자. 아니 가능하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도 최대한 줄여봐야겠다. 이건 어느정도 잘 하고 있는것 같으니 다행.

이정도만 해도 머릿속이 조금 정리된 기분이다. 이 상태로 며칠 지내보고 또 버릴게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지. 속이 다 시원하네..

2025

오지 않을것 같던 2025년은 너무나 빠르게 왔다. 대체 2024년은 어떻게 지나버린걸까? 그 어느 때 보다도 빨리 지나가 버린 2024년..2025년도 이렇게 빠르게 가버리는걸까? 2024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1. 한국에서 손님들이 연속으로 왔었다. 먼저 처남이 3월달에 와서 4주반동안 있다가 갔다. 다행히 내가 집에서 일하고 또 회사를 그만 두던 때라 같이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5월엔 부모님이 6주간 방문, 원래 일정은 2주는 우리집에 4주는 여행갈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모두 취소하려다 정은이가 그냥 오시라고 해서 오셨는데 6주 내내 조금 아프시고 시차적응만 하시다 가셨다. 그 다음 조카들 둘이 7월에 4주를 보내고 갔으니 총 14주, 그러니까 3달 반 이상 우리집에 손님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말은 아이들 방을 손님 방으로 썼다는 말이고, 나는 거실에서 잤다는 말이고, 정은이는 5인분이아닌 6-8인분의 식사와 빨래 등 집안일을 처리했었어야 했다는 말이고, 우리끼리의 주말이나 쉬는 날 없이 지냈어야 했다는 말이다.

    물론 모두들 우리가 너무 좋아하고 보고 싶었던 손님들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지만 물리적으로 우리의 체력이 버텨주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고 훌쩍 가버린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2. 이직을 했다(또). 어느 회사를 다녀도 만족을 못하겠지.. 일이 많으면 많아서 없으면 없어서.. 몇번째인지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2014년 독일에 온 뒤로 10년간 7번째 회사인것 같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게임하나 만들던것 까지 하면 8번째지만 일단 프로베차이트만 7번, 3년 반을 프로베차이트로 있었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그냥 저냥 만족스럽다. 회사에 크게 바라는게 없어서 그런것 같다. 회사는 지난달 15밀리언 유로 투자를 받고 잘나가는 중이다. 올해는 나 스스로 하는 일들에서 가능성을 보는게 목표이다. 더이상의 이직은 하고 싶지 않다. 이직하고 3개월 동안 게임 하나를 혼자 만들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가지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3. 시간이 빨리 가는것 처럼 느꼈던 또 다른 큰 이유로 병원에 다닌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올해 초에 이빨 하나를 뽑아야 했고 손님들을 모두 치룬 뒤에는 귓바퀴에 피가 고여 이걸 빼는 수술을 해야 했다. 호야는 코가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했고 시우도 발목을 접질러 한달 넘게 목발을 사용해야 했다. 이런 일들로 두세달이 또 훌쩍 지나버린것 같다.

    4. 형과 함께 앱 출시. 이건 2022년부터 형이랑 조금씩 했던 일인데 작은 서비스들로 만들던 것을 모바일 앱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웹으로 만들고 유니티로 만들고 다시 플러터로 또 만들어 앱으로 출시했다. 아직도 테스트 성격이 강해서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하는건 아니지만 모바일 앱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을것 같다.

    5. 뭔가 만든걸로 치자면 게임 에셋을 만들어 팔아본 경험도 빼 놓을 수 없다. 9월부터 작은 에셋을 만들어 에셋스토어에 팔아보았다. 엄청난 성공은 아니지만 작은 노력으로 한달 100-200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6. 지우의 영주권 획득. 계획대로라면 나와 정은이가 시민권을 딸 때 온 가족이 시민권을 따는건데 지우 비자가 만료되어 지우만 영주권 신청을 하고 받게 되었다.

    7. 그리고 여행… 올해는 우리 가족끼리 많은 여행을 하지 못했다. 크게 한방으로 이집트에 다녀왔는데 오래간만에 완전히 다른 기후를 경험해서 그런지 모두들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모두 만족스럽게 다녀왔던 여행이다. 나는 좀 불편하게 자고 푹 쉬지 못했던 기분이 들었지만 다른 곳으로 여행했다면 더 힘들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다녀본 여행중에 가장 비쌌던 여행이기도 하다. 짧지만 1박2일로 호야랑 시우만 데리고 폴란드 여행도 다녀왔다. 같이 먹고 걷고 이야기 했던 조금은 심심했던 여행이었지만 내 기억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1년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하지만 하루하루 계획하지 못하고 끌려가듯 지내온 시간 뒤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크게 남는것 같다. 올해는 조금은 능동적으로 지내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그리하여..올해의 개인적인 목표를 적어보자면,

    1.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베를린에 작은 상가를 하나 마련해보고 싶다. 베를린에서 부동산, 특히 상가는 거래가 정말 뜸하고 구하기가 어렵다. 여차하면 우리가 비지니스를 시작해 볼 수 있는 상가를 하나 마련하면 좋을것 같다.

    2.시민권 도전. 사실 시민권 따는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민권 발급에 딱 두가지 조건이 부족한데, 하나는 독일어 능력이고 다른건 독일 상식테스트인데 독일어 B1자격증 발급이 가장 시급하다. 조금 노력하면 딸 수 있을것 같기도 한데, 이 노력이라는것이 잘 안되는 관계로 계속 미루어져오고 있다.

    3.게임이나 앱 정기적으로 만들어 출시하기. 일단 목표는 3개월에 하나 이상의 앱이나 게임을 출시하는것으로 하고 있다. 첫분기 목표는 ‘데이팅앱’으로 목표를 잡았다.

    4.운동. 이제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말 삶의 질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미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 근력운동하기, 애들이랑 같이 조깅하기를 꼭 실천하려고 한다.

    5.에셋 판매. 작년부터 시작한 유니티 에셋판매를 계속하려고 한다. 큰 욕심없이 한달에 하나 출시를 목표로하고 추가로 마케팅도 해 볼 생각이다.

    그 외에 가족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러가지 경험해 보는것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보내는 시간 말고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시간들.. 아이들이 커서도 가끔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계엄이후 대한민국 정치를 바라보는 생각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민주당은 탄핵을 국민의 힘은 반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9일 기준 여론조사에서는 75%의 국민만이 탄핵에 찬성한다고 한다(https://news.nate.com/view/20241210n02633) 내가 어느 당의 지지자이냐를 떠나 너무나 극명한 잘못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도 작은 수가 아닌 20% 이상의 국민이… 신호를 위반하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일에도 이렇게 의견이 갈릴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에서도 언제나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언제나 민주당 지지자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참여를 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투표에 참여했고 잘못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상식’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했고 어떤 행위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호도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서도 알려주려 노력했다.

    나는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나 판단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지만 그들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려하지는 않았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일한 대상에 대해 비판하고(욕하고) 끝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을 피해왔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람이 다른것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정당, 같은 정치인, 같은 공약을 지지하면서도 다른 방법과 생각으로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사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으로 서로 다른 많은 사람,상황,이슈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한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 한 분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세월호, 박근혜 탄핵, 이태원 그리고 이번 계엄 사태 등 많은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이런 변화를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정치참여 측면에서 굉장히 환영할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변화가 있을 때 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려는 모습 또한 보게 된다.

    광장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은 그 날의 이슈가 트리거가 되어 모였지만 사실 굉장히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월호 이슈로 박근혜 탄핵을 논의 할 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민주당 지지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탄핵에 다른 이슈가 딸려 나올 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은 그곳에 있는, 그 시간에 존재하는 모두를 하나의 집단으로 정의하고 다른 목소리에 대해 귀기울이기는 커녕 적대시 하고 마치 탄핵을 반대하는 존재 혹은 박근혜와 같은 존재로 밀어넣어버리려는 것들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 또한 저렇게 되겠구나는 생각에 의견 개진이 어려워지고 목소리 크고 극한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국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 분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조국을 나의 대리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조국 본인이 드러난 본인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나 검찰의 무리한 수사, 억지 수사 이런 것들이 정당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어떤 경로가 되었든 본인의 과오가 드러났고 그 때 조국이 대처한 방법들이 나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싸움이나 논쟁은 그냥 상대방의 잘못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그건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경찰이나 판사가 하는 일이다. 정치인은 상대의 잘못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하고 설득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정치인의 설득 논리 뿐 아니라 그의 배경과 과거 그리고 행동과 행위등에 이를 지지하고 밑받침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조국은 자신의 과오에 대해 깨끗하게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회피로 일관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조국의 정치인으로서의 힘은 이러한 과거와 배경으로 작아질 수 밖에 없고, 가까운 미래에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이는 다시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줄이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입지가 작거나 줄어들 정치인에게 아무리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를 대리해달라고 지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조국이 본인에게 의혹이 일어났을 때 그런 잘못들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지지자들은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라면 책임지면 되었을 일이다. 그게 자신의 정치생명을 끊는 행위라고 그렇게 했어야 한다. 조국을 무지성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잃는게 두려워 본인의 정당성을 버리고 주변의 착각속에 시간을 보내봐야 결국 이 상황은 되풀이 되고 끝나지 않는다.

    국민의 힘 당론으로 탄핵을 반대할 때 탄핵에 찬성한 김예지의원의 인터뷰를 보았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뿐’ 이라는 그녀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나는 그녀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계속할 수 있을 어떤 도움도 주지 않겠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녀를 지지한다. 그녀가 내가 사는 지역구 직선으로 출마한다면 나는 그녀에게 투표할 용의가 있다(민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김예지를 지지하는 이유도 똑같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라면 내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으로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민주당이 집권하고 이재명이 대권을 잡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건강할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전에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도 있었지만 집권 이후 정치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성장하고 발전한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여러 부분에서 발전했지만 그렇다면 그 이후로 어떻게 박근혜,이명박 그리고 윤석열 같은 사람이 집권할 수 있었을까? 이건 발전인가 퇴보인가?

    탄핵이 되고 다시 대선이 치뤄지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나는 이재명의 지지자로서 그 분이 우리 나라를 몇단계 업그레이드 하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걱정은 윤석열이 남겨놓은 트라우마와 거기에 대비되는 이재명의 능력으로 한층 더욱 더 견고히 쌓여버릴 ‘우리’ 라는 잘못된 감정에 희생당하고 고통받을 사람들과 소신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한방향으로 자리 잡혀버린 혐오에 대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은 이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속한 집단의 혐오에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비판적 혐오, 같은편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가 이런 상식적인 판단에 반하는 의견을 표출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도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다.

    윤석열은 물러나고 지금 정치판에서 자신의 이익이든 유권자의 이익이든 나라의 이익이든 무언가를 위해 정치인들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나 또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내 블로그에 내 목소리를 남긴다. 나는 내가 내는 나의 목소리가 하나의 의견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로서 조국을 지지하지 않고 김예지를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이익을 위해 나를 대신해 준비하고 논쟁하고 지금의 잘못과 방향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지우 영주권

    독일에서 본인이 영주권을 받으면 동반 가족의 경우, 배우자는 영향없음(계속 동반비자로 갱신), 자녀들은 만 16세까지 유효한 거주허가를 받게 된다. 배우자는 독일에서 5년거주(첫 비자로부터) 후 영주권(EU)을 신청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우의 16세 생일이 되기 전에 비자를 연장을 하든 뭔가 조치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시민권을 받고자 하는 계획이 있어 문의 해 보니.. 시민권을 16세 이하인 경우 부모와 같이 신청해야 하고 16세 이상인 경우는 본인 혼자 신청할 수 있지만 유효한 거주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16세가 지나면 유효한 거주허가가 없어지니 결국 뭔가 거주허가 연장을 해야 하는건가? 이리저리 억지로 시민권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봤지만 시간도 없고 여권마저 새로 발급해야 해서 일단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했다.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9월부터 이메일을 보낸것 같은데 이 당시 외국인청의 예약 시스템 남용 문제로 예약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서 이메일로만 문의해야 했다. 워낙 설명이 복잡해서 몇번 문의를 했다가 아예 문의 없이 ‘영주권신청’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담당부서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 설명과 함께 16세 이상 영주권 신청 관련 서류들을 모두 스캔&첨부해서 보냈다. 당시에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증명서, 안멜둥 그리고 지난 모든 성적표, 여권들을 스캔해서 보냈다. 그리고 1-2주 뒤에 12월 외국인청에 오라는 짧은 답변하나를 받았고, 다시 1주일 뒤에 알고보니 그날 외국인청 문이 닫으니 다른날 오라는 메일 하나를 더 받았다.

    그 와중에 지우는 생일이 지나 거주허가가 없는 상태가 되었고 마침 학교에서 폴란드로 여행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터민 받은것으로 거주 증명은 할 수 있었지만 독일 바깥으로 여행은 안되다고 알고 있어서 급하게 임시비자 신청을 했다. 긴급 비자 신청 메뉴에 상황을 설명하고 여행가는 스케쥴 등을 첨부하자 며칠사이 외국인청으로 와서 임시비자를 받아가라는 이메일이 왔는데 만약 못오면 편지로 보내주겠다고 해서 편지로 여행가능한 임시비자를 받았다.

    이제 영주권으로 방문하는 날이 되어 지우와 함께 방문(부모님 꼭 동반, 나는 정은이의 위임장까지 가져갔는데 확인은 하지 않았다)했고 별다른 질문 없이 가져간 원본서류들 확인 후 내년 2월에 카드 찾으러 오라는 말과 함께 수납을 하고 돌아왔다. 이로서 지우의 영주권 획득! 카드 받을 때 까지의 여행은 지난번 발급받은 임시비자로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확인한 서류는, 학교증명서, 성적표들, 지우 구,신 여권, 나와 정은이 여권이었다. 외국인청이 많이 발전해서 사진도 스캔하고 다시 돌려주었다.

    베를린 외국인청을 코로나 이후로 장족의 발전을 했고 심지어 이 16세 영주권 신청도 이제는 이메일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처리하게 되었다. 10여년전 새벽에 나와 줄서있던 기억, 대기표 뽑아들고 정은이 한테 빨리 애들 데려오라고 난리쳤던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