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오늘 사직서를 냈다. 2002년 병특으로 시작하고 20년 동안 몇 군대의 회사를 다니고 몇 번의 사표를 냈을까?

2002년 6월 가민정보 병특 시작
2004년 11월 사표내고 NHN(중간 NHN Japan 파견)
2008년 2월 사표내고 IAMG 창업
2014년 6월 독일에서 Yager
2015년 9월 사표내고 Aeria games
2017년 1월 사표내고 스마일게이트 유럽
2018년 5월 사표내고 AAI
2020년 2월 사표내고 CrazyLabs
2022년 9월 말로 퇴사 예정…

7개 회사 1번의 창업.

로이랑 크레이지랩스에서 만들던 게임을 마무리하고나서 지친건지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었다. 뒤돌아 보면 영주권을 따기 위해 취직을 했다가 스마일게이트 때 영주권 따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사업을 해 볼까 했는데, 그냥 한 번 다녀보자고 생각했던 AAI에서 2년정도를 보내고 나니 많이 지쳐있었던것 같다.

내 사업 반, 취직 반 신분으로 시작한 크레이지랩스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게임 자체의 성과는 크게 좋지 않았다. 어디서든 안배웠을까, 그래도 여기서는 모든 프로젝트 관련 셋업을 바닥부터 다 진행해 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개발은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핵심이지만 개발을 둘러싼 팀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토양이 되는 만큼, 스스로 첫 시도에 드림팀에 가까운 팀을 꾸렸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스럽다.

2020년 부터 끊임없이 두들겨왔던 나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 속도를 붙일 때가 되었다. 아이디어 중 현실적인 것들을 추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비지니스가 나에게 동작할 수 있는지 검증해 보는것이 첫 번째 단기 목표이다. 그리고 이런 단기 프로젝트를 몇 가지 테스트 해서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저축해 놓은 돈이 있더라도 고정 급여가 없다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것 같아 몇가지 옵션을 준비했다. 먼저 9월 말로 퇴사한다고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진행해 줬으면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기술적으로도 배울것이 있고 기간도 적당해 15일 까지 검토 후 내가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퇴사를 취소하는 옵션이다. 프로젝트 검토 뿐 아니라 지금 계약사항의 변경 또한 포함시켜 합의하기로 했다. 급여로는 많은 액수를 주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미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은것이 아니라면 크레이지랩스에 머무는것이 사실 가장 편하고 좋은 선택이다.

다음 옵션은 로이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둘이 같이 회사를 창업해 투자를 받는 방향으로 생각중에 있다. 투자 의향이 있는 몇 회사와 개인이 있는데, 이 방법으로 진행할 경우 창업 초기에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급여는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온전히 나의 사업을 하는것(공동창업이지만)과 레퍼런스 좋은 초기 투자자들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의 리스크도 있는 편..

이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는 내가 홀로서기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단기 프로젝트들을 테스트하고 장기 비지니스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최대 18개월로 정했다. 이 정도면 3-5가지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1-2개의 게임이나 서비스를 실행 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옵션을 선택할 지는 15일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고, 의외로 이 두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것 같다. 이제는 딱히 어떤 회사나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런 생각 만으로도 답답해진다. 사표를 내고 나니 마음은 조금 더 홀가분해졌지만 급여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거워 지기도 한다.

더 작은 급여일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독일 와서 처음 받은 돈 보다 거의 3배가까이 받는 지금은 그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겠지만 엄청나게 아쉽지도 않다. 중요한것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들이 결국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사표를 내고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20여년간 일해 오며 늘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빨리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따고 나서 시작했다면… 아예 독일 오면서 부터 IAMG를 계속 했다면…

하지만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그 만큼 얻은것도 많았으니 후회는 하지 않고 약간의 아쉬움만 느껴보려 한다. 아쉬운건 아쉬운 것이고 홀가분한건 홀가분한 거니까. 이제 15일 까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아주 짧겠지만 1-2주 정도 나만을 위한 휴식 시간도 가져보고 싶다. 파일럿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최소 첫 번째 결과가 9월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단, 20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잘했다, 그리고 고생했다! 앞으로도 잘 할거야!

사람은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한숨

몸이 지쳐서 마음이 지치는건지 운동을 안해서 그런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일도 하기 싫고 짜증이 많이 나는 시기다. 날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맥주 한 잔 마시고 영화도 보고 했을텐데,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보고 싶은 영화도 없어서 이런 재미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는건 개인 프로젝트 끄적거리는건데 쉬는 시간도 없이 또 일은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일이 취미라니.. 재밌을땐 싫지 않지만 요즘처럼 일 자체가 하기 싫을 땐 그 대안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이런 저런 커뮤니티를 기웃거려보면 다들 나보다 여유있고 잘 사는 사람들만 보인다. 딱히 돈을 아끼는건 아니고 그냥 검소한(?)게 생활화 되어있다보니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늘 조금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돈은 많이 쓰는데 전부 먹을것이고 아이들 한테 들어가는 비용이다.

개발에 관한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추가로 나오고, 장비든 뭐든 더 받을 수도 있지만 딱히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애플 개발자 등록 1년에 100유로 짜리는 계속 미루고 있고.. 물론 딱히 지금 등록할 필요는 없지만 한다면 조금 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은데 하면서…이게 돈을 아낄려고 하는건가?

그런 마음에 ‘에라이!’ 하면서 돈 쓸 핑계를 이리 저리 만들어 보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상상속에선 전기차도 사고 애들 스마트폰도 사주고 컴퓨터도 하나씩 사주고선, 돈도 써본놈이 쓴다는데…언제 그렇게 써 볼 수 있을까? 집에 들어가는 돈도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살고 있는데 정말 ‘나’한테 들어가는 돈이 매달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아마 난 지금 연봉의 반만 받아도 지금과 똑같이 살 수 있겠지.. 나 혼자라면 1/10?

그럼 이 답답한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더 성공해야한다는 막연한 목표… 나와 가족이 경제적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을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 내가 하고싶은게 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 들이 모여서 조금씩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건지 시간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내일 부터는 혼자서라도 꼭 산책을 해야지…

날씨가 좋아지면 정원 관리를 하면서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텐데… 결국은 날씨 탓이네.

2021 그리고 2022

바쁘다면 바쁘고 단조롭다면 단조롭게 흘러간 2021년인것 같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날.. 여느 때와 같은 10대 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족과 나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기록을 적어보려 한다.

아이들

연초에 큰 다짐도 없었고 아이들이 코로나로 집에 있어서 더 정신없이 시작했던것 같다. 특히 호야가 코로나 이후 학교생활에 약간 갈피를 잡지 못하여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같이 해야 했다. 내년에 있을 김나지움 지원으로 여전히 지금까지도 모두가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야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푹 빠지는 반면, 관심없는 일에는 시큰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도는 높은 편이다. 그 성격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여러 모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부분이 많았던 한 해였다. 이제 슬슬 2차 성장이 시작되는 듯 하니 내년에는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

시우는 가장 아이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애교에 누구나 본인의 감정을 알 수 있게 표현하는 솔직한 성격덕에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공유하고 또 공감받으며 지낸다. 막둥이라 누나, 형을 보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 빨리 배우는 것도 있지만 시우는 자기가 싫은 일이라도 집중해서 하는 성격이라 주어진 일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학교에서도 반장을 하면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심지어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를 받는! 경험도 하였다. 그 뒤의 대처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해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줬다. 이제 성적표가 점수로 나오는 3학년이 되었는데, 시우 반 만의 특징인지 아이들이 점수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아 보이는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곳 독일도 한국처럼 이런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점수에 민감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지우는 늘 그렇지만 올해는 특히 더 즐겁고 행복한 1년을 보낸것 같다. 학교가 너무 좋고 재밌다는 말은 하루 걸러 하루씩 이야기 하고, 점점 관심이 꺼져가는 듯한 바이올린에 갑자기 불이 붙더니 하루에 2시간이 넘게 스스로 연습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 특유의 그룹 문화에 조금 적응하는 듯 하더니 역시 자기 맘에 안드는건 아닌건지 여기저기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사귀면서 관계를 넓혀가기도 했다. 자세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공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불이 붙어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받고 있다.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지우를 띄워주고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게 하는데 이럴 때면 아주 신이 나는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더 하려고 하니 나는 지우와 발 맞춰주기가 버겁지만 선생님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친구들 얼굴을 관찰하고 오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제일 이쁜것 같다는 말도 하고 ‘나는 외로워, 남자 친구가 필요해’ 라는 내용의 시를 영어로 쓰는 누가 봐도 10대 여중생! 승마 캠프도 다녀오고, 늘 그렇듯 올해도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들

정은이는 가을까지 독일어를 배우느라 더욱 바빴던것 같다. 여전히 정성들인 아이들 도시락과 여러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도 4시간씩 수업을 듣고 또 공부를 했으니… 그 결과로 올 해 정은이의 영주권을 받게 되어 보람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던것 같다. 나는 딱히 일 말고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 둘 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단 1일…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랑 농구, 산책정도 말고는 정말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것 같다. 가을 이후 우리 둘 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게 바뀐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카페인과 알콜을 많이 줄이게 되었다. 3달 넘게

베를린에 직원이 늘어나면서 페이롤 컴파니를 통해 고용계약을 맺게 되었다. 여전히 프리랜서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뭔가 내 일을 할 수는 있는데 할 일도, 시간 여유가 없다. 회사일은 기본적으로 양이 많고 여러 업/다운이 있어서 당연히 바빴다. 추가로 개발자를 채용했어야 했는데 해고를 하는 바람에 막판에 일에 치인것도 힘들었다. 삐걱거리던 QA파트를 내가 맡아 시니어 1명과 주니어/레귤러 5명을 채용했다. 온보딩에 팀빌딩에 전반적인 테스팅 환경 조성에 너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조금 굴러간다 싶을 정도로 가고 있다. 내년 초에 추가 인원들이 합류하면 혼자 잘 굴러가게 만드는게 목표다. 그 와중에 개발자 친구 한 명을 채용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관심을 두고 가이드를 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생각이다. 전 회사와 다르게 모두 내 손으로 뽑은 사람들인 만큼 더 애정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여름엔 회사일 말고 형이랑 프로젝트를 하나 했는데 ThreeJs로 게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모바일 웹에서 동작해야 하고 웹사이트/서비스까지 붙이는 작업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작업이었다. 개인적으로 계속 배우고 유지하고 싶은 기술 스택이 ThreeJs 랑 WebGL 쪽인데 그 프로젝트 이후로는 손도 못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늘 내만의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모바일 앱을 만들지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다 작은 게임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놓고 정체되어있을 때 정은이의 조언으로 원래 해보기로 했던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꾸준히 만들어 뭐라도 출시해 보는 것을 목표로!

여행

작년 폴란드 여행의 추억이 많아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폴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아우슈비츠와 폴란드 남부지방 자코파네를 들렸는데 체력적으로 지쳐있을때 다녀온 여행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유럽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롤러코스터도 타 보고, 역사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와 자코파네의 멋진 자연을 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뿐… 당일치기 나들이 말고는 아무곳도 다녀오지 않았다. 코로나와 바쁜 일, 바쁜 일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한 편으로는 당일치기 나들이를 많이 다녀온것 같기도 하고… 내년엔 조금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은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다. 코로나 4차 유행이 오기 전에 출장으로 텔아비브에 다녀왔는데 일만 하다 와서 딱히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무질서함이 눈이 거슬려 마음이 불안했고 베를린 공항에 와서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주변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났는데 작년에 이어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보며 반면교사 삼아 우리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모두가 그렇지만 비슷한 사람들 끼리 만나게 되는것 같다. 아이들 교육, 먹거리, 일, 관심사 등 무언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야 서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분들께 감사하고 또 앞으로도 더 가깝게 지내야겠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져야겠지…

내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무엇보다도 호야의 초등학교 졸업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이나 스스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큰 시간이기도 하고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은 시간 앞에…

세상에 발가벗긴 채 던져진것 같았던 7년 전… 취업도 비자도 넘기 힘든 어려운 산 처럼 보였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 생활은 천국이나 다름없어야 하지만 시간 앞에 무뎌지는 다른 모든 감정들 처럼 이 또한 익숙해지고 무뎌져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상처럼 받아들여 진다.

지난 주 다녀온 텔아비브에서 잊고있었던, 낯설지만 익숙한 한국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이 아닌 내가 어렸을 때의 그 느낌들… 무질서한 거리, 노출된 공사장과 도로의 소음들 그리고 건조한 더위는 어떤 여름날 가족들과 산책 후 집에 돌아오며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 때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 쯤 되었을까…?

불현듯 정은이와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답답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내 감정을 떠밀어 보냈던가… 상처주고 상처받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주라는 나의 억지를 정은이와 아이들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바다와 같이 큰 마음을 가진 남편이, 아빠가 되고자 또 다짐한다. 늘 안아주고 웃어주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흐르는 시간 앞에 괜찮아 질것이다. 기쁜일도 슬픈일도 공평하게 중간으로 수렴할 것이다. 내가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틈이 바로 이 시간의 흐름속에 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나의 가족의 테두리를 지켜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철이 없을 수 있어서, 넘어질 수 있어서 그리고 나에게 불평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지?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긍정적,낙천적 그리고 이상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성격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무엇도 흑과 백 둘로 나눌 수 없듯이… 부정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이 나쁜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상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나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필요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면에서 나와 정은이는 서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잘 잡아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No’ 라고 해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인간관계를 끌고가기도 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소비를 집중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하고 큰 결정을 내리는 것에 주저하는 점들도 많다. 몇몇 부분들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쉽게 말해 내 기분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우선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내 기분이 쉽게 움직이는 일이 많다.

처음엔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맞추고 모두 행복하면 좋겠지만 내가 납득이 안된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진실로 녹아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거짓으로 공감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나도 상대방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우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시우는 자기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생각하는게 바로바로 입으로 나와서 시우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상해’ ‘나는 지금 너무 기뻐서 다리가 떨릴 정도야’ ‘형이 나쁘게 말해서 너무 싫어’…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듣고 있자면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내 쪽에서 시우의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서로 솔직하기 때문에 서로 절충점을 찾는 대화의 과정이 힘들지 않았고, 대화의 간극에서 나오는 감정의 차이가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우를 거울삼아 비추어 나 스스로에게서 알아낸 또 한가지는 바로 나의 대화 방식이었다. 시우는 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뿐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주로 상대방에서 요구하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좀 그만해’, ‘왜 그래?’. 이 발견은 사실 스스로 조금 충격을 받을 정도였는데 결국 이 말들에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내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정은이나 아이들을 비난 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과 함께 책임을 미루거나 책망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상대방이 느끼는 그 감정들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난 그냥 ‘힘들다’, ‘기쁘다’ 혹은 ‘슬프다’와 같은 감정을 보여주고 공감받기를 원했을 뿐 무언가를 뜯어 고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하거나 다른 사람한테는 내 감정도 잘 전달하고 대화도 잘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정보가 큰 차이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

굳어버린 습관도 많을 터라 바로 잘 해나갈 자신은 없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라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곳에 먼저 기록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끝이 없다.

지난 1년은 이라고 시작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라고 이야기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코로나를 떠나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과 아이들 그리고 원래 신경쓰고 있던 다른 일들까지..

어느 날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익숙해지고 요령을 찾게 되면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직업으로 보자면 수 많은 일들과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로 이제 두 번째 Softlaunch 를 시작하였다. 아주 마지막 그 순간까지 이런저런 버그와 실수 그리고 시행착오로 제대로된 생활이 불가능했다. 후련하고 뭔가 바뀌는게 있을거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뭔가 답답한 이 기분… 내 부족함이 아닌 다른사람의 부족함을 도와주고 메꿔놓았더니 그 삽자루가 여전히 나에게 쥐어져 있는 기분에 굉장히 우울하다.

가족이나 집안의 일이야 곧 나의 일이고 또 언제든 조절할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일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배에 나온 구멍에 물이 들어오고 있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 팀도 불과 1년 사이 많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다시 뽑았다. 다행이 개발은 좋은 사람을 뽑아 잘 하고 있지만 이제 규모도 커지고 업무 처리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 새로운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늘 싸우고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다. 나 또한 굉장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 기분은 마음 깊은 곳에 눌러담고 이곳 저곳 불이난곳을 찾아 다니며 또 다른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많고 다들 성격도 다르고 원하는 것들도 다르니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런 갈등이 감정의 상처로 바뀌고 당연히 당사자들은 그러한 상처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3자, 주로 내가 그 마무리를 진행해야 한다. 끝이 나지 않는 두더지 게임처럼 한 곳을 누르면 한 곳이 터져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마음에 억지로 참아가는 마음으로 나 또한 다른 하나의 폭탄이 되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보다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하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냥 답답하고 우울하다. 나 또한 두더지 게임 속의 두더지가 되어 튀어 나올때 마다 두들겨 맞더라도 소리한번 지르고 내 감정을 쏟아내 버리고 싶다. 누군가 치워주겠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다들 힘들고 외롭다고 하는것 같다. 나도 힘들고 외롭다. 나도 소리지르고 싶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내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 화를 잘 풀어서 모든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일이 버겁거나 집에서 힘들거나 이런 것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아니 내 마음이 이해 받았다는 기분이 절실하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다. 나는 사라져 버리고 역할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부정적인 기분을 만드는 모든 것들을 지워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끝은 있다. 내가 잡고 놓지 못해 끝이 안나는 것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울고 불고 잡고 놓고… 그래 어쩌면 오늘 이 결심을 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몰아왔던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만할래!

2020년

모두의 기억 속에 여러 의미로 오래 기억될 2020년이 이제 다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인 이슈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역시나 올해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약간은 스스로 성장을 많이 경험한 한 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 과연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중학생이 된 지우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 지우가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룬트슐레 전학 후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고 선생님들도 계속 바뀌는 과정에 속상해하며 3년을 보냈는데.. 김나지움에 들어가서 원래의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지우의 모습을 연속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오직 30명 만이 뽑는 학교에 이런저런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학교.. 결과가 나오기 가지 두 달이 넘도록 속으로 긴장해 있는 지우를 보면서 잘 될 거라 말을 해 줬지만, 우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못 가면 속상해 울음이 날 정도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어쩜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예쁜지.. 우리도 덕분에 지우 친구 부모님들과 친해지고 한집과는 굉장히 친해져 즐겁게 서로 만나며 지내고 있다. 지우는 부쩍 커서 이제 손, 발은 엄마보다 더 크고 키는 3㎝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내년엔 엄마보다 더 크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매일 보고 있지만, 적응이 안 되는데…. 내년에 정은이보다 더 크면 어떻게 될는지… 사춘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힘들게 하지 않고 늘 엄마·아빠 동생들 생각에 무엇이든 즐기고 열심히 하는 지우가 진심으로 고맙고 부럽기만 하다. 내년엔 또 얼마나 즐겁게 보낼지 내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이직, 반 프리랜서로의 삶 시작

AAI 에서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구현해 가는 과정들은 즐거웠으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을(대부분 부정적인) 내 의견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일들이나 이런 식의 구세대적인 경영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 일을 그만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최대 모바일 퍼블리싱 회사에 독립된 랩을 차려 그곳의 개발 책임이지 메인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원하던 리모트 포지션에 내가 독일에 있는 관계로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하게 되어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회사생활의 안정성과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는 업무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골라서 하니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수렴한 일 년이었다. 유니티와 모바일 게임 전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배우게 되었고 똑똑한 개발자 한 명을 채용해 역시 스트레스 제로 레벨로 같이 일하고 있다. 네이버에 있을 때도 느꼈고 AAI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할 때도 느꼈지만 개발은 사람이 많다고 잘 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내년엔 조금 더 확실한 방향이 정해지겠지만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실된 관계에 대한 고민

독일에 오기 전부터 많은 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진실한 관계만 맺으려 노력해왔다. 독일에 와서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만큼 진실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약간 이러한 부분에 극단적으로 예민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끊어버린 관계도 많다. 물론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건 우리가 잘나고 그들이 못난 것이 아닌, 우리가 잘하고 그들이 못한 것도 아니기에 우리 입장에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냥 우리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챙기고 그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기에 그런 관계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끊어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언제든지 있겠지만 우리 주변엔 늘 보고 싶고 만나서 배울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가족을 빼고 손에 꼽을 만큼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이러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진실하지 못한 사람,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고 늘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폴란드 여행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남부 유럽이나 비슷한 곳으로 놀러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제한이 완화된 기간에 폴란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관광보다는 약간 먹거리 투어의 느낌으로 바르샤바로 600km 넘는 길을 다녀왔다.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냥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바로 이웃 나라 치고는 달라 보이는 여러 풍경과 문화 그리고 음식을 경험하는데에도 즐거웠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해 본 첫 여행이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린 그냥 뭘 해도 재밌는 건지도..

정원가꾸기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에도, 일로 바쁜 와중에도 약 4-5개월을 하루 한 시간 이상씩 정원 관리에 쓴 것 같다. 여러 시행착오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잡초제거, 죽은 잔디/이끼 긁어내기, 흙 보충, 잔디 심기, 스프링클러 설치, 파빌리온 설치, 창고 만들기 등으로 쉴 틈 없이 시간을 보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이끼가 많고 잔디가 빽빽이 자라지 않았다. 이건 내년 봄부터 올해 알게 된 노하우로 쉽게 개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엔 어닝 설치와 정원에 전기설치가 아마도 큰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홈오토메이션

날이 추워져서 정원일 하기가 어려워져서 그간 미뤄두었던 홈오토메이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였다. 거실과 화장실을 제외한 전구를 다 교체하고 통일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난방 조절을 위한 조절기 설치 및 조명을 위한 스마트 스위치까지, 새로운 스마트 도어록까지.. 그리고 끝판왕으로는 이 모든 별개의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라즈베리파이에 홈어시스턴트를 설치하여 연동했다는 것.. 예전에 애들이랑 레트로파이하다 처박아 놓은 3 모델에 무려 도커까지 올려 홈어시스턴트와 홈매틱 CCU까지 돌리고 있다. 이 또 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행착오로 정은이한테 대체 돈 들여 왜 자꾸 불편하게 만드냐는 불평을 들었지만, 묵묵히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거실/부엌 조명인데 아직 우리 집 거실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3년이 넘었는데)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hochulsong.com

형과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하나 한 것을 계기로 내 이름으로 된 도메인을 구매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나만의 포트폴리오/프로젝트 사이트를 만들기로 하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곳은 가족이 아닌 나의 관심사만을 한정하여 꾸미고 싶다. 지금은 주로 ThreeJS 나 웹 접근성이 강한 기술 위주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흐지부지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다.

상태회복 선언 2020년.

블로그에 써 놓은 것처럼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변화를 어떻게 정의하겠냐마는 그 글 하나를 계기로 많은 후회를 떨쳐낼 수 있었고 내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지만 생각도 행동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운동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겠지만 홈오피스+코로나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없이 먹기만 하니 몸무게가 78킬로를 찍게 되었다. 같은 키에 68킬로 몸무게로 살았었는데 +10킬로가 되어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기에 미루고 미루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 종목은 조깅으로 아직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열심히 하고 있다. 4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4킬로 정도 빠지고 체력이나 몸도 많이 좋아진 걸 느끼고 있다. 2021년에는 조금 더 정기적으로 하며 다른 근육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은이도 그 전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근육이 많이 붙는 게 보인다.

쓰고보니 나 스스로가 많은 여유를 찾은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일하며 정은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집안일도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 올해도 힘들었다’라는 느낌이 없고 ‘아 올해는 재밌었다’라는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이 놀랍다. 호야가 태어나서 6개월 정도 매일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행복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다… 2020년이 그것을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2021년에는 더욱더 행복하게 보내야지!

이제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지난 12년간 아이들을 키워오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첫째 지우는 기준을 잡을 방향도 없이 어느 것이든 극단적으로 키워왔던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 많은 것을 받아준다던가 하는 긍정적인 방향도 있었지만 아이의 욕구를 틈도 없이 차단해 버린 적도 있었다. 둘째 지호가 태어나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것에 맞춰진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한 아이를 챙긴다는건 다른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하루도 만족하거나 웃을 수 없는 하루였다. 특히 엄마로서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정은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가 비슷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고 또 크고 작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휴게소를 찾으며 고장난 엔진으로 전력질주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있었던 기분이었다. 우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고(지금도) 중간 중간 쉬었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최소 20년이 걸리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우리는 눈 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고, 길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피곤이 쌓이고 여유가 없어지자 아이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화는 분노로,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훈육을 핑계로한 폭력.. 그 수위가 어느정도이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에 대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은 이제 평범한 부모만 되어도, 아니 나쁜 부모만 되지 말자로 바뀌어갔다. 병원에 갔다면 무언지 알 수없을 병명을 십수개 진단받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 무렵.. 우리는 매일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시 다짐했지만 세 아이와 외국생활에 대한 적응, 여러 집안문제 그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게에 짓눌려 끝없이 추락하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던게 둘째를 키우던 첫 해였는데 그로부터 불과 3년뒤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해본적 없는 바닥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스스로 천성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생각했던 나 스스로 우울함을 느끼던 그 때, 이미 우울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정은이.. 행복했던 우리가족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이유도 알 수 없던 그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인정하고 또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셋째 시우가 말이 트여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챙길게 많았지만 시우가 말을 하게 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불과 1-2주 사이의 변화였다. 소리지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아이라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애교를.. 그리고 지우와 호야도 학교, 유치원에 적응했고 우리의 비자도 안정되었으며 불안한 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집의 계약도 마무리 되었다. 머리속을 가득채우던 걱정거리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행동은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웃는 날들은 늘어나고 약간의 여유도 생겼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이 생기면 예민하게 굴었다. 늘 나빠지기만 했던 상황이 이제 바닥을 치고 하루 하루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서로에게 위로하며, 우리는 좋은 부모가 아닌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철없던 10대 시절 입에 욕을 달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 고치겠다고 마음먹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 2년정도 걸렸던 기억이 났다. 나쁜부모가 되지 않는 다는 목표는 우리의 첫 목표에 비하면 비참한 수준이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기에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변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조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부모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뭔가를 고쳐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과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 더 느끼려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급하게 아이들을 밀어대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그리고 짜증내는 것을 구분하고 화와 짜증은 아이들 앞에서 내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고 만약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면 아이들과 이야기 해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풀 수 있도록 한다.

내 생각이지만 정은이는 좌절과 우울함 그리고 힘들었던 정도가 나보다 훨씬 심했고, 나와 성격도 달라서인지 아직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령도 모르고 늘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는 정은이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더 챙기고 여유를 만들면 조금은 더 쉽게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마일스톤을 넘었다는 선언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도 많고 정리할것도 많았지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과 가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사는게 쫓기듯, 밀리듯 살다보니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 마저도 쉽게 이루지 못한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더 여유있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와 달라야 할 것

아이는 혼날 수 없고 혼내서도 안된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엄숙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이 이후에도 감정의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한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서로 웃을 수 있어야 제대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화 중에 주제를 자주 바꾸지 않듯이 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 해 줄 때 다른 주제로 바꾸지 않는다. 특히 싸우거나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옛날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들먹이며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혹은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러 왔을 때, 그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나한테 관심있는 주제로 바꾸는 것도 똑같이 좋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한 노력에 보답받지 않았다고 하여 그 서운함을 다시 아이에게 표현하지 말자.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인데’ 라던가 ‘어떻게 만든 음식인데’ 와 같은 마음들..

아이들이 다가올 때 밀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에 비하면 실수 투성이다. 아는것도 많지 않고 경험도 부족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프다. 실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아는 아이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 용기있는 시도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말은 짧을수록 좋다. 내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내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이유 말고는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길어질 수록 거부감만 생긴다.

짜증과 화를 구분할 것. 부모도 인간이니 화가나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건 옳지 않다. 화가난다면 그 상태를 알리고 시간을 가지면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짜증을 내는건 내 감정을 배설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의 일에 일희일비하는것 처럼 아이들을 외곡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없다. 은연중에 부모의 기대가 아이의 사고를 지배하게 만들면 안된다. 기쁜일이든 나쁜일이든 같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것 말고는 부모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아이의 삶을 내 삶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잘 할 자신도 없다. 매일 계속 되새기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저 중에 하루에 하나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적고 읽고 또 적고 읽는다. 오늘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제 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