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나는 10살이었다.
10살이면 국민학교 3학년.
금성 286..
CGA칼라
2400bps모뎀
램1메가에 40메가 하드까지 달린 초 고급 사양..
컴퓨터 학원에 다닐때는 XT만 썼지만 우리집에 컴퓨터가
생기는 날..난 너무 기뻐서 매일 뛰어서 집에 들어왔었다.
내가 왜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했던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이렇게 오래 만져온 물건이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깜깜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하곤 했다.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수영장에 가는 동안
몰래 컴퓨터를 했어야 했다.
286-386-486 컴퓨터를 모두 보유했었던 우리집.
허큘리스 카드부터 CGA EGA VGA 를 모두 경험해보았다.
램이 4메가에 20여만원 할때 조립식 피시도 사 보았고
386에서 3D스튜디오를 돌리기 위해 우리집 컴터에 코프로세서가
있는지 확인도 해 보았다.
내가 첨으로 컴터를 뜯어본게 386쓰던 시절이니..
터보씨 공부도 했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몇일 하지 않았지만..
데이콤에 들어가서 전국에 접속자가 몇십명 되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들하고 채팅도 해보고 게임도 해봤다.
인디아나 존스 게임을 하면서 turn on / turn off의 의미를
엄마한테 물어보던 일도 생생히 기억한다.
닥터 할로(맞나)로 그림을 그리고 장원으로 친구들한테 생일
초대장을 만들어서 24핀 도트 프린터로 찍어 돌렸다.
친구들끼리 무슨 파를 조직한다고 내가 회원증을 만들어서
코팅하러 갔다가 종이가 얇아서 문방구 아줌마가 다 망쳐놓은
기억도 난다.
아빠가 서울이라도 다녀오면 뭔가 재밌는 게임을 가져왔는데
그게 슈퍼맨하고 인디아나 존스였다.
인디아나 존스는 마이컴이라는 잡지를 보면서 엔딩을 보았다.
3학년때인가.. 아빠 연구실에서 매킨토시를 처음 보았는데
마우스,사운드카드,불꽃놀이 스크린세이버를 보고 완전히 충격에
빠졌었다.
아래아한글, 지금의 v3인 v1,v2등도 그 즈음 보았던것 같다.
독일에 가기 얼마전쯤에 마우스가 나왔던거 같다.
독일에 가서는 집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십여분 걸리는
아빠 연구실까지 가서 오락도 하고 컴퓨터도 하고 그랬다.
독일 도스….독일에서 아빠를 졸라서 산 정품게임은 다름아닌
심시티. 예전부터 해왔던 심시티 이지만 칼라로 꼭 즐기고 싶었다.
아직도 그 박스가 아마 있을거다..
독일애들은 당시 생일 파티를 하면 파티 업체에서 아예 컴퓨터를
오락용으로 빌려주곤 했다. 거기서 래밍즈를 했던 기억이 난다.
6학년 쯤에는 학교에도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 몇몇 있어서
게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플로피 40여장짜리 게임도 나오고
3.5인치 디스크드라이브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데이콤이 천리안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도스 6.0도 나오고 윈도우 3.1도 쓰고..
6학년에서 중1에 걸쳐..
옥소리라는 브랜드로 시디롬이라는게 나오고 애드립 사운드
카드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애드립 사운드 카드로 했던 게임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소리를
들려줬다.
내가 물려받게 된 386컴퓨터에 30여만원이나 하는 옥소리 사운드
카드와 2배속 시디롬을 장착했다.
트레이가 열리고 닫히는 것만 봐도 너무 신기했다.
옥소리에서 지원하는 작곡프로그램으로 노래도 만들어 보고
조이스틱도 사서 게임도 했다.
중학교때는 본격적으로 천리안과 하이텔에 빠져들었었다.
중학교 친구중엔 하이텔에 게임을 올리다가 동서게임채널에
고발당한 녀석도 있었다.
중학교때면 1993년정도인데..그 즈음에 게임과 채팅을 많이했다.
사설 비비에스도 유행하던 시절인데 천리안 장터에서 14만원을
주고 14400BPS모뎀을 사서 집에다가 사설비비에스를 구축했다.
당시엔 9600모뎀이 대세였다.
호롱불..
지금으로 보면 웹서버를 돌린건데..참으로 무모했었다.
학교에 가면 자료가 많은 사설비비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모뎀 초기화 명령어 등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이즈음 아빠가 집에 ISDN전화기를 설치해서 우리집은
모뎀과 유선전화를 동시에 쓸 수 있었다.
발신자 번호 표시까지 되어서 모두들 놀랐었지..
이즈음 나우누리와 유니텔이 생기면서 PC통신 시장이 많이
커지기 시작했다.
EA가 생겨났고 피파랑 NBA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천리안 PPP서비스를 통해 인터넷이란곳에 처음 접속해보기도 했다.
뭔지도 모르면서 오토캐드도 깔아보고 또다른 여러 3D프로그램을
깔아서 “오브젝트” “월드” 이런 개념들을 물어보고 다녔다.
나는 뉴스에서도 극소수를 지칭하는 세대였다.
우리들이 정모(정기모임), 정팅(정기채팅), 번개의 개념을 만들었다.
최초의 온라인 장터 거래도 역사에 남을 수많은 프로그램도
모두 눈앞에서 보아왔다.
여자친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MDIR…
컴퓨터와 채팅하는 프로그램
한글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이름까먹었다..풀 비슷한머였는데..
노턴유틸리티들..
지금은 쓰지도 않는 기술들이지만 진지하게 공부한적도 있다.
이미 그때 하이텔의 고게동과 게오동에 가입해있었고 물론
천리안 게임동호회, 시뮬레이션 게임동호회, 비디오 게임동호회에도
가입해 있었다. 유니텔과 나우누리는 채팅만…
윈도우가 95가 나오기 전까진 정말 MDIR이나 윈도우나 큰 차이가
없었는데 윈3.0 3.1 쓸때는 그냥 아이콘 만드는 재미에..썼던것 같다.
제대로된 윈도우 프로그램이 없었으니 윈도우를 아무리 돌려봐야
도스 프로그램만 실행하고 기본메모리 확보가 중요한 도스프로그램이 윈도우 설치된 상태에서 돌아가니 잘 안쓸 수 밖에..
그당시 윈도우 실행명령어는 win.exe였다.
한때는 ANSI에 빠져서 요상한 코드들과 생쑈를 한적도 있었다.
그때의 안시는 지금의 플래시와 정말 놀라울정도로 개념을 같이 한다.
지금의 네이버 탑이라고 할 수 있는 천리안 하이텔의 탑 화면도
안시로 이쁜 화면을 보여주곤 했으니까..
또래들과 채팅을 많이 하면서 여러 유행어도 생겨났다.
지금의 3체 같은걸까..
채팅방에 들어가면 하이루 하고 방가방가는 자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웃기네..
이야기에서 지원하는 기능으로 말머리 말꼬리를 이쁘게 붙여서
채팅하는 애들도 많았다. 요즘처럼 이상한 채팅이 아니라
그땐 정말 다들 순진하고 또래들이 하는이야기를 밤새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채팅을 했다.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아는 친구들을 만났던 그 때..
디시인사이드나 웃대는 당연 유머게시판이었다.
이미지 첨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글로 웃기는데
스타급 유머 작가도 많이 있었다.
XT를 처음 만지던 7살때부터 중3인 16살때까지..
일어났던 일들이다.
고등학교땐 자는 시간을 빼곤 학교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통신말고는 거의 컴퓨터를 하지 않았다..
글로 적자면 끝도 없는데 오늘 새벽에 노트북 화면을 보다가
몸만 훌쩍 커버린… 그러고 보니 노트북 사는게 내 국민학교
시절의 꿈이었는데.. 꿈을 이뤘네 ㅋㅋ
아직도 바깥에 아빠 차 소리에 귀 기울이는 내가 있는것 같아
써 본다..
아빠가 오기전에 빨리 컴터 끄고 자는척 해야 했던 그 때..
고등학교 시험기간의 주말엔 엄마아빠가 키보드를 숨겨버렸던
그 때..
왜 엄마아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했을까..
악기하나도 제대로 못다루고 자신있는건 달리기밖에 없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건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게
엄마아빠니까..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얼마나 진보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시기에 오늘을 생각하면 정말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일까..
2배속 씨디롬을 달고 밤새 흥분해서 잠못이루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열정이었을까..
난 스스로 지금도 하는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처럼 잠도 못자고 설레이는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
난 그런 기억들이 많아서 지금도 그 이상의 설레임을 주고 있는
일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없으면 만들어서..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