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력서를 넣은 회사는 모두 세 곳. 플래시 게임을 만드는 곳들인데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들로만 골라 넣었다. 함부르크에 한 곳(A ), 그리고 마침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가 베를린에 지사를 만든다고 하여 보니 나와 업무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력서를 넣었다(B). 또 다른곳도 베를린에서 가장 뜨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인데, 여긴 특별히 오픈된 포지션은 없고 이력서를 등록하는 시스템인데 이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C). 지금 생각하면 이 두 곳은 애초에 지원할 필요가 없었던 곳이었다. 1주일 뒤 A에서 전화 인터뷰 제안이 왔고 B에서는 탈락 메일이 왔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회사는 jobvite 를 이용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linkedin 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에 자신의 이력과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면 굉장히 편하게 지원할 수 있다.
달랑 세 곳에, 그것도 두 곳은 뽑을지 안뽑을지도 모르는 곳에 지원해 두고 1주일을 기다렸다니..당시에는 처음이라 그냥 막연했던것 같다. 그래도 운좋게 A 회사와 전화인터뷰를 하였는데 영어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책을 세 권이나 번역했지만 전문서, 그것도 프로그래밍 분야였고 내가 직접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해 본 기억은 2001년 캐나다에서 엄마아빠랑 민박집에 자면서 아침에 집주인 할머니와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끝이였다. 12년 만에 영어회화를..그것도 전화로 하려니.. 인터넷을 뒤져 여러 예상 질문을 보고 스크립트도 작성해보았다. 그리고 전화면접..다행인지 상대방이 독일사람이어서인지 오히려 영어는 알아듣기 편했고 상대방도 내 말을 알아듣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질문에는 대비했던 반면 어떻게 팀으로 일을 할것인가와 같은 질문에는 생각한 바가 없어서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나중에 생각해보니 팀 플레이에 맞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된것 같았다. 30분 정도 통화했지만 결국 전화 인터뷰는 낙방..
이렇게 되기 까지 2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결과와 관계없이 이력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번째로 이력서를 낸 곳은 함부르크의 다른 회사(D), 1차에 지원했던 B 사의 영국 본사(E), 뒤셀도르프의 게임회사(F), 내 포지션과 맞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던 회사(G) 이렇게 이력서를 냈다.
E 회사와 G에서 약 4일만에 연락이 왔다. E는 전화 인터뷰 제의를..G는 바로 탈락. E 회사는 B 의 본사인데 포지션이 나와 맞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지원했는데 전화 인터뷰 제의가 왔다. 근무처는 영국 런던..그러니까 영국사람과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절망감에 빠져있을때 독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함 도전해보자 하고 지원했는데 막상 인터뷰를 보자고 하니 겁이났다. 전화인터뷰는 약 25분정도 였고 영국 발음에 말이 엄청 빠르고 더듬기까지 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핵심 내용은 알아듣고 어찌어찌 대답은 잘 했다. 통과하면 메일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ㅠㅠ 이후 F 회사에서 탈락 소식이 전해지고 D 회사에서는 특이하게 연봉부터 물어보았다. 결국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연봉은 이정도라면서 기술 테스트를 보자고 한다. 이 와중에 스웨덴에 있는 회사에 혹시나 하고 이력서를 보냈다(H) 이건 그냥 재미로…포지션도 완전히 다른데 혹시나 하고 보내보았고 지금까지 아무 답이 없다. D 회사와 기술테스트를 봤는데 구글 독스로 문제를 내고 2시간 안에 전송하라는 조건이었다. 플래시 일반에 대한 문제였는데 실제 업무와 연관은 없어보였지만 겨우겨우 답을 써서 보냈다. 이후 D 회사에서는 면접제의가 왔는데 낮은 연봉을 제안하고 거기에 만족하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조건이었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일단 면접을 보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기분이 많이 우울해졌다. 독일에 블루카드 발급으로 이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인력들이 독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같은 10년 이상 경력자 뿐만 아니라 3-5년 경력자 그리고 대부분 싱글에 인도출신 개발자들이 몰리는 통에 블루카드 발급이 허용되는 수준의 연봉에도 만족할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즉 IT 쪽의 취업 시장은 독일 기업들이 이미 이런 사정을 알고 나와같은 인력은 높은 연봉을 제안하지 않고 낮은 연봉에 오면 좋고 아니면 다른 사람 많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취업도 사업도 답이 아니라면 독일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가족이 여기 살 운명이 아니라는 걸까? 100번 양보해서 영주권 받을 때 까지 저 회사에 다니면서 적자 가계부는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메꾸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계속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갈지, 그 사이 뭔가 아이템을 개발해 사업을 할지..한국에서 사업을 더 준비해서 다시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