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요즘들어 정은이와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 부부가 비슷한 걸로 보아 어쩌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의 근본은 결국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면 다음은 노력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지는 자신이 얼만큼 행복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로서 우리가 깨우쳐줘야 한다. 방향을 잡는 것은 아이의 몫이고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고 쉬워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부모로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넘쳐나는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채우는 것과 이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때로는 부족함이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진짜 환경일 것이다. 부모가 세운 목표에 아이를 맞추려 하면 아이가 생각하는 가치와 부모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다양한’ 경험은 부모의 기준에서 끝나게 될 확율이 높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더 어렵다. 처음에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그 느림 속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이의 노력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더라도 설령 부모가 시켜서 한다고 그게 정말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즐겁게 공부 했던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단 1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했기에 즐거웠고 잘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가진 능력도 비슷하다. 시작은 단 6개월이었다. 병특시작하고 회사일과도 관계없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6개월을 거의 밤샘하다시피 공부한 것으로 지금 15년을 먹고 살고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민학교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강하게 거부했고, 내가 하고싶은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난다. 즉 엄마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노력하고 시키려 했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철저히 무시당했고, 서로의 시간만 낭비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그 무엇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알려주고 싶다. 무엇이 있는지를.. 한국에서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늘 그랬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뛰는것은 너무 힘들었고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방향은, 때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방향을 정하고 거리를 가늠해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면 언젠가는 ‘스스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와주면 나중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더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부모로 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독립해서도 스스로 잘 판단하도록 키우고 싶다. 사립학교, 과외, 명문대..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것 같다. 스스로 사고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 자신도 때때로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은 내가 낳은 존재이면서 남인 존재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생각이겠지만 부모의 기준으로는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너의 인생을 살게 해 주는 것, 이게 부모로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고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제 자식을 남으로, 나와는 가장 가까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자. 내가 너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고 조언해 주고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무엇으로 만들 수는 없다. 네가 정한 의지에 나는 따라가고 도와줄 수 있지만 너를 내 의지에 맞춰 끌고갈 수는 없다. 길고 넓게 생각해야 아이의 시야도 따라온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좋다는 것만 다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를린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내가 얼마나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지와 의무교육이 인간의 일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5년 뒤를 상상하기 어렵다. 다양한 언어 구사능력과 사회적인 교류 말고 과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지..내가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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