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푹푹 찌는 여름, 거실로 나와 눕는다.

우웅 하는 냉장고 소리와 기계식 타이머로 맞춰놓은 선풍기의 타이머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삐걱거리며 회전하는 선풍기 머리와 취침 기능으로 간간히 돌아가는 모터소리와 그 바람..

그 해 산 비디오는 몇 번의 정전으로 12:00 이라는 숫자만 끝도 없이 깜빡이던, 그 푹푹 찌던 여름..
어느 집에나 깔려있음직한 대나무 돛자리 위에 얇은 요 하나 깔고 누워서 이런 저런 소리, 이런 저런 불빛에 또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면
어느 사이 잠들어 아침이 되어있곤 했다.

때로는 꺼낸적 없는 얇은 이불에 덮여, 때로는 내 방으로 옮겨져 일어난 아침은, 언제나 네모낳고 하얀 천장에 저녁과 다른 선선함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다시 거실에 누워 머리를 베란다에 두고 하늘을 보면, 끝도 없이 흐르는 구름 밑에 갈치 파는 리어카 아줌마의 녹음 소리가 동네 가득히 퍼진다.

가족들은 바빴지만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느렸고, 걱정은 많았지만 그 보다 더 많이 웃었다.

시간은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르고 그 때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던 시간처럼 이제는 흐르는 시간에 떠밀려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른다.

30년 전의 나는 내 아이만큼 작았지만, 나는 오늘의 나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똑같은 냉장고 소리가 나를 30년 전으로 데리고 간다.

나와 마주한 나는 무엇이 변했는지 정말 알수가 없다.
그 때의 아빠도, 엄마도, 나도 그냥 하루 더 자고 일어난 것처럼 그대로, 조금 크고 조금은 더 나이가 들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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