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긍정적,낙천적 그리고 이상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성격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무엇도 흑과 백 둘로 나눌 수 없듯이… 부정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이 나쁜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상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나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필요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면에서 나와 정은이는 서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잘 잡아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No’ 라고 해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인간관계를 끌고가기도 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소비를 집중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하고 큰 결정을 내리는 것에 주저하는 점들도 많다. 몇몇 부분들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쉽게 말해 내 기분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우선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내 기분이 쉽게 움직이는 일이 많다.
처음엔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맞추고 모두 행복하면 좋겠지만 내가 납득이 안된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진실로 녹아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거짓으로 공감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나도 상대방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우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시우는 자기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생각하는게 바로바로 입으로 나와서 시우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상해’ ‘나는 지금 너무 기뻐서 다리가 떨릴 정도야’ ‘형이 나쁘게 말해서 너무 싫어’…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듣고 있자면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내 쪽에서 시우의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서로 솔직하기 때문에 서로 절충점을 찾는 대화의 과정이 힘들지 않았고, 대화의 간극에서 나오는 감정의 차이가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우를 거울삼아 비추어 나 스스로에게서 알아낸 또 한가지는 바로 나의 대화 방식이었다. 시우는 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뿐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주로 상대방에서 요구하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좀 그만해’, ‘왜 그래?’. 이 발견은 사실 스스로 조금 충격을 받을 정도였는데 결국 이 말들에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내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정은이나 아이들을 비난 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과 함께 책임을 미루거나 책망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상대방이 느끼는 그 감정들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난 그냥 ‘힘들다’, ‘기쁘다’ 혹은 ‘슬프다’와 같은 감정을 보여주고 공감받기를 원했을 뿐 무언가를 뜯어 고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하거나 다른 사람한테는 내 감정도 잘 전달하고 대화도 잘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정보가 큰 차이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
굳어버린 습관도 많을 터라 바로 잘 해나갈 자신은 없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라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곳에 먼저 기록하고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