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오늘 사직서를 냈다. 2002년 병특으로 시작하고 20년 동안 몇 군대의 회사를 다니고 몇 번의 사표를 냈을까?

2002년 6월 가민정보 병특 시작
2004년 11월 사표내고 NHN(중간 NHN Japan 파견)
2008년 2월 사표내고 IAMG 창업
2014년 6월 독일에서 Yager
2015년 9월 사표내고 Aeria games
2017년 1월 사표내고 스마일게이트 유럽
2018년 5월 사표내고 AAI
2020년 2월 사표내고 CrazyLabs
2022년 9월 말로 퇴사 예정…

7개 회사 1번의 창업.

로이랑 크레이지랩스에서 만들던 게임을 마무리하고나서 지친건지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었다. 뒤돌아 보면 영주권을 따기 위해 취직을 했다가 스마일게이트 때 영주권 따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사업을 해 볼까 했는데, 그냥 한 번 다녀보자고 생각했던 AAI에서 2년정도를 보내고 나니 많이 지쳐있었던것 같다.

내 사업 반, 취직 반 신분으로 시작한 크레이지랩스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게임 자체의 성과는 크게 좋지 않았다. 어디서든 안배웠을까, 그래도 여기서는 모든 프로젝트 관련 셋업을 바닥부터 다 진행해 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개발은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핵심이지만 개발을 둘러싼 팀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토양이 되는 만큼, 스스로 첫 시도에 드림팀에 가까운 팀을 꾸렸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스럽다.

2020년 부터 끊임없이 두들겨왔던 나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 속도를 붙일 때가 되었다. 아이디어 중 현실적인 것들을 추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비지니스가 나에게 동작할 수 있는지 검증해 보는것이 첫 번째 단기 목표이다. 그리고 이런 단기 프로젝트를 몇 가지 테스트 해서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저축해 놓은 돈이 있더라도 고정 급여가 없다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것 같아 몇가지 옵션을 준비했다. 먼저 9월 말로 퇴사한다고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진행해 줬으면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기술적으로도 배울것이 있고 기간도 적당해 15일 까지 검토 후 내가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퇴사를 취소하는 옵션이다. 프로젝트 검토 뿐 아니라 지금 계약사항의 변경 또한 포함시켜 합의하기로 했다. 급여로는 많은 액수를 주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미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은것이 아니라면 크레이지랩스에 머무는것이 사실 가장 편하고 좋은 선택이다.

다음 옵션은 로이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둘이 같이 회사를 창업해 투자를 받는 방향으로 생각중에 있다. 투자 의향이 있는 몇 회사와 개인이 있는데, 이 방법으로 진행할 경우 창업 초기에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급여는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온전히 나의 사업을 하는것(공동창업이지만)과 레퍼런스 좋은 초기 투자자들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의 리스크도 있는 편..

이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는 내가 홀로서기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단기 프로젝트들을 테스트하고 장기 비지니스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최대 18개월로 정했다. 이 정도면 3-5가지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1-2개의 게임이나 서비스를 실행 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옵션을 선택할 지는 15일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고, 의외로 이 두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것 같다. 이제는 딱히 어떤 회사나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런 생각 만으로도 답답해진다. 사표를 내고 나니 마음은 조금 더 홀가분해졌지만 급여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거워 지기도 한다.

더 작은 급여일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독일 와서 처음 받은 돈 보다 거의 3배가까이 받는 지금은 그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겠지만 엄청나게 아쉽지도 않다. 중요한것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들이 결국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사표를 내고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20여년간 일해 오며 늘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빨리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따고 나서 시작했다면… 아예 독일 오면서 부터 IAMG를 계속 했다면…

하지만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그 만큼 얻은것도 많았으니 후회는 하지 않고 약간의 아쉬움만 느껴보려 한다. 아쉬운건 아쉬운 것이고 홀가분한건 홀가분한 거니까. 이제 15일 까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아주 짧겠지만 1-2주 정도 나만을 위한 휴식 시간도 가져보고 싶다. 파일럿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최소 첫 번째 결과가 9월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단, 20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잘했다, 그리고 고생했다! 앞으로도 잘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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