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1

불안해? 불안이 뭐야? 나는 내가 불안해 하는게 뭔지, 내가 불안해 하는건지 딱히 모르겠는데? 최근 ‘나’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중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나는 굉장히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한 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방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에 민감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 스스로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모를까 대체 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런 에너지를 소비하는 걸까?

이에 대한 이유로 몇가지를 생각해 봤는데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했을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둘째로 자라며 형과 부모님의 갈등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형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나보다 먼저 사춘기가 오고 조금은 예민한 성격이었던 관계로 그런 갈등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갈등이 엄마아빠와 형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그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에게 온 피해라곤 ‘형이랑 같이 못놀게 되는것’, ‘가족들이 계획한 것들이 취소되는것’ 등 요약하자면 ‘즐거울 것이라 기대 되어있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되는것’ 으로 말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일이지만 그 땐 그런 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었을테고 그래서 시작한 갈등에 대한 개입이 어떤 습관적인 행동을 만들고 급기야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것에 불안해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것 같다.

어렸을때 학교에 다니며 ‘잘못된 책임감’을 배우고 그 환경에 오래 지낸것도 한가지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교육이나 생활을 극도로 타인을 의식하게 만드는데 나는 학창시절 몇 번 반장이나 회장같은걸 하며 모두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왜냐면 선생님들이 그게 반장/회장들이 해야 할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조용히 해야 한다던가, 내가 ‘옳은’ 말을 하면 다 따라야 한다던가의 생각이 강했고 또 한국에선 그게 대부분 맞는 말이기도 했기에 이런 생각이 더 굳어져간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는 밑도 끝도 없이 낙천적이었던 내 성격.. 지금은 아이들도 있고 나이도 먹어서 성격이 많이 바뀐것 같지만 나의 마음 그 시작에는 말도 안될만큼 낙천적인 내가 있다. 걱정도 계획도 생각도 없는 나. 나는 그냥 하늘의 구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그 어떤 걱정도 바꿔 생각해서 걱정이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이런 성격은 무언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보다는 오해하게되는 경우가 많았고 늘 이상을 꿈꾸던 아빠의 영향도 크게 받아서 ‘도전’ ‘꿈’ ‘희망’ 등의 생각으로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이와 반대되는 개념들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2014년 베를린에 온 뒤로, 나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고 알릴 수도 없는 외계와 같은 사회에 뚝 떨어져서,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들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내 인생에 무엇보다 잘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벗어나는것과 마이너들만이 모여있는 베를린으로 오게 된 이 두 가지 효과로 ‘나’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오늘 이 생각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내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의 동의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옳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것에는 그 뿌리가 깊은 시작이 있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 있는건 거의 없고 바꾸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더이상 내 생각을 돌려 말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늘지 않는 독일어 처럼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게 맨 처음 언급했던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해결, 즉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 생각도 많이 바뀌어 가족 한정이 되었지만 가족들에 대해 이 생각은 어쩌면 더 강해져버린것 같다. 근데 이건 정말 어려운게 내가 남편이고 아빠인데 가족들의 기분이 나쁘던 말던 내버려두는게 맞는걸까? 그렇다면 가족은 뭘까?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기쁘게 해주는게 가족이 아닐까?

아마도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 멈추고, 이것을 결론으로 지난 몇년간 내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고 했던게 아닐까 싶다.

나의 모든 생각과 변화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튀어나온다. 누구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지 않을 상처를 주게 된다. 내 가족을 남처럼 대하면 주지 않을 상처… 하지만 가족이니까…

이런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까? 내 아이들을 남의 아이 보듯 키우면 아이들이 더 행복한 걸까? 내 아내, 정은이를 남 보듯 대하면 정은이는 더 행복할까?

내가 아는 사실은 ‘그렇다’ 이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똑같은 조건이다. 정은이나 아이들이 나를 남 대하듯 한다면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정은이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그게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지…

너무 사랑하고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주게 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 하고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거든…

하지만 나의 ‘불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의외로, 어쩌면 이 ‘불안’ 이라는 키워드가 내가 멈추고 해답을 찾지 못했던 ‘가족’의 기대와 소통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불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고 이 불안을 가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존하고 또 그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죽이고 잡아먹을 수 있다는 불안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내가 즐겁게 있고 싶은 이유, 가족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이유, 걱정한다며 힘들게 하는 이유들이 다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불안에서 벗어나거나 불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집중하면 필요하지 않은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무엇을 불안하다고 느끼는지, 왜 그러는지, 어떻게 그 불안들을 해결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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