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꼬마의 이별

경양국민학교 4학년 6반 반장!
1990년 내 나이 11살.

‘독일에 가서 좀 있다가 올까..’

가끔 밥먹을 때 아빠가 하던 이야기는 이로서 2년째다.
예전에도 친구들한테 잔뜩 자랑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어서
별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언젠간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뿐.

1990년 10월 3일 동서로 분리되어있던 독일이 극적으로 통일되었다.
그와 함께 아빠의 결심도 굳어진것 같았다.

지역개발을 전공하는 아빠로서는 분단국가였던 우리나라와 독일.
특히 통일 이후의 독일을 연구하는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 길로 4학년 겨울 방학을 1주일도 남겨놓지 않고
독일로 갔다.

서울로 가는 전날. 학교를 나오는 나를 친구들이 교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물론 남자들만!

당시의 국민학생들은 남자 여자 편가르고 싸운는 일이 많아서
오직 남자애들만 배웅을 나왔던것.

그렇게 교문에서 빠이빠이를 하고 흥분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왔다.

2주정도 전부터는 엄마한테 독일어를 배웠었다.
유일하게 할수있는건 알파벳을 쓰는것과 읽는 법 정도였다.
다행히 독일어는 읽기가 아주 쉬워서 뭔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였다.

형과 나의 짐속엔 당시 유행했던 용소야 만화책도 들어있었다.
권법소년 용소야에서 좀 발전한 축구 소년 용소야..

김포로 가는 광주공항에서 대낮에 형이랑 아주 큰 유성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고 3개월정도 있다 비행기는 타봤다지만 전혀 기억에 없고,
떨리는 맘으로 김포행 비행기를 탔으나 비행시간이 짧고 너무
흥분해서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 김포에 도착했다.

그렇게 서울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엄마아빠가 뭔가 하러갔었나..
나와 형은 호텔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용소야 만화책을 봤다.

다음날 독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선과 비교도 안되는 점보기.

창밖으로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풍경에 넋을 잃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독일 프랑크 프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부턴 아주 정신이 없었다.

아빠 후배라는 분과 엄마 친구 남편이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우리가 갈곳은 프랑크 프르트에서 2시간(기억잘 안남)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도르트문트라는 곳이었다.

축구 팬이라면 이 마크를 기억할것이다.
도르트 문트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암튼 당시 듣기로 “골프광” 이라는 사람과 아빠 후배라는 사람의
BMW를 타고 도르트문트의 아빠 후배 집으로 향하였다.

아우토반의 엄청난 속도와 우리가 타고있는 BMW의 엄청난 속도에
놀라면서..

2 Replies to “11살 꼬마의 이별”

  1. 좋았네. 어릴적 독일의 기억이라..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살아본 만큼 더 좋은 세상의 눈을 가지게 되겠지. 부럽네 그려.

    PS: 오늘 철권으로 너무 많이 이겨버려서 미안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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