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구직 후기#2 – 본격적인 구직

처음에 이력서를 넣은 회사는 모두 세 곳. 플래시 게임을 만드는 곳들인데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들로만 골라 넣었다. 함부르크에 한 곳(A ), 그리고 마침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가 베를린에 지사를 만든다고 하여 보니 나와 업무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력서를 넣었다(B). 또 다른곳도 베를린에서 가장 뜨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인데, 여긴 특별히 오픈된 포지션은 없고 이력서를 등록하는 시스템인데 이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C). 지금 생각하면 이 두 곳은 애초에 지원할 필요가 없었던 곳이었다. 1주일 뒤 A에서 전화 인터뷰 제안이 왔고 B에서는 탈락 메일이 왔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회사는 jobvite 를 이용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linkedin 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에 자신의 이력과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면 굉장히 편하게 지원할 수 있다.

달랑 세 곳에, 그것도 두 곳은 뽑을지 안뽑을지도 모르는 곳에 지원해 두고 1주일을 기다렸다니..당시에는 처음이라 그냥 막연했던것 같다. 그래도 운좋게 A 회사와 전화인터뷰를 하였는데 영어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책을 세 권이나 번역했지만 전문서, 그것도 프로그래밍 분야였고 내가 직접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해 본 기억은 2001년 캐나다에서 엄마아빠랑 민박집에 자면서 아침에 집주인 할머니와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끝이였다. 12년 만에 영어회화를..그것도 전화로 하려니.. 인터넷을 뒤져 여러 예상 질문을 보고 스크립트도 작성해보았다. 그리고 전화면접..다행인지 상대방이 독일사람이어서인지 오히려 영어는 알아듣기 편했고 상대방도 내 말을 알아듣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질문에는 대비했던 반면 어떻게 팀으로 일을 할것인가와 같은 질문에는 생각한 바가 없어서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나중에 생각해보니 팀 플레이에 맞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된것 같았다. 30분 정도 통화했지만 결국 전화 인터뷰는 낙방..

이렇게 되기 까지 2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결과와 관계없이 이력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번째로 이력서를 낸 곳은 함부르크의 다른 회사(D), 1차에 지원했던 B 사의 영국 본사(E),  뒤셀도르프의 게임회사(F), 내 포지션과 맞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던 회사(G) 이렇게 이력서를 냈다.

E 회사와 G에서 약 4일만에 연락이 왔다. E는 전화 인터뷰 제의를..G는 바로 탈락. E 회사는 B 의 본사인데 포지션이 나와 맞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지원했는데 전화 인터뷰 제의가 왔다. 근무처는 영국 런던..그러니까 영국사람과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절망감에 빠져있을때 독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함 도전해보자 하고 지원했는데 막상 인터뷰를 보자고 하니 겁이났다. 전화인터뷰는 약 25분정도 였고 영국 발음에 말이 엄청 빠르고 더듬기까지 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핵심 내용은 알아듣고 어찌어찌 대답은 잘 했다. 통과하면 메일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ㅠㅠ 이후 F 회사에서 탈락 소식이 전해지고 D 회사에서는 특이하게 연봉부터 물어보았다. 결국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연봉은 이정도라면서 기술 테스트를 보자고 한다. 이 와중에 스웨덴에 있는 회사에 혹시나 하고 이력서를 보냈다(H) 이건 그냥 재미로…포지션도 완전히 다른데 혹시나 하고 보내보았고 지금까지 아무 답이 없다. D 회사와 기술테스트를 봤는데 구글 독스로 문제를 내고 2시간 안에 전송하라는 조건이었다. 플래시 일반에 대한 문제였는데 실제 업무와 연관은 없어보였지만 겨우겨우 답을 써서 보냈다. 이후 D 회사에서는 면접제의가 왔는데 낮은 연봉을 제안하고 거기에 만족하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조건이었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일단 면접을 보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기분이 많이 우울해졌다. 독일에 블루카드 발급으로 이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인력들이 독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같은 10년 이상 경력자 뿐만 아니라 3-5년 경력자 그리고 대부분 싱글에 인도출신 개발자들이 몰리는 통에 블루카드 발급이 허용되는 수준의 연봉에도 만족할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즉 IT 쪽의 취업 시장은 독일 기업들이 이미 이런 사정을 알고 나와같은 인력은 높은 연봉을 제안하지 않고 낮은 연봉에 오면 좋고 아니면 다른 사람 많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취업도 사업도 답이 아니라면 독일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가족이 여기 살 운명이 아니라는 걸까? 100번 양보해서 영주권 받을 때 까지 저 회사에 다니면서 적자 가계부는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메꾸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계속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갈지, 그 사이 뭔가 아이템을 개발해 사업을 할지..한국에서 사업을 더 준비해서 다시 나올지…

독일 구직 후기#1 – 독일에 오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고 이런 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행복이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난 뒤의 해방감! 물론 그 뒤에는 또 다른 문들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문 밖의 사람들은 이 과정이 궁금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나 또한 그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던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이 헛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후기를 남기려고 한다.

이번 구직 활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직장이라기 보다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인생을 살며 늘 확인하고 있어야 하는데 흘러가며 살다 보면 어지간해서는 알려고 하기 쉽지가 않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나와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나중에는 이러한 고민만으로도 독일에 온 가치가 충분히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시작은 굉장히 무모했다. 독일로 가고싶다는 아주 막연한 생각과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독일에 가겠다고 말했던 것이 전부였던 우리 가족. 물론 정은(아내)이와 언젠가는 독일에 가자고 합의만 해 놓은 상황이었다. 둘째가 수유를 끊을 무렵..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2012년 4월경.. 이제 정말 준비를 해 볼까? 라고 생각하고 바로 1주일정도 뒤에 셋째의 임신소식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새로운 전셋집을 알아보고 용인 양지로 내려가 12월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 셋째임신을 했으니 내가 집에서 회사일을 하면서 집안일을 도와도 일은 끝이 없었다. 16키로 세탁기를 1주일에 8-10회를 돌려야 했고, 주택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마당일 까지 추가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전원주택 생활을 했으니 그 시간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너무나 행복한 생활과 좋은 이웃에 반해 그나마 약해있던 독일행 결심이 점점 더 흔들리던 시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던 집에 하자가 너무 심해 약속된 2년 전세기간을 다 채우지 못할 상황이 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계기로 다른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일단 어디든 해외로 나가서 경험을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2013년 10월 경.. 집주인과 이야기를 끝내고 11월 한 달동안 모든 살림살이를 대처분하였다. 나눠주고 버리고 팔고…4월달에 샀던 그랜드 피아노는 샀던 사람한테 헐값에 다시 넘겼다. 5월달에 산 자동차도 팔았고 우리가 아끼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광주의 본가와 서울의 처가에서 얼마씩 지낸 다음 2014년 1월 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출국했다.

이 때에도 독일을 언제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겨울은 추우니까 동남아 순회 여행을 하고 괜찮은 곳이 있으면 더 머무르면서 독일에 갈 준비로 영어도 공부하고..뭐 이런 생각이었다. 말레이시아에 한국사람을 통해 한달간 숙소를 구해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보냈다. 그리고 2월달 목적지로 발리에 가는것으로 정하고 세 곳의 숙소를 예약했다. 그 다음 목적지는 발리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하고.. 발리에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숙소에서, 그러니까 10여일을 남기고 독일로 가보자는 결심을 했다. 이 시기만 해도 독일에 지사를 만드는 식으로 사업비자를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행인데 우리는 독일의 어느 지역에 머물러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에센이나 뮌스터로 가야하나..NRW 창업지원금을 받으려면 이런곳으로 가야하는데 어쩌지..고민을 하다 베를린에 마음이 맞으면 같이 사업을 해볼 수 있을것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일단 만나보기로 하고 베를린행 기차표까지 예약을 했다. 마지막 날까지 베를린의 숙소를 알아보다가 발리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겨우 베를린 숙소를 예약하고 독일로 오게 되었다.

3월의 베를린은 추웠다. 2달을 30도가 넘는 동남아에서 매일 수영하고 지내다가 늦가을 옷 한벌씩만 가지고 독일에 도착한 우리 가족..호야(둘째)는 심지어 신발이 크록스..

25년만에 온 독일은 달라진것 없이 그대로 였다. 베를린에 숙소는 7일간 머물 곳(노이퀠른)과 30일간 머물 곳(트렙타워)을 예약했는데 40여시간에 걸친 대 이동 후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 친구분께서 어떻게 알고 나오셔서 첫 번째 숙소를 취소하고 아주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주머니 집에서 추위를 이길 옷을 조금 사고 여러 이야기를 하다 동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사설립과 취업을 고민하게 되었다. 7일 후 트렙타워의 숙소로 이동하여 이력서를 적으면서 포트폴리오로 쓸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지사설립과 취직하는 것에 대해 갈팡질팡하였는데 취직을 하면 인생이 거꾸로 가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에서 사업을 한 시간이 6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다시 취직을 한다는 것이 뭔가 인생을 거꾸로 가는건 아닐까 하는 고민..하지만 결국 취직을 하는것이 독일 정착에 가장 빠른 길이라 판단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마무리를 열심히 했다. 3월 말, 마무리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처음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긴장이 풀렸지 평생 가장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려 거의 1주일동안 아파서 누워있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시작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의 게임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근무 시작일이 6월 1일인데 일요일이라 2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회사 직원은 120여명인 게임 개발 스튜디오이고 지금까지 2개의 타이틀을 개발하였다. 두 번째 타이틀이 어느 정도 알려진 Spec ops : The line 이라는 게임인데 내가 좋아하는 FPS 장르여서 나 또한 재미있게 즐겼던 경험이 있다(그 때는 이 회사가 그 회사인줄 몰랐지만..). 면접 과정에서 차기작으로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살짝 볼 수 있었는데 재밌어 보였다.

내가 하게 될 업무는 UI 개발 부분이다. 직접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상의 UI 를 개발하는 것으로 UX 전반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제시해야 하고 모션에 대한 감각도 중요하다. 게임 회사여서 그렇지 업무만 놓고 보자면 슈투트가르트의 회사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도도 중요하지만 최적화와 안정화가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될 것이다.

플래시가 죽어가는 마당에 플래시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케일폼을 이용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또한 게임 자체가 언리얼엔진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언리얼엔진에 대한 스터디를 필요로 한다. 이것 또한 언젠가 공부해 보고 싶었던 부분이고 AAA타이틀을 만드는 게임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독일에서 일하고 싶었던 목표인 국제적인 업무 환경은 말할것도 없다.

독어와 영어로 함께 표기된 고용계약서와 각종 계약서를 읽고 사인하고, 독일 취업으로 진로를 바꾸게 만든 바로 그 공보험에 가입 신청도 하고, 회사에서는 블루카드 신청을 위해 베를린 외국인청에 예약을 잡아놓은 상태이다. 또한 내가 최대 2달동안 머물 수 있는 임시 숙소를 찾아주고 있다. 이 임시 숙소에 머물면서 베를린에 살 집을 구해야 하고, 그 곳으로 다시 전입신고를 해야 애들 유치원과 학교를 보낼 수 있다. 집을 찾는 동안 내가 출근을 하기 때문에 정은이가 애들 셋을 데리고 지낼 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2주 이상은 무리일것 같다.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든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2년여만에 정은이와 맥주를 한 잔 같이 마셨다. 시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처음이다. 이제야 모유수유를 끊었기 때문인데 단 둘이 조용히 마시고 싶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애들 셋이 껴 있었다..ㅠㅠ

독일로 이민..매번 말로만 독일 갈꺼야~ 그러면서 이런일 저런일 때문에 계속 미루고 준비도 하지 않고 진짜 가긴 가나..서로 그렇게 생각 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말이 행동의 씨앗이 되었고 두려움도 컸지만 그냥 실천도 해 보았더니 결국 이렇게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은 적어도 우리 스스로 노력여하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자신이 있다. 취업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은 지금 당장의 내 노력과 비례해서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이제 남은 큰 일을 생각해 보면, 집 구하기, 살림 장만, 학교,유치원 보내기, 온 가족 독어 공부가 될 것 같다. 집도 잘 구할수 있을거야!

2번째 잡 오퍼

가장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베를린회사에 합격한 상태로 슈투트가르트 회사에 면접을 보았는데 베를린 회사에 가기로 하고서 슈투트가르트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베를린 회사는 독일 회사답지 않게 일을 굉장히 빨리 처리하고, 슈트트가르트 회사의 면접이 조금 늦게 있어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둘 다 조건은 비슷했지만 슈투트가르트의 회사가 조금 더 많이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분야이고, 새롭지만 예전부터 관심있었던 분야였기 때문에 더 아쉬움이 컸고 또 그 회사에 많이 미안했다.

베를린 회사는 1,2차 면접 이후 바로 다음날 오전에 합격여부를 알려주었는데 느낌상 1차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슈투트가르트는 전화면접후 면접이었는데 내가 전화면접에서 많이 버벅거렸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면접 기회를 주었고, 면접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버벅거렸지만..

베를린의 제안 유효기간이 다 되어서 베를린을 선택했고 바로 다음날 슈투트가르트에서 연락이 왔다. 딱 1주일..일반적인 독일 회사가 고려하는 시간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일은 개발 능력도 중요하고 디자인 센스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전 영어 경력이 한두달 밖에 안되는 내가 이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며 내 의견을 주장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파고들어 보완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분명히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나서 일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잡오퍼를 받다

알만한 게임 타이틀을 만든 게임 회사에서 잡오퍼를 받았다.

이곳은 전화면접 없이 바로 1차면접 후 2차면접, 그리고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프로세스가 굉장히 빨랐고 내가 맘에 들었는지 면접 다음날 모든 결과를 알려주었다.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고 지금은 차기 타이틀 작업으로 바빠보였다.

2차면접은 6시간에 걸쳐 합격한다면 같이 일하게 될 다른 사람들, 인사팀과 면접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아직 한국인 직원은 없지만 회사에 약 23개국 나라의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진행중이던 다른 인터뷰들은 모두 거절의사를 밝히고 작지만 가고싶었던 회사만 최종 면접을 보고 왔다. 결과는 1-2주 후에 통보해준다고 하는데 마음은 베를린의 회사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베를린의 회사에서의 업무는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비디오 게임 분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다른 회사는 디자인 베이스의 개발업무인데 이것 또한 평소 내가 꿈꾸던 일 중에 하나이다.

아직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도 아니면서 고민하는게 우습지만 지역도 다르고 회사 분위기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여간 고민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이제 독일에서 사는것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다음 주 최종 결정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일로가자!/준비 카테고리를 마무리해야겠다. 다음 카테고리는 독일로가자!/정착 으로 지어야지~!

독일에 와서 가족과 함께 구직비자 받기

독일은 EU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 즉 대한민국 국민이 독일에 와서 구직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6개월 동안의 구직비자를 발급한다.

독일에 무비자로 입국하면 독일을 포함한 EU 국가에 90일간 머무를 수 있는 쉥겐비자를 자동으로 취득하게 되는데, 독일 구인 프로세스는 생각보다 느리고 길어서 한국에서 잡오퍼를 받고 들어오는것이 아니라면 이 기간은 상당히 짧다고 볼 수 있다.

이력서 확인에 1-2주, 전화 면접에 1-2주, 1차에서 수 차례까지 보는 온사이트 면접 일정을 생각하면 6개월도 짧을 수 있다. 더구나 입국 초기에는 주거지 확보, 전입신고, 은행계좌 개설 등 여러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6개월의 시간을 주는 구직비자를 받는게 좋은데, 구직비자의 경우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목적의 비자로 변경 발급이 불가능하다. 즉, 6개월간 구직에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출국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런 내용은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막상 구직비자를 신청하려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구직비자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무했다..더구나 독일에 와서, 가족과 함께..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여러 방향으로 검색을 해 보니 주로 인도애들이 구직비자를 많이 신청한다는 정보만 얻을 수 있었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찾기 어려웠다. 구직비자에 필요한 서류는 대학 졸업 증명, 여권, 사진, 6개월간의 보험증명, 6개월간의 재정증명, 비자신청서, 비자신청비이다.

나는 베를린에서 비자를 받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요구 서류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동반 비자가 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검색을 통해 필요한 서류를 챙겼다. 가족임을 증명하는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 가족의 건강보험 증명,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재정증명, 여권, 사진, 비자 신청서..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증명서는 한국에서 발급받아서 아포스티유 스티커를 붙여와야 한다. 나는 물론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에서 한국의 대행업체에 신청해서 우편으로 받았다. 우편요금과 수수료까지 8만원정도 나온것 같고 3-4일 만에 안전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을 통하면 우편요금 2-3만원정도면 받을 수 있을듯.. 그리고 아포스티유를 붙인 원본 서류는 독일에서 알아볼 수 없으니 이 서류들을 번역하여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으면 된다. 번역은 영사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쉽게 스스로 할 수 있다.

애가 셋이라 이런저런 서류를 뽑아보니 책 한권정도의 분량이 되었다.

일단 서류는 준비했는데 베를린에는 외국인청이 한 곳밖에 없고, 예약은 가능하지만 이미 7월까지 예약이 다 되어버린 상태라 나는 아침일찍가서 줄을 서야할 판이었다.

베를린 외국인청에서 예약자가 아닌 일반 민원을 처리하는 날짜는 월화목요일 뿐이고 월화는 아침7시부터 목요일은 10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늦게가면 번호표조차도 받을 수 없어 헛걸음을 해야 한다니.. 그리고 동반비자를 받는 경우 6세이하 아이들은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애를 맡길곳이 없으니 조금 난감했다.

결국 내가 먼저 새벽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 시간에 맞춰 정은이가 애들을 데리고 오는것으로 이야기 하고, 나는 밤을 새우고 새벽 4시에 출발해 5시부터 줄을섰다. 와서보니 내 앞으로 20명정도밖에 없어서 급하게 정은이보고 가능한 문여는 시간인 7시까지 도착하도록 서두르라고 이야기 했다. 6시 반쯤 되니 바깥 게이트를 열어주고 안쪽으로 이동했는데 내 뒤로도 사람이 많았다.

베를린 외국인청은 A,B,C 세 건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처리하는 업무가 다르다. 바깥의 줄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모두 A건물 앞으로 섰다. 저기서 번호표를 받는건가..생각하는데 직원이 학생들은 여기 서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학생이 아니라고 했더니 C건물로 가라고 한다. C건물로 가보니 문은 잠겨있고 2명정도가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그렇다..새벽 부터 그 난리를 피우지 않았어도 ..줄을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베를린 외국인청의 업무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어학원생이나 유학생..상대적으로 나와같이 일반 비자업무를 보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ASIA를 처리하는 C건물에서 7시가 되어 입장했다. 하지만 번호표를 어디서 받는지 몰라 조금 해매다가 last name 기준으로 번호표를 나눠준다는 문구를 보고 2번째로 번호표를 받을 수 있었다. 번호표를 받을땐 기계가 아니라 직원이 서류를 받고 검토한 다음 번호표를 주는데, 내가 가족비자도 같이 받고 싶다고 하니 구직비자는 가족들 비자가 안나온다고 하며 서류를 전달할때 직원에게 이야기 해 놓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은이가 초인적인 힘들 발휘해서 애 셋을 데리고 도착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아마도 예약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중간중간 번호표 받은 사람을 부르는것 같은데 30분정도 기다리자 나를 불렀다. 들어가 보니 이미 내 여권이 구직비자가 뙇!! 돈내고 비자 가져가라고 설명하는 직원한테 내 가족은 어쩌냐? 하고 물었더니(뒤에 줄줄이 서 있었음) 가족들은 거주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한다. 나중에 이해했지만 구직비자에 거주허가가 딸려나오는건 조금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관련 서류들을 모두 가져오면 내 비자기간까지 같이 있어도 문제없는 페이퍼를 만들어준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임시비자로 부르는 것이었다. 바빠서 나를 빨리 내보내려고 하는 직원 앞에 모든 서류가 준비되어 있다며 서류를 내밀었더니 ‘제길..’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간이 조금 걸리니 다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가족이 많아서 그런지 바빠서 그런지 2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더니 정은이와 애들 앞으로 6개월간의 임시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내 비자 비용과 4명의 임시비자 비용은 총 100유로.

이제 독일에서 6개월을 더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비자 기간은 신청한 날 기준으로 시작되니까 입국후 2개월 정도에 신청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단 가족의 임시비자를 가지고는 다른 쉥겐협약 국가로 이동할 수 없다(독일에서 90일 체류한 이후 다른 나라로 이동은 쉥겐 비자 기간이 초과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가입한 보험 : 케어컨셉
아쉬웠던 점 1: 관련 서류를 한국에서 미리 챙겨오지 못한것(아포스티유는 서울 광화문에서만 붙일 수 있다)
아쉬웠던 점 2: 독일 입국하자마자 외국인청 예약을 잡아놓지 못한것

독일에서 구직활동

개인적인 생각과 기록, 다짐을 적어가는 블로그인데 최근의 주제인 독일 이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고, 나와 내 가족의 삶에서도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 바쁜 와중에도 조금씩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발리에서 독일로 가자라고 결정하고 바로 10일 뒤에 비행기표만 예약했다. 그리고 10일동안 어느 지역으로 갈지, 어디서 지낼지를 결정하고 급하게 베를린으로.. 회사를 만들지 고민하다가 여러가지로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판단하고 구직을 하기로 결정.. 급하게 이력서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좋아보이는 회사 몇곳에 이력서 제출, 그리고 그 중 한 곳과 전화 인터뷰, 하지만 탈락.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몇 곳에 이력서를 더 넣어보고 또 몇 번의 전화 인터뷰 제의를 받고 여러가지로 고민해보니 내가 가려는 회사들이 겉으로는 좋아보이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하는 일들은 어떨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것 같다.

NHN에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회사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정적으로 살고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었을 때의 이야기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도전하고 더 새롭고 싶었던 나는 그런 프로세스가 싫었고 결국 뛰쳐나와 내 회사를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왜 처음에 독일에 회사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고민..나의 발전과 가족의 안정을 동시에 만족시킬수는 없을까? 그리고는 주제를 달리해서 구인 공고를 찾아보았고 겉으로 보기에 좋은 회사가 아닌 작으면서도 실력있고 내 능력을 많이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도전할 거리가 많은 회사를 찾았다. 바로 이력서와 레터를 보냈고 전화인터뷰를 거쳐 조만간 최종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력서를 보낼 당시 이 회사를 마지막으로 구직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비자 90일 기간이 끝나가기도 하고 구직비자로 기간은 연장할 생각이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런 상태로 가족을 방치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떠돌이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만약 떨어지면 구직비자로 있는 동안 유럽과 독일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면접을 앞두고 있고, 이 회사 전에 보냈던 이력서들도 반응이 좋아 다른 회사와도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고 몇 군데 더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다. 원래 어제로 예정되어 있던 함부르크의 회사 최종 면접은 고심하다 거절하였다. 그야말로 부품처럼 일할게 확실한 회사라 애초에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요즘에 절실히 느끼는 거지만, 결국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내 삶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구직을 한다는 것..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고 알리는 방법 자체도 어렵지만, 스스로를 막연히 좋은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어떤 부분이 좋은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지..기회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지 라는 생각은 많이 해 보았지만 기회를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은 많이 못해본것 같다. 아직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자체가 요즘의 나를 들뜨게 만든다. 아..내 삶의 기회를 내가 만들 수 있구나. 기회의 크기와 관계없이 말이다.

독일학교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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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신고를 했더니 지우 학교를 보내라고 해서 학교에 상담차 다녀왔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의 학교에 아이들도 즐겁게 놀고있는 표정으로 행복해보였다.
아이들에게 권위없이 대하는 선생님들이나 하교후 잔디밭에 모여앉아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여유없는 학생들 모습과 겹쳐보였다.
나도 지우와 잔디에 앉아 도시락과 커리부어스트를 먹으며 간만에 둘이서 데이트를! 종일 지우한테 집중했더니 지우도 바로 느끼고 오늘이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아이가 많으면 이럴때 조금 속상하다..

티스토리 해킹

티스토리 계정이 해킹당했는지..다음에서 일방적으로 계정을 막아버리고 소명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관리자 페이지까지 로그인이 안되어버리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소명을 하려니 굉장히 답답했다.

무제한 용량이 아쉽지만 워드프레스로 바꿔버렸다. 최근 추세를 보아하니 국내 포털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통폐합하려는 분위기다. 특히 다음은 네이버 따라하느라 플래닛이니 블로그니 중복된 서비스가 많아서 더 그럴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유실되었는지 하나하나 확인은 못하겠지만 일단 데이터를 옮겼다. 티스토리는 현재 데이터 백업은 가능하지만 복원은 불가능한 상태로 서비스되고 있다는 것도 이전을 결심하게 한 이유 중 하나이다.

모바일에서도 편하게 쓸 수 있으니 조금 더 일상의 모습을 많이 기록해야겠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하며!

 

두 번째 전화 인터뷰

첫 번째 전화인터뷰의 결과는 낙방.

그리고 맨 처음 이력서를 넣고 포지션이 맞지 않아 반려된 곳(영국에 본사가 있는 독일 지사)의 본사에 내 포지션에 해당하는 자리가 나와서 이력서를 넣어봤다. 베를린에 넣었는데 떨어졌었다는 말과 함께…

어쩐 일인지 바로 전화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고 그것이 바로 오늘..

부모님도 놀러오셨는데 마음에 부담만 생기고 영 의욕이 안생긴다. 이러다 인터뷰가 끝나면 또 후회 하려나..

이력서를 받자마자 희망연봉을 먼저 협상하던 함부르크의 회사에서도 내일 테스트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뭐..내가 생각하기에도 연봉-기술-인간의 순서대로 채용하는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연봉은 계약직전에 다시 협상할수도 있으니… 하지만 채용을 희망하는 입장에서는 약간 마음이..아무튼 내일 원격으로 기술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평소 괜찮게 생각했던 회사..하지만 핀란드에 있고 내 포지션은 뽑지도 않는 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것도 아주 뻔뻔스럽게..나 잘하니까 뽑아라 내 포지션은 아니지만 나 똑똑하니까 배워서 잘할게..이렇게..–;

작년부터 느낀거지만 세상의 기회는 나에게 저절로 오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면 수 많은 기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번 영국 본사 인터뷰도 그렇고..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력서 넣는데 돈드는것도 아니고 약간의 마음의 상처만 감수하면 뭐..

지인 소개로 대기중인 두 곳은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고 3월에 맨 처음 이력서를 넣었던 곳도 뭔 말이 없다.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있는 다국적 게임회사에(있는줄도 몰랐는데 아주 괜찮은!)도 이력서를 넣었고 지금 리뷰 상태이다(여긴 지원 사이트에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구직활동을 하며 느낀건..내가 잡 마켓에서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라던가 준비가 많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커리어가 많이 지저분하다는것(ㅠㅠ 장점으로 승화시킬수도 있지만 너무 구차하다). 그리고 대부분 독립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팀단위 개발에 대한 최근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점. 개발 10년차가 넘어 득도한 부분들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아쉽다.

무엇보다 구직이라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스트래스를 주고 자존감을 좀먹는 상태인것 같다.

이번 전화인터뷰에는 지난번 인터뷰 경험으로 영어에 좀 자신을 가져볼까 했는데 영국 본사라니..본토 네이티브와 이야기 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어 부담감은 더하다..ㅠㅠ 더구나 영국발음.

그래도 이번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물론 거짓말은 안되겠지만 위에 적어놓은 어쩔 수 없는 단점, 그리고 금방 극복가능한 부분에 대해 어필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력서를 넣은 회사들은 대부분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들인데 높은 비율로 인터뷰 요청이 오는걸 보면 서류상으로도 내가 쓸만한가보구나 싶으면서도..나도 그들과 같은 프로덕트를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라지만 벌려놓은 사업에 작은 성과라도 더 이루고 싶은 욕심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오히려 내 마음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큰 소득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일용직 노가다 체험과 새벽시장 풍경을 보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랄까.. 나라는 인간은 하여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