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급여 100회 그리고 나

2014년 6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딱 100개월! 오늘 그 100번째 급여명세서를 받았다. 블루카드로 영주권만 받자고 시작했는데, 돌아온걸까 아니면 잘 찾아온걸까? 이 시점이 이런걸 생각하는건 이미 지난일이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의미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드니까…

계획한건 아니지만 이렇게 숫자가 딱! 떨어지니 어쩐지 기분이 좋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조금 더 가져보고 싶다. 한 번에 딱 알 수는 없겠지만 단 하루라도 시간을 내어 나 스스로에 집중하고 질문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한게 2002년 6월이고 중간에 쉬어본 적이 없으니 240번이 넘는 급여를 받은건데.. 독일에서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언제는 하고 싶어서, 언제는 그냥 흐르는대로 회사에 다니다 보니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없고 대신 상황에 나를 맞추려 노력했던 시간이 많았다. 또 그런 시간들이 오래 지나다 보니 이젠 상황에 맞추는게 익숙해, 더욱 더 내가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다.

물론 나에겐 가족이 늘 우선이지만 나에 대해 알지 못하고는 가족들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관성처럼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하다면서 직장에 매달려 있는 경우처럼…

아무런 약속도 없이 시작하는 이 도전은 마치 독일에 처음 왔던 그 순간처럼 맨땅에 부딪히는 기분, 하지만 내가 겪어야 했고 했어야 했던 일을 이제야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닌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그 길을 이어가려 한다.

착각과 기대

기대는 그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도 결과를 내려고 하거나 기다리는 것이고, 착각은,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상태를 말한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이 진짜 삶이라 믿는 착각. 영원히 깨지 않는 다면 좋을까? 어쩌면 매트릭스에서는 그것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언젠가 진실의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어린시절, 모든게 가능해 보였던 학교안 울타리에서의 생활, 승승장구하며 인정받고 끝없이 올라갈 것만 같았던 직장생활. 하지만 이런것들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나와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 낸 가상세계일 뿐 진실은 담겨있지 않다.

그렇게 다음 단계라고 믿었던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다 보면,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게된다. 다행히 현실은 매트릭스에 나오는 진실처럼 시궁창은 아니다. 다만 내가 올라온, 그리고 믿었던 그 계단들이 그 만큼의 의미가 없었다는 자괴감이 내 현실을 시궁창으로 만들 뿐이다.

선택의 순간은 늘 있어왔다. 나에게 계단을 내려갈 기회, 그리고 그 진실에 마주한 적도 있었다. 다시 진실의 문을 여는 것은 내가 가상세계에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어려워지고, 그 만큼 나를 허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 뿐, 가상의 세계를 버릴 이유도 없다. 진실을 보고 나아갈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내가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경험과 시련일 뿐이라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어지럽다. 마주해야할 진실을 보는 댓가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나를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나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다시 다짐하는 글과, 얼마간의 시간이 이 어지러움을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나는 착각속에 살고 싶지 않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15일까지 생각해 보려 했으나 결국 인공호흡기로 수명연장을 하는 것 같아 그냥 그만두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안녕 내 월급… 그래도 한창 사업할 때 만큼 받았는데, 그 한창 사업할 때가 10년전이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돈의 액수로만 생각하면 절대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으니 눈 딱 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어지럽던 머릿속이 한결 정리되어 가벼워지는게 느껴진다. 내가 앞으로 할 일들은 크게 3가지이다. 하나는 로이와 함께 게임회사를 만드는 것. 두 번째는 라팔과 함께 게임 에셋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세 번째는 모바일 앱 개발을 하는 것.

게임회사는 설립과 계획 그리고 투자준비로 바쁘겠지만 꼭 9월에 되어야 하는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진행하는것이 좋다는 생각인데 외부 투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나와 로이가 팀으로 어느 정도 계획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게임에셋프로젝트는 라팔이 아트를, 내가 개발을 맡아 몇가지 에셋을 만들어 보기로 한 프로젝트다. 크게 세 가지 정도 계획이 있고 그 중 2가지를 먼저 같이 해 볼 생각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개발은 이미 시작되었고 다음 주 정식으로 킥오프, 9월 말/10월 중순에 첫 번째 버전을 출시하는 것이 목표이다.

모바일 앱 프로젝트는 나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기획에서 약간 정체되어 있고 MVP정의를 하지 못해 조금 빙빙도는 기분이다.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가 조금 생기면 계획을 조금 더 명확히 해보고 싶다.

늘 가장 어려운 방향으로만 선택했던 내 인생… 이번 결정도 남들이 보면 미쳤다는 말 말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각종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내가 독일에 와서 받은 급여명세서가 100여장에 달했다. 온갖 어려움과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 울컥했으나 그 만큼 성장하고 배우고 느낀걸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했다. 오늘의 이 출사표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결정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가자!

사표

오늘 사직서를 냈다. 2002년 병특으로 시작하고 20년 동안 몇 군대의 회사를 다니고 몇 번의 사표를 냈을까?

2002년 6월 가민정보 병특 시작
2004년 11월 사표내고 NHN(중간 NHN Japan 파견)
2008년 2월 사표내고 IAMG 창업
2014년 6월 독일에서 Yager
2015년 9월 사표내고 Aeria games
2017년 1월 사표내고 스마일게이트 유럽
2018년 5월 사표내고 AAI
2020년 2월 사표내고 CrazyLabs
2022년 9월 말로 퇴사 예정…

7개 회사 1번의 창업.

로이랑 크레이지랩스에서 만들던 게임을 마무리하고나서 지친건지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었다. 뒤돌아 보면 영주권을 따기 위해 취직을 했다가 스마일게이트 때 영주권 따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사업을 해 볼까 했는데, 그냥 한 번 다녀보자고 생각했던 AAI에서 2년정도를 보내고 나니 많이 지쳐있었던것 같다.

내 사업 반, 취직 반 신분으로 시작한 크레이지랩스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게임 자체의 성과는 크게 좋지 않았다. 어디서든 안배웠을까, 그래도 여기서는 모든 프로젝트 관련 셋업을 바닥부터 다 진행해 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개발은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핵심이지만 개발을 둘러싼 팀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토양이 되는 만큼, 스스로 첫 시도에 드림팀에 가까운 팀을 꾸렸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스럽다.

2020년 부터 끊임없이 두들겨왔던 나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 속도를 붙일 때가 되었다. 아이디어 중 현실적인 것들을 추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비지니스가 나에게 동작할 수 있는지 검증해 보는것이 첫 번째 단기 목표이다. 그리고 이런 단기 프로젝트를 몇 가지 테스트 해서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저축해 놓은 돈이 있더라도 고정 급여가 없다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것 같아 몇가지 옵션을 준비했다. 먼저 9월 말로 퇴사한다고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진행해 줬으면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기술적으로도 배울것이 있고 기간도 적당해 15일 까지 검토 후 내가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퇴사를 취소하는 옵션이다. 프로젝트 검토 뿐 아니라 지금 계약사항의 변경 또한 포함시켜 합의하기로 했다. 급여로는 많은 액수를 주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미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은것이 아니라면 크레이지랩스에 머무는것이 사실 가장 편하고 좋은 선택이다.

다음 옵션은 로이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둘이 같이 회사를 창업해 투자를 받는 방향으로 생각중에 있다. 투자 의향이 있는 몇 회사와 개인이 있는데, 이 방법으로 진행할 경우 창업 초기에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급여는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온전히 나의 사업을 하는것(공동창업이지만)과 레퍼런스 좋은 초기 투자자들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의 리스크도 있는 편..

이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는 내가 홀로서기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단기 프로젝트들을 테스트하고 장기 비지니스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최대 18개월로 정했다. 이 정도면 3-5가지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1-2개의 게임이나 서비스를 실행 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옵션을 선택할 지는 15일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고, 의외로 이 두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것 같다. 이제는 딱히 어떤 회사나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런 생각 만으로도 답답해진다. 사표를 내고 나니 마음은 조금 더 홀가분해졌지만 급여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거워 지기도 한다.

더 작은 급여일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독일 와서 처음 받은 돈 보다 거의 3배가까이 받는 지금은 그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겠지만 엄청나게 아쉽지도 않다. 중요한것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들이 결국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사표를 내고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20여년간 일해 오며 늘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빨리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따고 나서 시작했다면… 아예 독일 오면서 부터 IAMG를 계속 했다면…

하지만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그 만큼 얻은것도 많았으니 후회는 하지 않고 약간의 아쉬움만 느껴보려 한다. 아쉬운건 아쉬운 것이고 홀가분한건 홀가분한 거니까. 이제 15일 까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아주 짧겠지만 1-2주 정도 나만을 위한 휴식 시간도 가져보고 싶다. 파일럿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최소 첫 번째 결과가 9월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단, 20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잘했다, 그리고 고생했다! 앞으로도 잘 할거야!

네가 내 곁에 있다면

Bist du bei mir, geh ich mit Freuden zum Sterben und zu meiner Ruh.

Ach, wie vergnügt wär so mein Ende, es drückten deine schönen Hände mir die getreuen Augen zu.

It is not over until I win

Nobody believes in you.

You’ve lost again and again and again.

The lights are cut off, but you still looking at your dream, reviewing it everyday and say to yourself, it’s not over until I win.

It’s very important as you hold on to that dream.

The moments when you are going to doubt yourself.

The rough times are going to come.

But They have not come to stay, they have come to pass.

It’s very important for you to know that.

Don’t say I am having a bad day say I am having a character building day.

It’s very important for you to believe that you are the one to make this happen.

호야도 핸델 김나지움으로..

지우에 이어 호야도 핸델 김나지움에 합격했다.

핸델 김나지움의 특징은 학교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음악에 특성화 된 학교이다. 모든 학생들이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혹은 실용음악과 같은 음악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때때로 이 음악활동이 학업보다 우선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학업 성적이 뒤쳐지는건 아니다. 늘 베를린 아비투어 성적에서 최상위권에 들어있는 학교 중 하나이다.

그럼 학교에서 ‘특별히’ 뭔가를 더 가르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교 분위기 자체가 그냥 그런 분위기 일 수 밖에 없는게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악기를 시키는/좋아하는 집에서 자란 학생들이 모였으니 그 분위기가 다른것 같다. 아이들 교육에 극성인 가정도 많지만 여유있게 삶을 즐기고자 하는 가정도 많다. 여느 10대 아이들 처럼 일탈도 하고 방황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는것 같다.

나와 정은이한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음악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의 전부 혹은 대부분으로 느끼는 가정과 학교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자신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같이 시작했지만 1-2년이 지나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이 보인다. 처음의 그 작은 차이는 아마도 가족과의 관계나 관심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우는 이 학교에서 더 얻을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잘 하고 있다. 호야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아빠한테 먹이만 받아먹던 아기새에서 이제 자신이 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작은새로 성장한 호야. 무엇이든 다 경험해 보고 즐기고 도전하고 또 실패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기 끝, 방학 시작

오늘 부로 1학기가 마무리 되고 1주일 간의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우리 귀염둥이들도 각자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김나지움에 진학해야 하는 호야가 헉헉거리며 집으로 제일 먼저 뛰어왔다. 미리 선생님들한테 물어봐서 대충의 성적은 알고 있었는데 한 과목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난리다. 5학년2학기와 6학년1학기 성적을 평균한 점수가 적용되는 김나지움 입시… 마찬가지로 3학년2학기와 4학년 1학기 성적으로 5학년부터 시작하는 김나지움에도 지원했었는데 그 나이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밀어붙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당시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좋았기에 적극적으로 다른곳들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그 땐 모든 과목 평균이 1점(최고점)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후 코로나 시대와 약간 이른 사춘기인지 호야가 엄청 방황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집에 있으면서 우리가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것도 사실이다. 닌텐도를 사서 온 가족이 동물의 숲은 하느라 몇시간씩 서로 게임을 하고, 학교의 원격 수업 초기에 엉망인 프로세스를 보고 금방 다시 학교에 가려니 하고 내버려 둔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들도 지나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약속과 다르게 호야가 있던 반이 사라져 버려서 친구들과 선생님과도 헤어져야 했고 갑자기 바뀐 선생님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록다운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가면서 조금씩 마음이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미 공부는 포기한 몇몇 친구들이 집요하게 호야와 놀자고 하고 장난을 거는 통에 학교에서 이것 저것 놓치는게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김나지움 컷트라인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호야는 1점을 맞을 수도 있는 과목을 어이없는 실수나 귀찮음(?)으로 2점을 받아오는 날이 많았다. 길고도 길었던 잔소리와 설득의 시간을 지나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본인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아서 기뻐하고 안도하는걸 보니 이녀석이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가 다니는 학교는 입학시험이 따로 있는데 그 시험도 봐 둔 상태고, 시험 결과에 따라 어느 학교를 지원할 지 결정하면 될 것 같다.

호야가 신나서 떠들과 있을 때 시우가 집에 들어왔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받는 시우는 1점 받는게 당연한거 아니냐면서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더구나 자신은 ‘똑똑한 아이’상과 ‘빠른 아이’상, 두 개를 받았다며 반에 상장을 받은 아이는 4명인데 두 명만 두개의 상장을 받았다며 또 자랑이다. 더구나 이번 학기 반장으로 대 활약을 한 터라(더 하고 싶다고 아쉬워 함) 높아진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

마지막으로 지우가 2점이 몇개 안된다는 자랑을 하며 들어왔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는 내 농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번보다 잘했다며 깔깔거린다. 지우는 최근에 사춘기를 보내며 무슨 바람인지 바이올린과 공부에 굉장히 시간을 쏟더니 어려운 과목들은 모두 1점을 받아왔다.

정말 세 아이 모두 한 달에 10분정도 뭔가 물어보면 대충 알려주는 정도의 신경만 썼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모든 것들을 잘 하고 있으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특히 지우는 우리 입장에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하루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여러 잔소리를 하지만 사실 할 필요도 없는 말들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배부른 소리들일 것이다.

독일이 학업 성취도가 떨어져서 우리 아이들이 그냥 잘하는 걸까? 그런 아닌것 같다. 한국도 장난 아니지만 여기서 잘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노트 정리부터 수업태도, 발표, 쪽지시험, 정규시험 그리고 실습이나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하나도 모르고 온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더구나 놀기도 엄청 놀면서!

이번 방학이 지나면 호야는 희망 학교에 원서를 쓰고 6월 말이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이젠 뭐..어떻게든 될것이라 믿고 이제 남은건 시우… 시우는 가능하면 5학년때 김나지움에 보내려고 한다. 지우와 호야 경험상 그룬트슐레에서 5,6학년은 정말 개판인것 같다…

한국의 부모들이 일단 대학만 보내자고 다짐하는 것 처럼, 우리는 일단 김나지움만 보내자고 다짐하고 있다. 김나지움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10대의 가장 빛나는 6년을 보내는 곳인 만큼, 그 곳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대학?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학비가 있는것도 아니고 여느 독일 가정처럼 만 18세 성인이 되어 가능하다면 독립하게 해 주고 싶다. 대학이 아니라 다른 하고 싶은게 있다면 더 좋고.

예민한 호야와 더불어 가슴졸이던 몇 달의 고생이 이제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경험으로 아이들도 많이 배웠고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다행인건 노력한 만큼 나오는 결과를 아이들 스스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기저귀 찬 막둥이 업고 춥디 추운 독일에 직장도 집도 아무것도 없이 들어온게 7년전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잘 크고 적응해 주어 너무 감사하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보람을 느낀다.

사람은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한숨

몸이 지쳐서 마음이 지치는건지 운동을 안해서 그런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일도 하기 싫고 짜증이 많이 나는 시기다. 날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맥주 한 잔 마시고 영화도 보고 했을텐데,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보고 싶은 영화도 없어서 이런 재미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는건 개인 프로젝트 끄적거리는건데 쉬는 시간도 없이 또 일은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일이 취미라니.. 재밌을땐 싫지 않지만 요즘처럼 일 자체가 하기 싫을 땐 그 대안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이런 저런 커뮤니티를 기웃거려보면 다들 나보다 여유있고 잘 사는 사람들만 보인다. 딱히 돈을 아끼는건 아니고 그냥 검소한(?)게 생활화 되어있다보니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늘 조금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돈은 많이 쓰는데 전부 먹을것이고 아이들 한테 들어가는 비용이다.

개발에 관한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추가로 나오고, 장비든 뭐든 더 받을 수도 있지만 딱히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애플 개발자 등록 1년에 100유로 짜리는 계속 미루고 있고.. 물론 딱히 지금 등록할 필요는 없지만 한다면 조금 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은데 하면서…이게 돈을 아낄려고 하는건가?

그런 마음에 ‘에라이!’ 하면서 돈 쓸 핑계를 이리 저리 만들어 보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상상속에선 전기차도 사고 애들 스마트폰도 사주고 컴퓨터도 하나씩 사주고선, 돈도 써본놈이 쓴다는데…언제 그렇게 써 볼 수 있을까? 집에 들어가는 돈도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살고 있는데 정말 ‘나’한테 들어가는 돈이 매달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아마 난 지금 연봉의 반만 받아도 지금과 똑같이 살 수 있겠지.. 나 혼자라면 1/10?

그럼 이 답답한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더 성공해야한다는 막연한 목표… 나와 가족이 경제적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을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 내가 하고싶은게 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 들이 모여서 조금씩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건지 시간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내일 부터는 혼자서라도 꼭 산책을 해야지…

날씨가 좋아지면 정원 관리를 하면서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텐데… 결국은 날씨 탓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