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사람만이 재미로, 이유없이 다른 생명을 죽인다고 한다.

여러 종의 섞여있는 나무는 자신을 변화시켜 생존하는데 집중한다.

모든 일개미가 동시에 일하지 않는것은 그 상황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도와준다고 덤벼봐야 집단의 성취만 방해할 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데 사용한다. 순수히 상대방을 위해 희생을 치루어가면서 까지 매달린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명히 느끼는건, 내가 누군가를 내 의지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바뀌기 바란다면 나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

나 자신도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이 감히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연인도 부부도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나와의 관계속에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싶다면 내 삶을 충실히 사는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힘들다.

오만한 생각은 버리자.. 조금 더 힘이 있다는 이유로,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어떤 이유던간에 나는 아직 부족하다. 내 삶도 지저분하고 구겨짐 투성이다.

8월이 되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 지 두 달이 되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음악도 듣는다. 뭔가 공부할 거리를 들으며 출퇴근해야겠다 생각했다가 그냥 음악을 듣기로 했다. 일은 많고 바쁘고 공부해야할것도 배우는것도 많다. 피곤하다. 다리근육은 엄청 늘었는데 살은 조금 빠지다 말았다. 부모님이 오셨다 가셨는데 내가 정신이 없어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느끼지만 마음의 여유는 조금 더 생긴것 같다. 나와 정은이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가족이 중심이 되는 시기인것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이 시간도 없어지겠지..

자전거 타기가 힘들지만, 특히나 이 여름에, 재미있다. 건강해지는 기분도 흐르는 땀도 오가는 길의 풍경도 좋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부분 부분을 엿보며 지금 내가 가지게 된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돈, 건강 이런건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배우자나 아이들은 노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베를린엔 멋진 곳과 멋진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과 사람들도 많다. 어떤 곳에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베를린에서의 삶이 달라진다.

열심히 사는 하루로 만족할 수 있다.

결정장애

이사온지 8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수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냥 두거나 미루자니 집 정리도 안되고 한번에 처리하자니 결정을 못하겠다.

결정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때문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욕심..

그렇게 결정을 미루고 미룬게 너무 오래 되었고, 일들은 줄어들기는 커녕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 늘어나 이제는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전선에 매달려 있는 전구나 화장실 한켠에 쌓인 수건을 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터질 정도이다.

그 동안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여러 갈등과 고민을 겪어 왔으나, 나는 어제 결정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고. 물론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위해 희생하는 것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 오늘부터 나는 우선순위를 정해 모든 일을 척척척 해결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기본적으로 처리하고 있던 수 많은 일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오늘은 퇴근후 가구점에 들려 복도에 놓을 신발장, 화장실에 놓은 선반 및 가구, 호야 책상 등을 볼 예정이다. 이케아에서 상품권 구매시 10% 추가 증정 행사가 있으니 이케아에 들려서 미리 상품권도 좀 사 두어야 겠다. 그리고 Zigbee 통신으로 롤라덴 셔터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결론 내려야 한다. 아일랜드 식탁 위 전선 마감하는 것도, 거실 등도 빨리 처리하고 싶다. 정은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티비장도 바꾸고 시우 방에 있는 예전 이케아 책장도 다른 이쁜걸로 바꾸고 싶다. 사용하지 않는 중고 제품들도 처리해야 하고 이불도 새로 사고 싶다. 애들 방에 꾸며주기로 했던 것들도..정원 용품도.. 창고와 지하실 정리도..

바꾸고 싶다는 것..

한 달 넘게 아이들한테 화내지도 짜증내지도 않았다가 호야 생일날 저녁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감기에 걸려 몸상태가 좋지 않은데 회사에서도 스트래스가 많아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바로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결국 화를 내지 않고 싶다는건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말과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의 감정이 정상적이기는 어려울것 같다. 화를 내고 싶지 않다면 화를 참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여유를 찾도록 노력해야한다.

지난 시간동안의 경험으로 시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감정과 스트래스가 결국은 내 신체적인 컨디션으로부터 나온다. 잠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바로 감정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다. 나는 몸이 육체적으로 충분히 건강하고 피곤이 없는 상태를 여유가 있는 상태라 생각하고 싶다.

요즘은 몸이 안좋아서인지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입맛도 별로 없다. 맥주도 커피도 마시지 않고 좋아하던 고기도 별로 먹지 않게 된다.

이번 감기가 좋아지면 다시 자전거 운동을 시작해야 겠다.

다시 태어나기

대학교때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날..

무언가 바꾸고 싶었던 날..

나는 정은이한테 ‘오늘부터 난 다시 태어날거야’ 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크게 바뀌는것도 없었다. 늘 말로만..

최근 2-3달 동안 많이 무기력하게 지냈다. 무기력하다고 해서 회사나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굴러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의욕만 없었지 수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어쩌면 그 ‘수 많은’ 일들 때문에 의욕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무기력했던 건지도.. 나한테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졸업이나 입학, 이직과 같은 하나의 이벤트 처럼 내 마음을 다잡을 계기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이런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억지로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바꿀 필요도 없으니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는 결국 ‘다시 태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을 계기로 다시 태어나 보자. 다시 태어난 삶이 이전과 똑같더라도 내가 손해볼건 없으니..적어도 오늘 아침에 이 선언을 함으로 정은이가 웃을 수 있었으니..

어제까지의 나야..고생만 죽도록 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것 같아 미안하다. 오늘부터의 나는 마음껏 즐기고 열심히 살게! 수고했다!

성장

계획했던(?) 큰 목표들을 달성한 지난 3년간 우리 부부가 얼마나 성장하고 변했는지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수십년 전 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젠 아기가 아닌 막둥이 시우.. 모든일에 자신감을 찾아가는 지호..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지우..

지우는 이제 안아주기도 힘들 만큼 커버렸다.

흠.

한국 방문

14년 1월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2주가 조금 넘는 기간이라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유럽여행을 1-2주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만날 사람도 최소한으로 하고 양가 부모님들 뵙고 아이들 챙기는 것에 집중했다. 부모님이 매년 독일로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반면에 처가 어르신들은 그렇게 못해서 가능한 처가에 오래 머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결혼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처가에서 보낸것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서로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그 결과로 조금은 더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은이가 자라온 환경을 직접 경험 하면서 정은이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정은이를 따라가서 도와주고 어르신들 뵙는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갔기 때문에 큰 설레임도, 무언가 하려는 의지도 많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독일과 비교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좁은 인도나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여러 가지는 금새 적응 하여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그러한 자세로 마주친다는 부분은 조금 힘들었다. 내가 이 나라에 오래 살았고 또 나도 그들 중 하나인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처음 느꼈던 여러가지 불편한 부분들에 금새 적응해 버리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깍아내려 이 불합리한 상황들에 맞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합리화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만큼 낮은 질의 삶과 형편없는 자존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고, 비단 나 뿐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적인 구성원들의 자존감이 얼마나 낮고, 따라서 내가 2주간 느꼈던,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것 같았던 사람들의 마음이나 공격적인 자세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지 또 그 반대급부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뒤로 밀리게 되는 불합리는 감수해야 하는지.. 최순실처럼 큰 권력형 비리에는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어째서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불합리와 위법 상황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합정동 공항버스 정류장을 내렸을 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 위험하다였다. 중앙차로에 정차한 버스가 우릴 내려준 곳은 차가 무섭게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이었고 이 좁고 긴 버스 정류장에는 자신이 탈 곳을 찾아 것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횡단보도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고 아이들이나 노약자가 밀려 도로로 넘어져 다치거나 죽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것 같은, 마치 공포를 체험하기 위한 놀이시설과 같은 장소였다. 물론 휠체어가 지나다는것은 불가능 하고 아이들과 케리어를 끌고 그 인파를 지나는 우리들은 마치 내가 죄인인 마냥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합정역 로타리를 건너는 3개의 신호등 중 하나가 빨리 바뀌고 도로폭이 좁다는 이유로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빨간불에 건너는 것은 마치 본인의 기준에서 불합리한 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가 앞에 세워진 수 많은 불법 주차 차량들로 처가에 출차나 주차가 어려울 때면, 불법주차를 한 장본인이 나와 뭘 이런거 가지고 이러냐며 인상을 쓰거나 혹은 웃으면서 차를 빼는 것을 도와주는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행위가 마치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웃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내집 앞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자동으로 단속하는 첨단 CCTV를 피하려 주차금지 푯말로 번호판을 가리면서 까지 주차를 해 놓았는데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그 불편을 감내한다.

다른 사람의 주차장에 잠시, 혹은 장시간 주차하며 본인이 못 빠져나갈 것을 걱정했는지 주차장 입구에 주차하여 그 곳에 거주하고 주차해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차를 빼달라고 시간과 전화비를 들여야 부탁해야 하는 것은 권리를 가진 정당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불법 광고/간판들이 모든 벽면/거리에 부착되어있고 일방통행로 역주행이나 사거리 교차로에서의 불법 주정차 같은것은 애교로 봐 줄 정도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러할 정도인데 식당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은 어떨까? 과연 수 많은 위생관련 법규가 잘 지켜지고 있을지, 음식물 유통,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지..과연 생활의 기본적인 법규도 지키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비지니스가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나 기업의 상부 권력이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썩어 있는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사회적 공동체의 약속인 모든 법규의 무게가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약속으로 정한 이상 모든 구성원들이 최대한 지키려 노력해야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이익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살기에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 하나 감당하는 것도 어려울 판에 남들 뒷치닥거리까지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억울함과 어려움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이라고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간은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조금은 다르다. 선진국이라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줄을 서지 않으면 모두 손해본다는 것을 아니까 불만이 있어도 참고 지키려 노력하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동의 이익을 해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비난하는, 어찌보면 ‘정’없는 나라이다.

결국 누구를 욕할 것도 없이 우리 한 명 한 명이 일상처럼 지키지 않는 수 많은 ‘작은’ 약속들이 그 끝에 기형적인 결과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나도 피해자이자 가해자 이며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관계로 엮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독일행을 택했고 이번 한국 방문으로 상대적인 만족감을 더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속상하다.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나의 나라에 사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그냥 속상하고 안타깝다.

독립

나는 2008년에 창업해서 약 4년간 여러가지 일들을 했었다. 2013년에는 남은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고 나만의 게임도 만들어 보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관리가 자유롭고 직장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남으로서 나와 가족의 삶은 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외주에 의존하던 사업을 자체 서비스로 바꿔보려고 시도중에 독일에 오게되었고 다시 들어오기 싫었던 직장이라는 시스템이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 시스템 안에서만의 가치를 위해 이런 저런 스트래스를 받고 고민하고 또 결심하기를 여러 번..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신 이번에는 외부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마련.. 아직 한국에 있는 법인도 살아있고, 지금 독일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일종의 ‘파견근무’로 생각하고 이곳의 직장생활을 유지해도 될 것같다. 즉, 다시 더욱 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기력하고 승진이나 급여, 인간관계로 많은 스트래스를 받겠지만 내 회사의 메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 이런 스트래스 없이도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또한 내 개인 프로젝트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왜 진작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최근에 하고싶은 개인 프로젝트들이 몇가지 생겨서 이렇게 결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난 달, 무려 5가지의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재밌고, 배울 수 있고 또 가능성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아직 조금 느리지만 조금씩 진전도 있고 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또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더 큰 동기부여가 되고 개별 프로젝트들의 진행도 조금씩 빨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꾸준히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것이 굉장히 정신건강에 좋을것 같다. 그래서 독립을 선언하기로 했다. 그냥 마음속의 작은 결심이 아닌 멈춰서 있던 내 회사를 다시 굴리는거다. 지금 직장은 외주개념의 메인 프로젝트로, 개인 프로젝트들은 내 회사가 일어서기 위한 기반 프로젝트들로..

회사로서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독립된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2017년부터는 작은 성과라도 스스로 증명해보일 수 있도록 하는것이 목표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 만큼 작은 좌절은 있어도 결국 이루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복은

요즘들어 정은이와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 부부가 비슷한 걸로 보아 어쩌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의 근본은 결국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면 다음은 노력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지는 자신이 얼만큼 행복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로서 우리가 깨우쳐줘야 한다. 방향을 잡는 것은 아이의 몫이고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고 쉬워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부모로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넘쳐나는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채우는 것과 이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때로는 부족함이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진짜 환경일 것이다. 부모가 세운 목표에 아이를 맞추려 하면 아이가 생각하는 가치와 부모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다양한’ 경험은 부모의 기준에서 끝나게 될 확율이 높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더 어렵다. 처음에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그 느림 속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이의 노력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더라도 설령 부모가 시켜서 한다고 그게 정말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즐겁게 공부 했던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단 1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했기에 즐거웠고 잘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가진 능력도 비슷하다. 시작은 단 6개월이었다. 병특시작하고 회사일과도 관계없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6개월을 거의 밤샘하다시피 공부한 것으로 지금 15년을 먹고 살고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민학교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강하게 거부했고, 내가 하고싶은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난다. 즉 엄마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노력하고 시키려 했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철저히 무시당했고, 서로의 시간만 낭비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그 무엇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알려주고 싶다. 무엇이 있는지를.. 한국에서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늘 그랬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뛰는것은 너무 힘들었고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방향은, 때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방향을 정하고 거리를 가늠해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면 언젠가는 ‘스스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와주면 나중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더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부모로 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독립해서도 스스로 잘 판단하도록 키우고 싶다. 사립학교, 과외, 명문대..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것 같다. 스스로 사고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 자신도 때때로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은 내가 낳은 존재이면서 남인 존재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생각이겠지만 부모의 기준으로는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너의 인생을 살게 해 주는 것, 이게 부모로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고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제 자식을 남으로, 나와는 가장 가까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자. 내가 너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고 조언해 주고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무엇으로 만들 수는 없다. 네가 정한 의지에 나는 따라가고 도와줄 수 있지만 너를 내 의지에 맞춰 끌고갈 수는 없다. 길고 넓게 생각해야 아이의 시야도 따라온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좋다는 것만 다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를린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내가 얼마나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지와 의무교육이 인간의 일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5년 뒤를 상상하기 어렵다. 다양한 언어 구사능력과 사회적인 교류 말고 과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지..내가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우월감, 시기, 질투

우월감은 행복일까?

만족스럽기는 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잘 하고 있다는 그 생각. 내가 진짜 잘 하는건지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이루어 진다. 내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남이 나보다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행복해 하고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불행해진다.

왜 내 자신의 기준으로 행복할 수 없을까…왜 좀 더 어렸을 때 내 감정에 충실하지 않았을까. 왜 아직도 나는 이런 불합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똑같은 현실에서 단 하루사이에 우월감과 시기, 질투를 왔다갔다 하는 이 마음이 참 부끄럽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