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의감이 밀려왔다. 비자를 받는 것이 우선이기도 하지만 연봉을 떠나서 내가 취직을 하면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해 보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좋은 회사가면 재밌는일 하겠지..이런 생각이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냥 시키는 일만 하고 발전도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돈 주는 어학원 다니는 셈 치고 다닐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내 인생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90일 무비자 기간이 한달하고 몇주 남아있는 상황이고 독일 구인 프로세스를 보니 어디든 한 달만에 입사가 확정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함부르크의 D 회사는 면접일정 자체가 늦게 잡혔기 때문에 이 곳 또한 불안했다. 결국 구직비자를 신청하기로 하고 부족한 서류를 한국에 주문한 후 이번에는 크고 유명한 회사보다는 내가 하고싶은 일이 있는 회사를 찾아보았다.
3차로 이력서를 넣게 된 회사는 베를린의 게임회사 두 곳(I,J), 슈투트가르트의 회사(K), 헤드헌터의 모집공고(L) 이었다. 이 중 I와 K의 업무는 UI 개발과 디자인 쪽의 업무가 혼합되어 있었다. 내가 창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환경도 새로운 부분이 많아 많이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이력서를 넣자마자 헤드헌터 L 로부터 바로 전화가 왔다. 갑작스런 전화라 당황했는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잘 대답했다. 헤드헌터는 내 조건이 좋다면서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이야기 한 뒤 다시 연락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3-4일 후 I에서 1차 면접을 바로 보자는 메일이 왔고 J에서는 내 기술분야에 대해 적어 제출하라는 메일, K에서 전화인터뷰 메일이 왔다. K와의 전화인터뷰는 여러명과 스피커 폰으로 이루어졌는데(1시간) 가고 싶다는 욕심이 컸는지 평소보다 더 긴장해서 제대로 못봤다는 느낌이 컸다.
이후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와서 또 다른 전화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고되어 보이지만 회사 자체가 젋고 재밌어 보이는 회사였다. 약 한시간 반 정도 인터뷰했고 잘 이야기 한 것 같았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 헤드헌터를 통한 연봉의 압박때문인지 탈락했다. 이 회사는 돈을 많이 주지 않으면 갈 의미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후 베를린의 J회사에서도 전화 인터뷰 제안이 왔고 K회사에서 의외로 면접 제안 메일이 왔다. 많이 지쳐있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은 회사의 인터뷰를 보는 것도 힘든것 같아서 함부르크D 회사의 최종면접과 베를린 J 회사의 인터뷰는 취소하였다. 베를인 I 회사의 1차면접은 아주 좋은 분위기에서 끝났다. 원래는 전화인터뷰를 보는데 내가 베를린에 있어서 바로 불렀다고 한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바로 다음날 2차 면접 제의가 왔다. 6시간동안 점심식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면접이었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즐겁게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오피스 투어를 한 뒤 면접을 끝냈다. 역시 바로 다음날 합격 통보와 함께 잡 오퍼를 받았다. 그리고 K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회사 규모가 작은 반면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실력있는 팀원들과 안정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지원한 포지션이 지금까지의 내 경력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 분야여서 많이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프로젝트에 투입하면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결국 베를린I회사의 제안 기간이 다 되어서 나는 베를린 회사를 선택했고, 바로 다음날 K회사의 오퍼를 받았지만 선택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약 한 달 반에 걸친 구직기간동안 많은것을 느꼈다. 일단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하지 않던 내가 정리되지 않는 경력으로 어필하기 매우 어려웠다는 것. 사람들은 내 사업 경험에 그 긴 시간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나 또한 6년의 시간동안 어마어마한 경험을 했지만 너무 다향한 일들이라 내가 무엇을 했다라고 요약해서 전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지만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대해 10%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가 많이 아쉬웠다. 한국에서 전화영어라도 해서 약간 준비를 했더라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된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영어권 나라의 구직 프로세스에 대한 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커버레터와 이력서, 레퍼런스 레터까지..익숙하지 않은 인터뷰 문화와 분위기들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만 초기에 전화 인터뷰 경험과 커버레터를 반복해서 쓰면서 구직 요령(?)이 많이 생긴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으로 지원한 회사들에서 좋은 반응들이 왔고 무리없이 인터뷰를 했던것 같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 처음에는 무작정 두서없이 이야기 했는데 나의 백그라운드, 경험, 기술 이런식으로 카테고리를 나눠서 소개하니 더 반응이 좋았고 이후 인터뷰도 내 소개와 관련해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회 생활한지 10년도 넘었고 내 사업이라고 시작한게 6년이 넘었지만 독일에서의 구직 경험은, 특히 나처럼 무대포식의 경험은 대졸 신입의 구직 경험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알량한 자존심에 이런 구직 경험에 대해 숨기고도 싶었고(어디 떨어졌다는게 창피해서), 구직을 한다는 자체가 뭔가 패배스러운 상황으로 생각되었지만 이렇게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고, 나 스스로 세계 어디에서든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독일에 어떻게 적응을 할지, 회사생활을 잘 할지, 내 사업은 어떻게 할 지 이제는 잘 모르겠지만 늘 배우는게 있다면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니까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과대평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회에서 다시 나에대한 평가를 해 주겠지..여기서도 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한국에 있었어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까..
이로서 독일에서의 구직 경험에 대한 정리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