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마련하기

아이들과 소소한 추억 만들기 한답시고 거실에 온 가족이 이불을 펴고 누웠다. 문득, 이 집에서의 첫날밤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정은이는 지하철로, 나는 여행가방 2개로 시작해 조금은 불어난 짐을 택시에 싣고 이사를 했다. 당장 이불과 식기가 없어 급하게 사러 나갔다가 정은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시간이 없어 냄비 세트만 사 왔었다. 8월이었지만 저녁에는 추웠던 그 때, 온 가족이 작은 방에 냄비세트 상자를 펴고 우리가 가진 모든 옷들을 깔고 덮고 덜덜 떨며 자던 그 때.

우리의 신혼집도 그랬다. 분당에 전망좋은 복층 오피스텔을 신혼집으로 계약하고 어느 새벽에(왜 그랬을까?) 둘이 대청소를 하고 둘이 나란히 누워봤는데 이불이 있었음에도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성남으로, 다시 수내동의 오피스텔 두 곳, 용인 동천동, 용인 발트하우스 까지 이사를 다니다 말레이시아와 발리를 거쳐 베를린까지 이사왔으니 결혼생활 9년동안 2년 넘게 살아본 집에 한 곳도 없다. 어쩌면 지금 사는 베를린 집이 처음으로 2년 넘게 사는 집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이사다니기는 힘들고 방이 하나가 더 필요하니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았는데 월세가 너무 비싸다. 지금도 세후 월급의 반 이상이 월세와 유지비로 들어가는데 더 큰집으로 가면 3분의 2를 집에다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결국 많이 올라 비싼감이 있지만 베를린에 집을 장만하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우리 맘에 드는 집이 나오는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소 5년에서 10년간 월세를 낼 생각을 하니 우리가 거주하는 목적이라면 이익은 아니어도 손해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갈 수록 집에 정이 붙지 않고 떨어져 나가는게 너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적응하기 위해 치던 몸부림과 고민과 상처들 때문에 이 공간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베를린에 산다는 것은 싱글이나 아이가 없을 때 아주아주 매력있는 선택이지만 아이가 있다면(그것도 3명) 조금 달라진다. 학교에도 넘쳐나는 외국인, 너무 다른/많은 문화들 블럭별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생활 환경과 수준. 노후된 아파트와 상대적으로 비싼 월세..

1년이 넘게 집을 알아보고 딱 맘에 드는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자로 올려달라고 했더니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올려달라고 하니 사실 다른 한 명이 대기자로 더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가능성이 없어 보았지만 다음 대기자로 예약을 하고 집으로 온 것이 작년 12월 초.. 그 뒤로도 괜찮은 집들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 집이 안된다면 베를린을 떠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쩐지 그 집이 우리집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우리 앞의 두 사람은 모두 계약을 취소하였고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그 사이 약간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우리 기준에 좋은 조건이라 지금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면 내년 지금 쯤이면 새 집에 있게 될 것 같다. 초등학교/유치원도 바로 옆이고 S반과 큰 공원이 걸어서 10-15분 거리, 상가 자체가 하나도 없고 물로 고립된 위치에 있어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 소음이 거의 없고 빈 공터가 없어 더 이상 건물을 만들기 어려운 동네, 신설되는 고속도로 입구가 근처에 생기고 도심지 옆이라 자전거로 이동도 용이한 곳, 생활에 여유있고 가족 중심의 가구들로 이루어진 동네이다. 베를린에서 찾아낸 흙속의 진주 같은 지역에 적당한 가격의, 우리 마음에 드는 위치에 넓은 개인 정원까지 있는 어쩌면 완벽한 조건의 집! 또 하나의 큰 라이프 이벤트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꿔줄지 정말 이번엔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싶다.

나와 정은이,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

미친걸까?

자꾸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건이 나쁜것도 아니고 인정을 못받는 것도 아닌데…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근 한달을 고민하다 오늘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다른곳에 지원해 보기로..
왜 사서 이 고생을 또 하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 결정한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일단 이력서를 정비 해 봐야겠다.

쫄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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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엄마아빠가 배로 보낸 소포가 쫄에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한 1년 안걸리다가 오래간만에 걸린것 같은데 아예 내야할 세금이 30유로 정도로 계산되어 왔다. 회사가 끝나고 세관에 들렀더니 박스를 열어보라고 하는데 역시나 별게 없었다. 세금은 내지 않고 무거운 박스를 들고 집에 오는데 너무 힘들었다. 차가 있었으면 아무 부담 없을 일인데 괜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이 상황도, 차를 사지 않고 이유없이 미루는 내 자신도.. 반면에 요즘 운동을 하려 노력하는데 이것처럼 좋은 운동 기회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또 사야할 물건들이 밀려간다. 물건 구매가 두근두근 기대로 다가오는건 언제쯤일까? 우리한테 소비는 쌓인 빨래더미같이 어서 처리해야 할 또 다른 일로만 느껴진다.

주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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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지우가 프란치스카 생일 파티에 가는 관계로 부득이 외출을 해야했다.
아침으로 빵과 만두를 준비하고 점심에는 미트볼로 먹었다. 밀린 빨래/건조를 마치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지우를 데려다 주었다.
제인을 만났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밀라는 프란찌네 고양이가 무서워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선머슴처럼 남자애들 하는것만 좋아하는 애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다니…
집에와서 쥬라기 공원을 함께 보고 공룡 놀이와 간지럼 놀이를 하였다.
시우가 장난기가 어찌나 넘치는지 울면서도 끝없이 놀려고 한다. 내가 그간 이렇게 놀아주지 못해서 더 재밌어 하는것 같다.
시우가 재미있으니 호야도 덩달아 신났다. 한참 놀다 볶음밥과 쌀국수를 배달시켜 먹었다. 점심에 먹니 마니 하더니 둘 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는다.
실제로 키를 잰 다음부터는 부쩍 키를 의식하며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 같다.
웃는 것도 힘이 들었는지 시우는 쥬라기 공원 보는 도중에 잠시 졸았다. 재미가 없었는지 애들이 나중에는 계속 장난을 걸어서 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었다. 지우는 프란치 엄마한테 이야기 해서 1시간 더 놀고오는걸로 해서 밤 늦게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호야가 자꾸 안나가려고 해서 자전거 라이트를 가지고 나가자고 하니 신이 났다. 프란치 엄마가 풍선도 챙겨주고 기분좋게 나왔다. 고양이 때문인지 지우가 눈이가려워 비볐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 애들 씻기고 양치하고 눕히니 9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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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유부초밥과 주먹밥을 만들어서 애들에게 주었다.
시우가 제일 빨리 먹었고 호야는 제일 많이 먹었다. 어쩐일로 지우가 가장 늦게 먹었다. 어제 생일파티에서 받아온 과자를 동생들과 먹겠다고 하길래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껌도 씹었다고 카라멜도 먹었다가 하는걸 보니 귀엽다. 바깥에 눈이 많이 와서 나가 놀자고 하니 다들 반응에 시큰둥이다.. 독일 애들은 이런 날씨에 더 나가 노는데..게으른 아빠가 될 수 없어 수영장을 가자고 하니 다들 신났다. 애들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 동안 집도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1주일 간 쌓인 빨래도 다 정리하고 울빨래도 한 번 돌렸다. 집을 출발하니 12시 50분.. 꼬맹이들 추울까봐 트레일러에 태웠다. 지우는 가는 도중에도 눈사람을 만들고 난리다. 수영장 가는 길에 있는 큰 공원에 썰매타고 눈놀이 하는 가족들로 바글바글하다. 겨울이라 수영장이 열었을지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지우는 혼자서 씻고 들어가보겠다고 난리다. 수영장에 들어가니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지우,호야,시우 모두 즐겁다. 어찌나 잘 노는지 정신이 없다. 야외로 연결된 수영장도 계속 운영중이라 모두 다같이 나가서 시원한 바람도 맞고 신이 났다. 그렇게 2시간 반을 쉬지않고 노니 모두들 입술이 파랗고 지쳤다. 애들 씻기고 옷 입고 나오는 것만 30분이 걸렸다. 또 눈밭을 걸어서 집에 가는 도중에 모두들 감자튀김이 먹고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지우는 저번에 지나친 되너집이 아쉬웠는지 그 곳을 콕 찝어서 이야기 하길래 되너와 감자튀김을 샀다. 감자튀김은 가면서 먹으라고 트레일러에 넣어주니 호야랑 시우는 또 신났다. 나랑 지우도 걸어가면서 하나씩 빼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 와중에 엘라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애 셋 데리고 수영장 다녀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자전거 끌고 가는 뒷모습이 좀 쓸쓸해보인다. 모두를 끌고 집으로 와서 남은 되너와 빵으로 밥을 먹으니 벌써 6시.. 수영복을 빨아 널어 놓고 집 정리하고 양치시키고 눕히니 8시다. 예상했지만 10분만에 모두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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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제 같이 놀아주는 것도 힘들지 않고 재밌다. 무엇보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그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바깥에 나가도 말을 잘 들으니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다. 1년전에 나 혼자 아이들 본다는게 얼마나 어려웠는지..시우가 어리고 말을 막 배울 시기에 엄마만을 찾아서 정말 힘들었다. 요즘은 잘 때 엄마 없이도 자고 밥도 잘 먹고 나랑 노는걸 즐거워 하니 어려움이 없다. 이번 주말은 나도 아이들도 재밌게 잘 보냈다. 주중에는 어렵지만 주말에는 꼭 이렇게 몸도 부비고 함께 있어야겠다. 길어봐야 저녁 8시까지인데 오늘은 조금 아쉽기 까지 하다.
날이 안풀리면 수영장, 풀리면 공원..할 일이 참 많은데 그 동안은 너무 힘들게만 생각했던것 같다. 주말동안 혼나는 아이들도 없었고 애들한테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지우의 ‘이번 주말은 최고였어!’ 라는 칭찬에 지친 몸도 마음도 모두 회복되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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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우리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큰 계획 없이도 작은 계획들 소소하게 이루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산다는 것

부부가 되어 같이 산다는 것..

내 것을 나눈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내가 받는 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내가 다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사실 부부 생활은 서로 손해 볼 것이 없는 관계다. 어차피 혼자 살았다면 모두 혼자 했을 일들을 나눠서 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자꾸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는 기복이 있고 그 주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생전 모르는 사람도 서로 돕는데 사랑을 맹세한 배우자를 위해 조금 더, 아니 무엇이든 못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원래는 혼자 사는 것이다. 원래는 모두 혼자 해야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옆에서 나눠주니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상을 다 줄것처럼 이야기 하던 그 마음의 조금만이라도 실천하려 한다면 부족함이 없울 것이다.

행복은

요즘들어 정은이와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 부부가 비슷한 걸로 보아 어쩌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의 근본은 결국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면 다음은 노력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지는 자신이 얼만큼 행복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로서 우리가 깨우쳐줘야 한다. 방향을 잡는 것은 아이의 몫이고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고 쉬워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부모로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넘쳐나는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채우는 것과 이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때로는 부족함이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진짜 환경일 것이다. 부모가 세운 목표에 아이를 맞추려 하면 아이가 생각하는 가치와 부모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다양한’ 경험은 부모의 기준에서 끝나게 될 확율이 높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더 어렵다. 처음에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그 느림 속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이의 노력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더라도 설령 부모가 시켜서 한다고 그게 정말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즐겁게 공부 했던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단 1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했기에 즐거웠고 잘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가진 능력도 비슷하다. 시작은 단 6개월이었다. 병특시작하고 회사일과도 관계없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6개월을 거의 밤샘하다시피 공부한 것으로 지금 15년을 먹고 살고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민학교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강하게 거부했고, 내가 하고싶은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난다. 즉 엄마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노력하고 시키려 했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철저히 무시당했고, 서로의 시간만 낭비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그 무엇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알려주고 싶다. 무엇이 있는지를.. 한국에서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늘 그랬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뛰는것은 너무 힘들었고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방향은, 때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방향을 정하고 거리를 가늠해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면 언젠가는 ‘스스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와주면 나중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더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부모로 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독립해서도 스스로 잘 판단하도록 키우고 싶다. 사립학교, 과외, 명문대..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것 같다. 스스로 사고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 자신도 때때로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은 내가 낳은 존재이면서 남인 존재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생각이겠지만 부모의 기준으로는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너의 인생을 살게 해 주는 것, 이게 부모로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고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제 자식을 남으로, 나와는 가장 가까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자. 내가 너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고 조언해 주고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무엇으로 만들 수는 없다. 네가 정한 의지에 나는 따라가고 도와줄 수 있지만 너를 내 의지에 맞춰 끌고갈 수는 없다. 길고 넓게 생각해야 아이의 시야도 따라온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좋다는 것만 다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를린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내가 얼마나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지와 의무교육이 인간의 일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5년 뒤를 상상하기 어렵다. 다양한 언어 구사능력과 사회적인 교류 말고 과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지..내가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보물찾기

지우가 첫 유치원에 갔을 때 유치원 앞에 깔린 자갈같은 돌을 무슨 보물처럼 주워서 엄마에게 매일 가져다 주던 때가 있었다. 유치원 버스를 타려다가도 얼른 뒤돌아 주저앉아 그 수 많은 돌들 중에 하나를 골라내어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었다가 집에 돌아와 환한 미소와 함께 엄마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매일 여러개도 아니고 하나씩..

지우는 이런 것들에 아주 관심이 많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꽃, 돌맹이, 껍질, 열매, 나뭇가지, 낙엽을 가리지 않고 모은다. 때로는 엄마아빠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만들기 재료로 활용한다. 요즘은 밤이 떨어지는데 학교가는 길에 바닥을 살피며 예쁜 밤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등굣길에 아무리 지각을 했어도, 다른 친구들은 장난치고 노느라 정신이 없어도 지우는 사뿐사뿐 걸어다니며 밤을 줍는다. 아빠와 인사하고 학교 쪽으로 가며 두리번 두리번..그러다 내가 있는지 확인하러 한 번 뒤돌아 보고, 또 웃으며 인사하고, 그리고 다시 두리번.. 그러다 또 인사.. 이렇게 세 네번은 해야 교실까지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지우를 지켜보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무엇을 만들지, 누구에게 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밤톨을 찾아 줍는 아이를 보며, 그리고 아빠가 인사하고 벌써 가버렸는지 확인하고 또 안심하며 웃는 아이를 보며 내가 저렇게 이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격하고 행복해 한다.

집안 곳곳에 지우가 주워온 여러가지 물건들을 발견할 때, 유모차 주머니나 가방속의 습득물들을 발견할 때도 그 마음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늘 봐도 부쩍 커버리는 지우가 너무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늘 지우가 주변을 살피고 무엇이든 보물로 만들 수 있게 여유롭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독일에 사업 비자로 블루카드 획득 후 영주권

“독일로 이민을 가고 싶은데 이민 대행 하는 곳에서 사업비자로 온 다음 2년뒤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요즘에 가장 많이 받는 메일이라 답변에 양해를 구하고 블로그에 정리하기로 했다.

먼저 꼭 알아야 할 부분은 ‘독일은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는 것이다. 모든 일들이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처리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나도 될것이라는 기대를 하는것은 매우 위험하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 일처리가 저렇게 마음대로라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처리 된 사람들이 운이 좋았던 것이다. 대부분 담당자의 ‘실수’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을 일반화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나중에 전해 들은 사람은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가족과 이주에 관계된 것이라면 사소한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그래서 이렇게 글을 적고 있다).

독일로의 이민을 간다는 말은 최소 영주권, 이후 시민권 획득을 하겠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독일과 EU국가들은 타 국가에서 이민이 쉬운 나라는 아니다. 이민(영주권 획득)을 위해 몇 가지 일반적인 방법이 있는데 모든 방법을 떠나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 60개월 이상 연금납부 실적이 있을것
    • 60개월 이상 소득세 납부 실적, 건강보험이 있을것(이건 확실하지 않다)
  • 가족을 부양할 만한 적당한 크기의 집에 살고 있을것
  • 가족을 부양할 만한 수입이 있을것
  • 모두 독일에서 인정하는 건강보험에 들어있을것

대충 이런 식이다. 여기서 상황에 따라 예외가 생긴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유학생활 후 독일 거주자에게는 저 기간을 줄여 준다던가.. 말하고자 하는건 바로 저것이 독일에서 일반적인 한국인이 영주권을 신청(획득이 아님)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우리가 비자로 통칭하는 거주허가가 있는데, 60개월을 소득세를 내고 싶다고 해도 거주허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주권 신청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거주 허가를 획득하는게 최우선이다.

영주권도 거주 허가의 일종이다. 사업비자, 프리랜서비자, 블루카드 모두 거주허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은 각 거주허가가 명시하고 있는 취직 가능 여부, 배우자 소득활동 여부와 거주 허가 기간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위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60개월이나 60개월까지 갱신 가능한 거주 허가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갱신여부는 외국인청에서 판단하게되며 대부분 거주 허가 신청시와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한다.

이 중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영주권 신청 자격이 생기는 거주 허가가 블루카드이다. 블루카드는 21개월동안 해당 자격을 유지하고 독일어 B1자격증이 있다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독일어 자격증이 없더라도 33개월이 지나면 역시 동일하게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모든 거주허가를 포함해 영주권 신청 자격이 생겼다고 영주권을 발급해 주는 것은 아니다. 수입, 생활, 범죄 경력등을 따져 심사 후 영주권이 발급된다. 나도 아직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소한 법규 위반이나 범죄 사실이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거주 허가로 체류하는 동안에는 법규위반이나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독일에서 대부분의 공공업무는 사람에 의해 처리되고 그 사람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고 한 번 담당자가 배정되면 다른 사람과 협상의 여지도 없어지는게 일반적이다.

정리하자면 공무원도 사람이라 기분에 따라 혹은 실수로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100%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실수 혹은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이며 만약 내가 정식으로 진지하게 일을 요청하면 그들도 원리원칙에 따라 1%의 봐줌도 없이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독일에 와서 운전면허를 교환하러 시청에 갔는데 나보고 이것저것 서류로 트집을 잡더니 내가 가져간 증명사진이 2년이 넘었으므로 다시 찍어오라고 퇴짜를 놓았다. 내 눈에는 트집잡기로 보였지만 그것이 원칙인것이다. 2년도 더 된 내 여권에 붙어있는 사진을 가져갔으니 변명도 핑계도 댈 수 없었다.

반면 와이프가 면허 교환을 하러 갔을땐 이런 경우를 대비해 사진을 새로 찍어서 집에서 인쇄해 갔는데 다른 담당자가 이 사진(새로 찍은)은 너무 누렇다면서 여권에 있는 사진과 같은 사진을 쓰자고 했다(역시 당연히 2년이 넘었지만..)

이런 식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동일한 조건으로 비자를 받고, 영주권을 받고 누군가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원칙적으로 되어야 할 사람이 안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확실한 원칙에 기대는게 나중에 뒷탈이 없고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도 이러한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사업비자로 2년 뒤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모른다… 이민 업체에서 말하는 사업비자가 진짜 사업비자라면 저건 거짓말이다. 사업비자로는 60개월이후에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고 사업비자는 1,2년 마다 갱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마 지사설립 형식을 통해 해당 지사에 취업하는 식으로 블루카드를 신청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방법은 내가 작년에 시도해 보려 했던 방법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에 나는 직원이고 독일에 취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사히 블루카드를 받고 열심히 독일어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면 영주권도 따고 모든게 행복할까?

아니다.

블루카드를 받는것도 확실치 않다. 사업체에 대한 조사도 할 것이고 여러가지로 독일에서도 이런 경우를 걸러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카드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사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취업은 했지만 실은 본인의 회사이기 때문에 본인의 급여를 본인이 주어야 한다. 블루카드를 받기 위한 연봉 하한선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3-4만 유로였던것 같다. 월 급여로 3000유로라고 한다면 사실 4대 보험의 회사 부담금까지 해서 4000유로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내 돈 4000유로를 다시 나한테 주는데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2000유로 남짓이다(세금, 보험 때고).

2000 유로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한국에서 추가적으로 송금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21개월을 버티고 영주권 신청을 했다고 하자.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왜냐면 심지어 시민권을 준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돈을 보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독일에서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결국 독일에서 제시하는 영주권 신청 자격은 어떻게 보면 신청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민 업체에서 말하는 이런 장밋빛 조건을 따라가다보면 그들에게 내는 수수료, 독일에 2중으로 내는 세금, 지내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때 단순히 ‘어? 이게 아니네?’ 하고 돌아서기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 될 것이다.

정확히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저렇게 들어가는 돈이 최소 2-3억이다. 2-3억을 쓰고도 아무런 수익이 없다면 과연 독일 영주권이 가치가 있을까?

원래 사업 계획이 있다거나, 한국에서 수익모델이 있다거나, 돈이 많다면 사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시도하기엔 너무 위험이 크다. 지속적인 수입이나 특별한 계획, 기회가 있지 않다면 블루카드를 통한 취업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비자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생활이 너무 불안하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다가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자가 해결되면 이젠 돈이다. 월세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저축하며 돈을 모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일지도 모른다(가족과 함께).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이곳에서 한국인 부부가 모두 취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이 안정되고 수입이 안정되고 나서야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 할 수 있다. 비로소 한국에 있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된 것이다.

돌려 말하면 수입과 비자는 독일 이민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가족 전체의 삶이 불안할 수 있다. 싱글이야 무엇이든 경험이고 배우는 것이니 무엇이라도 좋다. 하지만 가족은 조금 다른것 같다. 가족과 함께 이주하려는 분들은 무엇이든 직접 확인하고 나서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