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예약

3월 6일 쿠알라룸푸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말레이시아에어라인 예약.

남들은 그냥 가는 유럽여행 준비도 몇달씩 한다는데..나는 아직 어디에 살아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서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준비 없이 가는것이 맞는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나에게 독일로 가기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  3개월,6개월, 1년이 있다면 나는 무슨 준비를 했을까? 거기다 아이들이나 집안일, 돈버는 일에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기간이 1년정도로 길었다면 어학공부를 했을테다.

기간이 6개월 정도였다면 역시 어학공부를 하면서 여러 준비를 했을것 같고.

기간이 3개월 정도였다면 어학은 시간날때 하고 다른 준비를 했을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기간에는 가족,친지,친구와 이별하고 하는 시간도 포함되었을테지..

그리고 집을 구할 준비를 했을까? 집은 사실상 가서 직접 보고 구하는게 좋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도 준비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는 집을 구한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차를 미리 구매할수도 없다.

계좌 개설이나 비자신청, 회사설립 또한 집을 구한 다음에 할 일이다.

결국 준비기간이 길었어도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리 많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준비한답시고 또 1년이라는 시간을 미루었을테고..결과적으로 그 기간에 우리가족은 더 힘들었겠지..(집안일도 안돕고 돈도 안벌고 어학비용에 한국에서 생활비 등..)

어찌보면 가장 무모해 보이지만 독일 가는 준비라는게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싶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서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정도는 생각해야겠지만..

지역은 뮌스터나 에센을 생각하고 있다.

두 곳 모두 NRW 주에 위치하고 있어서 창업시 NRW 주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세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뮌스터는 가본적도 없고 에센은 가본적이 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하기가 힘들다.

예전에 용인 동천동에서 살다가 이사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직장위치나 아이들 학교와 관계없이 이사가 가능했던 우리는 어디로 이사할지 정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말 그대로 아무곳이나 살아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을 후보지로 놓고 이사갈곳을 정해야 한다는것…그곳에 살아본적도 없는 경우..구경하러 갈 엄두도 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리는 ‘전원주택’이라는 키워드로 이사갈 곳을 알아보았고, 단지형으로 이쁘게 지어진 발트하우스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살아갈 곳을 찾아야 한다니 이건뭐…

그래서 일단 회사 설립시 지원이 되는 NRW 주로 범위를 좁혔고, 그 중 집세가 싸고 자연환경이 좋은(독일은 다 좋아 보이지만) 뮌스터 + 에센 두 도시로 압축했다.

하지만 역시나 감이 오지 않는다. 에센은 확실히 집세가 싸 보이는데 뮌스터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정착할 집을 찾기전에 한두달정도 머물 임시 숙소를 먼저 구하려 하는데 단기로 집 찾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독일에 들어갈 날이 9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ㅎㅎㅎ

그래도 독일 변호사에 보낸 메일에 답신도 오고 사보험 가입 관련된 견적도 받아보았다.

비자 발급이나 회사설립에 대한 절차, 비용, 기간은 NRW 투자공사를 통해 들었던 내용과 비슷했고, 관광비자로 입국 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사업계획서 작성을 맡기는 만큼(기본 틀은 직접 제작) 비용이 추가될것 같다..

사보험은 5인 가족 기준으로 1000~1500유로를 매달 내야할것 같다.

물론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가입할 수 있을것 같은데..어디까지 커버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1500유로면 집세보다 더 비싸고 사실 어마어마한 비용인데, 대체 독일에서 식구가 많은 사람들은 자영업을 할 수 없다는건가? 아니면 다들 이 비용을 내고 자영업을 한다는건지..

건강보험 내다가 망하게 생겼다.

별다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싼 보험을 들던가..

아니면 자기부담금을 높이던가 하는 방법으로 보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부담금을 높이면 죽는 병이 아닌이상 보험을 들지 않은것과 같은 병원 비용을 내야할수도 있다.. 아이들은 좋게 우리는 안좋게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

한국에서는 자기부담금 = 회사부담금까지 했을때에도 36만원 정도였는데, 물론 한국은 자기부담금 비율이 조금 있지만 여러가지로 고민되는 부분이다. 뭐..이거야 돈을 벌면 해결 될 수 있는 일이고 돈을 못벌면 건강보험료 못내는것과 관계없이 독일에서 쫓겨나게 되겠지..

중요한건 비행기표를 사버렸다는 것..

독일에서 당분간 이동을 위해 푸조리스나 렌트카를 이용할까 했는데 차라리 차를 사버리는게 좋을것 같기도 하다. 관광비자 상태로 차를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정되어버린거다..이제 임시숙소를 빨리 구하고..못구하면 호텔로. 참..우리는 여름옷밖에 없구나..독일 가기전에 공항에서라도 옷을 사야겠다..

인원수가 많으니 뭘 해도 돈이다 ㅠㅠ 그래도 잘 될거야라고 생각해야지 별수없다.

발리로..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은 조금 길었다. 휴양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기도 좀 어려웠다. 그저 맛난거 먹으러 이것저것 돌아다닐 뿐..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쿼터가 초과되어 인터넷 사용이 굉장히 어려웠다.

쿠알라룸푸르는 2-3주정도 있었다면 딱 좋았을 도시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2-3달 정도 있었어도 좋았을 뻔했다.

1월 2일 쿠알라룸프르에 와서 31일까지 세타팍에 있는 아파트에 있다가 airBnB 를 통해 KLCC 근처의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2월6일까지 빌렸는데, 이 때가 음력 설 연휴가 마무리되어 비행기 값들이 굉장히 싸지기 때문이다.

세타팍에 있을 땐 집은 넓고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왕왕 울리는 소리와 바깥 도로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굉음, 아파트의 층간소음으로 정말 미칠것 같아서 KLCC의 스튜디오로 가는것을 은근 기대했는데…밤이 되어 자려고 보니 저녁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클럽의 음악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쿠알라룸푸르의 강남같은 곳이라 때때로 슈퍼카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건 보너스로…

푸켓으로 갈까 발리로 갈까 페낭으로 갈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목적지를 발리로 잡고 나서도 숙소를 어디로 정할지..한곳에 계속 있을지..여러곳을 돌아다닐지..부모님을 불러서 같이 있을지.. 2주 정도를 매일 새벽까지 고민했던것 같다.

결국 2월6일부터 9일은 발리 북쪽의 빌라, 9일은 발리 서쪽의 빌라, 10일은 발리 중심의 우붓에서 머물기로 하고 렌트카까지 예약했다. 모든 숙소는 airbnb를 통해서..

2월 6일 아침 9시20분에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새벽 5시에 세계최고 택시브라이버인 데반을 불렀다. 5일과 6일 거의 잠을 못잔 나는 2시간정도 쪽잠을 자고 데반의 전화를 받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 후 발리 덴파사 공항으로 출발! 아이들이 잘거라 생각했는데 세녀석 모두 3시간의 비행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다….

발리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빌렸는데 우핸들..수동..그리고 발리의 엄청난 오토바이와 열악한 도로 ㅠㅠ 네비게이션도 없어서 일단 심카드를 사려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더구나 발리 북쪽과 서쪽은 대형 마트도 없다고 들어서 미리 까르프를 들려서 가려고 하는데 정신없이 가다보니 까르프 간판발견! 겨우 까르프에서 점심을 먹고 장을 보고 심카드까지 사서 출발! 하지만 기름이 없어 현금도 좀 찾고 기름을 넣은 다음 목적지인 북쪽으로 출발했다.

거리상으로는 80키로정도밖에 안되는데 평균 30키로정도로 서행해서 가야만 하는 상황에, 발리 중간에 있는 아궁산을 관통해 가는지라 어마어마한 오르막,내리막,구불구불 코스를 통과하다보니 5시간정도 운전을 해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좀 제대로 쉬면서 다음 일정을 준비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벌써 눈깜짝할 사이 5일이 지나버렸다.

어제는 컴퓨터가 고장나서 부팅용 USB스틱을 사러 20키로 정도 떨어진 도시에 갔다가 경찰한테 잡히기도 하고..전혀 인터넷카페같지 않은 현지인들이 사용하는(여기는 발리에서도 시골) 피시방에 들려 겨우 컴퓨터를 고치고..오늘은 지우가 호야랑 놀다 처음으로 이빨이 빠졌다. 올해 빠질 이빨이긴 하지만 예고도 없이 이렇게 빠져버리다니…

하여간 이제 정신을 좀 추스렸으니 발리에서 한달간은 알차게 놀고 여러가지 준비도 조금 알차게 해 봐야 겠다!

독일 법인 설립절차

독일에 사업체를 만들어 적법한 비자를 받는 대략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관광비자입국-2거주지임대-3사업거주허가(비자)신청-4사무실임대-5사업자등록

4,5번은 하나로 묶어서 보아도 무방할듯하다.

참고로 국내에서의 법인 설립절차는 법무사를 통해 대행하지만 독일은 변호사를 통해 대행할 수 있다. 관련 변호사를 선임 후 권한을 위임하여 법인설립 업무와 비자 신청업무를 대행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른 변호사 수임료가 대략 비자관련하여 2500유로, 법인(GmbH)설립시  2000유로정도가 소요된다.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본금이 납입되어야 하는데, GmbH 설립시 최소 자본금은 25,000 유로이다.

법인 설립과 운영에 대한 부분은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법인의 성격을 잘 모르고 납입한 자본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것은 횡령등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비자 발급만을 위해 자본금 납입 후 개인 용도로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것이 좋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사업거주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 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독일에서 어떠한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비자 발급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부분은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 아니므로 추후 실제로 변호사를 선임하게 된다면 다시 정리해볼까 한다.

법인 설립시 변호사 수임료와 공증,번역료등 대략 4500유로~5000유로가 소요될 것 같다. 이는 초기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고,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사무실 임대료, 유지 운영비용, 인건비, 세무비용 등이 고정적으로 지출될 비용이 될 것이다. 항목은 우리나라와 똑같지만 금액의 단위가 커질수밖에 없을것 같다. 대략 1000유로를 우리나라 100만원정도로 생각하면 지출의 규모가 비슷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에서 주거 및 생활비용과 한국의 4대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소득세등의 지출이 예상된다. 독일은 소득세율도 높지만 법인의 법인세율과 부가세율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수익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단순히 사업뿐 아니라 지속적인 사업을 영위해서 독일에 정착을 목표로 한다면 더욱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자료 조사 중 한 가지 모르고 있던 부분이 건강보험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독일의 건강보험은 공보험과 사보험으로 구분된다. 사보험이 좀 더 좋지만 그만큼 비싸고 가족단위로 가입이 불가해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 보험에 들어야 한다. 이 보험가입은 아마 비자 발급시 의무적으로 필요한 사항일 것이다. 꼭 나가야 하는 돈인데, 사업체의 대표인 경우 공보험 가입이 불가해서 무조건 사보험으로 가입해야한다. 월 보험료가 3인 가족기준으로 900유로 전후라고 들었는데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이게 회사 부담금을 포함한 금액인지 개인 부담금만 나오는 금액인지를 더 알아봐야 하는데 애가 셋인 나로서는 주거비용과 함께 굉장히 부담되는 금액이 아닐 수 없다. 회사부담금을 포함하는 금액이라면 어느정도 독일 물가를 감안해 인정할 수 있을듯..

독일의 연방주 중에서 NRW 주가 외국인 직접 투자유치에 적극적인데, 이곳에 회사를 설립하면 NRW 투자공사로부터 초기 지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비용 규모는 3000유로이다. 초기 회사 설립비용 5000유로에서 2000유로정도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NRW 주의 유명한 도시는 뒤셀도르프,본,쾰른,에센,도르트문트,뮌스터,아헨,레버쿠젠 등이 있다. 주로 쾰른이나 뒤셀도르프에 기업들이 많이 있는듯하다. 내가 어릴때 잠시 살았던 곳도 도르트문트이고 주변 도시들도 몇번 가본적이 있어 조금은 친숙하다.

회사를 만든다면 NRW 주의 한 도시나 외국인이 많은 베를린쪽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NRW 투자공사 한국지사를 통해 독일의 변호사를 소개받은 상태이고 이번 주 중으로 변호사에게 여러가지 문의를 해보려 준비중이다.

자칭 말레이시아 최고 택시 드라이버를 만나다.

어딜가든 택시를 타야하니 만만한게 KLCC 라고 오늘도 KLCC 로 갔다. 점심,저녁까지 먹고 시우의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서서 집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았다.

지난번 집으로 오는 택시에서 어마어마한 나프날렌 냄새 습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KLCC 에서 돌아올땐 무조건 모범택시를 타기로 했는데…막상 모범택시들이 줄줄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망설여진다.

마침 길 너머에 일반 택시 한대가 섰는데 나는 그 앞의 일반택시를 타자고 했고, 정은이는 그나마 차가 좀 좋아보이는 뒷 택시를 타자고 했다. 한국같으면 뒷택시 아저씨가 앞택시를 타라고 했겠지만 여긴 그런것 없다.

뒷 택시를 타려니 문을 안열어주고 창문만 삐죽 연다. 방향이 다르면 안태우겠다는 표시..목적지를 말하지 ‘오케오케’ 하면서 문을 열어주는데 우리가 줄줄이 타니까 웃는다.

나는 살짝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출발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의 발음 교정으로 시작했다. 

“setapak 은 세타팍이 아니라 슷타팍으로 말해야 해! 하지만 난 다 알아들었으니 문제없어!”

“브라더, 시스터 너희들은 행운이야. 말레이시아 최고의 택시드라이버를 만났으니까”

“오늘 내가 너희를 태우게 되어 너무 고맙고, 말레이시아에 와 준게 고맙고, 여기서 만나게 된게 고맙고..뭐가 고맙고……..고맙고 고마워. 모든걸 고마워 해야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택시 기사라는 사실이 고마워 우리는 우리 삶에 고마워 해야 해”

“우리가 오늘 만난건 우연이 아니야. 신이 정해준거야.”

“난 별명이 많아. 택시킹, 슈퍼택시드라이버, 미스터택시, 전설의 택시기사……..모두 손님들이 지어준 별명이야”

“어젠 어떤 외국인 교수를 태웠는데 그사람이 나같은 사람 처음봤다고 그랬어.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시작부터 끝까지 그 에너지로 이야기 해. 아마도 세계 최고는 모르지만 말레이시아 최고는 확실하다고 했어”

“나는 데이븐이야 그냥 편한대로 불러. 난 벌써 내일 공항만 11번 가야해. 벌써 1000링깃 이상을 벌었어”

“내가 2년간 태운 손님이 수천명이야. 인도,스리랑카,한국,대만,중국,일본……”

“바투케이브 가봤어? 아니라고? 오마이갓..다음주에 거기서 어마어마한 축제를 해! 꼭 가봐”

“날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최고의 택시드라이버, 미스터 데이븐이야”

“무슨일 있으면 연락해 내가 가이드 해 줄게”

“반딧불 투어는 가봤어? 아니라고? 오마이갓..바투케이브 축제가 최고고 이건 그 다음이야 꼭 해봐”

“나무 하나에 반딧불 5000마리가 있어. 이 투어를 하면 네셔널지오그래픽 채널속에 들어있는 기분일거야”

“내 택시를 탄 사람들 모두가 나를 최고의 택시 드라이버라고 했어. 이건 논쟁의 여지도 없어”

“택시계에 오스카상이 있다면 내가 탔을거야”

“얼마뒤엔 내가 최고의 택시 드라이버로 방송도 탈거야”

“택시 드라이버들에게 나처럼 하면 좋겠다고 강연도 했어”

…..

이런 어마어마한 자기 자랑과 뭔가 느낌이 오는 자기 철학을 정말 쉬지 않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처음엔 장난으로 듣다가 계속 감탄만..어쩜 저렇게 말을 잘하고 재밌게 할까..

허풍으로 보이는건 절대 아니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정말 신나고 재밌게 일하는 구나..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가 울자 애들 우유 좀 주라그러고, 우유가 없다고하니 황당해하면서 우리를 또 혼낸다. 우유 꼭 가지고 다니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빨리 운전해서 가야겠다고 한다.

집에 오는 내내 웃으면서 즐겁게 왔는데 집앞에 도착해서 같이 내린다. 11링깃정도가 나왔는데 지갑을 뒤적이다보니 내 손에 12링깃이 들려왔다. 15링깃정도 줘야 하나..아님 20링깃줄까? 하는 생각하는 찰나에 이 아저씨가 자기 지갑을 열더니 우리 애들한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1링깃씩을 준다..헉…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어버버 하고 있는 사이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그럼 나는 얼마를 줘야 하냐고 하니 이걸로 좋단다..

몇 번이나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도 가는걸 보고 집으로 들어왔다.

과연 세계 최고의 택시드라이버를 꿈꾸는 남자 다웠다. 더 소름끼쳤던건 꿈만 꾸는게 아니라 이렇게 하루에 조금씩 그 꿈을 향해 다가간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어떤가..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참 부끄럽고 창피할 정도로 나는 쉽게 쉽게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분야든 세계 최고를 꿈꾸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 분명히 몇 년 뒤에는 방송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택시 드라이버가 되어 있을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이용할 장거리 택시와 주변, 커뮤니티에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또한 데이븐이 지금까지 만나본 택시 드라이버 중 최고였고, 앞으로도 최고일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4 말레이시아 도착!..오늘까지의 기록..

출국 전 김해공항에서.. 뱅기표 싼거 산다고 부산까지 가느라 출발도 전에 지쳤다..

6시간 20분의 비행은 끝이 없이만 느껴지고..어휴..애들 데리고 유럽은 어떻게 가는건지..ㅠㅠ

지우,호야만 데리고 나가서 첫 식사. 말레이 대표음식인 판미를 먹어봤는데 비려…비린데 응? 맛있네??? 결국 다 먹고 나왔다.

그리고 나서 온 가족이 마트로 출동! 이 날 비를 쫄딱 맞아서 시우가 감기에 제대로 걸렸다. 호야도 코를 질질…

콘도에 수영장 답사 출발~!

바로 수영복 챙겨와서 수영 시작! 지우야 당연히 좋아할거라 예상했는데 호야도 엄청 좋아한다. 지난번에 나랑 둘이서 놀러갔단 이천 테르메덴에서의 기억이 좋았나보다.. 둘 다 안나오려해서 고생했다.

콘도 근처에 있는 페스트발 몰 방문! 비 쫄딱 맞고 택시타고 다녀온 져스코(AEON으로 바뀜)보다 더 좋았다. 밥은 시크릿레시피에서..

책좀 보라고 했더니 당연한듯 자리잡는 지우..

누나 일어서니까 누나 따라하는 호야.. 둘 다 글자도 모르면서 ㅎㅎ 웃기다.

KLCC 방문. 분수보고 신났다.

맛나다는 마담콴에서 점심. 정말 맛났다~ 메뉴를 잘 골라서 더 잘먹은것 같다.

한없이 화려하기도..한없이 지저분하기도 한 말레이시아. 어디가 평균일까..

현지인 포스로 노상 공연 관람하기.. 무리한 외출로 시우 컨디션이 많이 안좋다.. 돌아오는 길에 잡아탄 택시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쩔어…기절시켜서 납치하려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 외출시엔 어지간하면 모범택시 타는걸로..

풍문으로만 들어온 바닐라 코크에 도전.. 참 동남아 틱한 바닐라 맛이었다. 콜라의 청량감이 희석되어버리는…

베이스캠프가 가지는 의미

올해 7월까지 전세계약기간이었는데 집의 하자로 일찍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마침 추운 겨울인지라 따뜻한 나라에서 독일가는 준비를 하기로 하고 급하게 정해서 나온 말레이시아.

어제는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KLCC 페트로나스 쌍둥이 타워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관광을 하고 온 셈인데, 숙소에 돌아오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에 일본에서 1년여간 회사를 다녔을때도 그랬지만, 여행으로 어딘가를 갈 때와, 실제로 살아보기 위해 갈 때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이 곳 말레이시아도 단지 여행으로만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아주 복잡하다.

여행이라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기도하고, 모든 스케쥴이나 생활 리듬이 기존과는 다르게 변하지만, 생활이라면 생존을 위한 고민을 멈출수가 없다.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마트에 간 것이다. 마트에 가서 아이들 해 먹일 식사 재료를 사고, 그 비용을 파악하고, 숙소 근처의 식당과 편의시설 등을 숙지했다.

여행이라면 그냥 맛집 찾아다니고 쉬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다르다..

만약 지금이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아마도 독일에 관광비자나 구직 비자로 바로 들어갔었을텐데, 그랬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러한 시행착오나 어지러운 생각들로 초기 적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것 같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가장이 겪는 시행착오는 가족의 입장에서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

임시 숙소의 위치, 숙소의 규모, 적응때까지 필요한 물건, 마음가짐, 비용 등.. KL 에 와서 5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부분은 한국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이제 독일에 간다면 이러한 부분은 미리 준비해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이곳에 와서 느끼게된 좋은점 하나는 결국 저질러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들 일로, 회사 업무로, 집안일로, 기타 여러가지 일로 독일로 가겠다는 계획의 우선순위가 미뤄졌을텐데..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독일로 가기 위해 해야할 일들이 최우선 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떠돌며 살 수는 없으니까..

미루고 미루던 프로젝트 마무리부터 이력서 작성, 언어공부까지..이제는 우선순위를 낮춰 미룰 이유가 없어진것이다. 지금 하려고 보니 이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한국에 있으면서 언어공부도 하고 취직준비, 혹은 사업준비를 하고, 또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도 하려고 했었다니..

이번주와 다음주는 조금 집중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한달이 넘게 손을 놓고 있었더니 다시 집중하기가 매우 어렵고 초기에 세웠던 설계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아졌는데 일단 마무리를 할 생각이다.

말레이시아 KL 을 베이스캠프로..

‘지금 이대로 좋은 걸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십 수년째 해온 고민들과 함께,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최대한 붙어있자는 생각의 결과로, 지금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에 있다. 차도 집도 짐도 모두 정리하고 나중에 ‘어딘가’에 정착하면 받아 볼 택배박스 몇 상자만 남기고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왔다.

 

‘애들 학교는? 한국에 집은? 일은? 돈은? 왜 말레이시아야? 언제 돌아와?..’ 수 많은 질문에 우리 스스로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편도로, 딱 한 달간의 숙소만 잡아서. 꼭 이유를 찾아보자면, 여긴 따뜻하고, 휴양지보다는 싸고..뭐 그런 이유들..

 

맨날 말로만, 머리로만, 계획만 세우다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어버리고..정보를 찾는답시고 검색해 보면 수년 전 내가 쓴 글이 검색된다. 그저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시간들이 ‘오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 수록, 머리는 편안해지지만 가슴은 불안해진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세우는 계획때문에, 더 큰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일단(?) 말레이시아로..

개인적으로 ‘일단’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지만 상황이 그렇다.

이 집을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사실 마음의 결심을 앞당겨 준 계기가 된 것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는 단계가 와버린것일지도..

집의 하자 때문에 계속 살수는 없고..동네와 이웃이 너무 좋아 몇 년 더 머물고 싶었다가도..치솟는 전세값과 떨어지는 집값(하지만 사기엔 비싼)이 여러가지로 위협이 된다.

겨울이고 하니 바로 독일로 가기보다는 따뜻한 동남아에서 겨울을 보내며 독일로의 도전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동남아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푸켓이 가장 유력한 후보에 올랐으나, 휴양지도 아니고 우리가 잠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쿠알라룸푸르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이제 여기서 미뤄둔 포트폴리오도 완성하고 이력서도 써보고 하고 있는 사업의 사업성도 검토해볼 수 있을것 같다. 

숙소는 한 달로, 비행기는 편도로 끊었다. 혹시몰라 자동차는 처분하지 않으려 했는데 출발 전까지 한 번 팔아볼 생각이다. 내일 집을 비워야 하는데 이삿짐 센터를 이용하지 않으니 아직도 처리해야 할 짐들이 산더미다.

여행으로 한 달이라면 참 길고 편안하게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은 한 달이라니 참 짧게만 느껴진다.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그리고 다음은 어디일지. 과연 그곳에 있는 동안 어느 정도 발걸음을 할 수 있을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이사? 이사!

처음에 예상했던 순서는 아래와 같았다.

1. 독일에 취업혹은 지사설립으로 합법적인 비자 취득

2. 독일에 주거지 구하기

3. 가족부르기(혹은 1단계부터 같이 가서 있기), 이사

인생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인지 이제는 계획이란걸 세우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 한창 이삿짐을 싸고 있다. 포장이사를 부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어디로 이사를 갈지 우리도 모르기 때문이다…..

애를 셋이나 데리고 이게 무슨 무모한 짓인지..

우리 부부가 합의를 본 부분은 딱 하나이다.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자!’

그리고 줄창 이사준비를 하고 있다.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살림은 팔거나 버리고 있다(세탁기, 냉장고, 그랜드피아노, 캐비넛 남았네요~ 필요하신분 연락..ㅎㅎ). 오늘은 심지어 해외로의 배송을 염두해두고 우체국 EMS 박스로 9박스정도의 짐을 포장했다. 대부분 아이책과 장난감, 우리 앨범등이었다.

이제 남은건 옷밖에 없다. 우리옷은 언제든지 버려도 될 수준이고(오히려 추억이 많아 버리지 못함), 아이들 옷도 크게 미련이 없어 상황에 맞춰 정리하면 된다.

집주인한테는 다음주에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 했는데 정확한 답이 없다..

그래도 우린 집을 비우고 나가려한다. 어디로? 아직도 모른다 ㅠㅠ

그냥 지금까지의 상황이 그렇다.

심지어 다음주는 막둥이 첫돌인데…

여튼..실질적인 독일로의 이사 정보(독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준비만..)

1. 해외이사 비용 = 프랑크프르트 기준 850만원정도

– 배를 이용한 이사, 컨테이너 1대 분량 기준이다.
– 저 비용이면 독일까지 포장이사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짐을 다 싸주고 독일의 집까지 배송해 준다(풀어주는건 잘 모름)
– 일정이 맞지 않으면 보관서비스도 해 주는데 한달에 20만원정도..
– 독일로의 이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컨테이너의 일부만 사용하기 어렵다(짐이 조금 있어도 비용 할인은 별로 없음)

2. 해외 택배 비용(EMS)

– 비행기는 1주일정도 소요되며 20kg 한 박스에 약 16만7천원
– 배는 7-8주 소요되며 20kg 한 박스에 약 5만3천원
– 비행기의 경우 국제택배 할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20% 저렴하게 보낼 수 있다(https://www.emssale.co.kr/)
– EMS 박스 기준으로 6호박스/무게 20kg 이상은 배편으로 보낼 수 없다.
– 비행기는 6호박스/30Kg 까지 보낼 수 있다.
– EMS 박스는 우체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무료배포는 하지 않음)

3. 독일은 전압은 같이만 hz가 달라 모터를 이용하는 제품은 고장의 위험이 높다.
– 모터를 사용하는 제습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은 현지에서 구하는것이 좋다.

지난 한달간 중고나라에 대부분의 살림을 파느라 블로그에 글쓰기도 어려웠다.
이번주에 대부분의 이사준비가 끝날것 같고, 일단 푸켓에 장기로 머무는것을 고민중이다.

독일로 가는 이유,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

독일에 가려는 이유 중의 반은 한국에서의 문제점 때문이다. 즉, 독일이 좋아서 가는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점이 많이서 이기도 하다.

이전의 글을 보고 독일 이민을 희망하는 몇몇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다들 비슷한 이유였고, 우리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독일에 가고 싶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사랑하는 와이프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이다. 

한국에 살면 ‘대입’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럴수록 아이들 스스로가 힘들어진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해 오는것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한다. 대입에 성공한 뒤에는 ‘독립’의 문제가 따라온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미숙한 상태로 성인이 되어버리는 우리나라 교욱제도때문에(개인적으로 입시경쟁에 따른 가장 큰 부작용으로 생각), 실질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가 25세~30세 전후로 늦춰져버린다. 이는 그 개인에게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지만 몸만 어른이고 정신은 미성년인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의 인생에도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많으면 35살까지 아이들 데리고 있어야 한다니…

지금 내가 34살이고 막둥이가 2살인데 33년뒤면 67세까지 자식 뒷바라지를 해야한다는 말이다.

물론 대학 등록금과, 어쩌면 대학원이나 유학비용, 결혼 비용까지 생각하면..(심지어 나 본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빼고) 앞날이 너무 막막하다(내 노후 준비는??)

더 황당한건 그렇게 키워봐야  잘하면 서울대쯤이나 나와서 의사나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노력과 비용이면 미국에서 MIT 나 하버드 쯤은 껌먹기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대학을 나오면 못해도 세계를 움직이는 무언가를 해낼수도 있을것 같은데 말이다.(못해도 서울대 나온것 보다는 잘 할것 같다. 같은 노력을 한 경우에..)

그러고 나면 내 자식들은 기본으로 몇 억씩 하는 집(그것도 닭장같은)을 사기위해 은행의 노예가 될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행복이나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톱니바퀴로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성취나 행복,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서 국가가 발전해 간다면 조금의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을것 같은데, 이 부분은 거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는 기분이니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내 자식들에게 일어날 이 모든 불행한 일들이, 그나마 나와 와이프가 우리의 모든 인생을 희생하는 조건으로 만들어 진, 그나마 최선이라는 것이.. 정말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그다지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공교육만으로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이 가능했으면 좋겠고, 입시위주의 교육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부모가 이런 교육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교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도록 모두가 배려해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우리, 부모의 삶을 찾을 수 있다. 자식이 중심이 되어 굴러가는 가정이 아니라 미성년인 자식을 보호하고 있는 가정의 부모가 중심인(당연하지만) 가정,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가정말이다.

글을 쓰다보니 자식교육을 위해 독일에 가고싶다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한국의 교육이 굉장히 과열되어 있고 그로인해 나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것에 절대적인 위협을 느낀다. 내가 아이들의 학교교육이 아닌 가정교육과 아이들과의 교감에만 신경쓸 수 있다면(이는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내 삶의 질은 굉장히 높아질 것이다. 물론 사교육에 들어가는 경제적인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아이들의 독립에 들어가는 비용(대학 등록금과 결혼비용, 결혼전까지 부양비용)은 생각하기도 싫다. 

이러한 부담을 나에게서 벗겨준다면? 심지어 아이들이 질적으로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된다면?

그렇다면 내가 독일에 가지 않을 이유를 찾아보는게 글을 쓰기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6년전..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약간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는, 그 테두리에 서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닭장같은 아파트, 외할머니가 키워주는 자식, 맞벌이로 얼굴보기 힘든 가족, 연간 700여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출퇴근(말이 700시간이지 거의 1년에 20일을 풀타임으로 버리는거다..자는 시간 빼고 하루가 16시간이라면 정확히 1년 중 한달을 출퇴근 시간으로 사용하는거다.), 자식 교육에 집착하는(대부분 돈으로만 집착) 부모, 모든것을 경쟁으로만 알고 이기려고만 하는 아이들….

그리고 전원주택에 와서 살아보고 확신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