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한 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독일에 있었던 1년동안 가장 많은 일이 있었던
여름방학..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유일하게 내가 일기를 썼던 시간…
유일하게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 긴 시간을 보낸 시간…
말도 통하지 않고 부끄럼도 많았던 내가 다른 사고의 세계에
들어가 있던 시간들…
그리움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나와 형을 적응도 시킬겸 엄마아빠는 캠프에
보낼 생각을 하는데..첫 3주는 내가 가고 그 다음 3주는 형이가는..
그런 계획이었다.
내가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엄마아빠는 형과 유럽 여행을..
그리고 형이 캠프에 가 있는 동안은 내가 엄마아빠와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난 캠프를 간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있었고..
형은 가기 싫어했다..
나는 나중에 중요한 사실을 또 깨닫게 되는데.. 바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
마침 배낭여행을 온 서울 큰아빠네 큰누나와 며칠을 보내고
캠프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자기 자전거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중고 자전거도 200마르크를
주고 구입했다.(20마르크였던가?–;)
애들한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빨간 아줌마 자전거여서 조금 불만
이었지만… 캠프를 떠난다는 설레임이라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는 떠나게 된다.
내가 갈 곳은 쥘트(Sylt).
독일에서도 대표적인 휴양지로 꼽히는 섬이다.
독일보다는 덴마크의 바로 옆에 있지만 독일에 포함되어 있다.
마치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모습같은 쥘트.
육지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다.
내 어린시절의 가장 큰 경험이 시작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일본인’ 스러운 타치바나 타카시의
책을 모두 구입했다.(구할 수 있는건..)
뇌를 단련하다.
청춘 표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
랜덤함 세계를 탐구한다.
21세기 지의 도전.
또..뭐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터 일본에 대해. 일본인에 느껴왔던 단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이 극대화 된 사람이
타치바나 타카시 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일본과 타치바나 타카시를 키워드로
일본을 이해하려 한다.
인맥을 위해..인간관계를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모두에게 잘해줘야 하고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고 상대방 기분에만
맞출려고 그러고…
아주 큰 착각을 했었던것 같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끼워맞추다가는 인간관계는 커녕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업무적인 관계에서야 물론 업무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지만..
대학생활 중 내가 어거지로 넓힌 인간관계 중 대부분은 정리했지만
억지 쓰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더욱 돈독해 지기 마련이다.
중학교 이후 얼굴 한번도 안본 친구도 가끔 연락하고..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몇년만에 한번씩 만나지만
그 느낌 그대로다..
카페활동을 하다 만난 좋은 사람들도 여전히 그때의 이미지대로
남아있다..
내 행동을 제외하고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자신들의 진심을 나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작정 나한테 잘해줄려고만 했다면 지금쯤 많이 실망을 했겠지..
나도 마찬가지다..억지로 하면 안된다..
내가 싫은 사람과 같이 일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절대 힘들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언젠가 내가 뭔가 대박이 나면 꼭 그 영광을 내 주변의 정말
좋은 사람에게 돌려야지..
내가 싫어하고 꼴보기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는 자기가 필요할때만
찾는 사람이다..
내가 무슨 고객만족 서비스 센터나 되는 것 처럼.
하지만 내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일방적인 인간관계는 없다..
계산적인 인간관계도 없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줘야지..
소개팅 2주일 전.
기숙사 옆방 친구가 소개팅을 하지 않을려냐고 물었다.
한달전쯤에도 그런말을 하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군대도 가야하고..가서 맘에드는 여자 만난다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소개팅 1주일 전.
이 친구가 또 왔다.
정말 이쁘고 착한 여자애가 있다..는 결론의 칭찬을
그 후로 매일 내 방에 들려서 해주었다.
거절할고 또 거절…고마운데 좀 그래..이러면서..
딱 1주일 째 칭찬을 듣는날..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사람’에 대해 조금 불신이라던가 지쳐있었던 때였는데
사람들을 많이 알수록 더 많은 실망도 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칭찬을 하는걸까..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마음은 먹었는데 갑자기 1주일 뒤로 약속이 미뤄졌다.–;
2000년 10월 28일..
7시에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6시에 나가면 되겠구나..싶어서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방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6시가 넘었는데 친구가 오질 않아서 옆방에 가서 안가? 했더니..
오락하고 있던 친구가 깜짝 놀란다..
부랴부랴 친구가 준비하고 조금 늦게 홍대에 도착했다.
친구 여자친구와 정은이가 있었다.
훤칠한 이마에 긴 머리..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지들끼리 이야기 한다.
스파게티 집을 가기로 정하고 휙 돌아 3명이서 성큼 성큼 걷는다.
수줍음을 잘 타는 나는 졸졸 혼자서 따라가는데 참 어색했다..
오라는 말도 안하고..
그 와중에 정은이가 앞에서 힐끔힐끔 나를 보는데 배로 어색했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는 너무너무너무 어색한 소개팅의 시작–;
이런저런 지금 생각하면 웃긴 질문하고..
먹는 와중에 정은이가 계속 스파게티를 먹기쉬운 크기로 돌돌 말아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면류는 사람들 앞에서 교양있는척 먹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해놓으니 한입에 쏙쏙 너무 편했다–;
친구 커플은 자꾸 다른곳으로 갈려고 한다..
정은이는 안된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난..또 혼자서–; 우리끼리 놀면 되잖아..식의 의견을 내는데..
참 어색했다.. 길거리에서 여자 꼬시는것도 아니고..
왜 자꾸 내가 ㅠㅠ
암튼 난 홍대에 처음 와봤기 때문에(그때도 참 안돌아 다녔구나–)
홍대를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물론 그 의미는 이 근처의 명소라던가..그런걸 말한건데..
나가자 마자 정은이는 홍대 입구로 들어간다.
들어가자 마자 전화를 받는 정은이…홍대 끝까지 갈때까지
전화를 한다..
그러다 전화를 잠시 쉬면서 ‘이게 다야..’
바로 유턴해서 돌아나오면서 정은이를 보기 시작한다..
이마도 넓고..왠지 키에비해 조그맣게 보였다..
목소리는 얼굴이랑 맞지 않게 좀 걸걸 했고
머리는 공주처럼 아래부분만 돌돌 말았다.
걸음걸이가 참 이뻤다..
홍대를 나와 바를 가기로 하고 바에서 그나마 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집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한정거장인 합정에 산다고 하길레 싫다는걸 바래다 주기로 하고..
같이 걸었다..
아까 친구랑 있을땐 소리도 지르고 잘 웃더니..나랑 있을땐
그냥 미소만 짓는다..
합정역..여기서 건널겸 나 가는걸 보겠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간다..
음..이제 몇걸음만 가면 이 아이랑은 영영 안보게 되는구나..
너무너무 싫었다..후회할거 같았다..
아주 어색하게 전화번호 안가르쳐 주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에와서 친구를 찾았지만 친구가 없었다.
왠지 내가 정은이가 맘에 들었다고 좀 말해놔야 이 친구가
자기 여친한테 전해줄것 같았다.
다음날은 내가 술마셨고..
그 담날도 방에서 술먹고 있는데 친구가 찾아왔다.
소개팅 어땠냐고–;
난 응 재밌었어..이렇게 말했더니 친구가
역시 눈 높은 호철이구나 그 애는 너 괜찮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즐거웠다니 다행히다 하고 휙 간다–;
앗! 내가 괜찮았다고??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그리고 그 뒤로 정은이의 깜찍함과 귀여움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왜 전지현이 내 꿈에 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죽는 꿈을 꿨다.
사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어야 할 몸이었다.
자기전에 ‘완전한 죽음’이란 책을 읽다가 자서 그런가..
요즘 내 생활에는 뭔가 허전한게 있다.
몸도 뭔가 조금 허전하고 정신도 조금 빠져있는거 같다.
이런상태가 아주 오랬동안 지속되어 온것 같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걸까?
시기 질투..남을 미워하는 마음들..불평 불만..욕심..
나랑은 거리가 멀었던 단어들이 내 맘속에 가득차있다.
반성.
시간이 흘러간다.
지나고 보면 내 머리속에 찰나의 기억으로.
내 몸에 베어진 버릇으로.
블로그에 몇개의 포스트로 남아버리는
그 무한하고도 짧은 시간의 기록들..
독립된 세포들의 집합체.
신경의 지배를 받는 세포들의 모임.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예정된 input이외에는
신경쓰지 않은 집단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생명체는 주어진input을 받지 않고
예정된 output을 내지 않는다.
나는 사회의 부적응자인가..
아니면 사회가 인간의 기본 집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것일까..
게스테 하우스는 영어로 게스트 하우스.
즉 손님의 집–; 이라는 뜻이다.
내가 1년간 살았던 그곳은 도르트 문트 대학의 게스테하우스 였다.
바로퍼 스트라쎄..
가장 신기했던건 집 열쇠가 현관문에 대응한다는것..
집 뒤로는 엄청나게 넓은 대학 캠퍼스가 펼쳐져 있고
집 앞으로는 수백년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창밖으로 보면 끝없는 도시에 멀리 화력발전소인지의 굴뚝만이
바라보였다.
게스테 하우스의 지하에는 비발디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참으로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게스테 하우스는 5층인가 6층인가로 되어있는데
게스테 하우스의 꼭대기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각종 파티,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바로 옆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는 많은 추억이 있어서 무엇부터 끄집어 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포근한 방안의 공기이다.
카펫이 깔려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포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건물 안에서는 3번인가 이사를 했는데 가장 넓은 방에서 부터
가장 좁은 다락에 이르기까지 ..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넓은 방은 5B호실이었는데 부엌과 거실 방이 따로 있었던것
같다.
아빠랑 형이랑 거실에서 귤던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좁았던 6층에서는 지붕 아래 집이라 욕조에서 일어서면
머리가 부딛히고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나중에 미국에서 온 친구도 만나고 독일 친구들도 데려오고 했지만
처음 6개월은 형과 둘이서..때론 혼자서 추억을 만들어야 했었다..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내가 한정지었던 좁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래보다 많은 외국 경험이 있었음에도..
모든 일에 내 경험이 다 적용되는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 시간을 만드는거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회사를 위하는 일이랍시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자.
회사에서는 내가 이러기를 바라고 있을까?
난 회사가 기대하는 가치를 충실히 실행해야 할까?
우리회사는 크다..하지만 아직 어리다..
미숙하고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사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 노력이 있어야지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덩치가 커지면서 밥그릇챙기기가 생기고 있다.
사원도..관리자도..
쓸때없는 조건들이 늘어가고 직원은 직원대로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자신의 이익을 찾는다.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은 도박이다..
이곳은 더 성공할 가능성도 완전히 곤두박칠 가능성도 반반이다..
큰 변화가 필요하다..
주일이 형과 이야기 했던 위기의식…
위기가 아닌 이 순간..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지금은 큰 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