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 Wolfgang

엄마친구의 독일인 남편 골프광..

그당시엔 ‘아..역시 독일이 잘 살아서 워낙 골프를 많이 치니
별명으로 골프광이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름이 볼프강(Wolfgang)이었던것이다–;

볼프강 아저씨의 가족은 모두 4명.
아저씨,아줌마(엄마와 친구),야스민과 나타샤 두 딸이 있었다.
야스민은 나와 형의 중간나이. 즉 나보다 한살 많았고
나타샤는 한참 어렸는데 당시로 5-6살인가 그랬다.
(당시 본인 11살–; 나타샤도 이젠 벌써 20대인가? ㅠㅠ)

볼프강 아저씨의 취미는 RC비행기 만들고 날리기.
가끔 아저씨와 아저씨 차를 타고(피아트 였던가..) RC전용 비행장
에 가서 비행기 날리는걸 구경하곤 했다.

아저씨 집의 지하실엔 아저씨의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무를 깍아 직접 비행기를 만들곤 했다.

야스민과 아저씨가 친구처럼 허물없이 이야기 하고 장난도 치는걸 보면서
참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집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지만
야스민과 아저씨만큼은 아니었으니까..

야스민은 나이가 있어 우리랑 어울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더구나 남자여자 편가르던 한국 국민학교에서
바로 독일로 온터라 여자들과는 친하고 싶지 않았다.–;

나탸샤는 어려서 그런지 아주 귀여웠는데 금발이었던걸로 기억
(야스민은 갈색?) 집에 어딘가에 사진이 있을건데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 겠다.

11살 꼬마의 이별

경양국민학교 4학년 6반 반장!
1990년 내 나이 11살.

‘독일에 가서 좀 있다가 올까..’

가끔 밥먹을 때 아빠가 하던 이야기는 이로서 2년째다.
예전에도 친구들한테 잔뜩 자랑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어서
별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언젠간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뿐.

1990년 10월 3일 동서로 분리되어있던 독일이 극적으로 통일되었다.
그와 함께 아빠의 결심도 굳어진것 같았다.

지역개발을 전공하는 아빠로서는 분단국가였던 우리나라와 독일.
특히 통일 이후의 독일을 연구하는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 길로 4학년 겨울 방학을 1주일도 남겨놓지 않고
독일로 갔다.

서울로 가는 전날. 학교를 나오는 나를 친구들이 교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물론 남자들만!

당시의 국민학생들은 남자 여자 편가르고 싸운는 일이 많아서
오직 남자애들만 배웅을 나왔던것.

그렇게 교문에서 빠이빠이를 하고 흥분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왔다.

2주정도 전부터는 엄마한테 독일어를 배웠었다.
유일하게 할수있는건 알파벳을 쓰는것과 읽는 법 정도였다.
다행히 독일어는 읽기가 아주 쉬워서 뭔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였다.

형과 나의 짐속엔 당시 유행했던 용소야 만화책도 들어있었다.
권법소년 용소야에서 좀 발전한 축구 소년 용소야..

김포로 가는 광주공항에서 대낮에 형이랑 아주 큰 유성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고 3개월정도 있다 비행기는 타봤다지만 전혀 기억에 없고,
떨리는 맘으로 김포행 비행기를 탔으나 비행시간이 짧고 너무
흥분해서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 김포에 도착했다.

그렇게 서울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엄마아빠가 뭔가 하러갔었나..
나와 형은 호텔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용소야 만화책을 봤다.

다음날 독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선과 비교도 안되는 점보기.

창밖으로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풍경에 넋을 잃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독일 프랑크 프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부턴 아주 정신이 없었다.

아빠 후배라는 분과 엄마 친구 남편이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우리가 갈곳은 프랑크 프르트에서 2시간(기억잘 안남)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도르트문트라는 곳이었다.

축구 팬이라면 이 마크를 기억할것이다.
도르트 문트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암튼 당시 듣기로 “골프광” 이라는 사람과 아빠 후배라는 사람의
BMW를 타고 도르트문트의 아빠 후배 집으로 향하였다.

아우토반의 엄청난 속도와 우리가 타고있는 BMW의 엄청난 속도에
놀라면서..

나의 독일 이야기.

독일과 나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가 결혼한 곳.
내가 태어난 곳이 독일.
그리고 나의 12살을 보낸 곳.

어찌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내 어린시절의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게 독일 생활이다.

나이가 들어 다 까먹기 전에 기억나는대로 적어볼 생각이다.

돌이켜 보면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 우리나라는 그 당시의
독일 문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나름대로 색이 있어 1:1로 비교할 수 는 없겠지만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생각나는대로 조금씩이라도 내 기억을 기록해 보자.

Bubba Gump

도쿄돔 시티에 있는 새우 요리집.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다는데..

각종 기념품도 같이 판다.

홍기형..

영화에 빠져있는 정환

가게 입구

가게 입구2

이렇게 두면 그냥.

이렇게 하면 점원이 온다-_-

탁구채 메뉴

귀여운 디자인의 설탕

새우!

새우!

새우!!!
배터지게 새우를 먹었다.

가게 바깥의 기념촬영장소.

TOKYO DOME

그 유명한 도쿄돔에 가보기로 했다.

집앞 가로등

정환이가 머리를 깎았다.

언제나 정겨운 토고시 긴자. 우리는 토고시 역으로 가고있다.

토고시 역.

홍기형은 왠지 들떠있다.

시바공원. 공원이름이 맘에 들었다.

도쿄돔시티 도착.

나가는길.

일본 학교 축구분데..한국말로 유니폼을 만들어 입었다–;

공포의 놀이기구들.

도쿄돔이다!

건물을 통과하는 롤러코스터..아찔하다.

이쁘다.

이 분수는 시간별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레일 형식의 대관람차.

쇼핑몰.

놀이기구 전경

스타벅스

다시 도쿄돔 앞으로.

도쿄돔의 지붕이다.

관광객처럼..

제이피팀

다시 집으로..

富士山 대장정 #4

분화구는 너무 추워 구경도 못하고 바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신주쿠행 버스를 못탈지도 못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난 서둘렀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이따위 산에서 죽고싶지는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산이 아름다운건 전혀 아니었지만 구름이..

낮에올라 저녁에 내려갔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여행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많은 사진으로 대신 이야기.
직접 느껴보셈

집에오는길에 지하철에서 본 노무현 아저씨.

사진은 잘 안나왔지만 정말 똑같았다.

고생했다 내 발..

화산재가 장난 아니었음..

이로서 나의 후지산 대 장정이 끝났다.
1주일을 후유증으로 고생해야 했지만 많은 보람이 있었다.

일본에서의 첫 여행. 내 인생에서 첫 혼자 여행이었다.

정확히 24시간이 걸렸던 여행이었다.
혼자 떠나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혼자 여행을 떠나는것도 아주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보고..많이 느끼고..많이 생각하고..많이 고민하자..

 

富士山 대장정 #3

정상에 오르니 칼바람이 서쪽으로 부터 불기 시작한다.
와…진짜..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죽고 싶었다.
머리가 아픈게 추운 바람때문에 마비 되는 기분.
구역질도 심해져서 멀미하는 것 같았다.
옆사람 산소 스프레이를 훔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목에 감았던 수건을 풀어 머리에 뒤집어 썼다..
쪽팔린건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한번씩 쳐다보는데 때려주고 싶었다.

불도져(왠지 정상에 불도져가..)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불도져가 바람을 좀 막아주긴했다.

해는 왜 안뜨는거야….

5시 10분이 되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아마도 내가 죽은 뒤에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찍은 사진이다..ㅠㅠ

감동적이다.. 신기하게 해가 구름사이에서 뜨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소원을 빌고 바로 산장으로 들어갔다.
너무 추워서..

몸과 마음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덜덜떨면서 라면을 주문했다. 800엔–;
구역질이 나왔지만 다 먹었다.

추위가 1%정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빨리 내려가야 겠다고 결심하고 나왔는데..
분화구를 안보고 갈수는 없지..

분화구 쪽으로 냅다 뛰었다..
바람이 더 세게 분다..

사진기를 미친듯이 뛰어다니면서 찍었다..너무 추워서..
다 흔들렸더만..–;

분화구

분화구 구경하는 사람들.. 산이 다 저런식이다.

 

富士山 대장정 #2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5th station(고고매) 부터 시작된 등반.
인터넷에서 본것처럼 경사도 심하지 않고 여름이라서 그런지 날씨도
따뜻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이..힘들어서 나는 땀은 시원한 바람이
식혀 주었다. 이상적인 등반이 될거 같았다.

깜깜한 산길을 올라 드디어 나나고매(七合目)에 도착했다.
해발 2700미터. 이제 1000미터(-_-)만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부턴 길도 조금 좁아지고 가끔 기어올라가야 하는
경사가 나온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 올라가다 힘조절 못해서 휘청~하면 바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정도..

3250미터에 있는 산장.
쉬면서 찍어보았다.

기본이 500엔..

아래에 보이는 산장.
이런 간격으로 산장이 여러개 있다. 이런 높이로..

이곳의 산장은 모두 자체 발전.
기름이나 여러 판매 용품을 다 지고 나른다고 들은거 같은데..
뭐…이정도 높이는 가능하다고 그때는 생각했었다.

산장마다 쉬면서 올라갔는데..

갈수록 쉬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리에 힘은 빠지고..

왠지 조금씩 추워지는거 같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땀이 났는데..

가방에서 긴팔을 꺼내 입었다.

本八合目에 올랐을때는(3360m) 너무 추워져 버렸다.
계속 오르면 몸이 더워져서 그리 춥진않았는데..
계속 오르기엔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지도상에 나온 마지막에서 두번째 산장인 하치고메토모에에서
잘까..하다가..힘을 내서 다시 올랐다.

지도상의 마지막 산장. 이제 정상까진 산장이 없다.
정상까진 약 30분 남은거 같은데..
이제 정상에 오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들 자고 가나보다..

정상까지 오르기로 하고 다시 출발했으나..
살을 찌르는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도 한명도 없어서
일단 다시 돌아왔다.

이때가 저녁 11시 반..

정상에 산장이 있으면 12시부터 5시까지 정상 산장에서 자야지..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산장에 들어가서 물어봤다.

정상에 산장이 있다는군..좋아!
다시 산을 오를려고 했는데..이미 산장의 따뜻함을 알아버린
내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래..여기서 자다가 4시쯤 일어나서 정상을 오르자..라고
결심하고 산장으로 들어갔다.

제길..마지막 산장이라고 하루밤 자는데 6000엔이나 받았다.
여기서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니까 2시간 반정도 걸린단다..
헉… 사람이 많아서 그런다는데…지금 사람 한명도 없는데..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단 자기로 결정..
사람 한명이 잘 공간에 3명을 밀어넣는 곳으로 가서 누웠다.

그런데 아까부터 머리가 깨질듯 아프고 자꾸만 구역질이 났다..
이것이 바로 고산증이구나–;
그래도..내려갈수도 없고..낑낑거리면서 2시반까지 누워있었다..
그나마 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이대로 정상에 갔다면 아마도 죽었을지도..

새벽 2시반..바깥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냐 말이다!

밖은 엄청나게 춥다..수건을 목도리 삼아 목에 둘렀다.

이렇게 많다.

흑흑 아까 갈껄.

앞사람 뒷사람과 밀착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3걸음 가고 10초쉬는
그런 험난한 여정이었다. 몸은 힘들지 않았으나….

추위! 매서운 추위!

씨발! 욕이 절로 나오는 그 추위…ㅠㅠ

반바지는 나 혼자 뿐이었다.
다들 프로 등반가 처럼 차려입고..

난 반바지에 발목양말에 수건을 목에 두르고 크로스백을 맨
미친놈이었다..혼자서..

너무 추웠다..빨리 정상에 가고 싶었다..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뒤로는 사람들이 빽빽..지금 내려가면 정말 아침에 동사해서
발견될거 같았다..

쓰러져서 헬기타고 병원으로 가버릴까..생각도 들고..

코도 얼고 팔의 감각도 없어졌다..
너무 추워서 생각이 마비될 때쯤..
날이 슬슬 밝아올 때쯤 나는 정상에 도착했다.

새벽 4시 반..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해를 보기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 정상에 오르니 너욱 엄청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칼바람이었다..

 

富士山 대장정 #1

후지산의 입산 허가 기간이 8월 31일 까지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7월 1일 부터) 8월 27일 후지산을 오르기로 맘 먹었다.

사실 일본에 와서 3개월동안 아무곳도 안돌아 다녔기 때문에..
후지산을 시작으로 일본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려는
마음도 있었다.

날도 살짝 선선해 지는것 같고..

하지만 막상 갈려고 한 날이 되자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같이 갈려고 했던 팀원들도 포기하고 나도 토요일 집에서
누워있으면서 강한 귀차니즘의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집에 있어봐야 오타쿠처럼 만화나 볼거 같아서 토요일
오후 3시. 집을 나서 신주쿠로 향했다. 혼자서..

신주쿠에 도착해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7시 50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저녁 10시 쯤 부터 등반을 시작해,천천히 올라가다가
아침 5시경 정상에 도착, 일출을 보고 하산한다는 계획이었다.

7시 50분까진 신주쿠에서 쇼핑도 하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벌써 4시 50분 표까지 매진되어 있었다.

급한 맘에 가장 빠른 표를 달랬더니..매진인줄 알았던 4시 50분
표를 주는것이었다..아..이것이 고생의 시작이었으니..ㅠㅠ

표를 구입한 시간은 4시정도. 나는 야간 등반을 해본적도 없고
필요한 기본 준비물 같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복장은 그라비스 운동화. 발목양말. 반바지. 반팔. 크럼플러
크로스 백이 전부였다.

가방안에는 긴팔 하나. 수건 한장. 양말과 반팔 하나가 더 들어있었다.
무식하게 큰 카메라+렌즈하나도 더..

산에 올라가면 먹을게 비싸다길레..음료수 1리터 두개랑 과자를
샀다. 가방이 많이 무거워 졌지만..

요도바시카메라에 들어가서 랜턴을 살려고 했는데 영 맘에 드는게
없어서..거기가면 어케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맥도날드에서
급하게 저녁을 미리 먹고 버스에 올랐다.

혼자 앉게되어 편하게 후지산 까지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비가 와서 구름만 보고 오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가는길은 거의 고가도로였던거 같다.

드디어 후지산 고고매(五合目)에 도착했다.
고고매는 해발 2305m로 후지산을 10등분 해서 다섯번째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곳까지 버스로 이동해서 등반하게 된다.

도착한 시간은 7시 반정도..

주위는 깜깜하다.

이렇게 깜깜할줄이야!
일단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향해보았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박혀있었다.

북두칠성이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찍을때 쓰는 플래시를 켰다. 고휘도 LED라서
아주 성능이 좋았다. 결국 난 휴대폰을 손에들고 등반을 시작했다.

이렇게 보이는 곳이 산장 촌이다.2700~3200 지점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2300에서 2700이 저렇게 멀리에 보이다니..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