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기침을 시작한지 2달이 넘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이제 정은이와 지우만 조금 기침을 하고 다들 진정되는 분위기이다. 감기도 감기지만 회사에 나가는게 워낙 스트래스라 의사선생님과 상담 후 병가를 내기로 했다. 의사선생님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심각하게 병가를 쓸 것을 충고해 주셨다. 여튼 남은 휴가와 병가를 합쳐 회사는 나가지 않기로 하고 마침표 아닌 마침표를 찍었다.
네이버를 관두고 작은 회사를 차렸을 때, 그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작은 오피스를 고르고 가구와 장비를 사고 세팅하고 명함과 로고를 디자인 하던 그 때, 불안함은 말도 못하게 컸지만 그 보다 더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그리고 다시는 직장 따위는 들어가지 않을거라 버릇처럼 말하고 큰소리 치고 다녔는데 독일에 오자마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취업, 그리고 6년간 4개의 종신고용 계약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줄어버린 수입과 우리에 갇힌것 같았던 한정된 업무, 새롭게 배워야 했던 서로 다른 도메인과 기술들.. 콘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서 언리얼과 C++ 에 익숙해질 무렵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모바일 회사로 이직, 플렉스와 유니티로 게임을 만들다가 합병 후 엉망이 된 조직 속에서 탈출하듯 다른 동료들과 합류하게 된 한국 회사의 유럽지사에서는 개발사 관리와 유니티 개발… 얼마 후 본사의 정치싸움으로 지사는 문을 닫고 이직한 회사에서는 자율주행과 시뮬레이터 그리고 수십명의 개발자 관리.. 그 동안 수입도 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올랐고 어느 정도 다음 단계가 가시화 되던 그 때, 우리는 여전히 쳇바퀴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쳇바퀴라도 굴리는게 어디냐는 생각과 지금이라면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의 갈등 속에서 정은이와 많이 고민하던 중, 회사에서의 실망스러운 경험들은 내가 탈출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좋은것 나쁜것 여러모로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1년 정도 쉴까..생각했었는데,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배운게 더 많지 않았나 싶다. 하기 힘든 경험들도 많이 해 보고..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아 이 자리에 섰다. 6년전 한국을 떠나왔던 그 마음가짐 그대로.. 비자도 보험도 집도 애들 학교도, 당시에 겁나고 어려웠던, 계획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이 정리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계획했던 ‘내 일을 하자’는 계획만 빼고…
그래서 이제 다시 그 계획을 끄집어 내기로 했다. 아이디어들, 생각들, 하고싶은 것들..마치 6년동안의 시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듯, 멈춰져 있던 기억의 시점에서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걱정은 줄어들었고 기술은 발전했으며 나 또한 조금은 더 경험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20년 내 새로운 직장(이라고 쓰고 사업이라 읽는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더 적은 업무시간
- 더, 아주 많이 적은 미팅
- 더 많은 업무관련 모든 비용 처리 및 지원
- 더 많은, 지금보다 최소한 20%, 많게는 80% 고정 시작 급여
- 두 개의 다른 프로젝트/엔티티의 기술 책임(기술 분야 모든 의사결정 책임)
- 쉐어
- 원한다면 다른 사업 가능
또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사용해야 하지만 모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곳에, 나를 위해 준비된 곳에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다. 좋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아무쪼록 계획하시는 일 멋지게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