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딩페이지를 만들다

마음속에 생겨나는 의욕의 씨앗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 내 홈페이지의 랜딩페이지를 만들었다.

오랜시간 블로그로만 운영해오던 sanoi.com 을 블로그는 blog.sanoi.com 으로 분리하고 내 개인/개발을 위한 랜딩페이지를 만들었다. 내 사생활과 분리하기 위해 sanoicom이라는 브랜드로 각 소셜 계정들을 만들었다.

이 랜딩페이지에는 내가 만든 서비스 링크를 모아놓는 포트폴리오 페이지로 운영할 생각이다.

생각 없이

집에 손님이 오면 집도 치우고 음식도 차리고 준비할게 가득이다. 대학교 자취할때는 사람들이 쉽게 놀러오고 나도 사람들 만나는게 좋아 다른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신혼때도 집에 와봐야 다들 우리 사정 아는 친구들, 선후배 들이니 동아리방에서 만나는 것처럼 즐겁게 보냈다. 독일 오기 전에 발트에 살때는 단독주택에 사방이 노출되어 온 동네사람들이 들락거렸고 애들이 어려 집이 엉망이어도 어쩔 수 없었다. 독일 쉐네베악 살때도 애들이 어리니 거실이 놀이방이었고 손님들은 자주 왔지만 주로 음식장만에 난리였다. 지금 집에서는 손님이 오면 정은이가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하는데 나는 종종 자취방에 친구들 놀러오던 그 때를 떠올린다.

마침 우리 건물에 나이도 비슷한 친구들이 몇몇있다. 가족끼리도 친하고 벌써 거의 10년째 같은 건물 살고 있는데 친해지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그냥 심심하면 문 두들기고 와서 맥주 한잔 하고 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생각하다 1층에 사는 변과 2층에사는 필립을 불러보기로 했다. 변은 나랑 몇번 이렇게 맥주도 마시고 동네 산책도 하고 그랬는데 미안하게도 내가 늘 바빠 변이 항상 나를 부르는 식이었다. 필립은 우리랑 동갑이고 필립와이프 카트린도 한살차이.. 무엇보다 시우가 필립네 아이들 로버트랑 동갑에 동생 그레기랑도 매 주말 매일 놀정도로 친하다. 자기들끼리 가족이라고..

필립네는 초대하고 초대받고 그랬는데 이걸 좀 편하게 해보려고 오늘 그릴할까하는데 놀러오라고 했다. 카트린이 몸이 좀 아프다고 해서 필립만 오기로 했는데 물론 로버트랑 그레기도 오겠지.. 그리고 변을 불렀는데 마야도 올 수 있음 오라고 했다. 호야랑 지우한테도 친구들 부르고 싶음 부르라고 했는데 평소같으면 그냥 안부른다고 했을텐데 지우는 남친을..호야는 친구들을 부르겠다고 한다.

음.. 우리 다섯, 필립네 셋, 변, 다른 친구들 네명정도? 그럼 오늘 집에 13명 정도 오는것 같은데 정은이는 눈에 걱정이 가득이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마라고 했는데 정은이가 생각좀 하고 사람을 부르라고..

고기는 7키로정도 되니 먹는건 문제 없을것 같고.. 나 정은 필립 변 꼬맹이들 먹을거 미리 구워서 먹고 나머지 10대 친구들은 알아서 구워먹으라고 하려는데… 자리야 서서 먹든 지들 방에 침대에서 먹든 마당에서 먹든 알아서 하겠지..지하실에 캠핑의자도 있고..

함 보자 어떻게 되는지..난 조금 생각없이 살고 싶다~~~

왜 시간이 빨리 가나

2월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이 벌려놓은 일이나 걱정거리는 늘어나는 반면, 해결되고 완성되는 일들은 줄어드니 이 불균형이 머리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계획을 만들 수가 없다. 왜냐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새로운’계획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사실 조차도 이미 5년정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 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것을..

10년전부터 취미로 배워보겠다는 드럼도 팔았다. 유일하게 해 보고 싶었던 취미생활이었지만.. 1년에 두어번 쓰는 카메라도 팔려고 준비 중이다. 비싸게 샀지만 생각보다 사용하지 않았다. 차는 1년에 한 번 새차할 정도로 시간을 쏟기 힘들다. 마당은 작년 1년동안 대충 깍기만 했더니 초토화 되었다. 회사일은 그냥 싫고 그렇다고 하고싶은 다른 것이 생각나는것도 아니다. 운동도 하다말다 독일어 공부도 하다말다 정말 의욕이 바닥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만 쥐어짜듯 해 내고 나머지 시간에 무기력하게 퍼져있는다. 그러면서 회사일이나 내가 못다한 일들, 하고싶은 일들에 대해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핑곗거리를 더 찾아보자면 1년 넘게 질질끌고 있는 조금 큰 일이 이제야 마무리 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얼마전 마무리한 녹녹도 한 몫했던것 같다. 그리고 또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걸 잘 살펴보면 시민권에 대한 숙제이다. 미루고 미루고 이젠 미룰 수 없는.. 이것 까지 마무리 되고 온갖 잡다구리한 밀려있는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머릿속이 조금 개운해 질 것 같다.

브란덴 부르크 공항 건설이 십여년 넘게 지연되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IT기기 구매 당시 사용연한이 5년으로 결정되어있어서 한 번도 켜 보지 못한 모니터나 PC, 전광판 등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딱 그 꼴이다.

2026년을 맞이하며.

연말이면 한 해 를 돌아보고 또 새로운 계획을 만들었는데 최근엔 딱히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버릇처럼 해 왔던 일들이 여러 이유로, 언제 그랬었냐는 듯 잊혀졌다.

계획을 세운다고 그것들이 이루어지는건 아니지만 계획을 세우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사라지면 시간의 흐름이 구분되지 않아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어쩌면 코로나 이후에 5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건 아닐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것도,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기록하는것도 어쩌면 매 순간 순간의 시간을 구분하게 해 주고 나의 기억이 시간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해 주는 장치인것 같다.

이미 놓쳐버린 시간동안 아이들은 어른에 가깝게 자랐고 우리는 그만큼 늙었고 새것들로 가득 차 있던 집은 이제 헌것들로 바뀌어있었다. 바뀌지 않은건 그 때부터 멈춰버린 내 머릿속인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그 마음으로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다.

지식을 쌓고 몇가지 변화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성취나 변화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런 것들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돈으로 가지는 성취도, 사회적인 변화로 가지는 성취도, 지적인 성장으로 가지는 성취도 나를 제자리에 두는 거라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원하고 사는걸까?

이 모든것들을 실행하고 성취하는 그 궁극의 이유를 찾지 못해, 빨리 지나는 시간이라도 잡아보려 블로그에 흔적을 남긴다.

내가 중년 그리고 행복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가는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지금 내 나이의 모습이 상상과 달라서인지 내가 중년이라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신 연령은 12세 정도에서 멈춘것 같고 여러가지 잡다한 지식만 늘다가 아이들 키우느라 혼빠지고 독일로 와서 엎치락뒤치락 하다보니 40대 그것도 중년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딱 한가지 크게 달라진게 있는데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것이다. 애초에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어떤건지 몰랐던 어린 시절에 비해 지금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행복은 정말 행운인것 같다. 20살에 정은이를 만나 서로의 조건과 아무 상관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25년을 같이 지내며 서로 닮아가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이들 셋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을 가능성은? 다들 힘들어 한다는 아이들 사춘기에 매일 아이들한테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 가능성은?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이 행복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보다는 정말 운처럼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로또에 여러번 당첨된 기분이다.

나에게 이런 행운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고민들은 모두 작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가지고 있는데 나머지는 덤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직

이젠 마치 연례 행사처럼 이직을 하고 있다.

부두와 지금 회사 모두 1년1개월 재직 후 이직이다. 이 회사가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가 되기를 바랬는데 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건 좋지만 개인프로젝트로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늘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것.

젊은 친구들이 열정과 패기로 인생을 갈아 넣자고 하는데 나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시간이 갈수록 미국(혹은 예전의 한국)식 회사 문화를 강제하는 것.

등이 나에게 다가온 현실적 문제였다. 물론 의사결정이라던가 몇가지 다른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이직의 가장 큰 동기가 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회사는 내 개인 프로젝트 진행을 존중하고 무엇보다 근무시간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오퍼를 먼저 받았는데 연봉이 너무 차이가 나서 거절했다. 새로운 곳의 조건은 지금보다 살짝 좋아진 편이지만 그것 또한 아주 큰 의미는 없다.

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시간과 조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것이 나의 동기를 더욱 강하게 해 줄것으로 믿는다.

이번 이직도 지난 회사에서의 인연으로 초대받다 시피 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전에 오퍼를 준 회사 또한 첫번째 메일에서 오퍼를 줄 정도로 인연의 효과는 강력했다. 지금 가는 회사에서도 한가지 기대가 있다면 이러한 인연을 더 만드는 것이다. 독일에 와서 8번째 회사인데 처음 두 번의 회사만 나 스스로 지원을 했고 다섯번은 모두 추천으로..한 번은 창업자 요청으로 합류했었다.

독일에 처음 와서 여기저기 이력서 내고 면접봤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Before you ask…

If you want a meaningful answer to your question, you need to invest enough thought into crafting a good question. More often than not, you’ll discover the answer yourself through this process of careful consideration.

Asking questions out of mere curiosity or without sufficient reflection wastes everyone’s time and rarely yields the insights you’re seeking anyway.

True questioning is part of the journey toward finding your own answers, not a shortcut to rely on others.

자전거

올해 1월부터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편도 7키로미터에 30-35분정도 걸리는것 같다.
이걸 왕복 15키로정도.. 회사 출근할 때 마다 자전거를 탄 지 2달 반이되었다.

물론 주 5일 모두 타지는 않고 보통 3-4일 평균적으로 탄것 같은데 너무 오래간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1월달은 조금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춥지도 않고 괜찮다.

자전거를 타면 자꾸만 속도를 내려고 하는데 그래봐야 신호에 걸리고 미친듯 속도내 봐야 5분정도 빨리 도착하는 관계로 요즘은 가능한 천천히 타려고 노력한다.

천천히 타면 비로소 주변의 경치가 보인다.

자전거를 타며 가장 좋은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다음 좋은건 건강이다. 지금은 계단을 오르거나 걸을때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몸무게가 줄어든건 아니다. 자전거 타자마자 2키로정도가 늘어서 역대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지금 그대로 유지중이다. 다리는 2월까지는 계속 통통 부어있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고 옆구리살은 느껴질 정도로 줄었으니 그냥 근육이 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엇이든 3달을 하면 조금씩 버릇이되고 3년을 해야 몸에 완전히 익는다더니 3달이 다 되어가니 ‘타기 싫다’ 는 마음은 사라지고 그냥 별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가게 된다.

애들도 키가 많이?커서 어른용 자전거 2대를 더 주문했다. 하도 키가 안커서 주니어 사이즈는 스킵하고 몇년간 자전거 없이 있었는데 이젠 좀 커도 탈 수 있겠지 생각하고 주문했다.

세일하는 놈들로 주문했는데 400유로씩 2대.. 요즘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당 6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진작 사줬어야지 생각하면 별 생각이 없다.

독일에 와서 산 자전거만 지난 11년간 12대, 도둑맞은게 4대, 버린게 1대, 중고로 팔거나 준게 2대이다. 도둑맞은 3대는 보험으로 보상받고 보험계약 해지당했던 기억이 난다.

애들한테 사주는 마지막 자전거가 되겠지.. 지우는 이미 4년전부터 타고 있고.. 이제 모든것들이 이런식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낳기 전과 후에 상상도 못한 변화를 겪었듯, 아이들의 독립과 함께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던가.. 이제 하나 둘 둥지를 떠나 날아오를 때가 된거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겠지만 마음으론 이미 어른들이니까.

어제 지우 콘서트 구경하다 쉬는시간에 아들들한테 아빠 힘든데 일 관두고 쉬거나 조금 벌고 조금 일하면 어떨까 했더니, 시우는 농담으로 아빠 일 더해 그러고 호야는 당연히 조금 일하라고 한다. 아빠 일 조금하면 응팔에 덕선이네 집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건 좀..’ 그러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그래..너희들한테 엄마아빠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아무 논리도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그 역할로 있는 존재. 그래서 좋든 나쁘든 변화가 생기면 안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도 그랬다. 내 엄마아빠는 그렇게 영원히 그대로 일거라고.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여기저기 아프고 약해졌지만 난 내 엄마아빠도 그렇게 그대로이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어느 새 내 아이들 나이로 돌아가서, 무너지지 않을 그 튼튼한 벽에 기대, 바닥에 누워 아무 걱정 없이 뒹굴거릴 수 있을것 같다.

근데 모두들 미안..아빠는 회사 그만둘거야 꼭~ 니들 학비는 니들이 알아서 해~

불안 1

불안해? 불안이 뭐야? 나는 내가 불안해 하는게 뭔지, 내가 불안해 하는건지 딱히 모르겠는데? 최근 ‘나’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중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나는 굉장히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한 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방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에 민감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 스스로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모를까 대체 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런 에너지를 소비하는 걸까?

이에 대한 이유로 몇가지를 생각해 봤는데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했을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둘째로 자라며 형과 부모님의 갈등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형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나보다 먼저 사춘기가 오고 조금은 예민한 성격이었던 관계로 그런 갈등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갈등이 엄마아빠와 형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그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에게 온 피해라곤 ‘형이랑 같이 못놀게 되는것’, ‘가족들이 계획한 것들이 취소되는것’ 등 요약하자면 ‘즐거울 것이라 기대 되어있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되는것’ 으로 말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일이지만 그 땐 그런 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었을테고 그래서 시작한 갈등에 대한 개입이 어떤 습관적인 행동을 만들고 급기야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것에 불안해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것 같다.

어렸을때 학교에 다니며 ‘잘못된 책임감’을 배우고 그 환경에 오래 지낸것도 한가지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교육이나 생활을 극도로 타인을 의식하게 만드는데 나는 학창시절 몇 번 반장이나 회장같은걸 하며 모두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왜냐면 선생님들이 그게 반장/회장들이 해야 할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조용히 해야 한다던가, 내가 ‘옳은’ 말을 하면 다 따라야 한다던가의 생각이 강했고 또 한국에선 그게 대부분 맞는 말이기도 했기에 이런 생각이 더 굳어져간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는 밑도 끝도 없이 낙천적이었던 내 성격.. 지금은 아이들도 있고 나이도 먹어서 성격이 많이 바뀐것 같지만 나의 마음 그 시작에는 말도 안될만큼 낙천적인 내가 있다. 걱정도 계획도 생각도 없는 나. 나는 그냥 하늘의 구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그 어떤 걱정도 바꿔 생각해서 걱정이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이런 성격은 무언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보다는 오해하게되는 경우가 많았고 늘 이상을 꿈꾸던 아빠의 영향도 크게 받아서 ‘도전’ ‘꿈’ ‘희망’ 등의 생각으로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이와 반대되는 개념들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2014년 베를린에 온 뒤로, 나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고 알릴 수도 없는 외계와 같은 사회에 뚝 떨어져서,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들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내 인생에 무엇보다 잘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벗어나는것과 마이너들만이 모여있는 베를린으로 오게 된 이 두 가지 효과로 ‘나’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오늘 이 생각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내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의 동의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옳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것에는 그 뿌리가 깊은 시작이 있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 있는건 거의 없고 바꾸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더이상 내 생각을 돌려 말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늘지 않는 독일어 처럼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게 맨 처음 언급했던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해결, 즉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 생각도 많이 바뀌어 가족 한정이 되었지만 가족들에 대해 이 생각은 어쩌면 더 강해져버린것 같다. 근데 이건 정말 어려운게 내가 남편이고 아빠인데 가족들의 기분이 나쁘던 말던 내버려두는게 맞는걸까? 그렇다면 가족은 뭘까?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기쁘게 해주는게 가족이 아닐까?

아마도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 멈추고, 이것을 결론으로 지난 몇년간 내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고 했던게 아닐까 싶다.

나의 모든 생각과 변화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튀어나온다. 누구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지 않을 상처를 주게 된다. 내 가족을 남처럼 대하면 주지 않을 상처… 하지만 가족이니까…

이런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까? 내 아이들을 남의 아이 보듯 키우면 아이들이 더 행복한 걸까? 내 아내, 정은이를 남 보듯 대하면 정은이는 더 행복할까?

내가 아는 사실은 ‘그렇다’ 이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똑같은 조건이다. 정은이나 아이들이 나를 남 대하듯 한다면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정은이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그게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지…

너무 사랑하고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주게 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 하고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거든…

하지만 나의 ‘불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의외로, 어쩌면 이 ‘불안’ 이라는 키워드가 내가 멈추고 해답을 찾지 못했던 ‘가족’의 기대와 소통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불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고 이 불안을 가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존하고 또 그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죽이고 잡아먹을 수 있다는 불안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내가 즐겁게 있고 싶은 이유, 가족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이유, 걱정한다며 힘들게 하는 이유들이 다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불안에서 벗어나거나 불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집중하면 필요하지 않은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무엇을 불안하다고 느끼는지, 왜 그러는지, 어떻게 그 불안들을 해결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누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나?

이 말을 해본 사람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황은 반대이지만 부담스러운 배려를 받은 사람, 그리고 애써 배려한 사람 모두 섭섭한건 똑같아 보인다. 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는다. 좋게 말하면 오지랖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바하는거지… 누구나 노력한 것에 대해 부정당하면 그에 비례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나는 주로 이런 말을 듣는 상황에 있는것 같다. 그렇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나 좀 내버려 둬’ 라는 입장이 될까? 나를 돕거나 배려해주는 사람들에 나쁜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나는 보통 그 배려 만큼의 고마움을 많이 느꼈던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다르고 내 배려나 방식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배려 자체가 필요하지 않아서 정말 진심으로 나의 행동이 이해안될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내 입장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의 상황을 챙기려 할까? 그래..그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 있겠다. 방법을 고쳐야 할까?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방법을 고쳐야 한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고치고 가능하면 상대방을 더 배려하려고 노력해야지. 나의 배려가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된다면 그건 배려가 아니게 될 테니까. 요즘은 그래서 말도 더 줄이고 이런 행동도 더 줄이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생각할 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나의 힘듦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것도 조심스럽다. 불평하지 않는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했고 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것에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체로 힘든일이 있고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전환하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내 문제부터 똑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쓴 글이지만 모든 문제는 결국 나로, 내 생각으로 귀결된다. 나나 잘해야지… 요구하지 않아야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조금 더 입은 닫고 생각을 깊이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