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15일까지 생각해 보려 했으나 결국 인공호흡기로 수명연장을 하는 것 같아 그냥 그만두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안녕 내 월급… 그래도 한창 사업할 때 만큼 받았는데, 그 한창 사업할 때가 10년전이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돈의 액수로만 생각하면 절대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으니 눈 딱 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어지럽던 머릿속이 한결 정리되어 가벼워지는게 느껴진다. 내가 앞으로 할 일들은 크게 3가지이다. 하나는 로이와 함께 게임회사를 만드는 것. 두 번째는 라팔과 함께 게임 에셋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세 번째는 모바일 앱 개발을 하는 것.

게임회사는 설립과 계획 그리고 투자준비로 바쁘겠지만 꼭 9월에 되어야 하는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진행하는것이 좋다는 생각인데 외부 투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나와 로이가 팀으로 어느 정도 계획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게임에셋프로젝트는 라팔이 아트를, 내가 개발을 맡아 몇가지 에셋을 만들어 보기로 한 프로젝트다. 크게 세 가지 정도 계획이 있고 그 중 2가지를 먼저 같이 해 볼 생각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개발은 이미 시작되었고 다음 주 정식으로 킥오프, 9월 말/10월 중순에 첫 번째 버전을 출시하는 것이 목표이다.

모바일 앱 프로젝트는 나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기획에서 약간 정체되어 있고 MVP정의를 하지 못해 조금 빙빙도는 기분이다.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가 조금 생기면 계획을 조금 더 명확히 해보고 싶다.

늘 가장 어려운 방향으로만 선택했던 내 인생… 이번 결정도 남들이 보면 미쳤다는 말 말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각종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내가 독일에 와서 받은 급여명세서가 100여장에 달했다. 온갖 어려움과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 울컥했으나 그 만큼 성장하고 배우고 느낀걸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했다. 오늘의 이 출사표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결정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가자!

사표

오늘 사직서를 냈다. 2002년 병특으로 시작하고 20년 동안 몇 군대의 회사를 다니고 몇 번의 사표를 냈을까?

2002년 6월 가민정보 병특 시작
2004년 11월 사표내고 NHN(중간 NHN Japan 파견)
2008년 2월 사표내고 IAMG 창업
2014년 6월 독일에서 Yager
2015년 9월 사표내고 Aeria games
2017년 1월 사표내고 스마일게이트 유럽
2018년 5월 사표내고 AAI
2020년 2월 사표내고 CrazyLabs
2022년 9월 말로 퇴사 예정…

7개 회사 1번의 창업.

로이랑 크레이지랩스에서 만들던 게임을 마무리하고나서 지친건지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었다. 뒤돌아 보면 영주권을 따기 위해 취직을 했다가 스마일게이트 때 영주권 따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사업을 해 볼까 했는데, 그냥 한 번 다녀보자고 생각했던 AAI에서 2년정도를 보내고 나니 많이 지쳐있었던것 같다.

내 사업 반, 취직 반 신분으로 시작한 크레이지랩스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게임 자체의 성과는 크게 좋지 않았다. 어디서든 안배웠을까, 그래도 여기서는 모든 프로젝트 관련 셋업을 바닥부터 다 진행해 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개발은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핵심이지만 개발을 둘러싼 팀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토양이 되는 만큼, 스스로 첫 시도에 드림팀에 가까운 팀을 꾸렸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스럽다.

2020년 부터 끊임없이 두들겨왔던 나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 속도를 붙일 때가 되었다. 아이디어 중 현실적인 것들을 추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비지니스가 나에게 동작할 수 있는지 검증해 보는것이 첫 번째 단기 목표이다. 그리고 이런 단기 프로젝트를 몇 가지 테스트 해서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저축해 놓은 돈이 있더라도 고정 급여가 없다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것 같아 몇가지 옵션을 준비했다. 먼저 9월 말로 퇴사한다고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진행해 줬으면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기술적으로도 배울것이 있고 기간도 적당해 15일 까지 검토 후 내가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퇴사를 취소하는 옵션이다. 프로젝트 검토 뿐 아니라 지금 계약사항의 변경 또한 포함시켜 합의하기로 했다. 급여로는 많은 액수를 주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미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은것이 아니라면 크레이지랩스에 머무는것이 사실 가장 편하고 좋은 선택이다.

다음 옵션은 로이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둘이 같이 회사를 창업해 투자를 받는 방향으로 생각중에 있다. 투자 의향이 있는 몇 회사와 개인이 있는데, 이 방법으로 진행할 경우 창업 초기에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급여는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온전히 나의 사업을 하는것(공동창업이지만)과 레퍼런스 좋은 초기 투자자들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의 리스크도 있는 편..

이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는 내가 홀로서기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단기 프로젝트들을 테스트하고 장기 비지니스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최대 18개월로 정했다. 이 정도면 3-5가지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1-2개의 게임이나 서비스를 실행 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옵션을 선택할 지는 15일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고, 의외로 이 두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것 같다. 이제는 딱히 어떤 회사나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런 생각 만으로도 답답해진다. 사표를 내고 나니 마음은 조금 더 홀가분해졌지만 급여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거워 지기도 한다.

더 작은 급여일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독일 와서 처음 받은 돈 보다 거의 3배가까이 받는 지금은 그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겠지만 엄청나게 아쉽지도 않다. 중요한것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들이 결국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사표를 내고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20여년간 일해 오며 늘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빨리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따고 나서 시작했다면… 아예 독일 오면서 부터 IAMG를 계속 했다면…

하지만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그 만큼 얻은것도 많았으니 후회는 하지 않고 약간의 아쉬움만 느껴보려 한다. 아쉬운건 아쉬운 것이고 홀가분한건 홀가분한 거니까. 이제 15일 까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아주 짧겠지만 1-2주 정도 나만을 위한 휴식 시간도 가져보고 싶다. 파일럿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최소 첫 번째 결과가 9월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단, 20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잘했다, 그리고 고생했다! 앞으로도 잘 할거야!

네가 내 곁에 있다면

Bist du bei mir, geh ich mit Freuden zum Sterben und zu meiner Ruh.

Ach, wie vergnügt wär so mein Ende, es drückten deine schönen Hände mir die getreuen Augen zu.

It is not over until I win

Nobody believes in you.

You’ve lost again and again and again.

The lights are cut off, but you still looking at your dream, reviewing it everyday and say to yourself, it’s not over until I win.

It’s very important as you hold on to that dream.

The moments when you are going to doubt yourself.

The rough times are going to come.

But They have not come to stay, they have come to pass.

It’s very important for you to know that.

Don’t say I am having a bad day say I am having a character building day.

It’s very important for you to believe that you are the one to make this happen.

호야도 핸델 김나지움으로..

지우에 이어 호야도 핸델 김나지움에 합격했다.

핸델 김나지움의 특징은 학교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음악에 특성화 된 학교이다. 모든 학생들이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혹은 실용음악과 같은 음악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때때로 이 음악활동이 학업보다 우선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학업 성적이 뒤쳐지는건 아니다. 늘 베를린 아비투어 성적에서 최상위권에 들어있는 학교 중 하나이다.

그럼 학교에서 ‘특별히’ 뭔가를 더 가르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교 분위기 자체가 그냥 그런 분위기 일 수 밖에 없는게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악기를 시키는/좋아하는 집에서 자란 학생들이 모였으니 그 분위기가 다른것 같다. 아이들 교육에 극성인 가정도 많지만 여유있게 삶을 즐기고자 하는 가정도 많다. 여느 10대 아이들 처럼 일탈도 하고 방황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는것 같다.

나와 정은이한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음악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의 전부 혹은 대부분으로 느끼는 가정과 학교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자신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같이 시작했지만 1-2년이 지나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이 보인다. 처음의 그 작은 차이는 아마도 가족과의 관계나 관심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우는 이 학교에서 더 얻을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잘 하고 있다. 호야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아빠한테 먹이만 받아먹던 아기새에서 이제 자신이 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작은새로 성장한 호야. 무엇이든 다 경험해 보고 즐기고 도전하고 또 실패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기 끝, 방학 시작

오늘 부로 1학기가 마무리 되고 1주일 간의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우리 귀염둥이들도 각자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김나지움에 진학해야 하는 호야가 헉헉거리며 집으로 제일 먼저 뛰어왔다. 미리 선생님들한테 물어봐서 대충의 성적은 알고 있었는데 한 과목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난리다. 5학년2학기와 6학년1학기 성적을 평균한 점수가 적용되는 김나지움 입시… 마찬가지로 3학년2학기와 4학년 1학기 성적으로 5학년부터 시작하는 김나지움에도 지원했었는데 그 나이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밀어붙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당시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좋았기에 적극적으로 다른곳들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그 땐 모든 과목 평균이 1점(최고점)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후 코로나 시대와 약간 이른 사춘기인지 호야가 엄청 방황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집에 있으면서 우리가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것도 사실이다. 닌텐도를 사서 온 가족이 동물의 숲은 하느라 몇시간씩 서로 게임을 하고, 학교의 원격 수업 초기에 엉망인 프로세스를 보고 금방 다시 학교에 가려니 하고 내버려 둔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들도 지나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약속과 다르게 호야가 있던 반이 사라져 버려서 친구들과 선생님과도 헤어져야 했고 갑자기 바뀐 선생님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록다운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가면서 조금씩 마음이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미 공부는 포기한 몇몇 친구들이 집요하게 호야와 놀자고 하고 장난을 거는 통에 학교에서 이것 저것 놓치는게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김나지움 컷트라인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호야는 1점을 맞을 수도 있는 과목을 어이없는 실수나 귀찮음(?)으로 2점을 받아오는 날이 많았다. 길고도 길었던 잔소리와 설득의 시간을 지나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본인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아서 기뻐하고 안도하는걸 보니 이녀석이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가 다니는 학교는 입학시험이 따로 있는데 그 시험도 봐 둔 상태고, 시험 결과에 따라 어느 학교를 지원할 지 결정하면 될 것 같다.

호야가 신나서 떠들과 있을 때 시우가 집에 들어왔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받는 시우는 1점 받는게 당연한거 아니냐면서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더구나 자신은 ‘똑똑한 아이’상과 ‘빠른 아이’상, 두 개를 받았다며 반에 상장을 받은 아이는 4명인데 두 명만 두개의 상장을 받았다며 또 자랑이다. 더구나 이번 학기 반장으로 대 활약을 한 터라(더 하고 싶다고 아쉬워 함) 높아진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

마지막으로 지우가 2점이 몇개 안된다는 자랑을 하며 들어왔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는 내 농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번보다 잘했다며 깔깔거린다. 지우는 최근에 사춘기를 보내며 무슨 바람인지 바이올린과 공부에 굉장히 시간을 쏟더니 어려운 과목들은 모두 1점을 받아왔다.

정말 세 아이 모두 한 달에 10분정도 뭔가 물어보면 대충 알려주는 정도의 신경만 썼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모든 것들을 잘 하고 있으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특히 지우는 우리 입장에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하루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여러 잔소리를 하지만 사실 할 필요도 없는 말들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배부른 소리들일 것이다.

독일이 학업 성취도가 떨어져서 우리 아이들이 그냥 잘하는 걸까? 그런 아닌것 같다. 한국도 장난 아니지만 여기서 잘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노트 정리부터 수업태도, 발표, 쪽지시험, 정규시험 그리고 실습이나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하나도 모르고 온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더구나 놀기도 엄청 놀면서!

이번 방학이 지나면 호야는 희망 학교에 원서를 쓰고 6월 말이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이젠 뭐..어떻게든 될것이라 믿고 이제 남은건 시우… 시우는 가능하면 5학년때 김나지움에 보내려고 한다. 지우와 호야 경험상 그룬트슐레에서 5,6학년은 정말 개판인것 같다…

한국의 부모들이 일단 대학만 보내자고 다짐하는 것 처럼, 우리는 일단 김나지움만 보내자고 다짐하고 있다. 김나지움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10대의 가장 빛나는 6년을 보내는 곳인 만큼, 그 곳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대학?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학비가 있는것도 아니고 여느 독일 가정처럼 만 18세 성인이 되어 가능하다면 독립하게 해 주고 싶다. 대학이 아니라 다른 하고 싶은게 있다면 더 좋고.

예민한 호야와 더불어 가슴졸이던 몇 달의 고생이 이제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경험으로 아이들도 많이 배웠고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다행인건 노력한 만큼 나오는 결과를 아이들 스스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기저귀 찬 막둥이 업고 춥디 추운 독일에 직장도 집도 아무것도 없이 들어온게 7년전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잘 크고 적응해 주어 너무 감사하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보람을 느낀다.

사람은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한숨

몸이 지쳐서 마음이 지치는건지 운동을 안해서 그런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일도 하기 싫고 짜증이 많이 나는 시기다. 날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맥주 한 잔 마시고 영화도 보고 했을텐데,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보고 싶은 영화도 없어서 이런 재미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는건 개인 프로젝트 끄적거리는건데 쉬는 시간도 없이 또 일은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일이 취미라니.. 재밌을땐 싫지 않지만 요즘처럼 일 자체가 하기 싫을 땐 그 대안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이런 저런 커뮤니티를 기웃거려보면 다들 나보다 여유있고 잘 사는 사람들만 보인다. 딱히 돈을 아끼는건 아니고 그냥 검소한(?)게 생활화 되어있다보니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늘 조금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돈은 많이 쓰는데 전부 먹을것이고 아이들 한테 들어가는 비용이다.

개발에 관한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추가로 나오고, 장비든 뭐든 더 받을 수도 있지만 딱히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애플 개발자 등록 1년에 100유로 짜리는 계속 미루고 있고.. 물론 딱히 지금 등록할 필요는 없지만 한다면 조금 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은데 하면서…이게 돈을 아낄려고 하는건가?

그런 마음에 ‘에라이!’ 하면서 돈 쓸 핑계를 이리 저리 만들어 보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상상속에선 전기차도 사고 애들 스마트폰도 사주고 컴퓨터도 하나씩 사주고선, 돈도 써본놈이 쓴다는데…언제 그렇게 써 볼 수 있을까? 집에 들어가는 돈도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살고 있는데 정말 ‘나’한테 들어가는 돈이 매달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아마 난 지금 연봉의 반만 받아도 지금과 똑같이 살 수 있겠지.. 나 혼자라면 1/10?

그럼 이 답답한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더 성공해야한다는 막연한 목표… 나와 가족이 경제적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을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 내가 하고싶은게 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 들이 모여서 조금씩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건지 시간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내일 부터는 혼자서라도 꼭 산책을 해야지…

날씨가 좋아지면 정원 관리를 하면서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텐데… 결국은 날씨 탓이네.

2021 그리고 2022

바쁘다면 바쁘고 단조롭다면 단조롭게 흘러간 2021년인것 같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날.. 여느 때와 같은 10대 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족과 나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기록을 적어보려 한다.

아이들

연초에 큰 다짐도 없었고 아이들이 코로나로 집에 있어서 더 정신없이 시작했던것 같다. 특히 호야가 코로나 이후 학교생활에 약간 갈피를 잡지 못하여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같이 해야 했다. 내년에 있을 김나지움 지원으로 여전히 지금까지도 모두가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야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푹 빠지는 반면, 관심없는 일에는 시큰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도는 높은 편이다. 그 성격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여러 모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부분이 많았던 한 해였다. 이제 슬슬 2차 성장이 시작되는 듯 하니 내년에는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

시우는 가장 아이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애교에 누구나 본인의 감정을 알 수 있게 표현하는 솔직한 성격덕에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공유하고 또 공감받으며 지낸다. 막둥이라 누나, 형을 보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 빨리 배우는 것도 있지만 시우는 자기가 싫은 일이라도 집중해서 하는 성격이라 주어진 일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학교에서도 반장을 하면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심지어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를 받는! 경험도 하였다. 그 뒤의 대처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해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줬다. 이제 성적표가 점수로 나오는 3학년이 되었는데, 시우 반 만의 특징인지 아이들이 점수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아 보이는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곳 독일도 한국처럼 이런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점수에 민감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지우는 늘 그렇지만 올해는 특히 더 즐겁고 행복한 1년을 보낸것 같다. 학교가 너무 좋고 재밌다는 말은 하루 걸러 하루씩 이야기 하고, 점점 관심이 꺼져가는 듯한 바이올린에 갑자기 불이 붙더니 하루에 2시간이 넘게 스스로 연습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 특유의 그룹 문화에 조금 적응하는 듯 하더니 역시 자기 맘에 안드는건 아닌건지 여기저기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사귀면서 관계를 넓혀가기도 했다. 자세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공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불이 붙어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받고 있다.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지우를 띄워주고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게 하는데 이럴 때면 아주 신이 나는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더 하려고 하니 나는 지우와 발 맞춰주기가 버겁지만 선생님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친구들 얼굴을 관찰하고 오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제일 이쁜것 같다는 말도 하고 ‘나는 외로워, 남자 친구가 필요해’ 라는 내용의 시를 영어로 쓰는 누가 봐도 10대 여중생! 승마 캠프도 다녀오고, 늘 그렇듯 올해도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들

정은이는 가을까지 독일어를 배우느라 더욱 바빴던것 같다. 여전히 정성들인 아이들 도시락과 여러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도 4시간씩 수업을 듣고 또 공부를 했으니… 그 결과로 올 해 정은이의 영주권을 받게 되어 보람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던것 같다. 나는 딱히 일 말고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 둘 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단 1일…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랑 농구, 산책정도 말고는 정말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것 같다. 가을 이후 우리 둘 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게 바뀐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카페인과 알콜을 많이 줄이게 되었다. 3달 넘게

일

베를린에 직원이 늘어나면서 페이롤 컴파니를 통해 고용계약을 맺게 되었다. 여전히 프리랜서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뭔가 내 일을 할 수는 있는데 할 일도, 시간 여유가 없다. 회사일은 기본적으로 양이 많고 여러 업/다운이 있어서 당연히 바빴다. 추가로 개발자를 채용했어야 했는데 해고를 하는 바람에 막판에 일에 치인것도 힘들었다. 삐걱거리던 QA파트를 내가 맡아 시니어 1명과 주니어/레귤러 5명을 채용했다. 온보딩에 팀빌딩에 전반적인 테스팅 환경 조성에 너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조금 굴러간다 싶을 정도로 가고 있다. 내년 초에 추가 인원들이 합류하면 혼자 잘 굴러가게 만드는게 목표다. 그 와중에 개발자 친구 한 명을 채용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관심을 두고 가이드를 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생각이다. 전 회사와 다르게 모두 내 손으로 뽑은 사람들인 만큼 더 애정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여름엔 회사일 말고 형이랑 프로젝트를 하나 했는데 ThreeJs로 게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모바일 웹에서 동작해야 하고 웹사이트/서비스까지 붙이는 작업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작업이었다. 개인적으로 계속 배우고 유지하고 싶은 기술 스택이 ThreeJs 랑 WebGL 쪽인데 그 프로젝트 이후로는 손도 못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늘 내만의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모바일 앱을 만들지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다 작은 게임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놓고 정체되어있을 때 정은이의 조언으로 원래 해보기로 했던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꾸준히 만들어 뭐라도 출시해 보는 것을 목표로!

여행

작년 폴란드 여행의 추억이 많아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폴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아우슈비츠와 폴란드 남부지방 자코파네를 들렸는데 체력적으로 지쳐있을때 다녀온 여행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유럽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롤러코스터도 타 보고, 역사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와 자코파네의 멋진 자연을 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뿐… 당일치기 나들이 말고는 아무곳도 다녀오지 않았다. 코로나와 바쁜 일, 바쁜 일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한 편으로는 당일치기 나들이를 많이 다녀온것 같기도 하고… 내년엔 조금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은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다. 코로나 4차 유행이 오기 전에 출장으로 텔아비브에 다녀왔는데 일만 하다 와서 딱히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무질서함이 눈이 거슬려 마음이 불안했고 베를린 공항에 와서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주변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났는데 작년에 이어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보며 반면교사 삼아 우리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모두가 그렇지만 비슷한 사람들 끼리 만나게 되는것 같다. 아이들 교육, 먹거리, 일, 관심사 등 무언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야 서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분들께 감사하고 또 앞으로도 더 가깝게 지내야겠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져야겠지…

내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무엇보다도 호야의 초등학교 졸업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이나 스스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큰 시간이기도 하고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Technical softlaunch

지난 주 부터 만들던 게임의 기술적인 오류를 파악하고자 테크니컬 소프트 런치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지원하지 않던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스토어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 하루에 2000명 정도의 트래픽을 돌려 게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 중이다.

몇가지 오류가 보이지만 치명적인건 없는것 같은데… 조금 자세한 로그가 필요한데 휴가 시즌이 겹쳐서 1월이 되어야 버전을 올려서 테스트 해 볼 수 있을것 같다. 개발자 하나 자른 뒤로 폭풍 인터뷰를 통해 개발자 1명, QA 4명을 채용했다. 이제 개발자2, 테스터 7명을 관리하게 되었다. 곧 채용할 개발자 1명과 테크아티스트를 포함하면 10여명의 인력을 관리해야 하는데 리드 개발자로서의 역할도 있기 때문에 조금 버거운 면이 있다.

팀에서 2022년에 어쩌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거의 비슷한 규모의 개발팀을 꾸려야 하는데 그 때는 정말 관리만 해야 할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야지…

1월 중순 – 말까지 테크니컬 소프트런치를 마무리 하고 2월엔 Monetisation softlaunch 가 계획되어있다. 기능 개발보다 부담이 덜하다면 덜하겠지만 이것저것 대응하는게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편이고 채용한 인력들의 온보딩을 신경쓰려면 여간 골치아픈게 아니다.

그 뒤에는 WW릴리즈가 기다리고 있을까? 2022년의 가장 큰 이벤트가 될 것 같다. 여름 전에 런칭하고 팀도 안정되어 제대로 된 휴가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늦어도 1년이면 뭔가 트랙에 올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2년이 꼬박 걸리다니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다. 꾸준히 한 걸음씩 나가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