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기

대학교때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날..

무언가 바꾸고 싶었던 날..

나는 정은이한테 ‘오늘부터 난 다시 태어날거야’ 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크게 바뀌는것도 없었다. 늘 말로만..

최근 2-3달 동안 많이 무기력하게 지냈다. 무기력하다고 해서 회사나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굴러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의욕만 없었지 수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어쩌면 그 ‘수 많은’ 일들 때문에 의욕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무기력했던 건지도.. 나한테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졸업이나 입학, 이직과 같은 하나의 이벤트 처럼 내 마음을 다잡을 계기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이런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억지로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바꿀 필요도 없으니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는 결국 ‘다시 태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을 계기로 다시 태어나 보자. 다시 태어난 삶이 이전과 똑같더라도 내가 손해볼건 없으니..적어도 오늘 아침에 이 선언을 함으로 정은이가 웃을 수 있었으니..

어제까지의 나야..고생만 죽도록 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것 같아 미안하다. 오늘부터의 나는 마음껏 즐기고 열심히 살게! 수고했다!

성장

계획했던(?) 큰 목표들을 달성한 지난 3년간 우리 부부가 얼마나 성장하고 변했는지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수십년 전 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젠 아기가 아닌 막둥이 시우.. 모든일에 자신감을 찾아가는 지호..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지우..

지우는 이제 안아주기도 힘들 만큼 커버렸다.

흠.

한국 방문

14년 1월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2주가 조금 넘는 기간이라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유럽여행을 1-2주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만날 사람도 최소한으로 하고 양가 부모님들 뵙고 아이들 챙기는 것에 집중했다. 부모님이 매년 독일로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반면에 처가 어르신들은 그렇게 못해서 가능한 처가에 오래 머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결혼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처가에서 보낸것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서로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그 결과로 조금은 더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은이가 자라온 환경을 직접 경험 하면서 정은이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정은이를 따라가서 도와주고 어르신들 뵙는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갔기 때문에 큰 설레임도, 무언가 하려는 의지도 많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독일과 비교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좁은 인도나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여러 가지는 금새 적응 하여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그러한 자세로 마주친다는 부분은 조금 힘들었다. 내가 이 나라에 오래 살았고 또 나도 그들 중 하나인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처음 느꼈던 여러가지 불편한 부분들에 금새 적응해 버리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깍아내려 이 불합리한 상황들에 맞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합리화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만큼 낮은 질의 삶과 형편없는 자존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고, 비단 나 뿐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적인 구성원들의 자존감이 얼마나 낮고, 따라서 내가 2주간 느꼈던,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것 같았던 사람들의 마음이나 공격적인 자세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지 또 그 반대급부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뒤로 밀리게 되는 불합리는 감수해야 하는지.. 최순실처럼 큰 권력형 비리에는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어째서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불합리와 위법 상황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합정동 공항버스 정류장을 내렸을 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 위험하다였다. 중앙차로에 정차한 버스가 우릴 내려준 곳은 차가 무섭게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이었고 이 좁고 긴 버스 정류장에는 자신이 탈 곳을 찾아 것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횡단보도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고 아이들이나 노약자가 밀려 도로로 넘어져 다치거나 죽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것 같은, 마치 공포를 체험하기 위한 놀이시설과 같은 장소였다. 물론 휠체어가 지나다는것은 불가능 하고 아이들과 케리어를 끌고 그 인파를 지나는 우리들은 마치 내가 죄인인 마냥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합정역 로타리를 건너는 3개의 신호등 중 하나가 빨리 바뀌고 도로폭이 좁다는 이유로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빨간불에 건너는 것은 마치 본인의 기준에서 불합리한 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가 앞에 세워진 수 많은 불법 주차 차량들로 처가에 출차나 주차가 어려울 때면, 불법주차를 한 장본인이 나와 뭘 이런거 가지고 이러냐며 인상을 쓰거나 혹은 웃으면서 차를 빼는 것을 도와주는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행위가 마치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웃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내집 앞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자동으로 단속하는 첨단 CCTV를 피하려 주차금지 푯말로 번호판을 가리면서 까지 주차를 해 놓았는데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그 불편을 감내한다.

다른 사람의 주차장에 잠시, 혹은 장시간 주차하며 본인이 못 빠져나갈 것을 걱정했는지 주차장 입구에 주차하여 그 곳에 거주하고 주차해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차를 빼달라고 시간과 전화비를 들여야 부탁해야 하는 것은 권리를 가진 정당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불법 광고/간판들이 모든 벽면/거리에 부착되어있고 일방통행로 역주행이나 사거리 교차로에서의 불법 주정차 같은것은 애교로 봐 줄 정도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러할 정도인데 식당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은 어떨까? 과연 수 많은 위생관련 법규가 잘 지켜지고 있을지, 음식물 유통,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지..과연 생활의 기본적인 법규도 지키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비지니스가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나 기업의 상부 권력이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썩어 있는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사회적 공동체의 약속인 모든 법규의 무게가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약속으로 정한 이상 모든 구성원들이 최대한 지키려 노력해야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이익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살기에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 하나 감당하는 것도 어려울 판에 남들 뒷치닥거리까지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억울함과 어려움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이라고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간은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조금은 다르다. 선진국이라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줄을 서지 않으면 모두 손해본다는 것을 아니까 불만이 있어도 참고 지키려 노력하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동의 이익을 해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비난하는, 어찌보면 ‘정’없는 나라이다.

결국 누구를 욕할 것도 없이 우리 한 명 한 명이 일상처럼 지키지 않는 수 많은 ‘작은’ 약속들이 그 끝에 기형적인 결과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나도 피해자이자 가해자 이며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관계로 엮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독일행을 택했고 이번 한국 방문으로 상대적인 만족감을 더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속상하다.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나의 나라에 사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그냥 속상하고 안타깝다.

독립

나는 2008년에 창업해서 약 4년간 여러가지 일들을 했었다. 2013년에는 남은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고 나만의 게임도 만들어 보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관리가 자유롭고 직장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남으로서 나와 가족의 삶은 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외주에 의존하던 사업을 자체 서비스로 바꿔보려고 시도중에 독일에 오게되었고 다시 들어오기 싫었던 직장이라는 시스템이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 시스템 안에서만의 가치를 위해 이런 저런 스트래스를 받고 고민하고 또 결심하기를 여러 번..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신 이번에는 외부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마련.. 아직 한국에 있는 법인도 살아있고, 지금 독일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일종의 ‘파견근무’로 생각하고 이곳의 직장생활을 유지해도 될 것같다. 즉, 다시 더욱 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기력하고 승진이나 급여, 인간관계로 많은 스트래스를 받겠지만 내 회사의 메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 이런 스트래스 없이도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또한 내 개인 프로젝트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왜 진작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최근에 하고싶은 개인 프로젝트들이 몇가지 생겨서 이렇게 결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난 달, 무려 5가지의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재밌고, 배울 수 있고 또 가능성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아직 조금 느리지만 조금씩 진전도 있고 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또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더 큰 동기부여가 되고 개별 프로젝트들의 진행도 조금씩 빨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꾸준히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것이 굉장히 정신건강에 좋을것 같다. 그래서 독립을 선언하기로 했다. 그냥 마음속의 작은 결심이 아닌 멈춰서 있던 내 회사를 다시 굴리는거다. 지금 직장은 외주개념의 메인 프로젝트로, 개인 프로젝트들은 내 회사가 일어서기 위한 기반 프로젝트들로..

회사로서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독립된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2017년부터는 작은 성과라도 스스로 증명해보일 수 있도록 하는것이 목표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 만큼 작은 좌절은 있어도 결국 이루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상

방학하고 처음으로 Hort 에 지우를 데려다 주었다. 지난 2주간 Hort가 방학인줄도 모르고 몇 번 문을 두들겼는데 아무도 없어서 내심 실망하던 지우였다. 오래간만에 둘이 손을 잡고 걸으니 그 새 지우 손이 커졌음을 느낀다. 하루 하루 부쩍 자라는 지우가 놀라우면서도 조금은 아쉽다. 오늘은 열었을까? 아니면 어떡하지? 나누는 대화 중에 실망스러운 상황을 대비하려는 마음가짐이 보인다. 그래..너도 조금씩 철이 들었구나.. 이젠 지우도 조금씩 모든것이 다 자기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Hort가 열었다. 한달음에 3층까지 뛰어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간다. 대장 선생님과 껴안고 선생님은 지우 얼굴을 감싸고 진심으로 반가워한다. 그 모습에 덩달아 나도 그 손안에 있는 것처럼 웃음이 나온다.

호야는 요즘 부쩍 자기 옆에서 자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엄마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지 한참 뒤에는 엄마와 자리를 바꾸라고 이야기 하거나 엄마한테 굴러가 버린다. 엄마가 너무 좋지만 아빠도 좋아..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 아빠를 속상하게 할 수도 없고 어쩌지…하는 생각이 보인다.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호야다.. 나도 어릴 때 마음이 여리여리 하고 딱 호야처럼 내성적이었던것 같다. 호야가 완벽주의자라는 것만 빼고는 성격이 나와 많이 닮았다. 여기 까지 생각하니 혼자 속상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많을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다. 하지만 또 혼자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마음이 자라나겠지…생각해본다.

막둥이 시우는 요즘 너무 바쁘다. 형이 하는 말과 행동은 다 따라해야 하고 거기에 또 자기 일 까지 해야 하니 안바쁠 수가 없다. 어제 한참 자는 중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리 저리 넘어지면서 화장실에 갔다. 아주 한 참을 그곳에 있다가 (아마도 살짝 잠들었던 것 같다) 침대로 들어와 누웠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대견하다. 셋 중 가장 신경쓰지 않아 기저귀도 늦게 졸업하고 쉬야하는 것도 대충 가르쳤는데 자면서 실수한 적이 거의 없고 셋 중에 가장 적다. 아직도 아빠보다 엄마가 훨씬 좋다고, 엄마 얼굴에 수 십번씩 뽀뽀하고 안아주는 막둥이 덕분에 정은이 힘든 일상에 많이 웃을 수 있게 해 준다.

구입한 차도 도착하고 방학과 부모님 방문 덕에 정신 없이 2달을 보냈다. 2달 전에 살짝 추웠는데 그 사이 한 여름이 다 지나고 다시 추워지고 있는 요즘이다.

처음 독일에 와서 변덕스러운 날씨와 불편한 일상에 속상하고 막막했던 기억이 한가득인데 지금은 바뀌는 날씨도 너무 좋고 사소한 불편함은 무리없이 잊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하루하루 즐거운일, 속상한일 많은 이벤트로 채워지고 있다.

독일에 왔다는 사실도 한국을 떠나왔다는 사실도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우리는 이제 잘 적응하고 있다. 무려 2년이 넘었음에도 독일어 공부 하나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딱히 걱정은 안된다. 짧고도 긴 이 시간동안 우리는 정말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성장한 것 같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수 많은 생각들과 다른 환경 속에서 느끼고 바뀌게 된 생각들이 우리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해 줄 것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쫄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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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엄마아빠가 배로 보낸 소포가 쫄에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한 1년 안걸리다가 오래간만에 걸린것 같은데 아예 내야할 세금이 30유로 정도로 계산되어 왔다. 회사가 끝나고 세관에 들렀더니 박스를 열어보라고 하는데 역시나 별게 없었다. 세금은 내지 않고 무거운 박스를 들고 집에 오는데 너무 힘들었다. 차가 있었으면 아무 부담 없을 일인데 괜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이 상황도, 차를 사지 않고 이유없이 미루는 내 자신도.. 반면에 요즘 운동을 하려 노력하는데 이것처럼 좋은 운동 기회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또 사야할 물건들이 밀려간다. 물건 구매가 두근두근 기대로 다가오는건 언제쯤일까? 우리한테 소비는 쌓인 빨래더미같이 어서 처리해야 할 또 다른 일로만 느껴진다.

주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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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지우가 프란치스카 생일 파티에 가는 관계로 부득이 외출을 해야했다.
아침으로 빵과 만두를 준비하고 점심에는 미트볼로 먹었다. 밀린 빨래/건조를 마치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지우를 데려다 주었다.
제인을 만났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밀라는 프란찌네 고양이가 무서워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선머슴처럼 남자애들 하는것만 좋아하는 애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다니…
집에와서 쥬라기 공원을 함께 보고 공룡 놀이와 간지럼 놀이를 하였다.
시우가 장난기가 어찌나 넘치는지 울면서도 끝없이 놀려고 한다. 내가 그간 이렇게 놀아주지 못해서 더 재밌어 하는것 같다.
시우가 재미있으니 호야도 덩달아 신났다. 한참 놀다 볶음밥과 쌀국수를 배달시켜 먹었다. 점심에 먹니 마니 하더니 둘 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는다.
실제로 키를 잰 다음부터는 부쩍 키를 의식하며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 같다.
웃는 것도 힘이 들었는지 시우는 쥬라기 공원 보는 도중에 잠시 졸았다. 재미가 없었는지 애들이 나중에는 계속 장난을 걸어서 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었다. 지우는 프란치 엄마한테 이야기 해서 1시간 더 놀고오는걸로 해서 밤 늦게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호야가 자꾸 안나가려고 해서 자전거 라이트를 가지고 나가자고 하니 신이 났다. 프란치 엄마가 풍선도 챙겨주고 기분좋게 나왔다. 고양이 때문인지 지우가 눈이가려워 비볐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 애들 씻기고 양치하고 눕히니 9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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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유부초밥과 주먹밥을 만들어서 애들에게 주었다.
시우가 제일 빨리 먹었고 호야는 제일 많이 먹었다. 어쩐일로 지우가 가장 늦게 먹었다. 어제 생일파티에서 받아온 과자를 동생들과 먹겠다고 하길래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껌도 씹었다고 카라멜도 먹었다가 하는걸 보니 귀엽다. 바깥에 눈이 많이 와서 나가 놀자고 하니 다들 반응에 시큰둥이다.. 독일 애들은 이런 날씨에 더 나가 노는데..게으른 아빠가 될 수 없어 수영장을 가자고 하니 다들 신났다. 애들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 동안 집도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1주일 간 쌓인 빨래도 다 정리하고 울빨래도 한 번 돌렸다. 집을 출발하니 12시 50분.. 꼬맹이들 추울까봐 트레일러에 태웠다. 지우는 가는 도중에도 눈사람을 만들고 난리다. 수영장 가는 길에 있는 큰 공원에 썰매타고 눈놀이 하는 가족들로 바글바글하다. 겨울이라 수영장이 열었을지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지우는 혼자서 씻고 들어가보겠다고 난리다. 수영장에 들어가니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지우,호야,시우 모두 즐겁다. 어찌나 잘 노는지 정신이 없다. 야외로 연결된 수영장도 계속 운영중이라 모두 다같이 나가서 시원한 바람도 맞고 신이 났다. 그렇게 2시간 반을 쉬지않고 노니 모두들 입술이 파랗고 지쳤다. 애들 씻기고 옷 입고 나오는 것만 30분이 걸렸다. 또 눈밭을 걸어서 집에 가는 도중에 모두들 감자튀김이 먹고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지우는 저번에 지나친 되너집이 아쉬웠는지 그 곳을 콕 찝어서 이야기 하길래 되너와 감자튀김을 샀다. 감자튀김은 가면서 먹으라고 트레일러에 넣어주니 호야랑 시우는 또 신났다. 나랑 지우도 걸어가면서 하나씩 빼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 와중에 엘라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애 셋 데리고 수영장 다녀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자전거 끌고 가는 뒷모습이 좀 쓸쓸해보인다. 모두를 끌고 집으로 와서 남은 되너와 빵으로 밥을 먹으니 벌써 6시.. 수영복을 빨아 널어 놓고 집 정리하고 양치시키고 눕히니 8시다. 예상했지만 10분만에 모두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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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제 같이 놀아주는 것도 힘들지 않고 재밌다. 무엇보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그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바깥에 나가도 말을 잘 들으니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다. 1년전에 나 혼자 아이들 본다는게 얼마나 어려웠는지..시우가 어리고 말을 막 배울 시기에 엄마만을 찾아서 정말 힘들었다. 요즘은 잘 때 엄마 없이도 자고 밥도 잘 먹고 나랑 노는걸 즐거워 하니 어려움이 없다. 이번 주말은 나도 아이들도 재밌게 잘 보냈다. 주중에는 어렵지만 주말에는 꼭 이렇게 몸도 부비고 함께 있어야겠다. 길어봐야 저녁 8시까지인데 오늘은 조금 아쉽기 까지 하다.
날이 안풀리면 수영장, 풀리면 공원..할 일이 참 많은데 그 동안은 너무 힘들게만 생각했던것 같다. 주말동안 혼나는 아이들도 없었고 애들한테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지우의 ‘이번 주말은 최고였어!’ 라는 칭찬에 지친 몸도 마음도 모두 회복되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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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우리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큰 계획 없이도 작은 계획들 소소하게 이루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요즘들어 정은이와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 부부가 비슷한 걸로 보아 어쩌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의 근본은 결국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면 다음은 노력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지는 자신이 얼만큼 행복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로서 우리가 깨우쳐줘야 한다. 방향을 잡는 것은 아이의 몫이고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고 쉬워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고 부모로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넘쳐나는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채우는 것과 이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때로는 부족함이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진짜 환경일 것이다. 부모가 세운 목표에 아이를 맞추려 하면 아이가 생각하는 가치와 부모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다양한’ 경험은 부모의 기준에서 끝나게 될 확율이 높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은 더 어렵다. 처음에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그 느림 속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이의 노력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더라도 설령 부모가 시켜서 한다고 그게 정말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즐겁게 공부 했던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단 1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했기에 즐거웠고 잘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가진 능력도 비슷하다. 시작은 단 6개월이었다. 병특시작하고 회사일과도 관계없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6개월을 거의 밤샘하다시피 공부한 것으로 지금 15년을 먹고 살고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민학교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강하게 거부했고, 내가 하고싶은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난다. 즉 엄마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노력하고 시키려 했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철저히 무시당했고, 서로의 시간만 낭비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그 무엇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알려주고 싶다. 무엇이 있는지를.. 한국에서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늘 그랬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뛰는것은 너무 힘들었고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방향은, 때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방향을 정하고 거리를 가늠해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면 언젠가는 ‘스스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와주면 나중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더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부모로 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독립해서도 스스로 잘 판단하도록 키우고 싶다. 사립학교, 과외, 명문대..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것 같다. 스스로 사고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 자신도 때때로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은 내가 낳은 존재이면서 남인 존재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생각이겠지만 부모의 기준으로는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너의 인생을 살게 해 주는 것, 이게 부모로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고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제 자식을 남으로, 나와는 가장 가까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자. 내가 너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고 조언해 주고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무엇으로 만들 수는 없다. 네가 정한 의지에 나는 따라가고 도와줄 수 있지만 너를 내 의지에 맞춰 끌고갈 수는 없다. 길고 넓게 생각해야 아이의 시야도 따라온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좋다는 것만 다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를린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내가 얼마나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지와 의무교육이 인간의 일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5년 뒤를 상상하기 어렵다. 다양한 언어 구사능력과 사회적인 교류 말고 과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지..내가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우월감, 시기, 질투

우월감은 행복일까?

만족스럽기는 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잘 하고 있다는 그 생각. 내가 진짜 잘 하는건지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이루어 진다. 내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남이 나보다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행복해 하고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불행해진다.

왜 내 자신의 기준으로 행복할 수 없을까…왜 좀 더 어렸을 때 내 감정에 충실하지 않았을까. 왜 아직도 나는 이런 불합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똑같은 현실에서 단 하루사이에 우월감과 시기, 질투를 왔다갔다 하는 이 마음이 참 부끄럽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