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 좋은 부모

만약 내 아이가 똑똑하다는 걸 알고(부모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또 아이가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고 하려고 노력하는데 선생님이 피하거나 귀찮아 한다면 어떨까?

평소에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란, 가르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올바른 지식을 잘 전달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선생님이 저렇게 노력하려고 해도 제도적인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로 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선생님과 좋은 제도, 사회 분위기 등이 아이들이 교육 받는데 중요한 요소 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부모로 부터 받는 가정 교육일 것이다.

최근의 나의 모습은 내가 욕하던 선생님들 보다 훨씬 못한다. 아니 최근의 모습이라기 보단 최근에 이런 것을 더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내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 하고도 부족함이 있을 때 환경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텐데 부모로서의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환경만 탓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갈수록 부모로서 못하게되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아직 이런 고민이 이른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번 부터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부모가 되기 전에 ‘정상’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 먼저니까..그리고 이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애들 옆에 있어주는것, 아이들 말을 들어주는 것 이게 전부인것 같다.

요즘 지우는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 해 버린다. 한 편으로 기특하면서고 한 편으로는 부모한테 이야기 해 봐야 안되니 그냥 내가 해 버리지..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저렇게 똑똑한 아이를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스스로가 앞으로 못나가게 붙잡고 있는것 같고, 결국 가장 쉬운 방법인 돈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내 마음을 볼 때, 또 속상하다.

잘 할 필요 없다.

어디나 무엇이나 똑같다. 집도 회사도 일도 가족도..잘 하려고 할 필요 없다. 못하지 말아야지. 다른거 신경 쓸 필요 없다 나 자신이나 잘 해야지.

나한테 먼저..

뭔가 기대하고 싶은게 있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만큼 행동했는지 생각 해 보자.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기대하는 마음은 똑같다. 나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언제나 남들에게 보다 관대하다.

내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기준에서 부터 시작된다. 아니 애초에 아쉽다는 생각 부터가 잘못된 출발이다.

모든 행동은 결국 나를 위한건데 남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나만을 위해 행동하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다 자신을 위해 각자 생각하고 살아가니 내가 기대하면 내가 아쉬운 것이 정상이다.

나를 위한 것은 그렇다고 인정하고 싫은 것은 억지로 하지 말자. 거짓을 걷어내고 내 감정 앞에 먼저 진실되어야 내 주변에도 진실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즐겁게 살 생각 도 잠시, 임신을 하고 부터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왜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대답할 수는 없다. 가끔은 부정적일 때도 많다. 요즘은 더욱 힘들다. 새로운 환경이나 독일에 살고있는건 별로 문제가 없는것 같다. 임신해서 출산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클 때까지 손이 많이 가고 우리가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이라도 조금 더 자면 좋겠다는게 우리의 바램이었으니까… 그런데 육체적으로 사람을 만드는 건 이렇게 육체노동으로 가능하다지만 정신적으로 사람을 만드는 건 정신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적절하게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금새 길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부모의 하루하루를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것도 큰 부담이다. 나 스스로가 완전하게 도덕적이거나 모범적이지 않은데 아이를 위해 이런 부분을 신경쓰다 보면 아이들을 위해 내 행동을 제한해야 하는 것에서 스트래스를 받거나 내가 이렇게 의식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만큼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에 또 스트래스를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스트래스 만 받고 결국 똑같이 행동하지만…

완전한,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부족한 부분이 아이들한테 똑같이 보이면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또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인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나도 결국 사람, 그것도 불완전하고 어리게만 느껴지는 사람인데 가끔은 어디에 기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결국 내가 향하는 곳은 정은이 옆인데 정은이 또한 힘든 상황에 있으니 서로를 위로할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그냥 기나긴 전쟁 중에 찾아온 잠깐의 정적 속에 지친 몸을 기대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서로의 피곤함을 나누는게 전부다.

그래도 희망적이라면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더 여유가 생기고 있다는 것과 부족한 우리를 마주하며 때로는 반성하고 때로는 깨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것 같고 나중에 더 큰 문제로 우리는 고민해야 했을것 같다.

지난 주 어느 날 피아노가 배달 오는 날이라 늦게 출근을 했다. 지우와 호야는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으로 와 피아노를 받고 조립을 한 뒤 회사로 향했다. 우반 역까지 가는 짧은 거리에 정은이와 호야와 손을 잡고 걸었다. 처음으로 호야만 데리고 셋이 걸어본 거리.. 아이가 하나였다면 우린 좀 더 여유가 있었을 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이내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힘든건 힘든거고 행복한건 행복한거니까..힘들다고 행복하지 않은건 아니니까..

학교와 유치원에 매일 아이들을 데려다 주면서도 매일 쑥쑥 자라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지금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조금 더 늦게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것 같다.

무엇을 시작하든, 성격, 생각, 고민..모든것이 시작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끝으로 다가간다.

어떤 관점에서 중간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아주 힘들다..모든것을 매 순간 의식해서 살 수 없는 것처럼..

 

 

2014

물욕이 없어졌다. 언젠가부터..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은 집은 가지고 싶었다. 특히 멋지고 편한 부엌과 욕실에 욕심이 생겼다. 물론 집은 주택이어야 하고.. 하지만 성인이 된 뒤로 제대로 집에서 살아본 기억은 별로 없다.

대학 간다고 서울 올라와서 기숙사로 하숙방으로 자취방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또 병특한다고 다음엔 회사다닌다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결혼했는데, 결혼 해서도 무슨 병인지 여기저기 이사다니고 결국엔 독일로..독일에 와서도 벌써 3번째 집에 아직 티비도 못샀다.

그리고 지난 1년은 난민…

나는 회사에 들어가고 지우는 학교에..지호는 유치원에.. 시우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시기..정은이는 이 모든 변화에 겹쳐서 노출되어 있어 스트래스가 더욱 심했을것 같다.

모두 힘들고 지치는 시간들..시간이 흐르면 더 좋아질것이라 믿었고 정말 좋아지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것도 있다.

다만 아이들이 크는 모습과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는것이 조금의 위안이랄까… 우리도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방금 티비 결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

가르침과 배움이 특별한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나누는 대화가 서로에 대한 가르침과 배움이다.

하지만 가르침과 배움 사이에는 깨달음이라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이 없으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지난 시간동안 얼마나 바보같이 살았는지.. 매일이 부끄럽다.

뭐..지금이라도 같이 성장하는거지..

블로그를 다시..

여유가 없어지면서 페이스북에 간단한 메모를 남기게 되었으나, 페이스북에는 긴 글 쓰기가 어렵고 나중에 글을 찾아보기도 어려울것 같아 다시 블로그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카테고리도 많고 해서 정리해야할 것들이 좀 보인다.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니 잘 정리해 봐야지…태그도 열심히 남기고 가능하면 매일의 일들을 적어보고 싶다.

푸념.

언제부터 이곳에 이런 글만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힘들 때만 이곳에 오게 된다.

제일 처음 산 도메인..정은이와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곳에..

기쁘나 즐거우나 하루에도 수십번 들락거리던 이곳에..

아니다 아니다 하지만 힘든건 사실이다.

그냥 주변에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애들은 어리고..정은이도 힘드니 나한테 무엇인가를 덜어줄 여유가 없나 보다.

나 또한 그런 여유가 바닥난지 오래다.

이렇게 여유가 없을 땐  꿈이고 뭐고 그냥 세상 바보처럼 살면서 이리저리 휘둘려도 별 생각없이 회사 다니면서 같이 상사욕을 할 직장 동료나 옛날 이야기로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난  일보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아빠는 선택이지 않으니까..

아버지

자식 셋이 되어보니 아버지로서의 무게가 버겁다.

아버지로서 ‘무게’는 무엇일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무게..

죽어라 돈 벌면 가족도 챙기지 않는다는 비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는 무게..

주구장창 집에 있어봐야 무능력한 아버지라는 비난..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한다는 큰 테두리 속에 있으면서 돈버는 아버지와 집에서의 아버지 역할로 고민한다.

그 두 가지를 같이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능력의 한계도 있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든건 이 두가지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고 해도 ‘나’로서 존재하는 아버지는 없기 때문에..

돈도 잘 벌어 가장의 역할도 잘 하고,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버지로서 곁에 있어주고, 언제나 자상하고 멋진 남편으로서, 그리고 나 스스로도 보람된 인생을 산다는 것..

지금은 조금 버거운 목표로 생각된다.

어느 몇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 글을 보며 나는 웃고 있을까..

아니면 절망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