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로 1학기가 마무리 되고 1주일 간의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우리 귀염둥이들도 각자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김나지움에 진학해야 하는 호야가 헉헉거리며 집으로 제일 먼저 뛰어왔다. 미리 선생님들한테 물어봐서 대충의 성적은 알고 있었는데 한 과목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난리다. 5학년2학기와 6학년1학기 성적을 평균한 점수가 적용되는 김나지움 입시… 마찬가지로 3학년2학기와 4학년 1학기 성적으로 5학년부터 시작하는 김나지움에도 지원했었는데 그 나이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밀어붙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당시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좋았기에 적극적으로 다른곳들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그 땐 모든 과목 평균이 1점(최고점)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후 코로나 시대와 약간 이른 사춘기인지 호야가 엄청 방황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집에 있으면서 우리가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것도 사실이다. 닌텐도를 사서 온 가족이 동물의 숲은 하느라 몇시간씩 서로 게임을 하고, 학교의 원격 수업 초기에 엉망인 프로세스를 보고 금방 다시 학교에 가려니 하고 내버려 둔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들도 지나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약속과 다르게 호야가 있던 반이 사라져 버려서 친구들과 선생님과도 헤어져야 했고 갑자기 바뀐 선생님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록다운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가면서 조금씩 마음이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미 공부는 포기한 몇몇 친구들이 집요하게 호야와 놀자고 하고 장난을 거는 통에 학교에서 이것 저것 놓치는게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김나지움 컷트라인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호야는 1점을 맞을 수도 있는 과목을 어이없는 실수나 귀찮음(?)으로 2점을 받아오는 날이 많았다. 길고도 길었던 잔소리와 설득의 시간을 지나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본인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아서 기뻐하고 안도하는걸 보니 이녀석이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가 다니는 학교는 입학시험이 따로 있는데 그 시험도 봐 둔 상태고, 시험 결과에 따라 어느 학교를 지원할 지 결정하면 될 것 같다.
호야가 신나서 떠들과 있을 때 시우가 집에 들어왔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받는 시우는 1점 받는게 당연한거 아니냐면서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더구나 자신은 ‘똑똑한 아이’상과 ‘빠른 아이’상, 두 개를 받았다며 반에 상장을 받은 아이는 4명인데 두 명만 두개의 상장을 받았다며 또 자랑이다. 더구나 이번 학기 반장으로 대 활약을 한 터라(더 하고 싶다고 아쉬워 함) 높아진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
마지막으로 지우가 2점이 몇개 안된다는 자랑을 하며 들어왔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는 내 농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번보다 잘했다며 깔깔거린다. 지우는 최근에 사춘기를 보내며 무슨 바람인지 바이올린과 공부에 굉장히 시간을 쏟더니 어려운 과목들은 모두 1점을 받아왔다.
정말 세 아이 모두 한 달에 10분정도 뭔가 물어보면 대충 알려주는 정도의 신경만 썼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모든 것들을 잘 하고 있으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특히 지우는 우리 입장에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하루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여러 잔소리를 하지만 사실 할 필요도 없는 말들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배부른 소리들일 것이다.
독일이 학업 성취도가 떨어져서 우리 아이들이 그냥 잘하는 걸까? 그런 아닌것 같다. 한국도 장난 아니지만 여기서 잘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노트 정리부터 수업태도, 발표, 쪽지시험, 정규시험 그리고 실습이나 프레젠테이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하나도 모르고 온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더구나 놀기도 엄청 놀면서!
이번 방학이 지나면 호야는 희망 학교에 원서를 쓰고 6월 말이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이젠 뭐..어떻게든 될것이라 믿고 이제 남은건 시우… 시우는 가능하면 5학년때 김나지움에 보내려고 한다. 지우와 호야 경험상 그룬트슐레에서 5,6학년은 정말 개판인것 같다…
한국의 부모들이 일단 대학만 보내자고 다짐하는 것 처럼, 우리는 일단 김나지움만 보내자고 다짐하고 있다. 김나지움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10대의 가장 빛나는 6년을 보내는 곳인 만큼, 그 곳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대학?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학비가 있는것도 아니고 여느 독일 가정처럼 만 18세 성인이 되어 가능하다면 독립하게 해 주고 싶다. 대학이 아니라 다른 하고 싶은게 있다면 더 좋고.
예민한 호야와 더불어 가슴졸이던 몇 달의 고생이 이제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경험으로 아이들도 많이 배웠고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다행인건 노력한 만큼 나오는 결과를 아이들 스스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기저귀 찬 막둥이 업고 춥디 추운 독일에 직장도 집도 아무것도 없이 들어온게 7년전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잘 크고 적응해 주어 너무 감사하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