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그리고 20년

10월 28일은 우리가 만난 날이다. 때는 무려 2000년으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 날이 올 때마다 블로그에 여러 번 썼던 것 같다.

매 년 이렇게 그 때를 추억하고는 하는데 그 숫자가 더해갈 수록 기분이 이상해 진다.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 있다니… 사랑과 좋아하는 감정과 함께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상대로, 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느껴지는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우리 둘 다 올해 만으로 40이 되었으니 그 시간의 반 만큼을 서로의 옆에서 함께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함이 몰려온다.

아직도 매일 둘이서 수다 떨고, 재택 근무 시작한 이후로 꼭 붙어있는것도 너무 좋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아이들이 잘 커주었는지 매일 매일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잘 살고 있다고 서로 이야기 하고 있다. 뒤늦은 후회가 없도록 건강도 챙기고 서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여전히 답은 없지만 고민하고 이야기 하는 요즈음의 시간들이 참 좋다.

이제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지난 12년간 아이들을 키워오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첫째 지우는 기준을 잡을 방향도 없이 어느 것이든 극단적으로 키워왔던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 많은 것을 받아준다던가 하는 긍정적인 방향도 있었지만 아이의 욕구를 틈도 없이 차단해 버린 적도 있었다. 둘째 지호가 태어나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것에 맞춰진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한 아이를 챙긴다는건 다른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하루도 만족하거나 웃을 수 없는 하루였다. 특히 엄마로서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정은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가 비슷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고 또 크고 작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휴게소를 찾으며 고장난 엔진으로 전력질주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있었던 기분이었다. 우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고(지금도) 중간 중간 쉬었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최소 20년이 걸리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우리는 눈 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고, 길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피곤이 쌓이고 여유가 없어지자 아이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화는 분노로,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훈육을 핑계로한 폭력.. 그 수위가 어느정도이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에 대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은 이제 평범한 부모만 되어도, 아니 나쁜 부모만 되지 말자로 바뀌어갔다. 병원에 갔다면 무언지 알 수없을 병명을 십수개 진단받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 무렵.. 우리는 매일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시 다짐했지만 세 아이와 외국생활에 대한 적응, 여러 집안문제 그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게에 짓눌려 끝없이 추락하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던게 둘째를 키우던 첫 해였는데 그로부터 불과 3년뒤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해본적 없는 바닥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스스로 천성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생각했던 나 스스로 우울함을 느끼던 그 때, 이미 우울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정은이.. 행복했던 우리가족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이유도 알 수 없던 그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인정하고 또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셋째 시우가 말이 트여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챙길게 많았지만 시우가 말을 하게 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불과 1-2주 사이의 변화였다. 소리지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아이라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애교를.. 그리고 지우와 호야도 학교, 유치원에 적응했고 우리의 비자도 안정되었으며 불안한 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집의 계약도 마무리 되었다. 머리속을 가득채우던 걱정거리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행동은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웃는 날들은 늘어나고 약간의 여유도 생겼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이 생기면 예민하게 굴었다. 늘 나빠지기만 했던 상황이 이제 바닥을 치고 하루 하루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서로에게 위로하며, 우리는 좋은 부모가 아닌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철없던 10대 시절 입에 욕을 달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 고치겠다고 마음먹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 2년정도 걸렸던 기억이 났다. 나쁜부모가 되지 않는 다는 목표는 우리의 첫 목표에 비하면 비참한 수준이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기에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변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조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부모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뭔가를 고쳐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과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 더 느끼려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급하게 아이들을 밀어대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그리고 짜증내는 것을 구분하고 화와 짜증은 아이들 앞에서 내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고 만약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면 아이들과 이야기 해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풀 수 있도록 한다.

내 생각이지만 정은이는 좌절과 우울함 그리고 힘들었던 정도가 나보다 훨씬 심했고, 나와 성격도 달라서인지 아직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령도 모르고 늘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는 정은이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더 챙기고 여유를 만들면 조금은 더 쉽게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마일스톤을 넘었다는 선언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도 많고 정리할것도 많았지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과 가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사는게 쫓기듯, 밀리듯 살다보니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 마저도 쉽게 이루지 못한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더 여유있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당 관리

지난 해, 지우 방 쪽 마당에 조금씩 이끼가 보여서 겨울에 한 번 긁어 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봄을 맞이 해 정원 관리를 하려고 보니 이끼가 잔디보다 더 많다. 그 곳 뿐 만이 아니라 마당에 전체적으로 이끼가…ㅠㅠ 부랴부랴 이끼 제거제와 살포기 그리고 이끼를 긁어내는 갈퀴를 주문했다.

2주일에 걸쳐 약을 뿌리고 갈퀴로 긁고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고 그리고 또 반복 반복.. 놀랍게도 땅에서 긁어내고 뽑은 이끼와 잡초가 큰 통으로 8통이 넘었다. 이는 우리 건물 전체가 쓰는 유기농 쓰레기통을 4번 정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인데 이 후에 우리 마당이 얼마나 휑 해 보이던지..

이후 잔디 씨앗을 골고루 뿌려 준 뒤, 잔디용 흙을 고르게 덮어 주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다. 오늘이 4일째 인데 벌써 조금씩 새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나올 줄 알았더니 어느 순간 2-3센치 미터씩 확 확 올라오니 나도 모르게 아빠미소가…

영양이 가득한 흙을 덮고 물을 뿌려주니 잔디 뿐 아니라 온갖 잡초들도 같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가 또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 또한 미친듯이 뽑아주고 있으니… 1주일정도 지켜보고 잔디가 잘 나오지 않는 곳은 새롭게 씨앗과 흙을 사서 또 다시 뿌려줄 계획이다.

얼마 안되는 정원의 잔디 관리마저도 이렇게 어렵다. 작년, 갑자기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어려 가능성을 알아보았는데 이러한 동물들 키우기가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지.. 그렇게 보면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엄마아빠 말이 세상에서 제일 옳은 말이고 맞는 말이라고 믿는 우리 아이들.. 아침 저녁으로 엄마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모든 일을 힘내서 할 수 있게 된다.

다음주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잔디 사진을 올릴 수 있을런지..

코로나 시대의 우리집 근황

이번 주 화요일 부터 학교가 문을 닫고 부활절 방학이 끝날때 까지 열지 않는다. 5주간 아이들과 집에서 생활. 우리는 이미 단련되어 있어서 큰 부작용은 없음.

원래 재택 근무였기 때문에 별다른 차이 없음. 애들 있어도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이미 개발해 두었음..

1주일 미리 중요한 식량 확보해둔 덕으로 따로 마트에서 줄서거나 아직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음. 너무 잘 먹어서 체중이 증가..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아시아나로 고생하다 겨우 작년에 수익보고 나왔는데 오늘 하루만 아시아나 30% 폭락. 다른 지수들도 폭락하는 것으로 공포의 시작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느 시점에 투자하려고 오늘 증권 앱 인증서 재발급 받음

건강 주제 모바일 앱은 속도를 늦추던지 끊어 가던지 해야 할 상황. 코로나 때문에 투자 진행도 안됨. 모바일 앱 개발의 모든 스택을 업데이트 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음.

이제 유니티/언리얼/플러터/파스/파이어베이스/뷰/일렉트론/Threejs 로 하는 프로젝트들은 기술적 허들 없이 생각하는대로 구현이 가능. 바야흐로 아이디어만 채우면 프로덕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추었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성장 포인트를 잃어버린듯… 그만둔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함

게임프로젝트에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함. TA 나 개발자… 같이 일해서 시너지가 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지금 조인한다면 굉장히 좋은 그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만 해본다..

마당의 잡초, 이끼와 전쟁 중. 200유로어치 이끼 제거 용품과 잔디 씨앗, 흙 등을 구매.. 이번 주는 잡초 및 이끼 제거, 다음 주 날씨가 더 풀리면 씨앗 파종 및 정리 계획

내가 아이와 달라야 할 것

아이는 혼날 수 없고 혼내서도 안된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엄숙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이 이후에도 감정의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한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서로 웃을 수 있어야 제대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화 중에 주제를 자주 바꾸지 않듯이 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 해 줄 때 다른 주제로 바꾸지 않는다. 특히 싸우거나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옛날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들먹이며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혹은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러 왔을 때, 그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나한테 관심있는 주제로 바꾸는 것도 똑같이 좋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한 노력에 보답받지 않았다고 하여 그 서운함을 다시 아이에게 표현하지 말자.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인데’ 라던가 ‘어떻게 만든 음식인데’ 와 같은 마음들..

아이들이 다가올 때 밀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에 비하면 실수 투성이다. 아는것도 많지 않고 경험도 부족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프다. 실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아는 아이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 용기있는 시도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말은 짧을수록 좋다. 내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내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이유 말고는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길어질 수록 거부감만 생긴다.

짜증과 화를 구분할 것. 부모도 인간이니 화가나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건 옳지 않다. 화가난다면 그 상태를 알리고 시간을 가지면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짜증을 내는건 내 감정을 배설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의 일에 일희일비하는것 처럼 아이들을 외곡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없다. 은연중에 부모의 기대가 아이의 사고를 지배하게 만들면 안된다. 기쁜일이든 나쁜일이든 같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것 말고는 부모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아이의 삶을 내 삶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잘 할 자신도 없다. 매일 계속 되새기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저 중에 하루에 하나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적고 읽고 또 적고 읽는다. 오늘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제 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만 늘 하지 못하는것, 늘 명심해야 할것

아이는 부모의 말이나 결정이 아닌 부모의 행동에서 배운다. 부모의 조언이나 생각이 아닌 본인의 경험으로 성장한다.

짜증을 내는 것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이다.

나에게 아이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제어할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은 없다.

아이는 부모의 결정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 한가지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결정의 권리는 아이에게 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성숙한 인간이 되고, 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아이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것 같다. 무슨 공부를, 돈을, 습관을, 교육을…이런 주제는 그 다음 문제로..

독일에서 프리랜서되기

한국인이면서 독일에 살면서 이스라엘(EU 이외 지역)에 창업을 한다면? 혹은 EU가 아닌 곳에 취업/리모트/외주를 해야 한다면 독일에 프리랜서로 등록을 해야 한다.

고려해야 할 사항 들

  • 영주권이 없다면: 프리랜서 비자로 전환해야 한다
  •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직장에서 프리랜서 활동을 허가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프리랜서 등록은 ELSTER.DE 나 세무사에 부탁해서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다.

프리랜서가 된다는 말은 그에 해당하는 택스번호를 발급받는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사업자 번호를 받는 것이다.

Steuer ID = 주민번호(안멜둥 하면 날아옴, 불변)
Steuernummer(일반 소득) = 직장을 다닌다면 받았을 그 번호, 개인 소득 정산 용, 가변
Steuernummer(프리랜서) = 프리랜서 활동 용, 인보이스에 들어가야 한다.
USt-IdNr = 부가세 관련 아이디. 따로 신청해야 하며 발급주체가 Finazamt 가 아닌 Bundeszentralamt fuer Steuern 이다.

연금
연금은 선택사항이다. 개인 연금을 들던지 연금공단과 협의하여 계속 납부하던지 선택하면 된다. 단, 회사 기여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접투자 vs 연금의 수익율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세금공제 여부는 아직 잘 모름. 영주권이 없는 사람의 경우 연금 납부 기록이 중요한 조건이 되므로 무조건 넣어야 함. 고민중.

건강보험
기존에 공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프리랜서 상태로 해당 보험을 유지할 수 있다. 직장에서 내 주던 비용을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므로 조금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 다행인건 상한선이 있다. 2020년 기준(TK) 월 수입이 세전 4,687.50 유로 이상이라면 Krankenversicherung + Zusatzbeitrag + Pflegeversicherung 합쳐서 월 832,03 유로만(?) 내면 된다. 직장인 상한은 430유로 정도였던걸로 기억.

실업급여 보험
프리랜서가 실업보험을?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 가입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직장생활을 했거나 현재 실업급여를 받고있거나 뭐 이런 조건.. 참고로 실업급여를 받던 도중 창업/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하면 아르바이츠 암트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계약 종료후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되는것이라 해당사항 없음. 아직 가입하지 않았으나 가입 예정. 월 80여 유로, 프리랜서 활동 시작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함.

인보이스/은행
은행은 비지니스 계좌라는걸 꼭 만들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추후 세금 정산과 관리편의를 위해 비지니스용 은행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이런류의 계좌를 서비스하는 핀테크 기업이 많이 생겼는데 나는 Holvi 와 Kontist 계좌를 만들었고 이 중 Holvi를 유료로 사용 중. 유료 플랜의 장점은 인보이스 발행을 쉽게 해준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러 비용처리 기록도 쉽게 남길 수 있다. 월 9유로 정도..

비용처리
한국에서 사업할 때와 다른점은 없는것 같다. 750유로 이상 물품은 3년간 감가상각 비용처리되고 집에서 일하는 경우 방을 사무실 전용으로 사용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처리도 받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경우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비용처리할 부분이 많지는 않다. 사업에 관련되지 않은 물품으로 비용처리 받는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 이지만 문제라고 생각하는 법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른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매우 조심해야 함.

세금
번 만큼 낸다. 직장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음. 본인의 세금 클라스 유지, 예상 수익에 따라 미리 세금 납부 후 연말 정산을 통해 돌려받거나 추가 납부한다. 세율을 세금클라스를 따라간다. 직장에선 세금을 미리 때고 주지만 이젠 혼자 해야 하니 세금 납부 예상 금액을 따로 보관해 놓는 것이 중요. 세금 번호 받을 때 예상 수익을 적는데 이후 Finanzamt 에서 친절하게 분기별로 얼마씩 인출해가겠다는 편지를 보내준다. 실제 향후 소득에 따라 조절할 수 있음. 많이 내건 적게 내건 연말 정산을 통해 조절되므로 이익도 손해도 아님.

견적 및 인보이스, 대금 지급
금액이 확인 되면 EU이내 국가의 경우 VAT(19%)를 추가한 금액으로 인보이스를 발행해야 한다. EU이외의 지역인 경우 VAT를 붙이지 않으나 이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잘 모르면 무조건 VAT를 붙이는게 좋다.(최대 6년까지 Finanzamt에서 문제삼을 수 있음)

새로운 시작

온 가족이 기침을 시작한지 2달이 넘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이제 정은이와 지우만 조금 기침을 하고 다들 진정되는 분위기이다. 감기도 감기지만 회사에 나가는게 워낙 스트래스라 의사선생님과 상담 후 병가를 내기로 했다. 의사선생님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심각하게 병가를 쓸 것을 충고해 주셨다. 여튼 남은 휴가와 병가를 합쳐 회사는 나가지 않기로 하고 마침표 아닌 마침표를 찍었다.

네이버를 관두고 작은 회사를 차렸을 때, 그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작은 오피스를 고르고 가구와 장비를 사고 세팅하고 명함과 로고를 디자인 하던 그 때, 불안함은 말도 못하게 컸지만 그 보다 더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그리고 다시는 직장 따위는 들어가지 않을거라 버릇처럼 말하고 큰소리 치고 다녔는데 독일에 오자마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취업, 그리고 6년간 4개의 종신고용 계약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줄어버린 수입과 우리에 갇힌것 같았던 한정된 업무, 새롭게 배워야 했던 서로 다른 도메인과 기술들.. 콘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서 언리얼과 C++ 에 익숙해질 무렵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모바일 회사로 이직, 플렉스와 유니티로 게임을 만들다가 합병 후 엉망이 된 조직 속에서 탈출하듯 다른 동료들과 합류하게 된 한국 회사의 유럽지사에서는 개발사 관리와 유니티 개발… 얼마 후 본사의 정치싸움으로 지사는 문을 닫고 이직한 회사에서는 자율주행과 시뮬레이터 그리고 수십명의 개발자 관리.. 그 동안 수입도 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올랐고 어느 정도 다음 단계가 가시화 되던 그 때, 우리는 여전히 쳇바퀴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쳇바퀴라도 굴리는게 어디냐는 생각과 지금이라면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의 갈등 속에서 정은이와 많이 고민하던 중, 회사에서의 실망스러운 경험들은 내가 탈출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좋은것 나쁜것 여러모로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1년 정도 쉴까..생각했었는데,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배운게 더 많지 않았나 싶다. 하기 힘든 경험들도 많이 해 보고..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아 이 자리에 섰다. 6년전 한국을 떠나왔던 그 마음가짐 그대로.. 비자도 보험도 집도 애들 학교도, 당시에 겁나고 어려웠던, 계획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이 정리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계획했던 ‘내 일을 하자’는 계획만 빼고…

그래서 이제 다시 그 계획을 끄집어 내기로 했다. 아이디어들, 생각들, 하고싶은 것들..마치 6년동안의 시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듯, 멈춰져 있던 기억의 시점에서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걱정은 줄어들었고 기술은 발전했으며 나 또한 조금은 더 경험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20년 내 새로운 직장(이라고 쓰고 사업이라 읽는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더 적은 업무시간
  • 더, 아주 많이 적은 미팅
  • 더 많은 업무관련 모든 비용 처리 및 지원
  • 더 많은, 지금보다 최소한 20%, 많게는 80% 고정 시작 급여
  • 두 개의 다른 프로젝트/엔티티의 기술 책임(기술 분야 모든 의사결정 책임)
  • 쉐어
  • 원한다면 다른 사업 가능

또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사용해야 하지만 모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곳에, 나를 위해 준비된 곳에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다. 좋다.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깨닫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게 생존에, 그리고 삶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내가 특히나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먹어본 똥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어렸을때 참 많이 찾아 먹었다. 하루 이틀 빨리 경험하고 하루 이틀 빨리 졸업했던 그 시행착오들이 오늘의 시간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실수하고 배우고 또 반복하지만 조금씩 좋아지는것에 위안을 받는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가 생길 때,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자기를 보는 시간보다 타인을 보는 시간이 많아 내 시각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의 방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경쟁사회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 생각한다. 타인의 기준에 자신의 행복을 맞추기 때문에 스스로가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억지로 부여한 동기로 밀어올린 성과의 우위로 자신의 행복을 가늠한다. 그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치졸해지고 진 사람은 찌질해진다.

경쟁에서 지는 사람은 거대한 열등의식에 빠져 인생 전체를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직장도 결혼도 아이도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에 불과하다. 때문에 거기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들을 수단으로 우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언젠가 그들이 우위를 점하는 날이 온다. 이제 나의 직장, 가족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지는 사람이 많을까? 그야 물론 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쟁의 기준도 많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두가 패자인 사회가 된다. 점점 더 비열해 지고 유치해 지고 치사해야만 짧지만 작은 행복이라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인스턴스 행복은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이런 행복은 금방 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속을 채우는게 중요하다. 무엇이 자기의 인생인지 아는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돈도 더 잘 벌린다.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안된다는게 이런거다.

한 번 열등감에 빠지면 그 세계에 갇혀버리게 된다. 어릴때 두들겨 맞던 사람은 평생을 운동에 집착하고 복수를 꿈꾸며 육체적인 허세만 부리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못간 사람은 평생을 학위나 타이틀에 집착하며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열등감을 정당화 시키고 벗어나게 해 주는 돈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열등감을 얻는다.

내 주변에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2020

지난 한달여간, 머릿속에 수 많은 가능성들을 시험해 보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 하고 싶고, 다 하기 싫고, 자신있다가 없고 그냥 짜증만 나고 몸도 계속 아팠던 지난 한 달. 감사하게도 마음속 하나의 큰 다리를 건넌 기분이다.

머릿속 관념을 깨고 비틀고 거꾸로 바라보니 무엇을 해야할지 답이 나왔다. 늘 그렇듯 답은 알고 있었다, 실천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 싫은건 걷어내고 좋은것 붙이면 되는거지. 손해보다 이익이 크면 하는거지. 해서 재밌으면 하는거지. 그렇다. 말은 쉽지..

나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어쩌나? 물심양면으로 한창 신경써야할 토끼같은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서 우리 부부, 자식들만 키우기에도 버거운데, 내가 정은이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와도 부족할 판에 부담을 더 지워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깨고 비틀고 거꾸로 봐야 했다. 꼭 이래야 저런다는 관념이 내 인생에도 늘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아이들 키우는 부담도 줄고, 일하는 부담도 줄이고 그러면서 시간도 늘리고 버는 돈도 늘리는 일 말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지금 생각으론 많은 사람들이 그 결론을 못 내릴 뿐 이미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이건 또 뭔 말이냐고? 한 달동안 아프고 생각을 많이 했더니 정리하기가 어렵다.

2020년은 나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시험하고 또 조율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14년 한국을 떠났던 그 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난 5년간의 배움을 그 마음에 녹여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