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했던(?) 큰 목표들을 달성한 지난 3년간 우리 부부가 얼마나 성장하고 변했는지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수십년 전 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젠 아기가 아닌 막둥이 시우.. 모든일에 자신감을 찾아가는 지호..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지우..
지우는 이제 안아주기도 힘들 만큼 커버렸다.
흠.
도전과성취
계획했던(?) 큰 목표들을 달성한 지난 3년간 우리 부부가 얼마나 성장하고 변했는지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수십년 전 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젠 아기가 아닌 막둥이 시우.. 모든일에 자신감을 찾아가는 지호..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지우..
지우는 이제 안아주기도 힘들 만큼 커버렸다.
흠.
올해 계획하고 있던 일들 중 남아있던 큼지막한 한가지, 바로 영주권. 독일에 와서 가지게 되었던 단 하나의 목표이자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목표.. 그 목표를 달성했다.
실제 영주권 발급은 조금 허무하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주권 발급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나는 중간에 외국인청에서 연락이 안올까봐 이메일로 추가서류 접수와 함께 빨리 초대해달라고 이메일을 한 번 보냈었다. 외국인청에서는 최초 접수 후 약 3달정도 소요된다고 처음에 안내했었는데 나의 경우 4월 말에 접수해서 6월 말에 받았으니 2달이 걸리지 않았다.
블루카드를 수거해 가고 내 여권에 영주권 딱지를 붙여주었다. 실제 외국인청 방문 시간은 15분 정도.. 아무런 질문도, 설명도 없었다. 동반인의 비자는 현재 동반비자를 갱신해야 할 때 갱신하면 된다.
가장 간절히 기다려왔던 순간인데 종이딱지 하나 바뀐것 말고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보니 실감이 나지도 않고 아무것도 바뀐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늘 마음속 한 구석에 있었던 고민과 걱정이 사리지며, 주거의 안정이라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권리를 다시 되찾았다는 안도가 비로소 내 주변의 모든 상황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해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주권이 생겼다고 내 주변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바쁘고 정신없는 많은 일들로 부터 나 자신을 조금 분리시키고, 영주권 획득을 계기로 나 스스로와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직 몇가지 신경쓰이는 일들이 남이있긴 하지만 모두 잘 해결될 것이다.
그동안 내 옆에서 고생 많이 한 나의 사랑하는 아내 정은아 정말 수고했다. 그리고 우리 이쁜이들도..
이제 비로소 ‘독일정착’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다.
집을 장만하고 새로운 물건을 채워넣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우리가 신혼때 하지 못했던 이런 일들을 결혼 10년차가 되어서야 하고 있는데, 아이들도 있고 외국이라 그런지 물건 하나하나를 장만할 때마다 여간 힘이 드는것이 아니다.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10년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래 너희들 제발 돈생각 말고 좋은 물건으로 사라’ 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이 자린고비인것을…크게 쓴다고 쓴 돈도 막상 비싼 물건 앞에 보면 싸구려일 뿐이었다. 물론 정말 싸구려를 산 것은 아니지만..비싸고 싸고를 떠나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까지 마련한 것들은 대부분 두고두고 보아도 미소가 나올만큼 잘 선택한 것 같다. 이사온지 한달이 넘어서도 아직 50%정도밖에 정리하지 못한 기분인데 5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다음 포스팅은 완성된 집 사진을 올려보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
더 자주 글을 써야지..라고 마음 먹었던 작년 말.. 하지만 정말 너무너무 바뻤던 나머지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것 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것 같은 불안함에 또 지난 3달..도 아닌 4달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야겠다.
지난 4달동안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사..
4월 9일 공식적으로 이사했지만 3월 말부터 이삿짐을 차에 실어 나르고 4월 10일 트럭을 불러 큰 짐을 나르며 일단 짐 옮기는것은 마무리했다. 그리고 전 집을 청소한 다음 4월 12일 집주인에게 열쇠 반납..
변경된 주소 때문에 회사/보험/자동차/은행 등 12곳에 이 사실을 편지/전화/이메일로 알려야 했고,
때마침 은행 계좌도 바꿔야 했기에 이를 14곳에 알리고 바꿔야했다. 말이 쉽지..대부분 편지+독일어로 했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다.
기존 인터넷 이전이 안되어 새로운 인터넷을 신청하고 연결하고 또 기존 인터넷을 해지하고 기존 인터넷에 물려있던 핸드폰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핸드폰 계약하고 번호이동까지 하는것이 또 큰 일이었다.
물론 기존에 사용했던 전기도 해지하고 새롭게 신청했으며 집 관리비 정산을 위해 관리 업체와 새로운 계약도 했다.
이사 자체도 힘들었지만 우리가 더욱 힘들었던건,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것은 바로 가구 문제였다. 일단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이직 과정에서 생겼던 20여일을 부엌 디자인하고 업체를 만나는데 거의 사용했다. 부엌 욕심이 있어서 지금 부엌은 설치된 상태지만 상판은 따로 주문한 상황..앞으로 4주정도 더 기다려야 상판이 배달된다..덕분에 난 유리 상판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케아 옷장은 지우꺼 2미터, 호야꺼 1미터를 이케아 PAX로 이미 구매/나르기/조립까지 끝냈다. 이번 주말에 현관용 1미터 짜리 조립이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매트리스를 샀고 우리 옷장은 무려 3미터나 되었고 이케아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조립까지 모두 맡겼고 오늘! 배송/조립이 되었다. 부엌에 들어갈 모든 전자제품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 인덕션을 고르고 주문해야 했으며 배송이 올때마다 직접 받아서 집까지 올렸다(냉장고는 한 번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ㅠㅠ). 건조기 또한 새로 구매해서 집어 넣었고 그 와중에 난장판이 된 마당의 잔디를 2번(실제로는 4회)이나 깍았다. 조명은 이제야 겨우 2개를 달았고 앞으로 15개를 더 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벽 뚫는 드릴까지 구입했다. 커튼은 겨우 알아보고 이제 주문을 앞두고 있는데 역시 10여개가 넘는 커튼을 모두 사야 한다. 이와 함께 지우 방에 들어갈 새로운 가구들을 주문하고 마당에 놓을 가구들을 주문하면 대략 사람 사는 집의 구성이 될 것 같다. 예상 일정은 무려 5월 말…한 달 이상 시간이 있지만 결코 여유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입신고와 외국인청 방문은 이미 3달전에 예약을 잡아놓았었고 이번에 영주권 신청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 모레 독일어 시험을 앞두고 있다.
4달동안 단 한 번 다른 가족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나머지 날들은 대부분 이사 준비를 위해 보냈던것 같다. 짐을 나르고 정리하고 이것저것 조립하느라 손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힌게 벌써 2주일정도 된것 같다..
이사와 함께 따라온것은 아이들의 전학. 아이들 새 학교로 전학과 새로운 호아트 계약을 했고 막둥이 유치원 자리를 수십군대 알아보았다. 결국 막둥이는 유치원 자리를 찾지 못해 집에서 놀며 대기중이다.
그리고 이직..그래 맞아..회사를 옮겼었지… 1월 말로 전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벌써 3달이 다 되어간다. 회사에서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언급하기도 귀찮을 정도이다.
이케아는 거의 1주일에 2회 방문해서 이것저것 사오고 있고 바우하우스나 바우마크트도 여러번 다녀왔다. 쓴 돈이 어마어마함은 말할것도 없다.. 또 다시 이렇게 이사를 해야 한다면 정말 힘들것 같다. 심지어 이번 이사는 1주일이 넘는 아이들 부활절 방학을 끼고 했음에도 지금 반도 끝내지 못했다. 겨우겨우 잘 공간만 만들어 놓은 상태로..커튼도 조명도 부엌 상판도 없는 상태로 지내는 중이다. 식기세척기는 돌아가지만 큰 설거지는 욕조에서 해야 하는 상태로..좋은 인덕션 사놓고 휴대용 인덕션을 써야 한다.
이번 주말에는 독일어 시험을 보고, 빌려온 아이스박스를 돌려주고, 겨울타이어를 여름타이어로 교체하고, 현관 옷장을 조립하고, 커튼을 주문하고, 임시 상판으로 싱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하고, 세탁실에 넣을 가구를 설계하고, 또 잔디를 깍아야 하며 늘 하던 집안일을 계속 하는것이 최소한 내가 해야할 일이다.
그러면…그렇게 4월이 다 지나가겠지..그래도 오늘 우리 옷장이 왔으니..우리 옷이라도 조금 정리할 수 있을것 같다..정은이가 벌써 다 해 놨을것 같다. 부엌이 미완성이라 엄청 고생하는 정은아..조금만 참자! 내가 주말에 싱크대 꼭 연결해놓을게!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
2017년에는,
온 가족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또 앞으로 더욱 건강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더욱 인정받고 성장하며 성취할 것이다.
새로운 집으로 즐겁게 이사하고 멋지게 꾸밀 것이다.
바뀐 환경에서 아이들과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더 행복할 것이다.
정은이와 내가 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이 구체화 되고 발전될 것이다.
영주권을 받아 거주허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무수히 많은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올해 초 큰 이유는 아니었지만 회사업무가 너무 쉽고 지루해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재미 만으로는 이직을 할 수 없는 법..그리고 베를린에는 이제 게임 회사가 뻔하기 때문에 옮길 곳도 많지 않았다. 지금 받는 연봉도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드는 회사에 연봉 차이로 포기하기도 했다.
이후 지금 다닌 회사에 감원과 구조조정, 합병 등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그 와중에 회사 분위기는 더 나빠져갔다. 물론 내 기준으로 나빠진건데, 사실 회사 재정은 더욱 튼튼해지고 업무 부담까지 줄어드는..어찌보면 이게 일터인지 노는곳인지 모를 ‘천국’? 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속에서 무언가 해보고 배우려 노력해 보았지만 오히려 더 스트래스였고 다행히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조그만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회사에서 똑똑하고 열정적이라 느꼈던 사람들이 대거 이동한 회사로부터 최근 오퍼를 받아 이직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뭐랄까..지금 회사에서도 직접적으로 일을 같이 하진 않았지만 누가봐도 열심히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이곳과 비교해 더 바빠질것을 알면서도 옮기기로 하였다.
급여도 조금이지만 올리고 팀에서의 역할도 더 비중있고 책임도 더하게 되었다. 올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늘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성장하게 되었던 큰 계기가 되었던 지금의 회사 생활을 잊을 수 없을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노는 시간이 많아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기억하고 싶다.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포함해서..
나는 무려 3개월의 사직 통지 기간(notice period)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제 사직서를 냈지만 실제로 퇴사일은 내년 3월 31일이다. 따라서 입사일을 4월1일로 조정했는데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정말 긴 시간이 아닐수 없다. 물론 조만간 사장과 면담해서 이 기간을 줄이는 쪽으로 결론을 낼 생각이다. 지금 회사 입장에서도 나를 3개월 잡아두는것이 크게 이익은 될 것 같지 않다.
Yager 그리고 Aeria 이제 새로운 회사로..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라는 방향과 병행할 수 있고 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꼭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다. 그리고 올 한해 질리도록 느꼈지만 시간은 내가 만들어 내는 거지 바빠서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욕없이 고민만 하는 동안에 시간이 남아돌았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한 정신을 따라 몸 컨디션도 나빠져 집안일도 많이 돕지 못했고 아이들한테 집중하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의욕과 의지에 대해 무섭게 느꼈던 지난 몇개월..이직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삶의 전환 포인트로 만들어야겠다.
내 인생이 해가 지날수록 스펙타클하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같으면 연중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사건으로 등극할 일들은 이제 순위에 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이젠 너무 많아 순위를 두는 것 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예전에는 이사를 가거나 차를 샀다면 그런 일들이 그 해의 가장 큰 일이었겠지.. 올해도 최근 몇년간의 트렌드에 맞추어 정말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돈을 쓴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부디 앞으로로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12월이 벌서 30%나 지나버렸고 1달에 1번 정도 블로그에 글을 썼다는 것을 보면 오늘 쓰는 글이 올해의 마지막 글이 될 것같은 느낌이 든다.
박근혜 탄핵도 빅뉴스지만 올해 2016년 우리 집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빅 뉴스들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다.
– 집 구매 및 관련 절차들..(설명하기도 싫음)
– 호야의 초등학교 입학
– 시우의 유치원 입학
– 한국 방문
– 자동차 구매
– 회사 구조조정 및 합병
– 노안(ㅠㅠ)으로 인한 안경 주문
– 자전거 출퇴근
– 아마도 이직?
– 개인 프로젝트 시작
– 부모님 독일 방문
써 놓고 보니 별일 아닌것 같지만 하나하나 내 흰머리를 늘리는것에 영향을 준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어찌나 중요한 일들인지…하지만 아이들 학교가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계획한 바 없었다. 심지어 2017년에는 벌써 해야만 할 일들이 몇가지 계획되어 있다.
내년에 예상되는 일로는..
– 이직? 혹은 이직 마무리..
– 영주권 신청 및 발급
– 이사 및 전학..
– 집 인테리어
– 부모님 방문?
– 개인 프로젝트들 마무리와 또 다른 시작들..
당연히 더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만.. 지금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애들한테 커서 뭐 할지 생각하라던가 계획을 짜라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말인지..내 하루 앞을 모르는데 말이다.
어찌되었건.. 올해 열심히 산 것으로 나는 스스로 만족한다. 정은이 또한 나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성취를 했으니..아이들도 물론이고. 2016년은 우리 가족 모두 정말 잘 했다. 무엇보다 크게 아프지 않았어..
2017년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큰 일들이 많지만..우린 잘 해낼것이다. 이사도 전학도 부엌 만드는 것도.. 그리고 오늘은 상상도 하지 못할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도전하고 또 성취하겠지..
얼핏 힘들것만 같지만 사실 2017년은 처음으로 우리의 집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더이상 이사 걱정이라던가 집의 물건이 부서져서 집주인 눈치볼 걱정이라던가 터무니 없이 지불해야 하는 월세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더 깨끗하고 넓고 좋은 환경으로 이사가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그리고 EU영주권은 아니지만 독일 영주권도 받게 될 것이다. 14년 부터의 수 많은 도전과 걱정과 고민 끝에 드디어 집도 비자도 직장도 안정되는 그 첫번째 해가(통장만 빼고)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시간이 생겨 블로그에도 자주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올해가 가기전에 한 번 더 글을 올릴 좋은 일을 만들 수 있기를..
14년 1월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2주가 조금 넘는 기간이라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유럽여행을 1-2주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만날 사람도 최소한으로 하고 양가 부모님들 뵙고 아이들 챙기는 것에 집중했다. 부모님이 매년 독일로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반면에 처가 어르신들은 그렇게 못해서 가능한 처가에 오래 머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결혼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처가에서 보낸것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서로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그 결과로 조금은 더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은이가 자라온 환경을 직접 경험 하면서 정은이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정은이를 따라가서 도와주고 어르신들 뵙는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갔기 때문에 큰 설레임도, 무언가 하려는 의지도 많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독일과 비교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좁은 인도나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여러 가지는 금새 적응 하여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그러한 자세로 마주친다는 부분은 조금 힘들었다. 내가 이 나라에 오래 살았고 또 나도 그들 중 하나인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처음 느꼈던 여러가지 불편한 부분들에 금새 적응해 버리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깍아내려 이 불합리한 상황들에 맞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합리화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만큼 낮은 질의 삶과 형편없는 자존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고, 비단 나 뿐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적인 구성원들의 자존감이 얼마나 낮고, 따라서 내가 2주간 느꼈던,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것 같았던 사람들의 마음이나 공격적인 자세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지 또 그 반대급부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뒤로 밀리게 되는 불합리는 감수해야 하는지.. 최순실처럼 큰 권력형 비리에는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어째서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불합리와 위법 상황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합정동 공항버스 정류장을 내렸을 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 위험하다였다. 중앙차로에 정차한 버스가 우릴 내려준 곳은 차가 무섭게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이었고 이 좁고 긴 버스 정류장에는 자신이 탈 곳을 찾아 것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횡단보도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고 아이들이나 노약자가 밀려 도로로 넘어져 다치거나 죽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것 같은, 마치 공포를 체험하기 위한 놀이시설과 같은 장소였다. 물론 휠체어가 지나다는것은 불가능 하고 아이들과 케리어를 끌고 그 인파를 지나는 우리들은 마치 내가 죄인인 마냥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합정역 로타리를 건너는 3개의 신호등 중 하나가 빨리 바뀌고 도로폭이 좁다는 이유로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빨간불에 건너는 것은 마치 본인의 기준에서 불합리한 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가 앞에 세워진 수 많은 불법 주차 차량들로 처가에 출차나 주차가 어려울 때면, 불법주차를 한 장본인이 나와 뭘 이런거 가지고 이러냐며 인상을 쓰거나 혹은 웃으면서 차를 빼는 것을 도와주는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행위가 마치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웃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내집 앞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자동으로 단속하는 첨단 CCTV를 피하려 주차금지 푯말로 번호판을 가리면서 까지 주차를 해 놓았는데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그 불편을 감내한다.
다른 사람의 주차장에 잠시, 혹은 장시간 주차하며 본인이 못 빠져나갈 것을 걱정했는지 주차장 입구에 주차하여 그 곳에 거주하고 주차해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차를 빼달라고 시간과 전화비를 들여야 부탁해야 하는 것은 권리를 가진 정당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불법 광고/간판들이 모든 벽면/거리에 부착되어있고 일방통행로 역주행이나 사거리 교차로에서의 불법 주정차 같은것은 애교로 봐 줄 정도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러할 정도인데 식당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은 어떨까? 과연 수 많은 위생관련 법규가 잘 지켜지고 있을지, 음식물 유통,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지..과연 생활의 기본적인 법규도 지키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비지니스가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나 기업의 상부 권력이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썩어 있는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사회적 공동체의 약속인 모든 법규의 무게가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약속으로 정한 이상 모든 구성원들이 최대한 지키려 노력해야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이익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살기에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 하나 감당하는 것도 어려울 판에 남들 뒷치닥거리까지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억울함과 어려움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이라고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간은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조금은 다르다. 선진국이라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줄을 서지 않으면 모두 손해본다는 것을 아니까 불만이 있어도 참고 지키려 노력하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동의 이익을 해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비난하는, 어찌보면 ‘정’없는 나라이다.
결국 누구를 욕할 것도 없이 우리 한 명 한 명이 일상처럼 지키지 않는 수 많은 ‘작은’ 약속들이 그 끝에 기형적인 결과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나도 피해자이자 가해자 이며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관계로 엮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독일행을 택했고 이번 한국 방문으로 상대적인 만족감을 더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속상하다.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나의 나라에 사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그냥 속상하고 안타깝다.
나는 2008년에 창업해서 약 4년간 여러가지 일들을 했었다. 2013년에는 남은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고 나만의 게임도 만들어 보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관리가 자유롭고 직장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남으로서 나와 가족의 삶은 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외주에 의존하던 사업을 자체 서비스로 바꿔보려고 시도중에 독일에 오게되었고 다시 들어오기 싫었던 직장이라는 시스템이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 시스템 안에서만의 가치를 위해 이런 저런 스트래스를 받고 고민하고 또 결심하기를 여러 번..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신 이번에는 외부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마련.. 아직 한국에 있는 법인도 살아있고, 지금 독일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일종의 ‘파견근무’로 생각하고 이곳의 직장생활을 유지해도 될 것같다. 즉, 다시 더욱 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기력하고 승진이나 급여, 인간관계로 많은 스트래스를 받겠지만 내 회사의 메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 이런 스트래스 없이도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또한 내 개인 프로젝트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왜 진작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최근에 하고싶은 개인 프로젝트들이 몇가지 생겨서 이렇게 결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난 달, 무려 5가지의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재밌고, 배울 수 있고 또 가능성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아직 조금 느리지만 조금씩 진전도 있고 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또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더 큰 동기부여가 되고 개별 프로젝트들의 진행도 조금씩 빨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꾸준히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것이 굉장히 정신건강에 좋을것 같다. 그래서 독립을 선언하기로 했다. 그냥 마음속의 작은 결심이 아닌 멈춰서 있던 내 회사를 다시 굴리는거다. 지금 직장은 외주개념의 메인 프로젝트로, 개인 프로젝트들은 내 회사가 일어서기 위한 기반 프로젝트들로..
회사로서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독립된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2017년부터는 작은 성과라도 스스로 증명해보일 수 있도록 하는것이 목표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 만큼 작은 좌절은 있어도 결국 이루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야가 Grundschule 에 들어갔다. 11월 생이라 내년에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유치원에서는 너무 심심해 해서 그냥 올해 보내기로 했다. 정식으로 이번 주 부터 다니고 있는데 아직 초기라 잘 적응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2년 전, 지우를 학교에 보낼때는 정말 우리도 아무것도 모르고 지우도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학교에 밀어넣다시피 했었는데 지우가 너무 적응을 잘 해주어서 지금 지우는 큰 걱정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말 그대로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어떤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보내왔었을지..
호야는 유치원을 계속 다녀서 독일어를 조금 하기는 하지만 지우만큼 잘 하지는 못한다. 그나마 이번에 학교가기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계속 연습을 해서 훨씬 좋아진게 보인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부모가 관심을 가진 만큼 성장하는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도 많지만 특정한 분야에 부모가 관심을 가져주면 아이들도 그 만큼 더 노력하는것 같다.
사실 호야는 학교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잘 적응한다기 보다 어딜 가도 비슷하기 때문에 적응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부모로서 호야가 힘든점은, 호야가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도 명확해서 자기가 싫은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거꾸로 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것만 잡고 늘어진다. 뭔가를 가르쳐 줄려고 하는데 관심이 없으면 이미 듣고 있지 않는게 느껴지지만 본인이 궁금한것들은 끝없이 질문한다.
이러한 특징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직 우리가 여유가 없어서인지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있다. 호야한테는 중요한 시간일텐데..
지우한테 통했던 방법들이 호야한테는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물론 시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셋이지만 공유되는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가진 우리에게는 너무 큰 도전이다. 누구 하나 소흘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꾸만 호야한테 부족했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도 단지 호야가 표현을 해서 그럴 뿐 지우나 시우한테도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우리도 아이들도 성장하겠지만 조금은 이런 성장통이 버거울 때가 있다. 언제나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