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동안 만났어요. 이제 6년차..

소개팅 2주일 전.

기숙사 옆방 친구가 소개팅을 하지 않을려냐고 물었다.

한달전쯤에도 그런말을 하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군대도 가야하고..가서 맘에드는 여자 만난다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소개팅 1주일 전.

이 친구가 또 왔다.

정말 이쁘고 착한 여자애가 있다..는 결론의 칭찬을
그 후로 매일 내 방에 들려서 해주었다.
거절할고 또 거절…고마운데 좀 그래..이러면서..

딱 1주일 째 칭찬을 듣는날..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사람’에 대해 조금 불신이라던가 지쳐있었던 때였는데
사람들을 많이 알수록 더 많은 실망도 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칭찬을 하는걸까..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마음은 먹었는데 갑자기 1주일 뒤로 약속이 미뤄졌다.–;

2000년 10월 28일..

7시에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6시에 나가면 되겠구나..싶어서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방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6시가 넘었는데 친구가 오질 않아서 옆방에 가서 안가? 했더니..
오락하고 있던 친구가 깜짝 놀란다..

부랴부랴 친구가 준비하고 조금 늦게 홍대에 도착했다.

친구 여자친구와 정은이가 있었다.

훤칠한 이마에 긴 머리..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지들끼리 이야기 한다.

스파게티 집을 가기로 정하고 휙 돌아 3명이서 성큼 성큼 걷는다.

수줍음을 잘 타는 나는 졸졸 혼자서 따라가는데 참 어색했다..
오라는 말도 안하고..

그 와중에 정은이가 앞에서 힐끔힐끔 나를 보는데 배로 어색했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는 너무너무너무 어색한 소개팅의 시작–;
이런저런 지금 생각하면 웃긴 질문하고..
먹는 와중에 정은이가 계속 스파게티를 먹기쉬운 크기로 돌돌 말아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면류는 사람들 앞에서 교양있는척 먹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해놓으니 한입에 쏙쏙 너무 편했다–;

친구 커플은 자꾸 다른곳으로 갈려고 한다..
정은이는 안된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난..또 혼자서–; 우리끼리 놀면 되잖아..식의 의견을 내는데..

참 어색했다.. 길거리에서 여자 꼬시는것도 아니고..
왜 자꾸 내가 ㅠㅠ

암튼 난 홍대에 처음 와봤기 때문에(그때도 참 안돌아 다녔구나–)
홍대를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물론 그 의미는 이 근처의 명소라던가..그런걸 말한건데..
나가자 마자 정은이는 홍대 입구로 들어간다.

들어가자 마자 전화를 받는 정은이…홍대 끝까지 갈때까지
전화를 한다..
그러다 전화를 잠시 쉬면서 ‘이게 다야..’
바로 유턴해서 돌아나오면서 정은이를 보기 시작한다..

이마도 넓고..왠지 키에비해 조그맣게 보였다..
목소리는 얼굴이랑 맞지 않게 좀 걸걸 했고
머리는 공주처럼 아래부분만 돌돌 말았다.
걸음걸이가 참 이뻤다..

홍대를 나와 바를 가기로 하고 바에서 그나마 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집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한정거장인 합정에 산다고 하길레 싫다는걸 바래다 주기로 하고..
같이 걸었다..

아까 친구랑 있을땐 소리도 지르고 잘 웃더니..나랑 있을땐
그냥 미소만 짓는다..

합정역..여기서 건널겸 나 가는걸 보겠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간다..

음..이제 몇걸음만 가면 이 아이랑은 영영 안보게 되는구나..
너무너무 싫었다..후회할거 같았다..

아주 어색하게 전화번호 안가르쳐 주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에와서 친구를 찾았지만 친구가 없었다.
왠지 내가 정은이가 맘에 들었다고 좀 말해놔야 이 친구가
자기 여친한테 전해줄것 같았다.

다음날은 내가 술마셨고..

그 담날도 방에서 술먹고 있는데 친구가 찾아왔다.
소개팅 어땠냐고–;
난 응 재밌었어..이렇게 말했더니 친구가
역시 눈 높은 호철이구나 그 애는 너 괜찮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즐거웠다니 다행히다 하고 휙 간다–;

앗! 내가 괜찮았다고??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그리고 그 뒤로 정은이의 깜찍함과 귀여움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죽는꿈

내가 죽는 꿈을 꿨다.

사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어야 할 몸이었다.

자기전에 ‘완전한 죽음’이란 책을 읽다가 자서 그런가..

요즘 내 생활에는 뭔가 허전한게 있다.
몸도 뭔가 조금 허전하고 정신도 조금 빠져있는거 같다.

이런상태가 아주 오랬동안 지속되어 온것 같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걸까?

시기 질투..남을 미워하는 마음들..불평 불만..욕심..
나랑은 거리가 멀었던 단어들이 내 맘속에 가득차있다.

반성.

시간

시간이 흘러간다.

지나고 보면 내 머리속에 찰나의 기억으로.
내 몸에 베어진 버릇으로.
블로그에 몇개의 포스트로 남아버리는

그 무한하고도 짧은 시간의 기록들..

독립된 세포들의 집합체.
신경의 지배를 받는 세포들의 모임.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예정된 input이외에는
신경쓰지 않은 집단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생명체는 주어진input을 받지 않고
예정된 output을 내지 않는다.

나는 사회의 부적응자인가..
아니면 사회가 인간의 기본 집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것일까..

게스테 하우스

게스테 하우스는 영어로 게스트 하우스.
즉 손님의 집–; 이라는 뜻이다.

내가 1년간 살았던 그곳은 도르트 문트 대학의 게스테하우스 였다.
바로퍼 스트라쎄..

가장 신기했던건 집 열쇠가 현관문에 대응한다는것..
집 뒤로는 엄청나게 넓은 대학 캠퍼스가 펼쳐져 있고
집 앞으로는 수백년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창밖으로 보면 끝없는 도시에 멀리 화력발전소인지의 굴뚝만이
바라보였다.

게스테 하우스의 지하에는 비발디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참으로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게스테 하우스는 5층인가 6층인가로 되어있는데
게스테 하우스의 꼭대기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각종 파티,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바로 옆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는 많은 추억이 있어서 무엇부터 끄집어 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포근한 방안의 공기이다.
카펫이 깔려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포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건물 안에서는 3번인가 이사를 했는데 가장 넓은 방에서 부터
가장 좁은 다락에 이르기까지 ..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넓은 방은 5B호실이었는데 부엌과 거실 방이 따로 있었던것
같다.
아빠랑 형이랑 거실에서 귤던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좁았던 6층에서는 지붕 아래 집이라 욕조에서 일어서면
머리가 부딛히고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나중에 미국에서 온 친구도 만나고 독일 친구들도 데려오고 했지만
처음 6개월은 형과 둘이서..때론 혼자서 추억을 만들어야 했었다..

글로벌이란..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내가 한정지었던 좁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래보다 많은 외국 경험이 있었음에도..
모든 일에 내 경험이 다 적용되는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 시간을 만드는거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회사를 위하는 일이랍시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자.
회사에서는 내가 이러기를 바라고 있을까?

난 회사가 기대하는 가치를 충실히 실행해야 할까?

우리회사는 크다..하지만 아직 어리다..
미숙하고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사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 노력이 있어야지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덩치가 커지면서 밥그릇챙기기가 생기고 있다.
사원도..관리자도..

쓸때없는 조건들이 늘어가고 직원은 직원대로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자신의 이익을 찾는다.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은 도박이다..
이곳은 더 성공할 가능성도 완전히 곤두박칠 가능성도 반반이다..

큰 변화가 필요하다..

주일이 형과 이야기 했던 위기의식…
위기가 아닌 이 순간..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지금은 큰 위기이다..

인맥관리 자가진단표

·휴대전화에 전화번호가 200개 이상 수록돼 있다
-휴대폰 정지중..한국 휴대폰에 130명정도?

·당장이라도 돈 500만원을 꿔줄 지인이 3명 이상은 있다
-꿔줄려나…돈꾸는 성격이 아니라 생각해본적 없음..

·최신 유머, 노래 등을 3개 이상 외우고 있다
-아니다.

·업계, 학교, 지역, 취미 등 모임이 5개 이상 있고 주기적으로 참석한다
-주기적 참석모임 1개

·한 달에 경조사가 10회 이상 생긴다
-경조사 없음

·재직 중인 회사의 명함 외에 다른 사회활동 명함을 갖고 있다
-파견자 명함? ㅋㅋ

·하루 1번 이상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하고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지인들을 통해 최신 정보가 들어 온다
-가끔..

·주변 지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본 적이 있다
-오호..이거 스카우트인가?–;; 없다고 봐야할까–;

·이메일로 안부,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는 사람이 1000명 이상이다.
-아니다–+ 천명을 어케…

·지식검색처럼 지인검색을 통해 도움 받는 일들이 많다
-이건 있다!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이라서 대답불가.

·주소록(명함)이 학교, 지역, 취미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다
-그렇다.

·진학, 학원, 모임 등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1년에 3개 이상 만들고 있다
-아니다.

·자신의 분야와 다른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사귀고 있다
-아니지만 그럴계획

 

▶평가 방법 : 예 / 아니오로 대답해 ‘예’ 응답 개수로 인맥관리 능력 평가

▶결과 : 1) 13개 이상(1~20%) : 당신은 유능한 CEO 후보

2) 10개 이상 ~12개 이하(21~40%) : 매니저 후보, CEO를 꿈꾼다면 좀 더 노력 을

3) 9개 이하(40% 이하) : 만년 사원, 인맥 관리에 더 신경 써야

결국 만년 사원이네..기분나쁘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거 만든놈은
절대 만년사원 못벗어 날꺼다.

멋진사람

2004/12/07 00:38 – 네이버 블로그

내가 꿈으로 삼았던 모습중에 하나는 아침에 책한권을 들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도서관에 나올때는 그 책을 머리속에 완벽히
담아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에 여러 약속을 잡지 못하고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지도 못했다.

마음만 그랬었던건지..하루에 한가지 일을 끝내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아도 다른일을 하고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한가지 일을 끝낼만큼 목표도 작았었을것이다.

고등학교때는 위의 꿈꾸던 모습을 실천해본적이 몇번있었다.
다름아닌 문제집..

문제를 푸는것에는 성공했지만 머리속에 넣는것에는 대실패했다.
엉덩이에 종기만 났을뿐..

그 뒤로도 간간히 그런 시도를 몇번 해봤지만 성공한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중요한건 처음부터 모두 얻어내려하기보다는 저러한
시도를 꾸준히 해야한다는것이다.
그러므로 무리한 목표보다는 내가 극한에 다다를 수 있는
적절한 목표를 세워야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었다.
나를 알아야 내 한계를 알고 내 능력을 알고 비로소 적절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잘못이었다.
내가 나를 아는것은 참으로 힘든일이라는것은 알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안다는것도 너무 힘든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안다는것은 그냥 그사람의 행동 말 등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의 단편일뿐이고,
내가 나를 안다는것은 그냥 그렇게 되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그나마 아주 긍정적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로 내리기로 했다.

아주 오만한 생각이지만 내 나이에 못할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좀더 4가지 없이..나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무엇을 하느냐는 거지 어떻게 하느냐는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게 된다면 바닥을 파고 뿌리를 뽑아
그 존재 자체를 내 세포의 일부로 만들어 버려야 겠다.

는 생각을 예전에 한적이 있다….

HARIBO

2004/11/28 20:26 – 네이버 블로그

하리보 막흐트 킨더 프로~ 운테에바세네 에벤조~
HARIBO MACHT KINDER FROH UND ERWACHSENE EBENSO

15년전 독일에서 TV를 보면 저 CM송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백화점 수입코너에서 볼 수 있는 구미베아(예전 우리나라 꼬마곰 과자)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정말 맛나게 먹었던 과자다(제리류?)
탁구배우러 가는 길에 있는 목장의 말에게 가끔 먹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귀신같이 알아듣고(한국말을) 잘 따르던 말이었는데..

종종 백화점에서 사먹곤 했는데, 이번에 어머니 친구분이 집에 놀러오셔서 주고 가셨다.
똑같은 포장에 똑같은 맛. 우리나라로 보면 새우깡 수준의 장수 식품인데. 아마 그보다 더
오래 되었을 것 같다.

독일TV를 보다보면 본 방송 중간에 광고 시간이 좀 특이한데 광고 하나 만화 하나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온다는 것이다.

중간에 나오는 만화는 주로 캠페인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루어 졌던것 같다.
(아마 독일의 KBS인 ZDF채널 이었던듯)

그런데 놀라운건 그 만화에 나오는 케릭터가
1980년 이전에 만들어진 케릭터라는 것이다.(이름모름)
내가 태어나서 한국에 들어올때 엄마아빠가 가져온 인형이 그 케릭터 였으니..

그리고 고2때인가 독어 경시대회에 나가서 독일 문화원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본 ZDF채널은 그 때 그대로 였다.

기회가 되면 독일에 들러보겠지만 그곳은 내 기억이 있던
1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민의식이나 질서 등 많은 부분에서
15년전의 독일의 반도 못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20년 혹은 30년 후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독일과 같은 시민의식이나 질서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 우울해지긴 하지만 우리나란 우리나라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간만에 구미베아를 먹다 옛날 생각이 나서 이러고 있는데..
눈에 선하다..그때의 기억들..

독일의 시청(?)

독일에서 택시를 탄건 시청(?)에 뭔가 등록하러 갈 때였다.
관공서 쯤으로 해두자.

아직 독일에 전혀 적응이 안된 상태..
독일은 택시비가 무척 비싸다.

택시는 전부 밴츠!(가끔 아우디나 폭스바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터기가 기계식이라 좀 놀랐었다.
(한국은 언제나 말달리는 초록색 매터기..)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인 등록 정도 되는 절차였던거 같은데
엄마가 형이랑 나한테 그곳에서 뭔가를 묻거들랑 꼭
대답하라고 했던 말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Woher kommst du?
라고 물으면..
Ich bin aus Korea gekommen!
이라고 ㅠㅠ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곳에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주 인상깊었던건 그 관공서에서 일하는 직원이 난장이 였던것.
더 놀랐던건 그 난장이 아저씨의 헤어스타일이 옆머리는 모두
밀어버리고 가운대 머리만 새워서 녹색으로 염색한 스타일
이었다는 것이다.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청에서 기다리는 동안 독일 환타를 자판기에서 뽑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고, 나오는 길에는 하리보 콜라맛을 사먹으면서
나왔다!

이렇게 무사히 독일에 등록(?)을 한 11살 꼬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