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휴일 근무

처음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은 기본이었고
휴일근무는 옵션..
오밤중에 호출도 많이 불려갔다.

다들 좋다고 하는 회사에 들어와서 내 능력을 좀 더 손쉽게
펼칠 기회도 얻었고 그만큼 난 자유로우면서 더 많은 결과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절대적’시간이 부족하다는걸 조금씩 느낀다.

일본의 대부분의 플래시 업무를 혼자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지만 개발은 나 혼자뿐이다.

그 일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나..

수많은 분기문과 순환문이 다른 사람 눈앞에 재밌는 게임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그 결과물을 일본과 한국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니!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게임에 웃고 화내고
때론 짜증내고..아주 가끔은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굴까?
생각을 하겠지..

흐믓하다.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회사인 만큼 나도 회사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결과들도 많이 보고 있고..

꼭 그만큼 고민이 된다. 꼭 그만큼 욕심이 생긴다….

학교를 관두고 회사를 계속 다니면 어떠나?
학교에 다녀와서 회사를 계속 다니는건?
학교로 가서 계속 공부를 하는건?

인생 별거 없다잉 내 가능성을 믿자. 난 아직 26살(벌써?)이니까!

-대체 이 포스트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거지..

소풍날과 운동회날의 향기

2004/10/27 15:25 – 네이버 블로그

내가 기억하는 향기(냄새)는 실제 냄새라기보다 어떤 느낌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소풍날 아침이나 운동회날 아침은 뭔가 공기에서 다른 냄새가 난다.

쉽게 설레여 하는 나로서는 그런 냄새가 나는 날이 무척 좋다.

아니면 계절의 냄새..

특히 가을과 겨울의 냄새는 다른 계절과 구분할 수 있을정도로 특이하다.
내가 무척이나 냄새에 민감하고 잘맡고,구분해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조금 특이한 냄새를 느끼는건(맡는다기보다..) 내 마음의 긴장이나 흥분이
한 몫을 하는것 같다.

하지만 매번 같은 냄새로,때론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그 냄새는 내 느낌의
결과물이라기 보다 실제하는 냄새가 아닐까?

어느날 길을 걷다가 계절의 냄새를..소풍날의 냄새를 맡게 되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린시절을 문득 떠오르게 하는 그런 냄새를..

실제로 남들도 맡을 수 있는 냄새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소중한 사람들의 냄새이다.
엄마아빠 이불에서 나는 말로 표현못할 포근한 냄새.
여자친구의 머리에서 맡을 수 있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냄새.
형의 자취방에서 나는 어지럽지만 밝은 냄새.

자살

2004/10/28 00:07 – 네이버 블로그

나를 아는 사람중 한분이 오늘 메세지로 안부를 물었다.

이유인즉, 내가 자살하는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인 만큼 내가 자살을 결심했다면 실행했으리라는 생각에
더욱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죽음이란것에 대하여 어린시절부터 많이 생각했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존재들의 많은 죽음과 내가 혐오했던 존재들의 죽음…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이 주는
약간의 또는 아주 큰 충격에 지나지 않았던것 같다.

생명의 신비를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상상조차 못하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상상조차 못할 만큼의 거대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죽음 뒤의 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서 비닐봉지로 숨막히게
혹은 이불속에서 숨을 안쉬며 죽어볼려고 노력해본적이 있었다.

나중에 공부를 좀 하게되었을때는 경동맥을 손으로 막아 반 혼수상태에 다다른 경험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의 정신병 기질도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죽음 뒤의 세계는 너무나 궁금하고 체험해보고 싶은 세상이였고 무언가
지금과는 다른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컸다.

아마도 자살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자살을 택하지 않나 싶다.

지금은 소중한 존재들을 이유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지만 내가 이런 정신상태로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심장을 두근거리며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면에 있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나 나무에 나오는 뇌만 살아있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내 어린시절 상상했던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끔..아주 가끔 문득 생각이 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나라는 동물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어..’

언젠가 밝혀질까? 뇌의 메카니즘 이라던지..인류존재의 이유라던지..

고민과 나

언제나 용기가 없었다.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용기말이다.
될대로 되라지..하면서 그렇게 안되게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참 웃기는 인생들이다..

Running

2004/10/21 18:12 – 네이버 블로그

나한테는 위로 형이 있다.
아들만 둘. 우리 형제는 달리기를 무척 잘한다(지금도?)

형은 조금 더 잘달려서(같은 나이의 나와 달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중학교때까진 선수생활도 했다.

그런 나와 형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1학년 형이 3학년 이었다.

봄에 열리는 체육대회..
나는 100m 200m 400계주 멀리뛰기 에서 이미 4관왕을 차지한 상태..
형은 고3이라 (당시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400계주만 출전하기로 했다.

1,2학년 400계주가 끝나고 운동회의 마지막 순서인 3학년 400계주가 시작되었다.

형은 마지막 주자.. 두두두 사람들이 달린다. 형 반은 꼴등이다.
마지막 주자의 차례가 되었다. 이미 선두주자는 반바퀴 이상 차이..

마지막 주자는 한바퀴 반을 돌기때문에 아직 한바퀴가 남아있었다.

형은 정말 바람처럼 달렸다. 사람이 지나가면 발에 차인 모래만 머물렀다.
선두가 자만해서 허허 거리면서 뛴것도 있었지만 결국 형은 1등으로 들어오고야 말았다.

‘와!!!!~~!!!’

전교생이 주목하는 그 순간의 모습이란..

형이 졸업한 이후로도 난 꾸준히 1등을 했지만 그때와 같은 감동 (모두가 공감하는) 은일으켜본 적이 없다.

지금의 나는 배도 좀 나오고 무릎관절 수술에 꾸준히 하는 운동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
나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재능인 ‘달리기’를 더이상 나만의 재능,특기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빠른 시간안으로 내 노력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재능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꺼리를 만들고 싶다.

유성

2004/08/20 12:01 – 네이버 블로그에서..

얼마전 화려한 우주쇼라고 해서 유성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지금 우리집은 시골중에 시골이라 별이 많이 보여서 엄마랑 둘이 유성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집밖으로 나갔다.

가로등도 없는 논길로 갈려고 도로를 건너는 순간 믿기힘들정도로 큰 유성이
떨어지는걸 봤다.

“우르르르르르르 콰콰쾅~~~”

뭔가 이런소리가 나야할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너무나 조용히..
그리고 빨리 더구나 멋진 초록색 불타는 꼬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엄마와 난 경악했다.

사실 이런 유성을 본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맞나?) 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 직전이었다.

1년간의 독일 생활을 위해 광주공항에서 서울김포로 비행기를 타기위해
막 광주공항에 도착했을때였다.

처음 비행기를 탄다는 설레임과 외국에 간다는 설레임(사실 첨은 아니지만 기억에 없으므로)
으로 너무너무 흥분해 있었다.

공항 청사를 들어가는 순간 나와 형은 약속이나 한듯 하늘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정말 거대한 물체..노란 불꽃꼬리를 태우며 무섭게도 조용히 1-2초정도
(사실 더 짧았겠지만 느낌상..) 머리위로 지나갔다.

당시 유행하던 축구소년 용소야 시리즈를 보며 축구선수가 되어야 겠다는 꿈을
꿀정도로 순진무구했던 형제는 급기야 그것을 UFO로 착각하고…

가벼운 소동을 벌리고서야 진정했는데..

그게 유성이라는걸 알게된건 그로부터 5년도 지난 후일것이다.

그나저나 그당시 용소야 시리즈는 대단했는데..
나중에 당구 시리즈도 나온걸로 안다..

지금생각해보니 일본 만화인거 같은데 항상 만화책에는 글그림 전성기
라고 쓰여있었다.

진실일까..?

행복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중학교 때 “앞으로 6년만 고생하면 60살까지 편히 산다.”
고등학교 때 “3년만 고생하면 평생 편히 산다.”
고3때 “1년만..”
대학교때 “4년만..”
군대가서 “2년만..”
직장가서 “결혼하기 전까지만..”
결혼해서 “애 낳기전까지만..”
애 낳아서 “애 다 클때까지만..”
애 다 커서 “결혼할때 까지만..”
.
.
.

결국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없다.
불행하다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행복해 질수는 없다.
왜냐면 내일은 오늘보다 행복할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느낌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희망은 다르다.
희망은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하는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행복할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하겠지.

이 두 문장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벌써 행복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는것이다.

바꿔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내일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희생하는 오늘은 바로 어제,혹은 수년전 오늘과 똑같은 생각으로
희생했던 어제,수년전의 결과물이다.

한달에 100만원을 벌고 100만원을 쓰는 A와 B라는 사람이 있다.
A와 B는 카드를 만들었는데 A는 첫달에 200만원을 지출했다.
B는 100만원을 지출했다.

그후로 두명의 지출을 매달 같았지만 A는 언제나 빚을 지고 살아야
했다. 아무런 여유도 없이..B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정말 작은 욕심이, 그리고 작은 포기가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한번의 기다림과 여유가 나를 영원히 여유롭게 만들어 줄것이다.

세상에는 잘난사람,잘나고 싶은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투성이다.
과연 이사람들..이 많은 잘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나도 문득문득 이런 기분에 휩쓸리기도 하고 한곳만 바라보며
욕심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행복은 ‘무엇’이후에 오는것이
아니다.

이렇게 써놓고도 사실 마음은 조금 다르지만 역시나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는것은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심은하의 1등 신랑

뉴스에 나온걸 대강 요약해 보면 이렇다.

현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기술정책연구그룹장 선임연구원.
연세대 토목공학과 출신.
1997년 동경대학교 공학계 연구과 객원연구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2003년 과학의 날 국무총리상을 수상.
‘스탠포드대 연구원 지상욱, 약한 신체 부위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강화시켰다’라는 제목으로 ‘남자 몸만들기 4주혁명’(한동길 지음·랜덤하우스 중앙 출판)의 사례 모델.

지덕체를 겸비한 1등신랑이라고 모든 포털사이트에 떴다.

.
.
.

그는 올해 41살이다.(한국나이)

추석 소원

달을 보고 왔다.

일본에서 보는 한가위 달도 한국에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달님에게 비는 소원은 최근 거의 비슷한 소원들이지만
왠지 빌지 않으면 안될거 같아 또 빌고 왔다.

작년엔 집 마당에서 삼각대로 달님을 찍었었는데..
올해는 미우니 안찍어야 겠다.

내가 소원이 많아서 안들어주는건가..

버터치즈계란말이

먹고 보니 사진찍는걸 깜빡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계란..
혼자 있다보니 해먹을 음식 재료를 사다 놓으면 한번 해먹고 남은건
다 버리기 때문에 조금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맨날 사먹을 수도 없고..

가장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게 계란이라 계란을 자주 먹는데
일본에 와서 인상 깊었던 카스테라 계란말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계란 말이라도 해먹기로 결심하고 무려 4개의 계란을 풀었다.
(계란이 작아서..오늘 먹어보니 작은 계란으로 3개면 충분할듯)

팬을 달구고 기름을 두르고 버터도 둘렀다~
힝..계란요리할때 팬에 두르는 버터 냄새는 넘 좋아..

계란 말이는 첫 시도였는데..
의외로 쉬웠다.

계란이 좀 익어서 밑부분이 형체를 갖추었을때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치즈를 넣었다. 그담엔 젓가락으로 슬슬 말아주면 그것이 계란 말이.

다음엔 달착지근하면서도 카스테라 맛이나는 일본 계란 말이에
도전해야겠다.(다시마도 들고왔으니!)

의외로 치즈의 맛이 좋았다…

요리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은게 많다..
피아노도 잘치고…아니 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으론 안되겠지..
열심히 해야지..

다들 어떻게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