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한국처럼 추적추적 종일 비가 내렸다.
9일은 내 사랑 정은이의 생일이었다. 이번은 한국에서 처남이 방문해 더 즐겁게 축하할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준비했지만 아이들이 학교 준비로 모두 마음이 급했다.
휴가를 냈지만 집을 조금 정리하고 장을 보고 나니 금방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었다. 정은이는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언제나 조금 여유있게 이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 싶지만..그래서 늘 아쉽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
도전과성취
오래간만에 한국처럼 추적추적 종일 비가 내렸다.
9일은 내 사랑 정은이의 생일이었다. 이번은 한국에서 처남이 방문해 더 즐겁게 축하할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준비했지만 아이들이 학교 준비로 모두 마음이 급했다.
휴가를 냈지만 집을 조금 정리하고 장을 보고 나니 금방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었다. 정은이는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언제나 조금 여유있게 이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 싶지만..그래서 늘 아쉽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
1기가 램으로도 디비가 계속 죽어서 이걸 어찌할까 하다가 일본에 있는 서버를 여기서 쓰는것도 웃기고 해서 독일 서버로 이전..독일에서 제공하는 가상 호스팅인데 월 5유로에 조건이 너무 좋다.
8기가 램, 4코어 시퓨 그리고 무제한 트래픽에 200기가 SSD? 이 조건에 월 5유로라니..10년전 같으면 사기라고 했을것 같다.
도메인 설정을 다시하고, 블로그 옮기는것도 이전에 도커로 해 놓은 지라 명령어 몇 줄로 땡… 서버가 가까워서 속도도 빠르고 램이 8기가라니..마음껏 낭비해 주겠어.. 서버를 세팅하고 무언가를 세상에 노출 시킬때 느끼는 그 설레임이 여전하다. 비록 아무도 찾지않는 블로그이지만 내 집을 짓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집을 지어본 적은 없지만..
이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 다른 무엇도 그 때와 같은 감정을 만들지 못했던것 같다. 내가 하려고 했던 수 많은 시도들이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처럼 두근거릴 수 있었다면… 그런 일들로 가득한 삶을 산다면 어떨까..너무 신나겠지..
나의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내가 내리는 결정과 선택에 어떠한 두근거림이 있었는지.. 나의 요즘을 돌아본다, 두근거림은 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지고 있는지..
엄마 등에 엎혀 독일 땅을 밟은게 엊그제 같은데.. 그 때만 해도 한참 말 배우고, 기저귀하고 아장아장 걸었었는데.. 그 막둥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누나 형에 비해 사실 1년 늦게 들어간 샘이지만(늦었다기 보다 누나 형이 1년 일찍 학교에..) 막내라 그런지 더 어리게만 보인다.
동네 유치원에서 동네 학교로 가서 그런가 같은반에 유치원 동기들이 많고, 형 누나 따라 학교 구경도 많이 다녀서 인지 본인은 학교에 가는것에 아무런 차이를 못느끼는 것 같다. 오히려 유치원때처럼 노는 시간은 언제인지, 무슨 장난감을 가져갈지에 대해 머릿속에 가득해 보인다.
학교에서 뭐 배웠냐 그러면 아무것도 기억못하고 오로지 쉬는시간과 노는시간에 했던 일들만 말해준다. 매일 아침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들어가지만 내가 마음이 급하지 본인은 지각하는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급한 마음도 없다.
지우랑 호야는 긴장도 하고 그런게 보였는데 이 놈은 천하 태평에 아직도 아기 같으니 걱정이 되다가도 하는걸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뭘 해도 귀여운 막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 지금처럼 늘 씩씩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살자!
형,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다시 2년 정도는 아빠랑 늘 같이 학교에 갈테니 그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랑 단 둘이 매일 붙어서 가자 🙂
지난 1년 이곳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여러 케이스와 상황으로 부터, 인사이트 있는 창업자들로 부터, 열정있는 동료들로 부터..
팀을 세팅하고 초기 회사 구조를 만드는 일은 내 회사를 가졌을때에도 가장 즐거웠던 경험중에 하나였는데 조금씩 시작한 그 일들이 인정을 받아 이제는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해보라는 멍석이 깔리기에 이르렀다.
이젠 헤드가 아니라 헤드를 관리하는..직간접적으로 관리해야 할 사람이 60여명에 달하는 약간은 부담되지만 즐거운 도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힘들고 거대해 보이지만 내 사업을 할 때 부족했던 모든 부분을 채워줄 동료들이 있으니 사실 그 때보다 훨씬 쉬울것이다. 그 땐 내가 잘하든 못하든 모든걸 혼자 했어야 했으니..
내 눈에 얼기설기 지어진것 처럼 보이는 이곳 저곳을 모두 덜어내고 뒤집어 엎고 하나하나 줄을 맞춰 늘어놓듯 정리할 생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람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직장으로 만들고 싶다. 나 또한 그런곳에서 일하고 싶으니까..
3달 뒤, 반년 뒤 이곳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한참 덥더니 시원하게 비가 내린다… 문제는 오늘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것..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일도 힘들고 집에서도 잠만 오는데 일찍 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 갇혀있었다.
비가 살짝 그친 틈을 타 열심히 자전거를 달려 집에 도착했고 바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리해서 달리는 바람에 아픈 다리와 땀으로 젖어버린 몸을 보며 도대체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싶었다.
바보같은게 딱 요즘의 나 같다. 아니 바보같다기 보다 조금 미련하다는게 맞는것같다. 결국 푹 젖어버리고 다리까지 아픈걸..
한숨이 나오는건 힘이 든다는 뜻이지만 웃고있다는것은 지금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혹은 행복하고 싶다는 바램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 나 스스로에게 나는 언제나 웃는 사람이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살고싶은..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행복하고 늘 긍정하며 늘 이상적으로 행동하는건 아니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나의 힘듦으로 주목받아본 적이 없고 그런 상황을 불편해하는게 마음 편한채로 지내다보니 다른 사람의 마음에 더 신경쓰는 일이 다반사다.
가끔 마음이 정말 힘들어질때면 나 스스로를 속이는것 같고 내 마음속에 가면이 있는것 같은 괴리감에 작은 화가 나기도, 조그마한 힘듦을 더 보태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다독여 달래고 얼러, 무엇이 되었든 이제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배움으로, 때로는 거짓이지만 나만의 만족으로 포장해서 그렇게라도 나는 나를 아꼈어야 했다.
오늘은 지금 회사에서 일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독일에 직장을 잡고 일한지 딱 5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길게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17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년 그리고 5년간 많이 배우고 성장했지만 많이 힘들기도 했다. 지난 17년간의 시간들도 마찬가지다. 단 하루도 나의 휴식이나 즐거움을 위해 쉬어본적도 취미나 별다른 여유를 가져보지도 않았다. 수 많은 시간을 그 시간의 가치에 부족할 돈으로 바꿔왔지만 그 가치마저 희석되어 이젠 나의 가치를 돈으로 바꾸는 것에 누구도 즐거워하거나 혹은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며 이사람 저사람한테 그들의 잣대로 평가받아가며 바꿔온 나의 가치들, 나의 노력들 그리고 나의 시간들.. 그렇게 내 가정을 꾸릴 연료를 만들고 열거할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잡다한 집안일로 기름칠해가며 나는 또 다시 오늘을 맞이했다.
나님, 그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랑스럽고 존경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보안 때문인지..오래된 PHP때문인지..한시간이 멀다하고 서버의 CPU점유율이 100%로에..DB가 계속 죽어서 가벼운 블로그 솔루션을 찾다가 일단 OS를 초기화 하고 도커로 워드프레스를 띄웠다. 백업하고 리스토어 한 김에 고장난 URL들도 고치고 하다보니 새벽이 되어버렸다.
사진 확인차 슬쩍 읽어본 15년전 일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금도 바쁘게… 무언가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 자야지..고쳐놨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
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DB가 계속 죽어서 더 확인해 보니 결국 메모리 이슈.. 서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 🙁
누군가를 선의로 도와줬는데 도움을 받은 당사자가 ‘선의’를 내 이익을 위해 본인을 이용한, 즉 ‘악의’ 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있다. 내 인생에도 크고작은..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되어 조금 속상하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본인이 부끄러워질 만큼 나의 선의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심지어 상대방이 더 민망해질까봐 설명을 피한적도 있었다.
백이면 백 사과를 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게 되는 두 가지의 결론이 나는데,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는 나에게 너무 민망한 나머지..혹은 끝까지 자신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두 경우 내 입장에서는 아쉬울것 없지만 선의가 악의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경험 자체가 기분좋은 경험은 아니다.
사람을 잘 믿고 손해보는것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나를, 정은이는 답답해 한다. 정은이는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신경쓰는지 알기 때문에 이런것들을 나누는 내가 못마땅하기 보다는 이것이 악의로 비춰지고 내가 상처받는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종종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런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그릇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봇짐 내놓으라고 한다’는 식의 사고전환이다. 나 또한 다른 분들의 도움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었겠지만 가능하면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주의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을땐 감사하다는 마음 뿐, ‘네가 더 이익이겠지’ 라던가 ‘네 이익 때문에 날 도왔겠지’ 라고 생각해본적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의 결론은 상호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움을 주거나 선의를 보이는 입장에서는 ‘너는 이익인데 날 믿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아?’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기를 치는 것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상대방의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 상대방을 돕거나 선의를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 조차도 서로에겐 신뢰를 쌓아가거나 잃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전생의 업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 업들이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고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게 사는게 이익인것 같다. 선의이든 악의이든 물에 빠진 놈 구하는거 포기하는건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빠진놈이 아쉬운거지…
같이 일할 사람을 모셨다. 계약은 끝난것 같고 지리한 비자 프로세스가 남아있다. 데브옵스 한분..그리고 PO 한 분.. 이 분은 IAMG 때 부터 인연이 있었다. 빨리 즐겁게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회사에서는 큰 조직개편이 있었다. 작은 팀이나 업무로 가지고 있던 프로덕트를 팀으로 만들어 4개의 팀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 회사의 모든것을 다 알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는데..이 회사의 모든것을 다 하는 포지션으로 가는것 같아 걱정이다. 급한 불들만 끄고 모두에게 새로운 목표와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4명정도를 더 채용해야 하는데 롤도 제각각이라 좋은 사람을 모셔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사온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드디어 식탁과 쇼파를 새로 장만했다. 평일 휴가내고 놀러간 Stilwerk에서 맘에 꼭 들었던 쇼파! 색상과 천 정하러 간 두 번째 방문에 꼭 맘에 들었던 식탁과 의자! 그리고 큰 고민없이 결제! 이제 독일이 그러하듯 6주만 기다리면 집으로 배달되어 올것이다. 이제 몇몇 조명과 몇몇? 부분 개선만 하면 적어도 조금 꾸며놓은 집 같아 보이겠지..
올해 첫 자전거를 탄 다음날 바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나와 정은이것 두 대.. 보험에 보상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다음주면 4월이다.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바깥에 더 많이 나갈 수 있을것 같다. 바베큐도 개시하고..마당에서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어야겠다.
독일에 온 지 5년이 지나 6년차에 접어들었다.
2014년 3월 7일, 발리에서 베를린으로… 익숙하지 않던 모든것이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지니 어느정도 적응은 했다고 생각해도 좋을것 같다.
그야말로 울고 웃던 나날들, 단 하루도 나태하거나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20대였다면 많이 성장했다고 추억하겠지만 지금은 어쩐지 더 늙어버린것 같다는 마음에 기쁘지만은 않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독일에 와서 적응하고 보니 30대가 다 지나버렸구나.. 꿈꿔왔던 다른 인생의 선택지들도 이젠 주머니 속을 뒤져야 나오는 작은 부스러기처럼 얼마 남지 않아보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은 무엇이든 끝내야 한다는 오기로 남았다.
하지만 이 5년은 독일에 처음왔을 때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던 기간으로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사업을 하고 60개월동안 연금과 세금을 내고 나서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그 선택지의 나는 지금의 나 보다 행복할까? 가끔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갈림길이 얼마나 단순한 동기로 결정되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낭떠러지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 아찔하다.
정은이와 몇 번을 되새기며 돌이켜본 지난 5년은, 우리는 잘 선택했고, 어쩔 수 없이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 했고, 그리고 행복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이들어 가는 지금 오늘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