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지?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긍정적,낙천적 그리고 이상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성격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무엇도 흑과 백 둘로 나눌 수 없듯이… 부정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이 나쁜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상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나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필요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면에서 나와 정은이는 서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잘 잡아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No’ 라고 해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인간관계를 끌고가기도 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소비를 집중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하고 큰 결정을 내리는 것에 주저하는 점들도 많다. 몇몇 부분들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쉽게 말해 내 기분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우선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내 기분이 쉽게 움직이는 일이 많다.

처음엔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맞추고 모두 행복하면 좋겠지만 내가 납득이 안된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진실로 녹아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거짓으로 공감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나도 상대방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우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시우는 자기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생각하는게 바로바로 입으로 나와서 시우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상해’ ‘나는 지금 너무 기뻐서 다리가 떨릴 정도야’ ‘형이 나쁘게 말해서 너무 싫어’…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듣고 있자면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내 쪽에서 시우의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서로 솔직하기 때문에 서로 절충점을 찾는 대화의 과정이 힘들지 않았고, 대화의 간극에서 나오는 감정의 차이가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우를 거울삼아 비추어 나 스스로에게서 알아낸 또 한가지는 바로 나의 대화 방식이었다. 시우는 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뿐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주로 상대방에서 요구하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좀 그만해’, ‘왜 그래?’. 이 발견은 사실 스스로 조금 충격을 받을 정도였는데 결국 이 말들에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내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정은이나 아이들을 비난 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과 함께 책임을 미루거나 책망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상대방이 느끼는 그 감정들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난 그냥 ‘힘들다’, ‘기쁘다’ 혹은 ‘슬프다’와 같은 감정을 보여주고 공감받기를 원했을 뿐 무언가를 뜯어 고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하거나 다른 사람한테는 내 감정도 잘 전달하고 대화도 잘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정보가 큰 차이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

굳어버린 습관도 많을 터라 바로 잘 해나갈 자신은 없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라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곳에 먼저 기록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끝이 없다.

지난 1년은 이라고 시작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라고 이야기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코로나를 떠나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과 아이들 그리고 원래 신경쓰고 있던 다른 일들까지..

어느 날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익숙해지고 요령을 찾게 되면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직업으로 보자면 수 많은 일들과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로 이제 두 번째 Softlaunch 를 시작하였다. 아주 마지막 그 순간까지 이런저런 버그와 실수 그리고 시행착오로 제대로된 생활이 불가능했다. 후련하고 뭔가 바뀌는게 있을거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뭔가 답답한 이 기분… 내 부족함이 아닌 다른사람의 부족함을 도와주고 메꿔놓았더니 그 삽자루가 여전히 나에게 쥐어져 있는 기분에 굉장히 우울하다.

가족이나 집안의 일이야 곧 나의 일이고 또 언제든 조절할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일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배에 나온 구멍에 물이 들어오고 있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 팀도 불과 1년 사이 많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다시 뽑았다. 다행이 개발은 좋은 사람을 뽑아 잘 하고 있지만 이제 규모도 커지고 업무 처리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 새로운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늘 싸우고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다. 나 또한 굉장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 기분은 마음 깊은 곳에 눌러담고 이곳 저곳 불이난곳을 찾아 다니며 또 다른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많고 다들 성격도 다르고 원하는 것들도 다르니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런 갈등이 감정의 상처로 바뀌고 당연히 당사자들은 그러한 상처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3자, 주로 내가 그 마무리를 진행해야 한다. 끝이 나지 않는 두더지 게임처럼 한 곳을 누르면 한 곳이 터져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마음에 억지로 참아가는 마음으로 나 또한 다른 하나의 폭탄이 되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보다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하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냥 답답하고 우울하다. 나 또한 두더지 게임 속의 두더지가 되어 튀어 나올때 마다 두들겨 맞더라도 소리한번 지르고 내 감정을 쏟아내 버리고 싶다. 누군가 치워주겠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다들 힘들고 외롭다고 하는것 같다. 나도 힘들고 외롭다. 나도 소리지르고 싶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내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 화를 잘 풀어서 모든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일이 버겁거나 집에서 힘들거나 이런 것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아니 내 마음이 이해 받았다는 기분이 절실하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다. 나는 사라져 버리고 역할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부정적인 기분을 만드는 모든 것들을 지워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끝은 있다. 내가 잡고 놓지 못해 끝이 안나는 것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울고 불고 잡고 놓고… 그래 어쩌면 오늘 이 결심을 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몰아왔던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만할래!

2020년

모두의 기억 속에 여러 의미로 오래 기억될 2020년이 이제 다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인 이슈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역시나 올해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약간은 스스로 성장을 많이 경험한 한 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 과연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중학생이 된 지우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 지우가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룬트슐레 전학 후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고 선생님들도 계속 바뀌는 과정에 속상해하며 3년을 보냈는데.. 김나지움에 들어가서 원래의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지우의 모습을 연속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오직 30명 만이 뽑는 학교에 이런저런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학교.. 결과가 나오기 가지 두 달이 넘도록 속으로 긴장해 있는 지우를 보면서 잘 될 거라 말을 해 줬지만, 우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못 가면 속상해 울음이 날 정도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어쩜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예쁜지.. 우리도 덕분에 지우 친구 부모님들과 친해지고 한집과는 굉장히 친해져 즐겁게 서로 만나며 지내고 있다. 지우는 부쩍 커서 이제 손, 발은 엄마보다 더 크고 키는 3㎝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내년엔 엄마보다 더 크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매일 보고 있지만, 적응이 안 되는데…. 내년에 정은이보다 더 크면 어떻게 될는지… 사춘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힘들게 하지 않고 늘 엄마·아빠 동생들 생각에 무엇이든 즐기고 열심히 하는 지우가 진심으로 고맙고 부럽기만 하다. 내년엔 또 얼마나 즐겁게 보낼지 내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이직, 반 프리랜서로의 삶 시작

AAI 에서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구현해 가는 과정들은 즐거웠으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을(대부분 부정적인) 내 의견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일들이나 이런 식의 구세대적인 경영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 일을 그만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최대 모바일 퍼블리싱 회사에 독립된 랩을 차려 그곳의 개발 책임이지 메인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원하던 리모트 포지션에 내가 독일에 있는 관계로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하게 되어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회사생활의 안정성과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는 업무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골라서 하니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수렴한 일 년이었다. 유니티와 모바일 게임 전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배우게 되었고 똑똑한 개발자 한 명을 채용해 역시 스트레스 제로 레벨로 같이 일하고 있다. 네이버에 있을 때도 느꼈고 AAI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할 때도 느꼈지만 개발은 사람이 많다고 잘 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내년엔 조금 더 확실한 방향이 정해지겠지만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실된 관계에 대한 고민

독일에 오기 전부터 많은 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진실한 관계만 맺으려 노력해왔다. 독일에 와서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만큼 진실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약간 이러한 부분에 극단적으로 예민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끊어버린 관계도 많다. 물론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건 우리가 잘나고 그들이 못난 것이 아닌, 우리가 잘하고 그들이 못한 것도 아니기에 우리 입장에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냥 우리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챙기고 그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기에 그런 관계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끊어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언제든지 있겠지만 우리 주변엔 늘 보고 싶고 만나서 배울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가족을 빼고 손에 꼽을 만큼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이러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진실하지 못한 사람,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고 늘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폴란드 여행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남부 유럽이나 비슷한 곳으로 놀러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제한이 완화된 기간에 폴란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관광보다는 약간 먹거리 투어의 느낌으로 바르샤바로 600km 넘는 길을 다녀왔다.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냥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바로 이웃 나라 치고는 달라 보이는 여러 풍경과 문화 그리고 음식을 경험하는데에도 즐거웠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해 본 첫 여행이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린 그냥 뭘 해도 재밌는 건지도..

정원가꾸기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에도, 일로 바쁜 와중에도 약 4-5개월을 하루 한 시간 이상씩 정원 관리에 쓴 것 같다. 여러 시행착오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잡초제거, 죽은 잔디/이끼 긁어내기, 흙 보충, 잔디 심기, 스프링클러 설치, 파빌리온 설치, 창고 만들기 등으로 쉴 틈 없이 시간을 보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이끼가 많고 잔디가 빽빽이 자라지 않았다. 이건 내년 봄부터 올해 알게 된 노하우로 쉽게 개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엔 어닝 설치와 정원에 전기설치가 아마도 큰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홈오토메이션

날이 추워져서 정원일 하기가 어려워져서 그간 미뤄두었던 홈오토메이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였다. 거실과 화장실을 제외한 전구를 다 교체하고 통일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난방 조절을 위한 조절기 설치 및 조명을 위한 스마트 스위치까지, 새로운 스마트 도어록까지.. 그리고 끝판왕으로는 이 모든 별개의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라즈베리파이에 홈어시스턴트를 설치하여 연동했다는 것.. 예전에 애들이랑 레트로파이하다 처박아 놓은 3 모델에 무려 도커까지 올려 홈어시스턴트와 홈매틱 CCU까지 돌리고 있다. 이 또 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행착오로 정은이한테 대체 돈 들여 왜 자꾸 불편하게 만드냐는 불평을 들었지만, 묵묵히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거실/부엌 조명인데 아직 우리 집 거실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3년이 넘었는데)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hochulsong.com

형과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하나 한 것을 계기로 내 이름으로 된 도메인을 구매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나만의 포트폴리오/프로젝트 사이트를 만들기로 하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곳은 가족이 아닌 나의 관심사만을 한정하여 꾸미고 싶다. 지금은 주로 ThreeJS 나 웹 접근성이 강한 기술 위주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흐지부지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다.

상태회복 선언 2020년.

블로그에 써 놓은 것처럼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변화를 어떻게 정의하겠냐마는 그 글 하나를 계기로 많은 후회를 떨쳐낼 수 있었고 내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지만 생각도 행동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운동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겠지만 홈오피스+코로나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없이 먹기만 하니 몸무게가 78킬로를 찍게 되었다. 같은 키에 68킬로 몸무게로 살았었는데 +10킬로가 되어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기에 미루고 미루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 종목은 조깅으로 아직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열심히 하고 있다. 4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4킬로 정도 빠지고 체력이나 몸도 많이 좋아진 걸 느끼고 있다. 2021년에는 조금 더 정기적으로 하며 다른 근육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은이도 그 전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근육이 많이 붙는 게 보인다.

쓰고보니 나 스스로가 많은 여유를 찾은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일하며 정은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집안일도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 올해도 힘들었다’라는 느낌이 없고 ‘아 올해는 재밌었다’라는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이 놀랍다. 호야가 태어나서 6개월 정도 매일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행복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다… 2020년이 그것을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2021년에는 더욱더 행복하게 보내야지!

이제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지난 12년간 아이들을 키워오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첫째 지우는 기준을 잡을 방향도 없이 어느 것이든 극단적으로 키워왔던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 많은 것을 받아준다던가 하는 긍정적인 방향도 있었지만 아이의 욕구를 틈도 없이 차단해 버린 적도 있었다. 둘째 지호가 태어나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것에 맞춰진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한 아이를 챙긴다는건 다른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하루도 만족하거나 웃을 수 없는 하루였다. 특히 엄마로서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정은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가 비슷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고 또 크고 작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휴게소를 찾으며 고장난 엔진으로 전력질주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있었던 기분이었다. 우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고(지금도) 중간 중간 쉬었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최소 20년이 걸리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우리는 눈 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고, 길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피곤이 쌓이고 여유가 없어지자 아이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화는 분노로,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훈육을 핑계로한 폭력.. 그 수위가 어느정도이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에 대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은 이제 평범한 부모만 되어도, 아니 나쁜 부모만 되지 말자로 바뀌어갔다. 병원에 갔다면 무언지 알 수없을 병명을 십수개 진단받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 무렵.. 우리는 매일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시 다짐했지만 세 아이와 외국생활에 대한 적응, 여러 집안문제 그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게에 짓눌려 끝없이 추락하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던게 둘째를 키우던 첫 해였는데 그로부터 불과 3년뒤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해본적 없는 바닥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스스로 천성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생각했던 나 스스로 우울함을 느끼던 그 때, 이미 우울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정은이.. 행복했던 우리가족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이제는 이유도 알 수 없던 그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인정하고 또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셋째 시우가 말이 트여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챙길게 많았지만 시우가 말을 하게 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불과 1-2주 사이의 변화였다. 소리지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아이라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애교를.. 그리고 지우와 호야도 학교, 유치원에 적응했고 우리의 비자도 안정되었으며 불안한 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집의 계약도 마무리 되었다. 머리속을 가득채우던 걱정거리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행동은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웃는 날들은 늘어나고 약간의 여유도 생겼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이 생기면 예민하게 굴었다. 늘 나빠지기만 했던 상황이 이제 바닥을 치고 하루 하루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서로에게 위로하며, 우리는 좋은 부모가 아닌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철없던 10대 시절 입에 욕을 달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 고치겠다고 마음먹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 2년정도 걸렸던 기억이 났다. 나쁜부모가 되지 않는 다는 목표는 우리의 첫 목표에 비하면 비참한 수준이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기에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변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조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부모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뭔가를 고쳐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과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 더 느끼려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급하게 아이들을 밀어대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그리고 짜증내는 것을 구분하고 화와 짜증은 아이들 앞에서 내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고 만약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면 아이들과 이야기 해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풀 수 있도록 한다.

내 생각이지만 정은이는 좌절과 우울함 그리고 힘들었던 정도가 나보다 훨씬 심했고, 나와 성격도 달라서인지 아직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령도 모르고 늘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는 정은이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더 챙기고 여유를 만들면 조금은 더 쉽게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마일스톤을 넘었다는 선언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도 많고 정리할것도 많았지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과 가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사는게 쫓기듯, 밀리듯 살다보니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 마저도 쉽게 이루지 못한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더 여유있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와 달라야 할 것

아이는 혼날 수 없고 혼내서도 안된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엄숙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이 이후에도 감정의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한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서로 웃을 수 있어야 제대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화 중에 주제를 자주 바꾸지 않듯이 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 해 줄 때 다른 주제로 바꾸지 않는다. 특히 싸우거나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옛날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들먹이며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혹은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러 왔을 때, 그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나한테 관심있는 주제로 바꾸는 것도 똑같이 좋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한 노력에 보답받지 않았다고 하여 그 서운함을 다시 아이에게 표현하지 말자.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인데’ 라던가 ‘어떻게 만든 음식인데’ 와 같은 마음들..

아이들이 다가올 때 밀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에 비하면 실수 투성이다. 아는것도 많지 않고 경험도 부족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프다. 실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아는 아이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 용기있는 시도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말은 짧을수록 좋다. 내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내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이유 말고는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길어질 수록 거부감만 생긴다.

짜증과 화를 구분할 것. 부모도 인간이니 화가나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건 옳지 않다. 화가난다면 그 상태를 알리고 시간을 가지면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짜증을 내는건 내 감정을 배설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의 일에 일희일비하는것 처럼 아이들을 외곡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없다. 은연중에 부모의 기대가 아이의 사고를 지배하게 만들면 안된다. 기쁜일이든 나쁜일이든 같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것 말고는 부모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아이의 삶을 내 삶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잘 할 자신도 없다. 매일 계속 되새기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저 중에 하루에 하나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적고 읽고 또 적고 읽는다. 오늘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제 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만 늘 하지 못하는것, 늘 명심해야 할것

아이는 부모의 말이나 결정이 아닌 부모의 행동에서 배운다. 부모의 조언이나 생각이 아닌 본인의 경험으로 성장한다.

짜증을 내는 것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이다.

나에게 아이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제어할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은 없다.

아이는 부모의 결정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 한가지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결정의 권리는 아이에게 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성숙한 인간이 되고, 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아이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것 같다. 무슨 공부를, 돈을, 습관을, 교육을…이런 주제는 그 다음 문제로..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깨닫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게 생존에, 그리고 삶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내가 특히나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먹어본 똥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어렸을때 참 많이 찾아 먹었다. 하루 이틀 빨리 경험하고 하루 이틀 빨리 졸업했던 그 시행착오들이 오늘의 시간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실수하고 배우고 또 반복하지만 조금씩 좋아지는것에 위안을 받는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가 생길 때,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자기를 보는 시간보다 타인을 보는 시간이 많아 내 시각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의 방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경쟁사회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 생각한다. 타인의 기준에 자신의 행복을 맞추기 때문에 스스로가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억지로 부여한 동기로 밀어올린 성과의 우위로 자신의 행복을 가늠한다. 그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치졸해지고 진 사람은 찌질해진다.

경쟁에서 지는 사람은 거대한 열등의식에 빠져 인생 전체를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직장도 결혼도 아이도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에 불과하다. 때문에 거기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들을 수단으로 우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언젠가 그들이 우위를 점하는 날이 온다. 이제 나의 직장, 가족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지는 사람이 많을까? 그야 물론 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쟁의 기준도 많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두가 패자인 사회가 된다. 점점 더 비열해 지고 유치해 지고 치사해야만 짧지만 작은 행복이라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인스턴스 행복은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이런 행복은 금방 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속을 채우는게 중요하다. 무엇이 자기의 인생인지 아는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돈도 더 잘 벌린다.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안된다는게 이런거다.

한 번 열등감에 빠지면 그 세계에 갇혀버리게 된다. 어릴때 두들겨 맞던 사람은 평생을 운동에 집착하고 복수를 꿈꾸며 육체적인 허세만 부리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못간 사람은 평생을 학위나 타이틀에 집착하며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열등감을 정당화 시키고 벗어나게 해 주는 돈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열등감을 얻는다.

내 주변에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2020

지난 한달여간, 머릿속에 수 많은 가능성들을 시험해 보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 하고 싶고, 다 하기 싫고, 자신있다가 없고 그냥 짜증만 나고 몸도 계속 아팠던 지난 한 달. 감사하게도 마음속 하나의 큰 다리를 건넌 기분이다.

머릿속 관념을 깨고 비틀고 거꾸로 바라보니 무엇을 해야할지 답이 나왔다. 늘 그렇듯 답은 알고 있었다, 실천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 싫은건 걷어내고 좋은것 붙이면 되는거지. 손해보다 이익이 크면 하는거지. 해서 재밌으면 하는거지. 그렇다. 말은 쉽지..

나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어쩌나? 물심양면으로 한창 신경써야할 토끼같은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서 우리 부부, 자식들만 키우기에도 버거운데, 내가 정은이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와도 부족할 판에 부담을 더 지워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깨고 비틀고 거꾸로 봐야 했다. 꼭 이래야 저런다는 관념이 내 인생에도 늘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아이들 키우는 부담도 줄고, 일하는 부담도 줄이고 그러면서 시간도 늘리고 버는 돈도 늘리는 일 말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지금 생각으론 많은 사람들이 그 결론을 못 내릴 뿐 이미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이건 또 뭔 말이냐고? 한 달동안 아프고 생각을 많이 했더니 정리하기가 어렵다.

2020년은 나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시험하고 또 조율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14년 한국을 떠났던 그 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난 5년간의 배움을 그 마음에 녹여내야지..

2019

2019년은 별 다른 일 없이 평안하게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우의 학교 입학처럼 많은 일들이 예측 가능했고 계획되었던 일들이었으니..

늘 그렇듯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언제나 ‘다사다난’ 했던 1년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한 가지 결과는 다른 일의 원인이 되니 그것이 나쁜일이었는지 좋은일이었는지는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중에 지금도 진행 중인 몇가지 일들을 적어보자면 단연코 회사에 던진 나의 사표가 되겠다. 왜 사표를 던지게 되었는지를 따져보자면 사실 올해 두 번 승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일이 힘들어서 못견뎠다면 그건 또 아니다.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일들을 진행하다 보니 회사 내부 사정을 더 잘 알게 되고 거기서 경영진과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냥 개발자로 있었다면 모르거나 모른척 넘어갈 수 있는 그런일들이 이제는 못본척 넘어갈 수 없는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의 다음에는 나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또 다른 챕터가 기다리고 있다. 사표를 내지 않고 더 버티고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에 홀린듯 아무런 계획없이 사직을 하고 보니 내 앞의 가능성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조직에 특화된 기술이 아닌 내가 나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술들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고, 사실 이미 무엇이 나에게 옳은 정답인지 알고 있었으니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한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정도 수입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가슴뛰지 않는 일은 하지도, 쳐다보지도 말자. 사람들도 다 쳐냈는데 이까짓 것들은 일도 아니다. 차분히 마음정리 몸정리를 하면서 생각하니 또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다사다난한 2020년을 만들 수 있을만한 일들, 나를 다시 한계로 몰아 붙일 수 있는 상황들,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들 말이다.

지나간 일에 옳고 그름은 없다. 그 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다음 선택을 혹은 그 결과를 옳게 혹은 그르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정말 가능하다면, 매일 가슴뛰는 하루로 만들어 보고 싶다.

맥북프로 키보드 수리

내 맥북프로의 키보드가 애플의 특별 보증 수리에 해당된다고 하여 회사근처 그라비스에 수리의뢰를 한 것이 몇 주 전… 오늘 수리 완료된 맥북을 찾아왔는데, 내 맥북을 돌려주는 직원이 하는 말이, 이건 유니바디라 중간 레이어의 케이스와 거기 붙어있는 키보드, 스피커, 터치패드까지 모두 새걸로 교체했다고 한다. 비용은 물론 무료!

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아서 그런지 아주 새것이 되어버렸네..뭔가 좋은 예감이 든다! 이것 저것 세팅을 하고 나니 내 서버 꾸밀 때 처럼 뭔가 아련한..그 느낌이 온다. 늘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

사표를 낸 날 부터 감기에 걸려서 벌써 2주가 넘게 고생하고 있다.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더 심해져서 이젠 기침을 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에..오늘 아침에는 코피까지 흘렸다. 몸 상하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휴가가 끝나면 병원에 가서 꼭 검진을 받아야겠다. 그 동안 아파도 참고 회사에 나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몸도 좀 회복하고 다음 도전을 위한 준비도 열심히 해야겠다. 나이가 40이 되어서 아직도 뭐 하고 살아야 할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다니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